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0.02.29 [이탈리아] 친퀘 테레 ① (6)
  2. 2020.02.13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②
  3. 2020.02.03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① (2)

 

슬로베니아에서 이탈리아로 들어서 다섯 시간 넘게 운전해 라 스페치아(La Spezia)에 도착했다. 친퀘 테레(Cinque Terre)로 들기 위해 그 관문도시인 라 스페치아를 찾은 것이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구한 숙소에 체크인을 하곤 숙소 주인에게 물어 이 도시에서 피자를 가장 잘 한다는 식당을 찾아갔다. 난 참치, 아내는 멸치가 들어간 피자를 시켰는데,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너무 짜서 입이 좀 얼얼했다. 소금을 적게 넣으란 이야기를 미처 하지 못 한 것은 우리 잘못이었다. 음식값은 비싸지 않았지만 숙소 주인이 미리 자리를 예약을 했다고 자리세로 1인당 2유로를 받는 것이 신기했다.

 

친퀘 테레의 다섯 개 해안 마을을 잇는 트레일을 여기선 센티에로 아주로(Sentiero Azzurro)라 부른다. 이탈리아 북서부 해안선을 따라 벼랑을 오르락내리락 걷는 길로 오랜 세월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탈리아 말로 친퀘가 다섯, 테레가 땅이니 다섯 개의 땅, 즉 다섯 마을을 의미한다. 이 다섯 개 마을 중에 네 개는 바닷가에 위치하지만 가운데 위치한 코르닐리아(Corniglia)는 가파른 절벽 위에 있다. 모두 친퀘 테레 국립공원에 속하며 동시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라 스페치아 역에 주차를 하고 친퀘 테레 가운데 가장 위쪽에 있는 몬테로소(Monterosso) 마을로 가는 기차를 탔다. 친퀘 테레로 드는 트레일 입장권을 1인당 7.50유로에 구입했다. 바닷가를 따라 걸으며 몬테로소 마을을 먼저 구경했다. 현대식 아파트도 있는 비치 리조트라 알록달록한 가옥들이 풍기는 정취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터널로 연결된 구시가지는 그나마 좀 고풍스럽게 보였다. 비치 끝에 있는 테라스에 오르니 조각상이 하나 나타났고 풍경이 좀 달라졌다.

 

트레일로 드는 입구에 체크포인트가 있는데 입장권과 신발을 검사한다. 샌달을 신은 아내가 여기서 입장을 거부당했다. 분명 해안선을 따라 몇 시간 걷는다고 했건만 샌달을 신고 온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아내와 딸은 기차로 이동해 코르닐리아 마을에서 만나자고 하곤 나 혼자 트레일로 들어섰다. 햇볕이 강해 땀이 많이 났고 날씨는 무척 더웠다. 해안길이라 오르내림이 꽤나 심했다. 곳곳에 계단도 많아 무릎이 성치 않은 몸으로 고생 좀 해야 했다. 계단식 논과 밭, 푸른 지중해의 해안 풍경. 고대 타워와 시계탑, 골목길, 퇴색한 가옥이 인상적이었던 두 번째 마을, 베르나차(Vernazza)에 닿았다.

 

 

친퀘 테레의 관문인 라 스페치아 기차역에서 기차를 탔다.

 

가장 북쪽 마을인 몬테로소 기차역에 도착

 

 

바닷가를 따라 몬테로소 신시가지를 구경하며 남쪽으로 걸었다.

 

 

 

곶처럼 바다로 튀어나온 지역에 바다를 내려다보는 테라스가 있었고 그 위에 조각상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몬테로소 구시가지는 기차역이 있는 신시가지에 비해 고풍스러움이 많았다.

 

 

친퀘 테레 트레일 입구에서 입장권을 확인한다. 샌달을 신은 사람은 입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몬테로소에서 베르나차에 이르는 해안길

 

 

멀리 베르나차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몬테로소 아래에 있는 두 번째 마을 베르나차는 타워와 시계탑, 골목길이 있어 운치가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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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투자를좋아하는지구별여행자 2020.02.29 1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이탈리아는 화려한 멋도 있지만 소박한 아름다움도 같이 갖구 있는것 같아요-!

    • 보리올 2020.03.04 2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보셨습니다. 로마시대로부터의 유구한 역사유적도 있지만, 작고 정겨운 바닷가 마을도 공존하는 나라지요. 사람들 기질도 우리랑 비슷하고요.

  2. 소화제를 소환하라 2020.02.29 1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신혼여행을 이탈리아를 다녀왔었는데
    친텐퀘레가 너무 이쁘더라고요.
    물도 깨끗해서 수영도 하고 왔답니다.

    • 보리올 2020.03.04 2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곳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오셨군요. 며칠 묵으며 차근차근 둘러보기에 좋은 곳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람은 무척 많더군요. 블로그 닉네임이 재미있습니다.

