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포드 트랙의 최고점인 맥키논 패스(해발 1,154m)를 넘어가는 날이다. 가장 힘들지만 반면에 가장 아름다운 구간을 지나는 것이다. 밀포드 트랙의 하이라이트를 걷기에 부푼 마음으로 민타로 산장을 출발했다. 지그재그로 난 산길을 걸어 퀸틴 맥키논의 기념비가 있는 지점까지 두 시간을 꾸준히 올랐다. 밀포드 트랙을 걸으며 처음으로 숨이 차고 땀도 났다. 기념비가 있는 고개에 오르자, 앞뒤로 시야가 탁 트이며 시원한 산악 풍경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풍경이라는 것이 히말라야처럼 장쾌하지도 않았고 캐나다 로키처럼 아름답지도 않았다. 이것이 전부란 말인가? 듣던 것과는 달라 주변을 서성거렸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전부였다. 실제 맥키논 패스는 거기서 조금 더 가야 했다. 고도를 급격히 낮춰 퀸틴 쉘터에 도착하자, 서덜랜드 폭포(Sutherland Falls)로 가는 사이드 트레일 나왔다. 왕복 한 시간 반을 투자하면 낙차 580m의 거대한 폭포를 바로 눈 앞에서 볼 수가 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낙차가 큰 폭포라고 알려져 있다. 14km의 산길을 걸어 덤플링 산장(Dumpling Hut)에 도착함으로써 또 하루를 마감했다.

 

 

민타로 산장에서 맥키논 패스를 오르는 길은 줄곧 오르막이었지만 풍경은 점점 살아났다.

 

 

클린턴 밸리를 되돌아보며 맥키논 패스를 오르면 건너편 산악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퀸틴 맥키논의 기념비가 있는 고개로 오르면 밀포드 트랙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파노라마 풍경이 펼쳐진다.

 

 

밀포드 트랙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맥키논 패스에 닿았다.

악천후를 대비한 것인지 쉘터가 세워져 있었고, 그 안에서 물을 끓일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맥키논 패스를 넘어 반대편으로 고도 970m를 내려서야 했다.

 

 

로어링 번(Roaring Burn) 강에는 낙차가 크지 않은 아담한 폭포들이 계속해 나타났다.

퀸틴 쉘터에 도착하기 직전엔 린지 폭포(Lindsey Falls)도 만났다.

 

 

 

3단으로 구성된 서덜랜드 폭포는 낙차 580m를 자랑하는 거대한 폭포였다.

 

고도를 낮춰 계곡으로 내려서자 평화롭고 아름다운 산길이 다시 나타났다.

 

 

덤플링 산장에 도착해 예외 없이 레인저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못난이지니 2016.04.09 2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체셨나봐요? 제가 걸을때는 검은머리는 저 딱 하나여서 더 눈에 많이 띄었었는데... 그때가 그립습니다. 4일간의 여정이 그때는 많이 고단한 하루하루였지만 지나고 보니 꽤 기억이 납니다.^^

    • 보리올 2016.04.10 14: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래 전에 밀포드를 다녀오신 모양이군요. 요즘은 한국 사람들도 많이 찾습니다. 지니님은 오스트리아에 사시는군요. 아름다운 곳이죠. 저도 독일에서 5년을 살았는데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 독일어 잘 하냐고 묻더군요. 실은 저도 서바이벌 독일어였거든요.

  2. Justin 2016.04.28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아버지말마따나 3일째가 가장 볼거리도 많고 주변 경관을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도 핸드폰과 디카 충전을 할 수 없어서 첫날, 이튿날 열심히 아껴놨다가 삼일째에 전력을 다해 찍어놓았습니다~!

    • 보리올 2016.04.29 05: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밀포드 트랙에선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라지만 난 사실 실망을 금치 못 했다. 그래도 자연이 청정해서 힐링은 되었지만 말이다.

