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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11 지리산 (6)

 

 

고국에 들어가 있던 어느 날, 고등학교 동기인 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학 산악부 출신인 이 친구는 대전에서 자기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일요일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산에 가겠다고 작심하곤 열심히 산을 찾고 있었다. 몇몇 가까운 친구들과 지리산을 가려고 하는데 나도 참여하란다. 전에 어느 선배가 이야기하길, 함께 가자고 불러주는 친구가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란다. 두 말 않고 따라가겠다 했다. 등산용품을 대충 챙겨 배낭을 꾸렸다.

 

 

 

 

20091213. 친구 3명과 지인 1명이 끼어 모두 다섯이 지리산을 다녀왔다. 백무동에서 산행을 시작해 다시 백무동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12월이라 하지만 날씨도 온화하고 하늘도 맑아 산행에는 더 없이 좋았다. 낙엽이 떨어져 푹신한 산길도 걷기 좋았고 오랜만에 산죽길을 지나는 것도 운치가 있었다. 하동바위를 경유해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해 지리산 주능선에 닿았다.

 

 

 

겹겹이 펼쳐진 산자락들이 우리 눈 아래 펼쳐진다. 이렇게 부드럽게 겹쳐 흐르는 산자락은 우리 나라에서나 접할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 아닐까 싶다. 험봉이 많은 캐나다에서는 보기 힘들다. 대피소 마당에 있는 빨간 우체통이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편지를 넣으면 우체부가 수거해가는지, 편지는 정말 전달이 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산 아래 멋진 풍경을 앞에 두고 대피소 벤치에서 김밥과 사발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만한 경치를 가진 식당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누군가 배낭에 숨겨온 막걸리를 꺼내 들어 더더욱 흥을 돋군다.

 

 

장터목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리산을 찾은 것이 수십 번은 되지만 이렇게 맑은 날 멋진 풍경을 보여준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산 특유의 날씨답게 늘 비나 눈에 젖어 추웠던 기억이 많은 곳이다. 행복한 마음은 발걸음도 가볍게 한다. 그리 힘든지도 모른 채 드디어 천왕봉 정상에 올랐다. 여기에 서면 늘 가슴이 설렌다. 천군만마를 거느리고 서있는 대장군의 기분이 과연 이런 것일까.

 

 

 

 

 

 

 

이 천왕봉 정상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이 춥고 외진 곳에서 홀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안스러운 마음이 드는 반면, 이곳까지도 시위 현장으로 쓰는 것에 대해 묘한 거부감이 들었다. 가슴에 붙인 대자보에는 지리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한다고 적혀 있었다. 나도 지리산에 케이블카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여기보다는 지리산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기관의 정문에서 시위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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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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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종인 2012.10.16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오래간만에 지리산을 아버지 사진을 통해 보니 감회가 너무 새로워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말인가? 6학년 초인가? 그때 백두대간 종주의
    첫 출발 구간을 위해 찾아왔던 것이 벌써 가물가물해졌어요. 그때도 첫날에 날씨가 안 좋았었던걸로 기억이 나요.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멋도 모르고 그냥 월드컵 경기보고 산을 오르지 않고 다시 집에 갔었으면 하는 바램도 조금(?)있었던 것 같아요. 백두대간 종주 했었을때 제 구간 일지와 사진을 다시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 보리올 2012.10.16 2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자가 단둘이 백두대간 종주에 도전한 때는 네가 초등학교 6학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네 친구 생일파티 등 가기 싫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우린 결국 해내지 않았냐. 네가 나에겐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추억을 선물한 셈이지. 나도 그 시절이 무척이나 그립구나.

  2. 설록차 2013.09.06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겨찾기에서 처음 뜨는 화면이 이 지리산편입니다...거의 매일 보는 셈인데요~ 겹쳐져 있는 모습은 묵화를 보는듯하구요...우리 산이 아늑하고 포근하게 보입니다...^^

  3. 보리올 2013.09.10 14: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리산은 정말 명산 중 명산입니다. 한국인에겐 늘 그리움을 안겨주는 산이라 할까요. 멀리 있어도 지리산 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4. 설록차 2014.01.18 0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리산에 가보지 않았으니 뭐 애절한 사연이 있겠어요...ㅎㅎ
    5번 9번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거든요...산세가 압도적이고 웅장해서 짓누르는 느낌도 없고 (윗 댓글에 쓴것처럼)아늑하고 포근하잖아요... 보면 볼수록 더 마음에 드는 사진입니다...^^

  5. 보리올 2014.01.18 05: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접 산에 올라 산자락을 지켜보는 것이나 그 장면을 사진으로 감상하는 것 둘 다 같은 풍경을 보긴 하겠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감동의 크기는 다르다 봅니다. 열심히 운동하고 연습하셔서 다음 고국에 들어갈 때는 지리산 천왕봉 한번 도전해 보시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