  3. 따뜻한일상 & 독서 , 여행과 사진찍는 삶 :) 2020.02.29 1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골과 같은 느낌의 동네까지 속속들이 여행다니고 계시네요
    한편으로는 굉장히 부럽습니다 ㅎㅎㅎ

    엊그제 뉴스보니 이탈리아도 코로나19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ㅠㅠ
    아름다운 나라도 바이러스는 피해갈 수 없군요

    소박한 아름다움 느껴지는 사진 잘봤습니다^^

    • 보리올 2020.03.04 2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로마나 밀라노, 피렌체에 비해선 엄청 시골마을이죠. 그래도 사람사는 냄새가 풍기는 골목길이 있어 저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중심부를 둘러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남문 밖에 있는 바닷가와 부두를 거닐며 궁전의 외관을 보고 싶었고, 궁전 출입문으로 쓰였던 나머지 문 세 개도 둘러보고 싶었다. 궁전과 바닷가 사이엔 보행자 전용도로인 리바(Riva) 거리가 있는데 마치 정원처럼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부두에 정박해 있는 유람선, 범선이 시야에 들어왔고, 저 멀리 마르얀(Marjan) 산도 보였다. 동문 밖에는 난장이 들어서 과일이나 꽃, 잡화를 팔고 있었다. 서문 밖에 있는 나로드니 광장(Narodni trg) 주변도 볼거리가 꽤 많았다. 북문 밖에선 크로아티아 종교 지도자였던 그레고리 닌(Gregory of Nin)의 동상을 구경하였다. 저녁은 숙소에서 가까운 디르(Dir)라는 식당에서 했다. 숙소 주인에게서 추천을 받은 곳인데 식당 규모가 상당히 컸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괜찮은 편이었다.

 

 

 

 

야자수와 벤치가 많은 리바 거리는 시민들이 바닷가를 거닐며 산책하기에 좋아보였다.

 

리바 거리에서 그리 높지 않은 마르얀 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문 밖에는 길거리 시장이 열려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로드니 광장 주변도 의외로 시선을 끄는 건축물과 조각들이 많았다.

 

북문 안쪽 골목길에서 발견한 지주 장식

 

 

북문에 있는 성 마틴(St. Martin) 성당은 5~6세기에 경비병들이 쓰던 공간을 성당으로 만든 것으로 그 크기가 무척 작았다.

 

 

북문 밖에 있는 그레고리 닌의 동상. 엄지발가락을 문지르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속설 때문에 발가락이 반질반질했다.

 

 

 

현지인 추천으로 찾아간 디르 식당에서 크로아티아 전통 음식으로 풍성한 저녁을 즐겼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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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 스플리트(Split)에서 하루를 묵을 생각은 없었다. 크로아티아에선 꽤 유명한 관광지라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두브로브니크에서 차를 운전해 올라오면서 어디서 하루를 묵을까 고민하다가 스플리트가 로마 시대에 건설된 도시란 것과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란 것을 알고는 마음을 바꿨다. 아드리아해에 면한 인구 22만 명의 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에선 자그레브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도시가 세워진 것은 기원전 그리스 시대로 올라가지만 로마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305년 퇴임한 후에 머물 궁전을 스플리트에 지으면서 본격적으로 발전을 하게 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퇴임 후 11년을 살았던 궁전부터 찾았다. 궁전 안뜰이었다는 열주 광장엔 아직도 대리석 기둥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로 붐볐고 로마 병정 차림의 젊은이 두 명이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는 팁을 요구하곤 했다.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궁전이라 여기저기 무너진 곳도 많았고 외관도 꽤 퇴락해 보였다. 7세기에 슬라브족이 몰려와 궁전 여기저기에 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궁전이란 공간이 따로 보존되지 않고 주민들의 주거 공간과 경계가 없었다. 솔직히 궁전 같은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열주 광장 옆에 있는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하늘로 치솟은 종탑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성당은 애초 황제의 유해를 보존하기 위한 영묘로 지어졌다고 한다. 황제 재임시 카톨릭을 박해했던 적이 있어 8세기인가 후세 사람들이 이 공간을 성당으로 바꾸곤 황제 유해는 어딘가에 버렸다고 한다. 영묘로 지어서 그런지 일반적인 성당 구조완 많이 달랐다. 무릎이 좋지 않아 첨탑으론 오르지 않았다.

 

 

 

 남문을 통해 궁전으로 들어서면 지하 궁전 입구와 기념품 가게들이 나타난다.

 

 

대리석 기둥이 몇 개 남아 있어 열주 광장이라 부르는 공간엔 사람들이 많았고 로마 병정 복장을 한 사람도 있었다.

 

 

온전한 모습을 한 궁전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기저기 허물어진 곳이 많아 시간이 상당히 흘렀음을 말해준다.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은 황제의 영묘로 지었다가 후세에 성당으로 바뀐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시타델이라 불리는 성곽 초소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과거 황제 알현실이었다는 공간은 천장이 뻥 뚫려 있는 채로 남아 있었다.

 

 

황제 알현실로 알려진 곳은 소리 울림이 좋아 종종 클라파(Klapa)라 불리는아카펠라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운이 좋게도 우리는 남성 오중창을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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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건축창고 2020.02.03 1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건축이 정말 멋지네요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