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다 - 중남미'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3.07.26 [멕시코] 치첸이샤 마야 유적지 (2)
  2. 2013.07.25 [멕시코] 세노테 우비쿠(Cenote Hubiku) (2)
  3. 2013.07.24 [멕시코] 칸쿤(Cancun)

 

마야 문명은 멕시코 남동부와 유카탄 반도, 과테말라 등에서 꽃 피웠던 고대 문명을 말한다. 2,000년 전에 생긴 것으로 추정하며, 8~9세기에 전성기를 구가하곤 10세기 들어 고대 마야 문명이 멸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야 문명과 톨텍(Toltec) 문명이 혼합된 치첸이샤 유적은 그보다 조금 늦은 10세기 이후에 번성했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빽빽한 밀림 속에 독창적인 고대 문명을 이루고도 어느 날 갑자기 수수께끼처럼 사라져버린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마야인들은 돌을 조각하는 기술이 무척 뛰어났다. 종이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상형문자와 20진법, 숫자 0(zero)를 발명하였고, 천체를 관찰하기 위해 피라미드를 지었을 정도로 천문학이 발달했다. 치첸이샤의 엘 카스티요, 즉 쿠쿨칸 신전(Temple of KuKulkan)은 이런 목적도 지니고 있다 한다. 마야인들이 사라진 까닭을 혹자는 도시 간의 전쟁 또는 인구 증가와 기후 변화로 인한 천재지변 발생 등을 이야기하고, 혹자는 지배층이 늘어나면서 신전 건설 붐이 일어 노역에 동원된 피지배층이 급격히 감소한 탓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아마 이 모두가 원인일런지도 모른다.

 

칸쿤에서 치첸이샤까지는 200km 거리였지만 도중에 세노테를 들르고 점심 식사까지 하면서 시간을 끌더니 다섯 시간만에 도착을 했다. 오후 2시에 버스를 내리는데 4 30분까진 돌아오라고 한다. 치첸이샤의 현지 가이드를 만나 영어로 설명을 들었다. 본격적으로 피라미드 구경에 나서기 전에 조그만 사고가 발생했다. 길가 노점상에서 창문을 올려 열어 놓았는데 하필이면 거기에 오른쪽 눈썹 부위가 찍혀 1cm 정도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것이다. 가이드가 응급 차량으로 날 데려가 응급조치를 받고 눈썹에 반창고를 붙였다. 먼저 출발한 일행들을 찾았지만 보이질 않는다. 혼자 맘대로 돌아다니다 나중에 가이드와 일행들을 다시 만났다.

 

 

 

치첸이샤 마야 유적은 몇 개의 피라미드 신전와 궁전, 공놀이 경기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제법 규모가 컸다. 6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이뤄진 유적이라 했다. 2007 7 7,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New 7 Wonders)를 발표하면서 이 치첸이샤 유적을 그 중의 하나로 선정했다. 중국 만리장성과 인도 타지마할, 이탈리아 콜로세움, 페루 마추픽추 등과 함께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또한 이 유적은 유네스코에서 198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엘 카스티요(El Castillo)라 불리는 치첸이샤의 중심 피라미드는 이집트 가자 지구의 피라미드에 비해선 작은 편이지만, 과학적인 정밀함에선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다. 4면체로 구성된 높이 23m의 이 피라미드는 네 면에 91개씩의 계단이 있고 여기에 중앙 계단까지 합하면 모두 365개가 된단다. 우리 1년의 365일과 똑같지 않은가. 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에는 기우는 해가 계단에 비추면 그들이 숭배하는 뱀신, 즉 쿠쿨칸의 형상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피라미드가 정방위에서 17도 틀어져 있기 때문이라 하는데, 이는 현대 과학으로도 설명이 어렵다 한다. 그런 까닭으로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뽑혔다 하고.