 

루이스 호수 주변에 있는 다른 산행지, 센티널 패스를 오르려면 모레인 호수(Moraine Lake)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모레인 호수는 루이스 호수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 피크스 계곡(Ten Peaks Valley) 안에 있어서 루이스 호수 못지 않은 뛰어난 경치를 선사한다. 산행은 왕복 11.6km 거리에 등반고도가 725m. 보통 5시간 정도 소요가 된다. 우리에겐 초등생 꼬마가 있어 산행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아이가 힘들어 하면 수시로 쉬어 가고 투정을 부리면 한대장이 등에 업고 가곤 했다. 이상 못가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처음부터 지그재그 오르막 길이 지루하게 펼쳐졌다. 가끔 나무 사이로 보이는 모레인 호수의 비취색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루이스 호수와는 다른 색깔이었다. 히말라야를 드나들듯 했던 한대장도 로키의 울창한 숲과 없이 많은 호수에 대해서는 부러운 기색이 역력한 보였다. 2.4km 지점에서 갈림길을 만나는데 오른쪽으로 가야 라치 계곡(Larch Valley) 경유해 센티널 패스에 닿는다. 라치 계곡은 9월이면 온통 오렌지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데, 또한 로키가 자랑하는 장관 하나이다. 흔히 단풍하면 활엽수를 생각하는데 라치는 단풍이 드는 침엽수다. 우리 말로 하면 낙엽송에 해당한다. 바늘같은 침엽들이 노랗게 변해 벌써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라치 계곡을 지나면 고산 특유의 초원지대가 나타난다. 여러가지 색깔의 야생화가 만발한 평원을 지나면 센티널 패스가 손에 잡힐 앞에 보인다. 왼쪽으로는 봉우리가 우리를 호위하듯 따라오고, 오른쪽은 템플 (Mt. Temple, 3,543m) 공간을 채워놓고 있었다. 템플 산은 캐나다를 동서로 횡단하는 1 하이웨이에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산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방향이 하이웨이에서 보는 방향과 정반대라서 느낌이 다를 뿐이다. 저절로 휘파람이 나올 정도로 풍경에 취해 걸었다.

 

센티널 패스 아래에 있는 미네스티마 호수 가장자리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했다. 급경사를 오르는 지그재그 길이 우리 앞에 훤히 드러났다. 걸음에 닿을 같아 보이지만 여기서 다시 30 발품을 팔아야 패스에 도착할 있었다. 아침부터 흐렸던 날씨가 구름이 걷히며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센티널 패스에선 사람을 무서워 않는 다람쥐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센티널 패스는 템플 산과 피나클 산의 안부에 위치해 있다. 해발 고도는 2,611m. 건너편으로 파라다이스 계곡이 펼쳐졌다.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겪은 송곳처럼 뾰족한 바위들이 눈에 띄었다. 유난히 눈에 띄는 촛대바위에는 명의 클라이머들이 개미처럼 붙어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내멋대로~ 2014.05.16 0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와 함께 대단하신데요...

    모레인 호수만 찍고 왔었는데..
    트래킹으로 보니... 록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네요

    • 보리올 2014.05.16 2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악인의 초등생 아들인지라 강단이 있더군요. 캐나다 로키는 두 발로 직접 걸어 들어가셔야 훨씬 장엄한 풍경을 접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꼭 걸어 보세요.

  2. justin 2014.05.20 18: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밴프에서 정말 좋아하는 코스입니다. 저때는 저 장난꾸러기 아이때문에 배낭을 앞뒤로 매고 산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어렸을때 개구쟁이였나요?

    • 보리올 2014.05.21 0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코스는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도 경치가 아름다워 나도 좋아한다. 매번 가도 늘 감동이 이는 곳이지. 저 때는 네가 대성이 돌보느라 고생했지. 저 때로 돌아가고 싶구나.

  3. 설록차 2014.06.06 04: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자 부자가 함께 산행을 하셨어요...
    아버지는 아들의 모델이다~는 말이 틀림없습니다...말하지 않아도 보여주는대로 따라가는것 같습니다...공통화제가 있으면 대화도 많아지고~그럼 서로를 더 잘 알고 이해하게 되겠지요...세대차이?? 그게 뭔 말이더라~하시겠어요...ㅎㅎ

    • 보리올 2014.06.06 0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앞의 부자는 돈 많은 부자였으면 좋았을 걸 싶네요. 아무래도 산행을 가선 둘만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죠. 아들을 데리고 산엘 다닌 것이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납니다.

