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몸을 뒤척일 때마다 이층 침대는 삐걱삐걱 소리를 내고 밤새 코를 고는 사람에다 연달아 기침을 하는 사람도 있어 알베르게에선 숙면을 취하기가 어렵다. 순례의 한 부분으로 빨리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마음이 편하다. 시도때도 없이 잠에서 깨지만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워낙 길어 실제로 잠이 부족하진 않다. 오전 6 30분에 일어나 살며시 밖으로 나왔다. 다른 사람들 잠을 깨울까 싶어 고양이 걸음을 하고 말이다. 혼자서 아침을 준비한다. 인스턴트 식품인 시금치 된장국에 어제 구입한 가늘고 짧은 면발을 넣고 끓인 수프가 아침 메뉴였다. 우리 입맛에 맞는데다 씹지 않고 그냥 넘겨도 되는 면발이라 먹기에 부담이 없었다. 7 30분에야 배낭을 꾸려 알베르게를 나섰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길을 홀로 걷는다. 새벽엔 공기가 너무 서늘해서 자켓을 꺼내 입었다. 오른쪽으로 폭이 좁은 강이 흐르는데 그 너머로 도로가 지나는지 가끔씩 씽씽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동녘 하늘이 조금씩 밝아 오더니 어설프게 해가 떠올랐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성당을 들어가보려 했지만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다. 하지만 트리니다드 데 아레(Trinidad de Arre)에 있는 성당은 예외였다. 다리 끝에 세워진 위치도 특이했지만 사람이 없는데도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이다. 크레덴시알(Credencial)에 찍으라고 스탬프도 밖에 내놓았다. 규모는 작지만 기품이 있어 보였다. 성당을 나오면서 1유로 동전을 기부함에 넣었다.

 

트리니다드 도심에선 어떤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커다란 인형 여섯 개에 각기 다른 남녀 의상을 입혀 악대의 반주에 맞춰 시가를 행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의미를 가진 행사인지는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 다리를 건너고 성벽을 지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큰 도시에 속하는 팜플로나(Pamplona)로 들어섰다. 나바라(Navarra) 자치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매년 7월 초에는 700년의 역사를 지닌 산 페르민(San Fermin)이란 유명한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좁은 골목에서 사람과 소가 뒤엉켜 달리는 소몰이 행사가 이 축제의 하일라이트다. 헤밍웨이의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도 이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는데 난 통 기억에 없었다.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며 두 시간 넘게 팜플로나를 구경했다.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좁은 골목길이 마음에 들었고 사람들로 시끌법석한 시청앞 광장도 분위기가 좋았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수퍼마켓에서 신라면 네 개를 샀다. 라면 하나에 1.50유로를 받으니 2,000원이 넘는 금액이다. 대성당으로 갔다. 입장료를 받는데 순례자는 반값이다. 14세기부터 지어졌다는 고딕 양식의 성당을 먼저 보고 카를로스 3세의 무덤과 별도 전시관을 가진 박물관도 둘러 보았다. 나바라 왕국의 왕들이 대관식을 치뤘다는 대성당. 순례길에서 지금까지 본 어떤 성당보다도 크고 화려해 구경할만 했지만 난 이런 대규모 성당을 보면 마음이 그리 유쾌하진 않다. 대성당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타파스(Tapas)와 맥주로 점심을 먹었다. 점원이 타파스라 인정하면서도 자기들은 핀초스(Pinchos)부른다고 사족을 붙인다.

 

팜플로나를 나오면서 시우다델라(Ciudadela)도 구경을 했다. 시우다델라는 별 모양의 요새를 말하는데 요즘엔 정원으로 둘러싸인 공원으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아스팔트와 보드블럭을 걸으니 발바닥이 아파온다. 산을 오르내리는 것보다 이런 평지를 걷는 것이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쑤르 메노르(Cizur Menor)를 지나서 비포장 길로 들어섰다. 양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지닌 넓은 들판이 펼쳐져 풍경은 좀 살아났지만 계속되는 오르막 경사에 햇볕마저 따가워 땀이 제법 많이 났다. 능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풍력발전기 모습도 점점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페르돈 고개(Alto de Perdon)를 넘어 우테르가(Uterga)까지 갈까 고민하다가 고개 직전에 있는 마을, 싸리키에기(Zariquiegui)에서 발을 멈췄다. 이 마을에 있는 사설 알베르게엔 부엌이 없어 음식을 사먹어야 했다. 순례자 메뉴가 11유로를 받는다. 캐나다 퀘벡에서 왔다는 노부부와 한국인 아가씨 등 넷이서 식사를 했다. 수프와 샐러드가 먼저 나왔고 메인으론 햄과 생선요리가 나왔는데 음식은 괜찮은 편이었다. 물 한잔 마시려고 물잔을 달랬더니 순례자 메뉴엔 와인잔 하나만 포함되어 있다고 난색을 표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까닭으로 그런 황당한 내규를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너무 어이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와인잔에 물을 따라 마셨다.