 

엄청 가파른 급경사 계단이 꼭대기로 향하는데 아쉽게도 오를 수는 없었다. 몇 년 전에 할머니 한 분이 이 45도 경사를 내려오다 추락사해서 출입을 막은 것이다. 꼭대기에는 신관이 인신공양을 했던 현장이 있다고 한다. 태양신을 숭배하며 영생을 꿈꾸던 마야인들은 사람의 심장을 바쳐 여기서 제를 올린 것이다. 피라미드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 손벽을 치면 공명이 생겨 메아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몇몇 무리의 사람들이 가이드를 따라 힘차게 박수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1,000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전사의 궁전도 둘러 보았다. 출입금지 구역이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돌을 쌓아 기둥을 만들어 놓았는데 둥근 모양도 있었고 사각 기둥도 볼 수 있었다. 기둥에는 전사의 모습이나 동물을 조각해 놓았다. 재규어와 독수리 제단도 돌아보았다. 재규어가 사람 심장을 먹는 모습, 독수리가 심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재규어와 독수리가 숭배의 대상이었다니촘판틀리(Tzompantli)의 해골 조각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희생자들을 이렇게 기리는 제단까지 만들어 놓았으니 병주고 약주는 처사가 아닌가.

 

 

 

 

 

 

 

 

   

공놀이 경기장도 박수를 치면 공명이 생겼다. 이 경기장도 치첸이샤의 주요 볼거리 중의 하나다. 가로 70m, 세로 168m인 경기장에서 팔꿈치와 무릎, 엉덩이만 써서 공을 벽 가운데 높이 매달린 골대에 넣는 경기란다. 골대를 보면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회의가 들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 경기에서 이긴 팀을 제물로 심장을 도려내 신에게 바친다니 누가 경기를 이기려 하겠는가? 다음 세상에 왕족이나 귀족으로 태어난다고 믿어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단 말인데 나로선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경기장 벽에는 잘려진 머리에서 일곱 갈래의 피가 솟구쳐 뱀이 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해서 열심히 찾아 보았지만 형체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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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07.26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0여년 전에 사람의 손으로 거대한 돌건축물을 짓자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들었을까요...무너지지 않고 아직 버티도 있는 것도 신기하고~~유물이 남아있어 후대인들이 마야족을 연구하고 기억하는거네요... 안경 쓰신 분으로 사고가 그만하기 다행입니다...^^

  2. 보리올 2013.07.26 1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구한 역사를 가진 건축물은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대에 이런 건축물을 짓는다면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들어갔을까 한숨이 나오지만 후대는 그런 희생을 모르고 경탄할 수 있으니까요. 새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된 대부분의 문화재 또한 옛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그랬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가 보유할 수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겟습니다.

 

아침 6시가 되기도 전에 눈을 떴다. 치첸이샤(Chichen Itza)로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커튼을 제치자, 붉은 여명이 동녘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수도 않고 카메라를 들고 해변으로 뛰쳐 나갔다. 일출이 그리 화려하진 않았지만 멕시코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칸쿤에서 본 일출이니 나름 의미가 있었다. 일출에 맞춰 산책을 나온 한 커플이 한국말로 이야길 하면서 내 옆을 지나친다. 또 다른 중년여성 두 명도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한국 아줌마들이다. 이 세상 어디를 가나 부지런하고 열정으로 똘똘 뭉친 우리 나라 사람들을 만난다.

 

 

  

아침 7시부터 조식 부페를 제공한다고 해서 식당으로 갔더니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바닥을 청소하고 있던 청년이 8시부터 한다고 슬쩍 한 시간을 미룬다. 7 30분에 치첸이샤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럼 어쩌란 말이냐? 어디서 아침을 해결할지 난감해 하던 차에 주방에서 일하는 청년 둘이 헐레벌떡 들어와 음식을 준비한다. 이 친구들이 늦게 출근하면서 생긴 일인 듯 했다. 삶은 달걀 두 개와 소세지 몇 조각으로 급히 아침을 때웠다. 