  4. 안영숙 2015.12.23 07: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entinel pass, round trip 하고 나와 홍성근씨가 ,hitchhiker로 성공한 그때가 그립습니다,
    지금 보니 종인이가 Justin?
    Canada의수상이 된 Justin Trudeau의 이름과 같아 더욱 좋네요,

    저는 올해 여름에도 또 갈 기회가 되어 신났었지요,

    • 보리올 2015.12.23 0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때 센티널 패스에서 파라다이스 밸리로 나왔나요? 근데 왜 홍선생님이 차를 가지러 갔죠? 기억에 별로 없네요. 전 올해도 파라다이스 밸리로 나와 히치하이킹을 해서 차를 가지러 갔던 적이 있었지요.

  5. 김치앤치즈 2016.07.20 06: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모레인 호수에 갔을 때는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저는 좀 무서웠답니다.^^
    저희도 센티널 패스를 걸었는데, 칩멍크가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서인지 사람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더군요.ㅎ

    • 보리올 2016.07.20 08: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레인 호수에는 늘 사람들이 붐비는데 사람이 없었다니 신기하네요. 캐나다 로키에 사는 야생동물들은 사람을 그리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모양입니다.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좌를 완등한 한왕용 대장으로부터 국제전화 한 통을 받았다. 국내외 산들을 소개하는 KBS <일요다큐 산>이란 프로그램에서 캐나다 로키를 취재하기 위해 촬영팀이 7월 말에 캐나다를 방문한다는 것이 아닌가. 한대장과 내가 함께 방송에 출연해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 때부터 무척 바빠졌다. 어떤 코스를 택할 것인지, 어떻게 권역별로 안배할 것인지를 한대장과 수차례 의견을 교환했다. 그리곤 우리가 선정한 코스를 미리 답사하는 것이 촬영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이 되어 그들이 도착하기 전인 7월 초순에 밴쿠버 산꾼 두 분을 모시고 미리 캐나다 로키로 산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마운트 롭슨(Mount Robson)이었다. 해발 3,954m로 캐나다 로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상징성이 있어 빼놓기가 어려웠다. 숲이나 빙하, 호수, 야생동물 등이 웅장한 산세와 조화를 이뤄 만들어내는 캐나다 대자연을 소개한다는 의미에서 버그 호수 트레일을 선택한 것이다. 밴쿠버를 출발해 5번 하이웨이를 타고 가다가 베일마운트(Valemount)를 지나 16번 하이웨이로 갈아탔다. 산 모퉁이 하나를 돌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롭슨의 자태가 나타났다. 정상은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빙하를 머리에 이고 있는 거대한 산괴를 볼 수가 없어 섭섭하긴 했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원래 롭슨 지역은 일기 변화가 심해 정상을 온전히 볼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우리가 가는 버그 호수 트레일은 캐나다 로키에선 꽤나 유명한 트레일이다. 버그 호수까지는 빨리 걸어도 하루가 꼬박 걸리기 때문에 보통은 백패킹을 해야 한다. 편도 21km 에 등반고도가 780m나 되기 때문에 당일에 왕복은 어렵다. 우리는 애초부터 백패킹은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키니 호수(Kinney Lake)를 지나 화이트혼(Whitehorn) 캠핑장까지만 당일에 다녀오기로 했다. 산행 기점은 롭슨 공원 안내소에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1km를 더 들어가야 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산행을 시작했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고 산자락도 구름 속으로 제 모습을 감췄지만 그 신비로운 모습을 모두 가릴 수는 없었다

 

롭슨 강을 건너 오솔길을 따라 올랐다. 산길은 넓고 완만해서 좋았다. 요란하게 흘러내리는 강물을 벗삼아 한 시간 정도 오르면 키니 호수에 닿는다. 키니 호수는 원래 상류에서 떠내려온 퇴적물이 부채 모양으로 쌓인 선상지(Alluvial Fan)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산비탈에서 산사태로 굴러떨어진 돌무더기가 물길을 막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 했다.키니 호수의 에머랄드 색깔이 오묘했다. 키니 호수를 지나 작은 다리 몇 개를 건넜다. 한 번에 한 사람씩 건너라는 경고문도 보였다. 아이 둘을 데리고 백패킹을 온 부부를 만나 서로 악수도 나눴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바로 화이트혼 캠핑장에 닿는다. 일행들 얼굴에서 힘들다는 기색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시원한 풍경에 도취되어 피로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설록차 2014.04.16 09: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롭슨 표지판도 높은 산을 쳐다보기 힘들어서 비스듬하게 누워서 손가락질을 하네요...ㅎㅎ
    산세도 준수하고 산에서 만남 가족도 준수하게 생겼고~ 준수천지입니다...^^

  2. Justin 2014.04.22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버지, 한대장님, 최PD님, 대성이와 함께 짖궃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행을 갔다온 것이 기억납니다. 어린 대성이의 페이스가 느려서 촬영 분량때문에 다들 먼저 가시고 저와 대성이는 수다를 떨면서 씩씩하게 하산했었는데, 대성이는 하나도 기억 못 하겠죠?

