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유엔묘지에 대해 들은 적이 많았음에도 유엔묘지를 찾아올 생각은 하지를 못했다. 부산을 그렇게 드나들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몇 년 동안 캐나다에서 꾸준히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전우가 묻혀 있는 곳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일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철이 드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나이를 먹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고국 방문길에 부산을 지나칠 기회가 있었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대연동에 있는 유엔묘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난 사실 캐나다에 계시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자주 만난 편이었다. 그들에게 개인적으로라도 고맙단 인사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같은 것이 내 마음 속에 있었던 모양이다. 자기 나라도 아닌 동양의 작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뛰어드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텐데 그들은 그렇게 했다. 노바 스코샤에 있을 때는 6월 25일을 전후해 참전용사들과 충혼탑에 헌화한 후 함께 오찬을 가졌고, 연말에는 발레 공연이나 콘서트에 초청하거나 부부 동반으로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런 자리를 빌어 그들이 보았던 한국, 그들이 치뤘던 전투, 그리고 그들이 겪었던 전우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유엔묘지는 정식 명칭이 아니었다. 유엔기념공원으로 불린다는 것을 현장에 가서야 알 수 있었다. 유엔기념공원은 6.25 전쟁 당시 산화한 유엔군 장병의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유엔이 1951년에 만든 묘지였다. 유엔군 기념묘지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모두 2,300위의 전몰용사가 여기 잠들어 있었다. 영국이 885위로 가장 많았고 터키와 캐나다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무슨 연유인지 한국군도 수 십 명 묻혀 있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엄숙했고 공원 관리 또한 잘 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공원으로 산책을 나온 주민들도 보였다.
캐나다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UN군으로 참전을 했다. 27,000명이 참전해 516명이 산화했다. 그 중에 378위가 여기에 묻혔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70%가 넘는 전몰용사가 여기에 묻힌 것이다. 36,500명이 산화한 미국군은 대부분 미국으로 송환되고 여기엔 36위만 묻혀 있다는 사실과는 퍽이나 대조적이었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각 나라 묘역을 천천히 돌아보며 그들을 잃고 눈물을 흘렸을 가족들을 떠올려 보았다. 캐나다 묘역에 설치된 기념동상 주변에선 더 오래 머물렀다. 유엔기념공원을 나와 그 뒤에 자리잡은 UN조각공원도 잠시 들러 보았다. 6.25 전쟁에 참전한 나라의 조각가들이 기증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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