 

       

버스가 나를 픽업하기 위해 호텔로 왔고 이렇게 몇 군데에서 모인 사람들이 스테이션이란 곳에 집결했다. 스테이션이라 해서 기차역이 아니고 웨트 앤 와일드(Wet & Wild)란 놀이공원의 주차장이었다. 25번 버스가 오늘 치첸이샤로 가는 버스란다. 가이드와 인사를 나누고 25번 버스에 올라탔다. 여기저기서 모인 사람들로 대형 버스가 꽉 찼다. 9시가 가까워지자, 치첸이샤로 츨발을 했다.

 

엄청 빠른 가이드의 멕시코 말이 귀전을 스쳐 지나갔지만 한 마디도 알아 들을 수 없어 우두커니 창 밖을 지켜 보았다. 풍경은 무척 단조로웠다. 그리 크지 않은 나무들이 꽉 들어찬 정글 지대를 관통해 직선으로 길이 나있다. 이 정글 속에는 아직도 마야인들이 그들 방식을 고수한 채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군데군데 발견되는 용설란에서 술과 종이, 옷감, 바늘을 얻는다 하니 그들은 나름 전통 방식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에 있는 마야인은 대략 150만 명.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야인들은 원주민 인디오와 함께 멕시코 사회의 최하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이 영어로 바뀌었다. 먼저 일정을 소개한 후 마야력과 지구 멸망설에 대해 설명을 덧붙인다. 마야인들은 천체 관측과 역법에 능했고 마야 숫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한다. 고대 마야력이 2012 12 21일에 끝나 며칠 있으면 이 지구가 멸망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가이드는 전혀 이 소문을 믿지 않았다. 마야력이 끝나는 것이 이 세상 종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이야길 한다. 이제 불과 2주도 안 남았으니 곧 어떤 결말이 날지 알게 되겠지. 나도 전혀 믿지는 않는다만

 

마야력에 대해 좀더 알아 보자. 마야력은 5,125년의 주기를 갖고 있는데, 그 이야긴 5,125년 전에 시작한 마야력의 한 주기가 올해 12월에 끝이 난다는 의미다. 마야인들은 오는 12 21일에 한 주기가 끝이 나면 그 다음부터 또 다른 주기의 마야력이 시작한다고 믿는다. 우와, 이 사람들 정말 스케일 크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대한민국도 한 주기에 해당될 뿐이니 말이다. 1~2백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이나 캐나다는 어디 명함이나 제대로 내밀겠나?

 

버스가 세노테 우비쿠(Cenote Hubiku)에 닿았다. 땅 속에 커다란 연못, 아니 물웅덩이가 있는 곳이다. 그 크기가 만만치 않았다. 마야인들은 세노테에서 물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한다. 마야 시대엔 젊은 처녀를 신에게 바치던 곳이라 했다. 그 바닥에서 처녀들 유골이 수도 없이 나왔다고 하니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불쌍한 처녀들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좀 오싹했다. 근데 요즘은 관광객들이 처녀 귀신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영과 다이빙을 즐기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안타깝게도 마야의 후예들은 어설픈 마야인 복장을 하곤 함께 사진을 찍자며 우리 주머니를 노리고 있었다. 실제 술 만드는 공장도 아니면서 어설프게 테킬라 만드는 설비를 갖추어 놓고 테킬라를 파는 전시장은 또 어떤가. 가면이나 마야력, 조각품을 갖추고 있는 기념품 가게도 우리 주머니를 노리긴 마찬가지였다. 가이드가 너무 설쳐대며 자꾸 물건을 사라 강권하는 것 같아 가게를 먼저 빠져 나왔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발라돌리도(Valladorido) 도심에 잠시 들렀다. 발라돌리도는 치첸이샤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진 도시. 시골에 있는 도시치고는 꽤 번화했다. 성당을 둘러보라고 5분의 시간을 준다. 무슨 성당인지도 모른 채 사진 한 장 찍고는 버스에 올랐다. 그 틈을 이용해 마야 복장을 한 할머니 몇 명이 버스로 몰려 들어 손수건을 판다. 가게 앞에서 한가롭게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 모습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발라돌리도 외곽에 있는 부페 식당으로 향했다. 목걸이에 마야 문자로 이름을 새겨라, 쇼핑을 해라 하는 식으로 가이드가 앞장을 서더니 아예 식당에는 30분간 접근 금지다. 음식 준비도 모두 끝나고 종업원들도 한가롭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건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꽤나 배가 고팠고 쇼핑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도 가이드가 너무 노골적으로 나오니 은근히 화가 났다. 점심은 평범한 부페식. 멕시코 식으로 돼지고기를 속에 넣은 타코가 나오긴 했지만 그것마저도 그리 맛이 있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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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07.25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 근처에 가실 때에는 글에도 기대와 기쁨이 가득한데 도시에서는 불만이 쫌(많이) 있으십니다...험한 길, 불편한 잠자리,때우는 정도의 식사에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잖아요... 천상 산사나이세요..ㅎㅎ