    • 보리올 2014.04.22 15: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가 다녀온 기록은 다음에 포스팅할 예정인데 여기에 댓글을 달았구만. 작년인가 서울에서 한대장과 대성이를 만났는데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더구나. 대성이네 집에서도 몇 번을 보았는데 말이야. 너무 기대하지는 말거라.

  3. 2014.12.05 1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4.12.05 2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롭슨 트레킹을 염두에 두고 계시는군요. 키니 호수까지는 왕복 서너 시간 잡으면 될 겁니다. 호수 끝단까지는 4km 정도 되는데 대부분 거기서 더 들어가 쉘터가 있는 지점까지 가거든요. 그러면 편도 7km 정도 됩니다. 버그 호수 트레일로 들어가셔서 캠핑을 하지 않고 당일로 나오시면 예약같은 것 필요 없습니다. 예약은 야영할 사람만 필요합니다. 여름에 버그 호수에서 야영하려면 미리 예약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4. 설록차 2015.05.22 05: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 시원하고 속 시원한 사진을 찾아 여기로 왔습니다...
    마치 제가 다녀온 곳인듯 착각을 하네요..ㅎㅎ

    • 보리올 2015.05.22 06: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눈이 시원하다는 표현은 저도 가끔 씁니다만 속이 시원하다는 말도 있었네요. ㅎㅎ 롭슨에는 마음을 편히 가라앉히는 차분한 풍경이 있어 좋습니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창문을 열고 날씨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하고 금방 비가 올 듯 잔뜩 찌푸린 날씨였다. 공항 뒤에 버티고 선 닐기리 연봉이 구름에 가려 전혀 보이질 않았다. 이런 날씨면 소형 비행기가 뜰 수 없을텐데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홀로 호텔을 나와 거리로 나섰다. 어디선가 양떼들이 몰려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좀솜에서 비행기를 탈 때도 바람이 강하다는 이유로 하루를 완전히 공친 날이 있었다. 공항측에서 안내방송도 없이 하루 종일 기다리게 했던 기억이 났다. 오늘도 그러면 안 되는데일단 예티항공 사무실로 가서 운행 여부를 확인해 보았다. 이 날씨에 비행기가 들어오기는 어렵지만 날이 좋아지면 바로 뜰 수가 있단다. 일단 오전 11시까지는 기다려 보자고 한다.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긴딩이 오늘 항공기 운항이 완전 취소되었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일단 버스 티켓부터 구입을 하고 예티항공으로 다시 갔다.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30여 분을 기다렸건만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 않는다. 일부러 사무실을 비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서 몇 번인가 큰 소리로 부르니 그제서야 직원이 나타난다. 항상 큰 소리를 내야 마지 못해 움직이는 이곳 사람들의 수동적인 태도가 좀 얄미웠다. 비행기 운항이 취소된 것은 아니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을 한다. 기다리는 일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여기서 포터들과 헤어졌다. 그들은 버스로 먼저 내려가고 우리만 남은 것이다.  

.

초조한 기다림 속에 포카라에서 첫 비행기가 들어왔다. 공항에 몰려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우리가 탈 두 번째 비행기는 아무 소식이 없다. 애를 태우는 기다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공항 경비를 서는 경찰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지더니 두 번째 비행기 소리가 들려온다. 우여곡절 끝에 일행 모두 비행기 탑승을 완료했다. 20인승 소형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올라 구름을 헤치며 날아간다. 하얀 구름이 옆으로 휙휙 지나간다. 갑자기 구름이 걷히면서 산자락이 눈앞에 나타나기를 몇 번인가 반복했다. 이러다가 산기슭과 충돌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포카라에 무사히 도착했다. 시간이 좀 늦어지긴 했지만 무사히 도착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네팔 현지 여행사에서 보낸 파상이란 친구가 미니버스를 가지고 마중을 나왔다. 파상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페와 호수 선착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비엔 베뉴 호텔(Hotel Bien Venue). 3층 공사 때문에 시끄러운 것이 흠이었지만 방이 깨끗하고 넓직해서 좋았다. 호텔을 나와 페와 호수 주변을 거닐며 쇼핑도 했다. 급할 것이 하나도 없는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포카라는 산중에 있는 마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치 크고 화려했다. 이 정도면 문명으로의 귀환이라 부를만 했다. 그 이야긴 우리가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다는 의미 아니던가.    