 

해 뜨기 전에 알베르게를 나와 길을 걷는 중에 일출을 맞았다. 일출이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수량이 많지 않은 아르가 강(Rio Arga)에서 낚시를 하는 강태공도 만났다.

 

혼자 순례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는 배낭을 어깨에 메지 않고 이틀이나 저 자세로 배낭을 손에 들고 다녔다.

 

 

트리니다드에 들어서면서 만난 바실리카 성당(Basilica de la Trinidad de Arre).

바실리카란 이름을 쓰는 성당치곤 아담하고 소박해서 좋았다.

 

 

 

 

 

트리니다드에선 커다란 인형을 들고 시가 행진을 하는 어떤 행사와 마주쳤다.

 

 

14세기에 지은 이 다리와 구시가를 둘러싼 성벽을 지나 팜플로나 시내로 들어선다.

 

 

 

 

팜플로나는 고풍스러움과 화려함을 함께 겸비한 도시였다. 인파로 붐비는 좁은 골목도 나에겐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무너져버리자 14세기 후반부터 고딕 양식으로 다시 지은 것이 현재의 팜플로나 대성당이다.

많은 유물을 발굴해 따로 전시하고 있었다.

 

 

 

팜플로나 어느 식당에서 타파스와 맥주로 점심을 해결했다. 버섯이 올려진 타파스는 맛이 아주 훌륭했다.

 

팜플로나를 나오면서 옛 요새였던 시우다델라도 들렀다.

 

 

야트마한 산자락이 농지로 바뀌어 누런 색을 지닌 새로운 풍경을 선사했다.

 

 

싸리키에기에도 아담한 규모의 산 안드레스(San Andres) 성당이 저녁 미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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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ove123 2015.11.19 1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부러운 순례길을 다녀오셨네요

    • 보리올 2015.11.19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톨릭 신자이거나 걷기를 좋아하시면 한번 다녀오실만 합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내내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2. 파라다이스블로그 2015.11.19 16: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런 들판은 생기가 없어보인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또 아름다운 면모가 있네요^^ 맛있는 음식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까지, 의미있는 순례길이 되셨을 듯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보리올 2015.11.19 17: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마운 댓글이네요. 감사합니다. 파라다이스란 기업을 알리는 의미도 있겠지만 블로그 정말 깔끔하게 잘 운영하고 계시네요. 저도 예전엔 부산 파라다이스를 자주 갔던 적이 있답니다.

  3. 박소희 2015.11.19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랑스길인가요?첫번째 도시 팜플로냐에 도착하셨네요. 2013년봄에 다녀왔는데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산티아고까지 부디 안전하게 완주하시길..
    부엔까미노^^

    • 보리올 2015.11.20 0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프랑스 길이 맞습니다. 박소희님은 벌써 다녀오셨군요. 지금 순례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11월 초에 마무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기록을 정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4. 시원 2015.11.19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럽습니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걷고 있는 나를 꿈꿉니다
    건강히 완주하시길 바래요^^

  5. justin 2015.12.11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훌륭하다는 타파스의 맛과 스페인의 맥주 맛이 궁금합니다!

    • 보리올 2015.12.11 15: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스페인 맥주 맛이야 비슷하지. 거기 사람들 와인을 많이 마시더구나. 스페인이 와인 산지로도 유명하거든. 와인에 타파스가 잘 어울리는 것 같고. 타파스 정말 괜찮더구나. 요즘 한국인 입맛에 맞는 타파스를 개발 중이다. 나중에 우리 아들에게 해주려고. 그때 스페인 와인 한잔 하자.

  6. 제시카 2016.01.02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일기장을 관리하셨길래 이렇게 눈앞에 아빠의 하루모습이 보일듯말듯 하게 자세히도 쓰셨을까요? 대단하시네용! 저 인형들 저도 두번정도 봤었는데!!!! 바르셀로나에서!궁금하네요 뭔지!

    • 보리올 2016.01.03 0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기를 썼다기보다는 메모를 열심히 했지. 요즘엔 통 기억을 믿을 수 없으니 말야. 사진을 많이 찍어 놓는 것도 나중에 기억을 되살리는데 도움이 되었지.