  2. 보리올 2013.07.26 04: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 느끼셨습니까? 사실 사람들이 많은 대도시나 번잡한 곳은 오래 있기가 좀 힘이 듭니다. 마트나 백화점같은 곳에서도 오래 있으면 죄불안석이지요.

 

어쩌다 멕시코(Mexico)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리 젊지 않은 나이에 배낭 여행을 떠나는 용감한 젊은이들을 흉내내면서 말이다. 휴가를 내년으로 이월하지 말고 가능하면 올해 모두 쓰라는 회사 방침에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 일. 집사람과 아이들이 있는 밴쿠버를 다녀올까도 생각했지만 연말 성수기 항공료가 장난이 아니었다. 모처럼 찾아온 나홀로 여행 기회를 버리기도 좀 아까웠고. 이번엔 따뜻한 중미 지역을 가고 싶었다. 과테말라 화산 트레킹을 갈까 고민하다가 멕시코로 급선회를 했다. 항공료가 싼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근데 일단 멕시코를 염두에 두니 칸쿤의 그 환상적인 바다 색깔과 치첸이샤 마야 유적,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자화상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거기에 과나후아토(Guanajuato)의 풍경 사진 한 장도 나를 끈질기게 유혹했다.

 

멕시코를 간다고 맘 먹기 전에는 멕시코가 이렇게 큰 줄을 몰랐다. 북미 대륙 남쪽에 붙어있는 조그만 땅덩이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남한의 20배가 넘고 인구도 1억 명이 훨씬 넘는다니 멕시코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현지에선 멕시코를 메히꼬로 발음한다는 것도 이 때 알았다. 일단 캐나다에서 칸쿤으로 들어가서 멕시코 시티까진 장거리 버스를 이용하고 멕시코 시티에서 캐나다로 돌아올 작정이었다. 한데 칸쿤에서 멕시코 시티까지 가는 버스가 26시간이나 걸리고, 버스비도 항공료보다 비싸다는 이야기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26시간 버스 여행이란 초유의 도전에 잠시 마음이 흔들린 적도 있었지만, 1주일짜리 여행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결론을 내렸다.

           

여행 방식은 일단 젊은 사람들 배낭 여행을 흉내내 보기로 했다. 항공료와 장거리 버스비를 제외하곤 하루 50불 정도로 예산을 잡아 숙박비와 식비를 해결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처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허름한 호텔 지분 일부를 가지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칸쿤 쉼터에 예약을 했더니 조식 포함해서 하루 50불을 받는다. 명색이 호텔 존에 있는 숙소인데 그렇게 비싸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잡은 예산에는 초과 지출이다. 거기에 치첸이샤 투어 신청비로 55, 무헤레스 섬 페리비로 17불을 내는 등 돈 달라는 곳이 많았다. 

