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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EBC) – 4

산에 들다 - 히말라야

by 보리올 2013. 7. 2.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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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 적응을 한다고 일부러 쿰중까지 다녀왔건만 아침부터 이상하게 발걸음이 무겁다. 계곡을 따라 잘 닦인 길을 줄지어 오른다. 걷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숨을 고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어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필수는 그런대로 회복이 된 것 같은데, 석균이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처음 히말라야를 찾은 사람에게 말로만 들었던 고소 증세가 점점 현실이 되어 가는 듯 했다. 하지만 어쩌랴. 고산에 들면 많은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인 것을. 

 

남체를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 기념탑을 만났다. 1953년에 초등을 했으니 2003년에 세운 탑이다. 기념탑 주변에서 아마다블람이 빤히 올려다 보였다. 일행들보다 조금 앞서 정모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캉주마 마을에 도착했다. 길목에 좌판을 설치해 놓고 각종 장신구를 팔고 있었다. 이렇게 조악해 보이는 장신구를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가게에서 밀크 티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 트레킹을 시작해 처음으로 야크를 보았다. 여기 사람들에게 야크는 매우 소중한 재산이다. 우유를 짜서 야크 치즈를 만들고 짐을 나르는 운송 수단으로도 이용한다. 심지어 야크 똥도 햇볕에 잘 말리면 훌륭한 땔감이 된다.

 

계곡을 건너기 위해 한참을 내려선 다음에야 풍기텡가 마을에 도착했다. 점심으로 맛있는 칼국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기를 채우고 따가운 햇살을 피해 낮잠도 청했다. 허 화백의 일본인 친구인 사카이 다니씨는 컨디션이 좋은지 칼국수도 잘 먹는다. 히말라야가 초행임에도 고소 증세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미리 연습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인 모양이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지그재그 산길을 따라 무거운 다리를 옮긴다. 건조한 날씨 탓에 길에서 엄청난 먼지가 일었다. 그룹이 열을 지어 가다 보니 앞사람이 일으킨 먼지를 뒷사람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호흡을 잠시 멈추면 금방 머리가 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초겨울 히말라야에서 눈이 없는 건조한 날씨와 이렇게 심한 먼지를 만날 것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앞사람과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거나 아예 맨앞으로 나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속도를 좀 올렸다. 먼지 속에서 고도 600m를 올리느라 나름 고생이 많았다.      

 

텡보체(Tengboche)에 도착했다. 능선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마을 텡보체에는 규모가 큰 티벳 불교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쿰부 지역은 티벳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티벳 강점을 피해 티벳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에 많이 정착해 산다. 마을 어디에나 티벳 불교의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얼굴 생김새와 의상도 산 아래와는 달라 보였다.

 

히말라야 뷰 로지에 묵었다. 산악인 출신이라는 여주인은 박대장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었다. 저녁 메뉴는 비빔밥. 고추장을 듬쁙 넣고 쓱쓱 비벼 먹었다. 두세 명을 제외하곤 다들 식욕이 왕성해 보였다. 여주인이 서비스라고 만두 몇 접시를 내왔다. 나중엔 와인까지 들고 온다. 박 대장에게 보이는 호의에 우리가 호강한다. 몸 컨디션이 그리 나쁘지 않아 나도 와인 몇 잔을 받아 마셨다.

 

카메라를 들고 로지 밖으로 나왔다. 조그만 언덕 위에 대한민국의 에베레스트 등정 2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흔히 고상돈 기념비라 불리지만 비석 어디에도 고상돈이란 이름은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사원에서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몇몇도 스님들을 따라 예불이 열리는 법당으로 들어섰다. 1시간 20분을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했다. 그렇게 조촐하게나마 오희준과 이현조의 명복을 비는 시간을 가졌다.

 

로지 앞뜰 평상에 둘러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마다블람 왼쪽 기슭이 밝아오더니 갑자기 둥근 달이 불쑥 떠올랐다. 보름에서 하루나 이틀 지난 모습이었다. 그래도 달이 무척 밝았다. 하늘을 수놓던 별들이 달의 출현에 모두 숨을 죽인다. 이런 기막힌 월출의 순간을 그냥 넘길 기탁 형님이 아니지 않는가. 맥주와 와인을 시켰다. 해발 3,800m가 넘는 높이에서 달에 취해 또 술을 마시다니 내 스스로 자충수를 두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 순간을 놓치면 후에 무척 후회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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