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거리가 그리 길지 않음에도 일부러 무료 트램을 타고 빅토리아 주의사당(Parliament House)으로 갔다. 계단 위에 대리석 기둥이 몇 개나 늘어선 웅장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가 매시간 한 차례 실시하는 무료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내 맘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보안 검색을 마친 후 투어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가이드가 나와 안내를 시작했다. 1856년에 주의회를 결성했고, 상원과 하원 양원제로 되어 있으며, 상원 40, 하원 88명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하원 의사당이었다. 회의 탁자와 바닥이 녹색으로 되어 있었다. 영국의 관례에 따라 상원은 붉은색, 하원은 녹색으로 장식하는 규정을 여기에도 적용했다는 이야기다. 고색창연한 장서와 옛날 사진이 있는 도서관을 보곤 상원 의사당으로 이동했다. 정말 탁자와 바닥이 붉은색이었다. 하원에 비해 상원의 내부 장식이 더 고급스러워 보였다.

 

주의사당을 나와 팔라먼트 가든스(Parliament Gardens)를 관통해 걸었다. 주의사당 바로 옆에 있는 팔라먼트 가든스는 삼각형 형태로 된 조그만 공원이었지만 산책 나온 시민들이 제법 많았다. 거기서 멀지 않은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St. Patrick’s Cathedral)을 찾았다. 이 성당은 호주에서 가장 큰 카톨릭 성당으로 알려져 있는데 멜버른 대주교가 있는 곳이다. 1858년에 착공하여 80년이 걸려 완공하였다고 한다. 건물 외벽에 검은 벽돌을 붙였고 첨탑은 약간 밝은 색이 나는 돌을 썼다. 전형적인 고딕 양식을 사용해 웅장하면서도 위엄이 넘쳤다. 이 성당 건립 당시 멜버른에 아일랜드계 정착민이 많아 아일랜드 수호성인인 세인트 패트릭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갔다. 스테인드 글라스 외에는 장식이 그리 화려하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강렬한 햇살 때문인지 실내에 황금빛 기운이 넘쳤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6년에 이곳을 다녀갔다는 동판도 보였다.


1886년에 지어진 프린세스 극장(Princess Theatre)은 돔형 지붕에 왕관이 씌워져 있는 빅토리아 시대의 극장이었다.


빅토리아 주의사당 앞을 마차 한 대가 한가롭게 지나고 있다.









무료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 주의사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하원과 상원, 도서관을 구경할 수 있었다.



팔라먼트 가든스도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시민과 거리를 두지 않는 운영 방식이 보기 좋았다.





  




105m 높이의 첨탑이 인상적이었던 세인트 패트릭스 대성당은 고딕 양식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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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06.07 2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대성당 하나를 짓는데 80년이라... 정말 그 자체가 순례네요~ 그 성당을 짓는 사람이나 성당이 빨리 지어지길 기다리는 사람들이나...참 대단합니다!

 

하룻밤이 지나도 발목엔 차도가 없었다.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아침 7시 이후에 기상하라는 알베르게 규정 때문에 일찍 깨어났음에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빵과 잼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8시가 넘어 알베르게를 나섰다. 오리에타가 문을 열어주며 배웅을 해준다. 마을을 벗어날 즈음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눈앞의 풍경은 어제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두 시간을 걸어 벨로라도(Belorado)로 들어섰다. 마을 초입의 알베르게엔 일열로 각국 국기를 게양해 놓았는데 우리 태극기는 가운데가 찢어져 있었다. 10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산타 마리아 성당으로 향했다. 소박한 장식이 마음에 들었다. 종탑 위에 새들이 집을 몇 채 지어 놓았다. 종소리가 시끄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성당 뒤로 다 허물어진 성채가 보였다. 한때 위세를 떨쳤을 건물도 세월을 이기진 못한다.