 

2012 12 8, 필라델피아에서 칸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꽤 큰 비행기가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꽉 차 연말 휴가철을 실감할 수 있었다. 칸쿤이 가까워지자 짙푸른 하늘과 청록색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색깔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칸쿤 공항은 엄청 혼잡했다. 여행사, 호텔 직원들이 손님맞이에 바쁘다. 후덥지근한 날씨와 강렬한 햇빛이 사람을 움츠러들게 했다. 공항에서 칸쿤 센트로까진 아데오(ADO) 버스를 탔다. 편도에 52페소. 센트로와 호텔 존은 시내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한 번 승차에 8.50페소를 낸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해가 내려앉을 때까지 좀 쉬었다. 테라스로 나가는 문을 여니 파란 바다가 코앞에 펼쳐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휴양지 칸쿤이구나!

 

 

 

 

 

 

 

 

칸쿤은 카리브 해에 접해 있는 유카탄 반도 끝단에 자리잡고 있다. 1970년대 이전에는 조그만 어촌 마을이었다. 정부에서 앞장 서 휴양지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오늘날에는 환상적인 바다색과 하얀 모래사장, 강렬한 햇볕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변모했다. 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나도 익히 이름을 알고 있던 곳이다. 내가 살아 생전에 이런 휴양지를 찾을 것이라 생각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하루 종일 해변에 뒹굴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체질상 그리 맞지 않고 올 인크루시브(All Inclusive)’라 해서 하루 종일 호텔에서 음식으로 배 불리고 술만 홀짝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3일을 칸쿤에서 묵기로 했다. 하루는 치첸이샤 투어로, 또 하루는 무헤레스 섬에 들어가 눈요기를 할 생각이다. 남는 시간에는 해변을 걷기도 하고, 호텔 존이나 센트로에 나가 시간을 소일해야지. 호텔에서 제공하는 부페식 아침 식사를 마치면 점심과 저녁은 길거리 음식으로 해결을 했다. 타코(Taco)나 케사디야(Quesadilla)로 간단히 배를 채우는 것이 진짜 여행다워 내심 즐거웠다. 더구나 멕시코 음식은 맛도 좋아 꺼릴 것이 없었다. 한 가지 복병은 땀과 햇볕이었는데 참을 수밖에 없었다. 영하의 추위에서 벗어나 졸지에 영상 30도 가까운 칸쿤에 왔더니 후덥지근하고 끈적끈적한 날씨에 녹아나긴 했다.

  

칸쿤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23km에 이르는 L자형 모래톱을 따라 일열로 고급호텔을 지어놓은 곳이 우리가 아는 호텔 존(Hotel Zone). 하루 종일 호텔과 해변을 드나들며 먹고 마시고 해도 좋은 곳이다. 저녁에 심심하면 전설적인 나이트 클럽, 코코봉고(Coco Bongo)를 가는 것도 좋다. 바닷가에서 좀 벗어난 곳에 칸쿤 센트로가 있다. 여기에도 숙소가 있지만 호텔 존에 비하면 시설도 떨어지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현지인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사람사는 마을 같았다. 내 개인적으론 호텔 존을 거니는 것보다 센트로 지역에서 사람사는 모습을 훔쳐보는 것이 더 좋았다.

 

 

 

  

해가 저물자, 해변을 따라 코코봉고까지 걸었다. 전 구간이 해변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대략 6km는 걸은 것 같았다. 캡틴 훅(Captain Hook)이란 해적선에서 해적들이 내려와 칼싸움을 하고 난쟁이 해적이 우스운 몸짓으로 배에 오르길 기다리는 손님들의 지루함을 풀어준다. 코코봉고 주변은 화려한 네온사인을 자랑하는 레스토랑과 술집이 많았다. 특히 코코봉고와 하드락이 단연 돋보였다. 코코봉고의 입장료는 87. 10시에 시작한다는 쇼는 꽤나 유명하다고 하는데, 혼자 들어가기 뭐해서 들어가진 않았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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