 

어디서 식사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배낭 여행을 온 젊은이들이 산마루 식당을 추천한다. 네팔인이 하는 식당인데도 한국 음식을 잘한다고 칭찬을 한다. 그 식당에서 뜻밖에 치링을 만났다. 그가 식당의 주방장이자 주인인 모양이었다. 한왕용 대장의 히말라야 클린 원정대에 요리사로 참가했던 치링은 나와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 사이 결혼도 했고 돌이 넘은 아들도 있었다. 부인을 불러 인사를 시켜 부인과 아이와도 상견례를 마쳤다. 치링이 차려준 한국 음식에 입이 즐거웠다. 거기에 맥주까지 한 잔 곁들이니 부러울 게 없었다. 치링이 우리의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이렇게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해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트레킹 요약>

 

밴쿠버 산꾼들과 함께 걸은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은 2009 11 2일 서울을 출발해 11 16일 귀국하는 2주 일정으로 진행을 하였다. 트레킹 자체는 11 3일에 시작해 11 13일 포카라에 도착함으로써 마무리를 지었다. 6명이 참여해 숙식은 모두 트레킹 구간에 있는 로지에서 해결을 하였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나쓰메 2014.01.20 12: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희귀한 풍경들이네요 ㅎㅎ

    • 보리올 2014.01.20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팔은 우리 나라 1950년대 또는 1960년대 모습과 비슷합니다. 촌스런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지요.

  2. 설록차 2014.01.22 05: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모로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이셨겠어요...
    저렇게 작은 비행기를 탄 적이 있는데 바람에 흔들리니 롤러코스틀 탄 듯 스릴만점이었어요...사실 무서웠어요...^^

    • 보리올 2014.01.22 07: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히말라야 여행은 여러 지역을 갔었기 때문에 기억이 서로 엇갈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옛 일을 되살려 추억을 꼼씹어 보면 제 가슴엔 늘 훈훈한 여운이 남습니다. 몇 년 못 갔더니 더 생각이 나는군요.

  3. 제시카 2014.03.18 04: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혀 다른 풍경이네요... 저런 문화를 접해본적도 없으니 신기하기만 하네요~ 양들 엉덩이에 핑크색 염색된것도 귀엽구.. ㅎㅎㅎㅎ

    • 보리올 2014.03.18 06: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언제 네팔이나 함께 갈까? 네가 겪어본 세상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배울 점이 많을 거야. 우리 막내 데리고 히말라야 산길을 걸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 버킷 리스트에 하나 추가해야 되겠다. 그리고 저 양 엉덩이에 칠한 페인트는 주인이 자기 재산이란 것을 표시한 것이란다.

  4. 2015.03.14 0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03.14 1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블로그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무슨 의미신지요? 저는 꾸준하게 글을 올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솔직히 저는 알래스카를 가본 적이 없어서 엔드님 여행 계획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5. 김치앤치즈 2016.08.10 1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나푸르나 등반 후 먹은 한국음식은 과연 어떤 맛이었을까요...^^
    답글 보니 안나푸르나 또 가실 것 같은데요.ㅎㅎ

    • 보리올 2016.08.10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주 맛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 음식을 하는 네팔 현지인이 꽤 있습니다. 도시나 트레킹 도중에도 가끔 김치를 맛볼 수 있고요. 네팔은 언제라도 다시 가고 싶습니다.

 

좀솜까지 가는 오늘 구간이 우리가 직접 걷는 마지막 구간이다. 내리막 길이라 부담도 없었다. 그런데 최정숙 회장이 자꾸 숨이 차다고 한다. 고소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다른 데 있었단 말인가. 껄빌에게 최 회장을 모시고 짚으로 먼저 가라고 했다. 가능하면 고급 호텔을 잡아 편히 쉬시게 하라고 일렀다. 나머지 일행들은 걸어서 가기로 했다. 차로 갔으면 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난 이 구간은 반드시 걸어가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구간이라 차로 휙 지나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리는 차량들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이제 묵티나트까지 차가 올라오니 안나푸르나 라운드 코스도 반으로 줄은 셈이다.  