 

반대편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오는 순례자가 한 명 있었다. 왜 거꾸로 걷느냐 물었더니 한숨부터 쉰다. 자기는 체코에서 온 피터라 했다. 산티아고로 가던 중에 이탈리아 젊은이들과 어울려 야영을 했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카메라, 지갑, 여권이 모두 사라졌단다. 경찰 도움으로 인근 CCTV를 확인한 결과, 이탈리아 친구 한 명이 물건을 가지고 달아난 것은 확인됐으나 그 친구를 잡을 수는 없었다고. 팜플로나 영사관에서 여권을 만들어 체코로 돌아갔다가 다음에 다시 올 예정이라 했다.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는 30년 전에 자기 아버지가 산티아고 순례를 할 때 직접 만든 것이라고 은근 자랑을 한다. 행색을 보니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한 것 같아 10유로를 건네며 식사를 하라고 했다. 적은 금액이라도 고난에 처한 친구를 도와준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에스피노사(Espinosa)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매운 맛 소시지를 넣은 오믈렛으로 알고 시켰는데 오믈렛이 아니라 샌드위치가 나왔다. 그 안에 계란 스크램블과 소시지가 들어 있었다. 내가 메뉴를 잘못 읽은 모양이었다. 비야프랑카(Villafranca)에서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까진 12km의 산길로 이어졌다. 오르막을 타고 해발 1,200m 높이의 몬테스 데 오카(Montes de Oca)까지 줄곧 올라야 했다. 멀리 산 로렌쏘(해발 2,268m)도 보였다. 그리곤 한 동안 평지를 걷다가 지루한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발목 통증은 오르막보다 내리막에서 더 심했다. 그래도 참을만해서 다행이었다. 하긴 참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숲길 공터에 간이 매점이 차려져 있었고 사람도 몇 명 모여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매점에서 한 여자가 쫓아와 음료수를 권한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사양을 했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잔을 건네기에 순례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인가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 마셨다. 고맙단 인사를 하고 잔을 건네니 그제서야 도네이션 하라고 손을 벌린다. 그러면 미리 도네이션 이야기를 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지만 인상이 너무 험악해 바나나 하나를 들고 1유로를 주었다. 순례자들을 상대로 하는 장삿꾼에게 보기좋게 낚인 것이다. 순례자들 주머니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더니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 도착했다. 하나밖에 없는 알베르게라 그런지 시설이 형편없었다. 산 후안은 산토 도밍고의 제자였다. 순례자를 위해 길을 닦고 성당과 숙소를 지었다. 여기에 있는 성당도 산 후안이 12세기에 직접 지은 것이다. 산 후안은 다산의 성인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무덤을 파니 하얀 벌떼가 쏟아져 나왔는데 벌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상징한다고 했다. 이사벨 여왕이 여길 찾아와 두 차례나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오후 6시에 시작하는 순례자 미사에 참석했다. 미사가 끝나고 산 후안의 무덤 앞으로 참석자 모두를 불러내더니 신부님이 대주교 십자가를 본따 만든 목걸이를 일일이 목에 걸어주었다.

 

저녁 식사는 미사가 끝나고 알베르게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로 해결했다. 식당도, 음식도 그리 훌륭하진 않았다. 이 순례자 메뉴는 7.50유로를 받아 다른 곳보단 저렴했으나 정성으로 만든 음식은 아니었다. 맛도 그저그랬다. 존이 함께 식사하자고 옆에 앉았다. 영국에서 온 대학교수였다. 지난 해 부인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자신은 일이 있어 먼저 돌아가고 부인만 홀로 완주를 했단다. 올해 다시 와서 나머지를 걷고 있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난로 주변에 몇 명이 둘러앉았다. 워싱턴 DC에서 온 조지 부부, 아일랜드에서 온 에드 부부, 그리고 존과 나 모두 여섯 명이 나눈 화제는 의외로 축구 이야기였다.

 

여주인 오리에타의 배웅을 받으며 알베르게를 나섰다. 또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해가 떠오르며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이른 새벽부터 전투기들이 창공에 하얀 띠를 남겨 놓았다.

 

비야마요르(Villamayor)를 지났다. 허름한 농가 주택들이 눈에 띄는데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 듯 했다.

 

 

 

 

벨로라도는 제법 규모가 큰 도시였다. 예전엔 성당이 여덟 개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두 개만 남았다.

 

체코에서 왔다는 피터. 여권과 지갑을 도난당해 팜플로나로 여권을 만들러 간다고 했다.

아버지가 산티아고 순례를 할 때 사용했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에스피노사 마을. 계란으로 만든 스크램블을 오믈렛이라 불러 주문에 약간 혼선을 빚었다.

 

 

수확을 하지 않은 해바라기 밭이 자주 나타났다.

 

 

누런 들판 사이로 난 순례길을 표지석 하나가 지키고 있다.

