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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2일차(론세스바예스~라라소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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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 30분이 되어서야 알베르게에 불이 들어왔다. 늦어도 8시까지는 퇴실을 하라고 하는데 아침 취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쁠 수밖에 없겠다. 배낭 안에 고히 모셔둔 곰탕 라면 세 개를 끓여 세 명이 나눠 먹었다. 비록 라면 한 봉지지만 남에게 베풀 수 있다는 것이 그냥 좋았다.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지만 알베르게를 나서 도로옆 오솔길로 들어섰다. 길은 어두컴컴했다. 도로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산티아고가 790km 남았다고 적혀 있었다. 차가 달리는 도로라 사람이 걷는 거리완 좀 차이가 나는 듯 했다.

 

하늘이 밝아 오는 시각에 부르게테(Burguete)에 도착했다. 이곳은 헤밍웨이가 스페인에 머무를 당시 송어 낚시를 하러 자주 오던 마을이라 했다. 그가 체류했던 호텔은 길가에 제법 번듯한 건물로 남아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헤밍웨이를 자주 접하게 된다. 플로리다에 살았던 그의 집도, 아이다호에 있는 그의 무덤도 보았으니 말이다. 어제부터 함께 걷는 학생이 현금이 필요하다고 해서 은행으로 갔더니 새벽부터 문을 열어 깜짝 놀랐다. 하지만 현금지급기가 없어 다른 은행으로 가야 했다. 마을 밖에선 서서히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자욱한 안개 위로 해가 솟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여기도 산악 지형에 속하는지 제법 오르내림이 심했다. 숲길도 많아 나무 터널을 지나는 곳도 몇 군데 있었다. 예쁜 마을을 지났다. 붉은 지붕에 흰 벽을 지닌 집들은 나름 고풍스런 느낌이 들었다. 현대식 성당이 있는 에스피날(Espinal)을 지나 알토 데 에로(Alto de Erro)를 넘으니 쑤비리(Zubiri)가 그리 멀지 않았다. 21km 거리를 6시간에 걸어 오후 2시에 쑤비리에 도착했다. 김 신부님과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로 점심 식사를 했다. 웨이트리스가 아침에 한국어를 배웠다며 우리에게 ‘안녕’이란 단어를 몇 번이나 써먹는다.

 

신부님은 쑤비리에서 묵겠다고 해서 작별 인사를 건네고 마을을 빠져 나왔다. 난 일정이 빠듯해 남들보다는 조금씩 더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쑤비리를 빠져나오는 다리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줄리와 사이먼 부부를 만났다. 순례길에서 또 만나자 했지만 그들이 나를 따라잡을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홀로 유유자적 걷는 길에 햇볕이 작렬한다. 가을이 한창인 10월에도 이럴진데 한여름에는 얼마나 뜨거울까 싶었다. 조그만 마을을 두 갠가 지나 오후 4시에 라라소아냐(Larrasoana)에 도착했다.

 

거기엔 지자체, 즉 무니시팔(Municipal)에서 운영하는 조그만 알베르게가 있었다. 그 많던 한국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맥주 한잔으로 먼저 목을 축인 후 장을 보러 수퍼마켓으로 갔다. 알베르게에 조그만 부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이 닫혀 있는 수퍼마켓은 벨을 누르면 이층에서 주인이 내려와 물건을 판다. 물건도 종류가 많진 않았다. 쌀과 파스타 면, 그리고 과일을 좀 샀다. 계산을 하니 우리 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계산기 앞에도 ‘맛있게 드세요’라고 한글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인이 이 순례길에 많기는 정말 많은 모양이다.

 

알베르게에서 혼자 저녁을 준비했다. 밥을 해서 곰탕 라면에 넣고 죽처럼 만들었다. 양이 많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난 사실 한국 음식에 대한 집착은 별로 없다. 한달 내내 스페인 음식만 먹으라 해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면 돈이 크게 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순례자 메뉴로 식사를 했는지 알베르게로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든다. 덕분에 나만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다 밤늦게 침실로 들었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론세스바예스를 빠져 나와 순례길로 접어 들었다.

 

 

안개가 마을을 덮고 있는 부르게테.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 발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은행은 문을 열었다.

 

헤밍웨이가 자주 찾아와 묵었다는 부르게테 호스탈.

 

 

 

부르게테 마을을 벗어나니 안개 사이로 해가 솟았다. 소를 방목하는 목장에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쑤비리 마을로 향하는 순례길에도 따스한 햇살이 내려쬐고 있었다.

 

 

에스피날로 들어서는 초입에서 나뭇줄기 사이로 빛내림이 펼쳐졌고, 안개또한 마을을 동화속 풍경으로 만들었다.

 

 

 

지나는 마을마다 예쁜 집들로 가득했다. 석조 건물을 하얗게 칠해 더 아름다웠던 것 같았다.

 

우리가 양떼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양들이 우리를 지켜보는 듯 했다.

 

 

나무 사이로 뚫린 길은 그늘을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시원한 청량감도 선사했다.

 

 

쑤비리로 드는 지점에 고딕 양식의 라비아 다리(Puente de la Rabia)가 있다.

거기서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온 줄리, 사이먼을 다시 만났다.

 

 

 

10유로짜리 순례자 메뉴로 점심을 먹은 쑤비리의 오기 베리(Ogi Berri) 식당. 메인으론 빠에야가 나왔다.

 

에스퀴로츠(Esquirotz)란 조그만 마을에서 화려한 꽃장식을 한 집을 발견했다.

 

 

 

 

그리 크지 않은 라라소아냐 마을의 시골 모습.

 

저녁으로 준비한 곰탕라면죽. 산에서 캠핑하면서 즐겨먹던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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