 

멕시코 시티 하면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퀴즈 하나가 떠오른다. 미국 어느 공항에서 비행기 한 대가 이륙했는데 관제탑으로 전화가 걸려 왔단다. 비행기에 폭약을 설치했으니 해발 2,000m 아래로 내려오면 비행기는 자동 폭발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비행기는 영영 착륙할 수 없다는 말 아닌가. 관제탑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조종사는 처음엔 무척 당황하다가 어느 순간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기수를 남으로 돌렸단다. “이 비행기는 어디로 갔을까요?”가 퀴즈의 내용이었다. 답은 당연 멕시코 시티였다. 왜냐 하면 멕시코 시티 국제공항은 해발 2,230m의 높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멕시코 시티는 인구가 885만 명이라 하지만 광역으로 치면 2천만 명에 이른다. 세계적으로도 엄청 큰 도시인 셈이다. 예전부터 은 생산으로 부유했던 멕시코는 지금은 옛 영화를 많이 잃었다. 하지만 어느 도시를 가던 그 나름대로 특색이 있고 분위기가 남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관광지로서의 잠재력은 뛰어나다는 이야기다.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데킬라, 코로나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거기에 우리 입맛을 사로잡는 멕시코 음식까지 더해진다면 이만한 여행지가 어디 흔할까 싶다. , 멕시코 치안 문제는 늘 골치거리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멕시코 시티의 소칼로 광장이나 과나후아토, 칸쿤에서는 그리 위험을 느낄 수 없었지만 그 밖을 벗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하지 못한다.

   

멕시코 시티의 중심은 단연 소칼로(Zocalo) 광장이다. 소칼로의 정식 명칭은 헌법 광장(Plaza de la Constitucion). 이 광장을 중심으로 유럽 스타일의 도심이 형성된 것은 스페인 정복자들 때문이었다. 아즈텍 문명을 멸망시킨 그들은 당시 아즈텍 최고 도시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을 허물고 그 위에 그들의 도시를 건설한 것이 바로 멕시코 시티다. 대통령궁과 메트로 폴리타나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과 같은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소칼로 광장은 멕시코 시티 시민들의 휴식처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광장엔 사람들로 넘쳐 흘렀고 여기저기서 행사들이 열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열리는 시위를 막기 위해 일부러 가건물을 설치하거나 갖가지 행사를 개최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정말 그 때문일까?

 

 

 

     

묘한 기대감에 들떠 소칼로 광장 구경에 나섰다.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진 않았다. 내가 갔을 때가 성탄절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라 그런지 공기 속에서 뭔가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건물에 붙인 크리스마스 장식도 그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광장 가운데에선 군악대가 연주를 하고 있어 몇 곡을 들었다. 광장 외곽 길거리에는 좌판을 벌이고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다. 카드점을 치는 점쟁이는 한가롭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손으로 악기를 돌리며 노래를 들려준 댓가로 동전 한 푼을 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디오 복장을 한 거리 악사들의 신나는 공연에 어깨가 저절로 들썩인다. 어디 그 뿐인가. 알바카(Albaca)란 허브를 태운 연기로 사람에게서 사악한 영혼을 쫓아낸다는 인디오 주술사, 오토바이를 개조한 듯한 세 바퀴 달린 앙증맞은 택시, 그리고 옛 사람들을 그린 벽화까지 모두 달력을 장식할만한 멕시코 고유의 풍경이라 할만 했다.

 

 

 

 

 

 

 

 

 

 

       

대성당 옆으로 가니 아즈텍 신전에서 유적 발굴이 한창이었다.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라 부르는 이곳은 입장료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밖에서도 대강의 모습은 볼 수가 있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신전을 부숴 그 돌로 다른 건물을 지었다는데, 지하에 몇 겹으로 세워진 건물 토대는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대통령궁 안에 있다는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벽화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대통령궁 공식 행사 때문에 이틀간 일체 사람들 출입을 차단한다고 한다. 디에고 리베라의 탄생지였던 과나후아토의 박물관도 문을 닫아 허탕을 쳤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소칼로 광장을 벗어나 지하철 역사로 걸음을 옮겼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다. 지하철이나 역사는 좀 낡긴 했지만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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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dy 2013.09.14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칼로 광장에 가봤다니 부러워요ㅠㅜ 저는 8월 19일부터 30일까지 다녀왔는데 멕시코 교육개혁 반대운동 시위때문에 광장이 폐쇠되서 못가봤습니다. 그래도 사진으로나 봐서 조금 위안이 됩니다. 그럼 좋은하루되세요!!

  2. 보리올 2013.09.15 0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의 2주를 멕시코에 계셨는데 시위 때문에 소칼로 광장에 가시지 못했단 말씀입니까? 속 많이 상하셨겠네요. 다음에 멕시코 또 오란 의미로 편하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