 

묵티나트와 좀솜 사이엔 묘한 매력을 가진 마을들이 많다. 토롱 라를 오르기 전에 지나친 산골 마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묵티나트 바로 아래에 있는 자르코트(Jharkot)도 황량한 산악 지형에 자리잡은 무척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지저분한 건물 외벽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는 그런 마을이다. 계곡 건너편에 흙으로 된 절벽이 나타나고 거기엔 수많은 동굴들이 뚫려 있었다. 사람이 살았던 곳인지, 아니면 스님들이 수도했던 곳인지 어디 물어볼 곳이 없다. 어떻게 저 가파른 곳을 드나들 수 있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동굴에 이르는 길이 보이질 않는다. 설마 암벽 등반하면서 들락거리진 않았겠지?  

 

무스탕(Mustang) 초입에 있는 카그베니(Kagbeni)에 도착했다. 무스탕은 아직까지도 작은 왕국을 이루며 살고 있는 신비의 세계다. 지금에야 언론들이 앞다투어 소개를 해서 많은 사실들이 알려져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지의 세계였다. 무스탕 왕국에 들어가려면 특별한 허가가 필요하고 그 신청 비용도 만만치 않다. 높은 지점에서 카그베니를 내려다 보니 마을 풍경이 그리 평화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상류에서 떠내려온 자갈과 모래가 쌓인 곳을 일일이 손으로 개간해 논을 만들어 놓았다. 마을과 논, 하천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했다. 행여 내가 네팔에 살아야 한다면 서슴없이 이곳을 택하리라 마음 먹었다.

 

에클리바티(Eklebhati)의 한 로지 마당을 빌려 점심을 준비했다. 로지에서 매식을 하지 않고 버너와 코펠을 써서 우리가 직접 준비하는 마지막 식사다. 남은 식량을 모두 처분한다고 짜파게티를 끓이고 후식으로 누룽지와 커피도 준비했다. 나름 격식을 갖춘 점심에 다들 흡족해 하는 모습이다. 지나가는 트레커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우리의 성찬이 궁금했는지 자꾸만 흘낏흘낏 쳐다보고 간다. 에클리바티부터는 강변으로 내려서 하천 바닥을 걸었다. 멀리 좀솜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빗방울이 돋기 시작했다. 다들 발걸음이 빨라졌다. 하지만 좀솜에 도착했을 때에는 물에 빠진 생쥐마냥 모두가 젖어 있었다.

 

공항과 은행이 있는 좀솜은 제법 번화한 마을이다. 지난 번에는 트랙터가 대중 교통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버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산골 마을로서는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공항 바로 앞에 있는 스노랜드(Snowland)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좀솜에선 고급호텔에 속한다 했다. 숙박료도 지금까지 지불했던 금액의 세 배가 넘었다. 저녁 식사로 닭백숙을 할 수 있는지 주방에 알아보라고 했다.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으나 닭 한 마리에 3,500루피, 50불 넘게 달라고 한다. 이건 완전 바가지 요금이다. 50불이면 염소 한 마리를 잡을 수 있는 금액인데. 우리가 봉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닭백숙은 취소하고 통상 먹던 메뉴를 골랐다.  

 

그 동안 고생한 포터들에게 저녁을 사기로 했다. 따로 음식을 시켜 먹고 현지인 가격으로 계산해서 청구하라 했는데, 로지 주인은 그것도 외국인 가격으로 청구를 했다. 로지 주인을 불러 따졌다. 주인과 실강이 끝에 반반씩 양보하는 것으로 낙찰을 보았다. 이런 경우가 다반사라지만 뻔히 알면서 당하는 것이 더 억울하다. 트레킹 구간에 있는 로지 주인은 대체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다. 자식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는 경우도 많다. 내 경험으론 로지 주인들은 일반적으로 남자는 까무잡잡하고 깡마른 대신 여자는 통통하고 기름기가 흐른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이 호텔의 노인네 남자 주인은 피둥피둥 살이 찌고 욕심도 많아 보였다. 다음엔 절대 이 집으로 발길도 하지 않으리라.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