 

9세기에 세워졌다는 산 펠리세스(San Felices) 수도원 건물은 모두 무너져 버리고 이것만 남았다.

 

스페인 내전에서 숨진 희생자 추모비가 산길 한 켠에 세워져 있었다.

 

 

몬테스 데 오카를 넘는 지루한 산길이 계속되었다. 넓은 산길 위에 누군가가 돌로 부엔 까미노를 적어 놓았다.

 

산길에 매점을 차려놓고 도네이션 하라며 순례자들 주머니를 노리는 장삿꾼들이 있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 도착했다. 인구라야 겨우 25명이 전부인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성당에서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열렸다. 한글 안내문도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 안에 있는 산 후안의 무덤도 둘러 보았다.

 

 

마을엔 식당도 없고 알베르게엔 부엌도 없었다. 알베르게의 순례자 메뉴가 유일한 선택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른 순례자들과 난로 주변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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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랑방귀 2015.11.27 15: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순례 관련 책을 봤는데 올리브 나무가 참 많더라고요.이곳은 해라바기 밭이 인상적이네요.

    • 보리올 2015.11.27 16: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올리브 나무도 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눈에 띄진 않더군요. 봄, 여름에는 밀밭이 장관이라 하던데 제가 걸었던 10월에는 모두 수확한 후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포도밭과 해바라기 밭을 많이 보았지요.

  2. 스페니 2015.11.29 0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그 때의 발목은 회복되셨는지요~=_=

  3. justin 2016.01.08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최근에 사진 찍는 일이 부쩍 늘었는데, 확실히 느끼는 것은 예전에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신대로 일출때와 일몰때 햇살이 가장 부드럽고 따스하고 사진찍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 아침 햇살 맞은 사진들이 색감이 틀리네요.

    • 보리올 2016.01.08 1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진 찍는 일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좋은 취미라 생각한다. 누구나 쉽게 사진에 입문한다만 본격적으로 사진을 하려면 그것도 꽤나 고행이 따르지. 갈수록 어려워지고. 우선 사진의 세계를 두루 경험해 보려무나.

 

올드 퀘벡(Old Quebec)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은 바 있다. 우리가 올드 퀘벡이라 부르는 퀘벡 시티의 구시가지는 어퍼 타운(Upper Town)과 로워 타운(Lower Town)으로 나눠진다. 이른 아침에 둘러본 곳은 주로 로워 타운 지역이었다. 캡 디아멍 아래에 세인트 로렌스 강가를 따라 형성된 지역을 말한다. 이에 반해 캡 디아멍 꼭대기에 형성된 마을이 어퍼 타운이다. 퀘벡 여행이라 하면 올드 퀘벡의 이 두 군데로 집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 지역이 넓지 않아 천천히 걸어다녀도 하루면 구경할 수 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샤토 프롱트낙(Chateau Frontenac)의 녹색 지붕을 어퍼 타운의 중심점으로 삼으면 좋다.

 

 

 

 

 

(사진) 올드 퀘벡의 시가지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 속에도 그림같은 건물들이 많아 예상치 못한 발견의 기쁨을 선사한다.

 

 

 

(사진) 다름 광장(Place d’Armes)으로 불리는 이 광장은 과거 프랑스 군대가 퍼레이드를 벌이던 곳이다.

샤토 프롱트낙 북쪽으로 인접해 있다. 광장 가운데는 뉴 프랑스를 세운 샹플렝의 동상이 서있고,

그 북쪽으론 군대 역사관인 요새박물관(Musee du Fort)이 있다.

 

 

 

 

 

 

 

(사진) 올드 퀘벡의 고풍스러움 속에는 늘 샤토 프롱트낙의 녹색 구리 지붕이 눈에 띈다.

퀘벡 시티의 스카이라인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 이 샤토 프롱트낙은 퀘벡의 랜드마크로

캐나다 태평양 철도회사(CPR)가 설립한 호텔이다. 600개의 객실을 가지고 있다.

1893년 오픈을 하였고 100여 년간 건축을 계속해 1983년에야 마지막 부분을 완공했다고 한다.

 

 

 

 

 

(사진) 퀘벡 카톨릭 성당의 본산이며 대주교가 있는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1922년 네 번째로 세운 성당이 화재로 소실되자, 1647년 설계도로 원형을 살려 다시 지었다고 한다.

마침 성당에서 결혼식이 끝나 그 내부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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