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풍이라도 오는지 점점 더 강해지는 바람과 빗방울에 모두들 잠을 설쳤다.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잠을 깼더니 배에서 잔 일행들이 새벽에 엄청난 비상 상황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정박해 놓은 배가 바람과 파도에 밀리며 암벽에 부딪힐 뻔한 위급상황에서 배를 구하느라 죽을 고생을 한 모양이다. 송영복은 그 와중에 배에서 넘어져 앞니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필이면 그 많은 사람 중에 치과 의사의 이빨이 부러지는 사고가 났는지 하늘의 의중이 좀 궁금해졌다.

아침부터 해경의 무전이 날아든다. 풍랑주의보가 발령되었으니 함부로 배를 움직이지 말고 어디에 대피해 있으라는 통지다. 꼼짝없이 소리도에 발이 묶여 버렸다. 오도가도 못하고 여기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빨리 포기를 하니 마음이 편하다. 매표소 건물에 모여 닭죽으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했다. 소일거리로 생각해 낸 것이 윷놀이. 소장파와 노장파로 편을 갈라 게임을 했다. 지는 편이 설거지를 하기로 내기를 걸었다. 결과는 허 화백이 낀 노장파가 게임에 져서 고참들이 찬 물에 손수 설거지를 해야 했다. 젊은 피들은 옆에서 낄낄 웃으며 약올리듯 구경만 한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소리도 등대까지 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산행에는 다들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라 모두들 반색이다. 소리도 등대까지는 왕복 두 시간쯤 걸렸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천천히 돌았다. 이 작은 섬에 이런 경사를 가진 산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처음엔 제법 가파르게 올라간다. 인적이 드문 숲길은 낙엽으로 푹신해 걷기가 편했다.


소령단 바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푸른 하늘과 어울려 쪽빛으로 빛이 났다. 근무하는 사람이 없는 것인지 홀로 서있는 등대는 고즈넉스럽기 짝이 없었다. 등대로 오르는 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왔다. 저녁은 마을 식당에서 매식을 하기로 했다. 여수에서도 멀리 떨어진 외딴 섬마을이지만 남도 특유의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식당 한 켠에선 주민들 몇 명이 고스톱판을 벌이고 있었는데, 우리의 존재에 대해선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


또 하룻밤이 지났다. 이제 뭍으로 나가야 하는 날이 밝은 것이다. 아직도 바람은 강했지만 어쨌든 출항을 한단다. 배로 들이닥치는 파도가 장난이 아니다. 바닷물에 옷이 젖어 이를 피한다고 선실로 들어왔더니 이번에는 배멀미 증세가 나타난다. 출입구에 머리만 내놓고 찬 공기를 쏘이다가 결국은 밖으로 나왔다. 배는 소리도를 한 바퀴 돌고는 남해도로 방향을 돌렸다. 큰 바다로 나오니 오히려 바람이 순해졌다.




그 다음부터는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난 딱히 할 일도 없어 망망대해만 바라보면서 소일을 해야 했다. 꽤나 심심했다. 하루 종일 바다를 달려 해질 무렵에야 남해 물건항에 도착했다. 육지에 발을 디디니 좀 살 것 같았다. 딱 한 번 참가한 항해에도 이런데 1년 동안 항해를 해야 하는 대원들은 정말 고생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2박 3일 일정의 요트 여행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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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록차 2013.07.12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짠내음이 여기까지 올 것 같아요...파래무침에 생미역나물,조개를 넣은 미역국이 먹고 싶어집니다ㅠㅠ 이민 전에 살던 아파트 옆에 해변시장이 있어 싱싱한 해산물은 천지였는데 물 반 고기 반이라는 이 섬나라는 오히려 해산물이 귀하고 비쌉니다...냉동해물은 거의 호주산이고 마오리계만 해산물 채취권리를 준다는데 자본이 없어서인지 영세하고 구멍가게식이거든요...알고 나서 속은듯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질문: 티스토리는 전체목록을 어떻게 볼 수 있나요?
보리올 2013.07.12 15: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산물이 싱싱해 보이죠? 풍부한 먹거리에 후한 인심이 살아있는 남도를 전 좋아합니다. 고국 들어가는 기회에 한 번씩은 가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더군요. 현지 해산물 채취를 마오리계만 할 수 있다면 빨리 마오리 친구 한 명을 사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티스토리에서 전체 목록을 보는 방법은 저도 모릅니다. 포스팅한 순서대로 보이긴 하는데 목록은 없는 것 같아요. 오른쪽 위에 있는 카테고리에서 '산에 들다'와 '여행을 떠나다' 앞에 있는 십자 표시를 클릭하시면 지역별로 구분해 보실 수는 있습니다. 저도 티스토리 블로그 초짜라 더 알지를 못합니다.
설록차 2013.07.12 2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업화(상업화)는 마오리에게 주어지지만 낚시는 할 수 있어요...캐나다처럼 마리수가 정해져있고 크기도 어느이상 되어야하고~ 조개도 갯수를 따지고 수시로 감시원이 돌아다녀요...처음에 신나게 잡고 캐던 한인들이 벌금 꽤 물었지요... 낚시하는 현지인(주로 마오리)한테 갓 잡은 도미를 사서 회로 먹기도 했는데 이젠 입맛이 변했는지 그다지 그립지 않습니다...
보리올 2013.07.12 2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도 낚시나 사냥이 까다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원주민들은 좀 자유로운 것도 비슷하네요. 물고기도 맛이 확연히 다르지요. 해산물은 역시 남도에 가서 먹어야 제맛이 아닌가 싶습니다.
justin 2015.12.24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태백산맥을 읽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네요. 나중에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태백산맥은 우리 나라가 해방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나타난 이념 대립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대하소설이지. 어느 한 쪽으로 편향되지 않는 시각으로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