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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트빌리시 (1) ; 메테키 정교회

여행을 떠나다 - 유럽

by 보리올 2026. 3. 1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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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Georgia)는 코카서스(Caucasus) 산맥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동쪽엔 아제르바이잔(Azerbaijan)과 카스피해(Caspian Sea)가 있고 서쪽은 흑해(Black Sea)와 접해 있다. 면적은 77,000㎢에 인구는 400만 명이 되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열강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로마를 시작으로 몽골, 페르시아, 오스만 투르크,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침략으로 조지아를 괴롭혔다. 그 수난사를 이야기하면 끝이 없을 정도다. 중세시대인 1008년 바그라트 3세(Bagrat III)에 의해 처음으로 통일 왕조를 세운 뒤로, 타마르 여왕(Tamar the Great) 치세에 전성기를 누리다가 1222년 몽골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200년의 짧은 세월이 독립왕국으로서 외세의 핍박에서 잠시나마 벗어난 시기다. 그 고난의 역사를 알게 되니 내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트빌리시(Tbilisi)는 조지아의 수도다. 조지아의 영웅으로 불리는 바흐탕 1세(Vathtang I)가 5세기에 므츠헤타(Mtskheta)에서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겼다. 무려 1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도인 것이다. 난 지난 2년에 걸쳐 트빌리시를 세 번이나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홀로 쏘다닌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처음에 느꼈던 낯설음이 이젠 거의 사라졌다. 시내버스를 이용해 공항을 오가고 지하철도 자유롭게 탈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할까. 트빌리시에 처음 왔을 때는 기차를 이용할 수 있는 중앙역(Central Station) 인근에 호텔을 잡았는데, 그 다음부터는 메테키(Metekhi) 지역이나 자유광장(Liberty Square) 쪽으로 숙소를 바꿨다. 메테키 지역에 머무를 즈음에 호텔을 나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바로 메테키 정교회(Metekhi Church of the Nativity of the Mother of God)였다. 트빌리시를 관통해 흐르는 쿠라 강(Kura River) 절벽 위에 있어서 조망이 좋은 편이었다. 나리칼라 요새(Narikala Fortress)와 올드타운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메테키 교회는 5세기에 트빌리시 창건자인 바흐탕 1세(바흐탕 고르가살리 왕이라 불리기도 한다)가 여기에 왕궁과 요새를 지었고, 13세기에 재건된 교회 건물은 몽골과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수차례 파괴, 복구를 반복했다고 한다. 십자형 돔 구조를 가진 건물은 전형적인 조지아 정교회 양식으로 지어졌다. 좀 투박하게 생겼지만 요즘에는 트빌리시를 대표하는 풍경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실내로 들어가 조지아 정교회의 모습은 어떤지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그리 크거나 넓지 않은 공간에 엄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밖으로 나와 바흐탕 고르가살리 왕의 기마상 앞에 섰다. 이 왕은 늑대 형상의 투구를 쓰고 전투에 참가해 '늑대 머리'란 의미의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1967년에 세워진 이 기마상은 트빌리시를 축복하는 듯이 한 손을 들고 있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환승하는 에게안 항공을 타고 트빌리시로 입성할 수 있었다.

 

트빌리시 중앙역이 있는 스테이션 스퀘어(Station Square)에서 트빌리시의 삭막한 도심 풍경을 만났다.

 

강 위에 놓인 메테키 브리지에서 쿠라 강을 조망하는 시간을 가졌다.

 

메테키 브리지에서 메테키 정교회와 바흐탕 고르가살리 왕의 기마상을 올려다보았다.

 

고풍스런 주변 풍경을 살피며 메테키 라이즈(Metekhi Rise) 도로를 걸어 메테키 정교회로 들어섰다.

 

트빌리시의 대표적 풍경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는 메테키 정교회

 

5세기에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긴 바흐탕 고르가살리 왕의 기마상

 

교회 안은 그리 넓지 않았으나 소박하면서도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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