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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멕시코 시티 – 소칼로 광장

여행을 떠나다 - 중남미

by 보리올 2013. 8. 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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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시티 하면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퀴즈 하나가 떠오른다. 미국 어느 공항에서 비행기 한 대가 이륙했는데 관제탑으로 전화가 걸려 왔단다. 비행기에 폭약을 설치했으니 해발 2,000m 아래로 내려오면 비행기는 자동 폭발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비행기는 영영 착륙할 수 없다는 말 아닌가. 관제탑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조종사는 처음엔 무척 당황하다가 어느 순간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기수를 남으로 돌렸단다. “이 비행기는 어디로 갔을까요?”가 퀴즈의 내용이었다. 답은 당연 멕시코 시티였다. 왜냐 하면 멕시코 시티 국제공항은 해발 2,230m의 높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멕시코 시티는 인구가 885만 명이라 하지만 광역으로 치면 2천만 명에 이른다. 세계적으로도 엄청 큰 도시인 셈이다. 예전부터 은 생산으로 부유했던 멕시코는 지금은 옛 영화를 많이 잃었다. 하지만 어느 도시를 가던 그 나름대로 특색이 있고 분위기가 남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관광지로서의 잠재력은 뛰어나다는 이야기다.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데킬라, 코로나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거기에 우리 입맛을 사로잡는 멕시코 음식까지 더해진다면 이만한 여행지가 어디 흔할까 싶다. , 멕시코 치안 문제는 늘 골치거리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멕시코 시티의 소칼로 광장이나 과나후아토, 칸쿤에서는 그리 위험을 느낄 수 없었지만 그 밖을 벗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하지 못한다.

   

멕시코 시티의 중심은 단연 소칼로(Zocalo) 광장이다. 소칼로의 정식 명칭은 헌법 광장(Plaza de la Constitucion). 이 광장을 중심으로 유럽 스타일의 도심이 형성된 것은 스페인 정복자들 때문이었다. 아즈텍 문명을 멸망시킨 그들은 당시 아즈텍 최고 도시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을 허물고 그 위에 그들의 도시를 건설한 것이 바로 멕시코 시티다. 대통령궁과 메트로 폴리타나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과 같은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소칼로 광장은 멕시코 시티 시민들의 휴식처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광장엔 사람들로 넘쳐 흘렀고 여기저기서 행사들이 열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열리는 시위를 막기 위해 일부러 가건물을 설치하거나 갖가지 행사를 개최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정말 그 때문일까?

 

 

 

     

묘한 기대감에 들떠 소칼로 광장 구경에 나섰다.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진 않았다. 내가 갔을 때가 성탄절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라 그런지 공기 속에서 뭔가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건물에 붙인 크리스마스 장식도 그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광장 가운데에선 군악대가 연주를 하고 있어 몇 곡을 들었다. 광장 외곽 길거리에는 좌판을 벌이고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다. 카드점을 치는 점쟁이는 한가롭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손으로 악기를 돌리며 노래를 들려준 댓가로 동전 한 푼을 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디오 복장을 한 거리 악사들의 신나는 공연에 어깨가 저절로 들썩인다. 어디 그 뿐인가. 알바카(Albaca)란 허브를 태운 연기로 사람에게서 사악한 영혼을 쫓아낸다는 인디오 주술사, 오토바이를 개조한 듯한 세 바퀴 달린 앙증맞은 택시, 그리고 옛 사람들을 그린 벽화까지 모두 달력을 장식할만한 멕시코 고유의 풍경이라 할만 했다.

 

 

 

 

 

 

 

 

 

 

       

대성당 옆으로 가니 아즈텍 신전에서 유적 발굴이 한창이었다.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라 부르는 이곳은 입장료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밖에서도 대강의 모습은 볼 수가 있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신전을 부숴 그 돌로 다른 건물을 지었다는데, 지하에 몇 겹으로 세워진 건물 토대는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대통령궁 안에 있다는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벽화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대통령궁 공식 행사 때문에 이틀간 일체 사람들 출입을 차단한다고 한다. 디에고 리베라의 탄생지였던 과나후아토의 박물관도 문을 닫아 허탕을 쳤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소칼로 광장을 벗어나 지하철 역사로 걸음을 옮겼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다. 지하철이나 역사는 좀 낡긴 했지만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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