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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26일차(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빌라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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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와는 달리 알베르게의 아침 풍경이 무척 여유로웠다. 일단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설치는 사람이 없었다. 먼 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의 안도감, 아니 성취감에서 나오는 여유일지도 모른다. 난 대서양까지 이어지는 길을 내 발로 걸을 예정이라 남들처럼 마냥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간을 버스로 이동하는데 나만 홀로 유난을 떠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지하에 있는 부엌으로 내려갔더니 어느 한국인 여자분이 밥을 너무 많이 했다고 한 그릇을 그냥 준다. 밥을 태워서 냄새가 나긴 했지만 양파 볶은 것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오전 8 30분에 배낭을 꾸려 숙소를 나왔다. 평소보단 좀 늦은 출발이었다.

 

알베르게 건너편으로 아침 햇살을 받은 산티아고의 스카이라인이 빤히 보였다. 붉은색 지붕을 이고 있는 건물들이 고풍스러움을 한껏 뽐내고 있어 고도의 품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대성당으로 가는 골목엔 사람들 왕래가 거의 없었다. 대성당 앞 광장에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성당 뾰족탑으로 아침 햇살이 살포시 들어왔다. 호텔 앞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로 접어 들었다. 본격적으로 카미노 데 피스테라(Camino de Fisterra)가 시작된 것이다. 외곽으로 빠지는 지점에 표지석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엔 무시아(Muxia)까지 86.337km란 거리 표시만 있었고 피스테라까지의 거리는 없었다. 무슨 이유로 소수점 세 단위까지 표시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보고 절로 웃음이 나왔다. 스페인이 언제부터 이렇게 정확한 나라였던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산티아고를 완전히 벗어나 시골로 들어섰다.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산티아고의 스카이라인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벤토사(Ventosa)와 트라스몬테(Trasmonte) 등 작은 마을 몇 개를 지났다. 특별히 관심을 끄는 마을은 없었다. 시골에 있는 집치고는 규모가 꽤 컸고 붉은 지붕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길가에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유난히 많이 보였다. 순례길을 나타내는 노란 화살표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와 같았다. 한 가지 차이점은 이 길을 걷는 사람이 현저히 적다는 것이었다. 산티아고에서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피스테라나 무시아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길에서 만난 순례자가 대여섯 명에 불과하니 숫자가 줄긴 많이 줄었다. 그 덕분에 호젓하게 걸을 수 있어 좋았다.

 

푸엔테 마세이라(Puente Maceira)에서 탐브레(Tambre) 강을 건넜다. 근사한 다리에다 보를 넘은 강물이 마치 폭포처럼 쏟아졌다. 관광객들도 꽤 보였다. 네그레이라(Negreira)로 들어서기 전에 저택이 하나 나타났는데 담이 높아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쉐퍼드 두 마리가 담 위에 점잖게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지켜본다. 곁눈질도 하지 않고 쓸데없이 짖지도 않았다. 네그레이라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카페에서 햄버거를 하나 시켰다. 크기가 상당해서 두 손으로 들고 먹기가 힘들었는데 이렇게 맛이 없는 햄버거는 처음 보았다. 억지로 먹느라 정말 힘들었다. 이 마을에 혹시 수퍼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하나 있었는데 문을 닫았단다. 도대체 이렇게 큰 마을에서 빵이나 과일을 사기도 어려우니 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마을을 빠져 나오며 만난 산 마우로(San Mauro) 성당과 코톤 대저택(Pazo de Coton)이 인상적이었다. 대저택 아래에 있는 아치형 문을 지나야 했다.

 

오전에 이미 20km를 걸었고 빌라세리오(Vilaserio)까진 다시 13km를 걸어야 했다.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길을 걸었다. 눈앞에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축사에서 나오는 냄새도 다시 시작되었지만 마음은 무척 여유로웠다. 빌라세리오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더니 마침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구름을 붉게 물들이는가 싶더니 금방 어두워졌다. 알베르게 시설은 형편없었다. 침대가 없는 방에는 맨바닥에 매트리스만 깔려 있었다. 이런 알베르게는 솔직히 처음이었다. 특이한 경험이라 생각하고 하루 묵기로 했다. 숙박비는 도네이션이라 하지만 밤 늦은 시각에 관리인이 수금하러 와서 5유로씩 주지 않을 수 없었다. 크레덴시알에 스탬프도 받았다. 이 마을에 유일한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구운 햄과 계란 프라이, 감자 튀김이 나왔는데 성의도 없었지만 맛도 별로였다. 돈이 좀 아까웠다.

 

대서양 연안에 있는 피스테라로 향하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아침이 밝아오자 산티아고가 잠에서 깨어나 밝게 웃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 대성당과 시청사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다.

 

길가에 세워진 표지판에는 무시아까지 거리만 적어 놓았다.

 

산티아고를 벗어나 어느 언덕 위에서 산티아고의 스카이라인을 다시 보았다.

 

벤토스 마을에서 옥수수를 저장하는 오레오가 눈에 띄었다.

 

트라스몬테 마을에선 주민들이 겨울을 날 장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푸엔테 마세이라는 다리도 예뻤지만 폭포처럼 떨어지는 강물도 볼만했다.

 

길가에 네그레이라의 어느 알베르게를 선전하는 예쁜 그림 광고판이 걸려 있었다.

 

네그레이라 직전에 있던 어느 저택 담장 위에 쉐퍼드 두 마리가 근엄한 자세로 앉아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스페인 음식은 입맛에 잘 맞았으나 이 햄버거는 솔직히 먹기가 좀 힘들었다.

 

네그레이라 도심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세워진 순례자 상

 

 

네그레이라의 코톤 대저택 아래를 통과하는 아치문. 산 마우로 성당은 코톤 대저택과 붙어 있었다.

 

 

네그레이라 성당은 시내에서 좀 벗어난 언덕 위에 홀로 세워져 있었다. 여기서 내려다 보는 마을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한적한 시골길이 다시 시작되었다. 산길에서 만난 표지석 위에 등산화 한쪽이 놓여 있었다.

 

페냐(Pena) 마을의 산 마메데(San Mamede) 성당

 

 

빌라세리오에선 학교로 쓰이던 건물을 공립 알베르게로 개조한 곳에 하루 머물렀는데,

침대가 아닌 매트리스에서 하룻밤을 자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빌라세리오에서 일몰을 맞았다. 그런대로 석양이 아름다웠다.

 

 

빌라세리오에 하나밖에 없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여직원은 불친절했고 가격에 비해 음식도 성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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