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유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8.07 [멕시코] 멕시코 시티 – 국립 인류학 박물관 (2)
  2. 2013.07.26 [멕시코] 치첸이샤 마야 유적지 (2)

 

국립 인류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으로 가는 길. 지하철 역에서 나와 무슨 공원인가를 지나치는데 담장 너머로 한국정이라 이름 붙은 정자가 하나 나타났다. 자세히 보기 위해 차풀테펙(Chapultepec) 공원 입구를 찾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무슨 정원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었다. 한국정을 세운 배경을 설명해주는 안내판에는 한글이나 영어는 없었다.  스페인어로만 적으면 난 까막눈이 되는데 말이다. 나중에서야 이 정자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우리 정부가 멕시코에 기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이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고국의 흔적을 찾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멕시코 시티에 오면 이 인류학 박물관은 꼭 봤으면 한다. 그 규모도 엄청 나지만 박물관 자체도 세계적인 수준이라 감히 이야기 하고 싶다. 스페인 통치 이전 멕시코에 존재했던 찬란한 문화를 전시하고 있었다. , 테오티우아칸과 마야 유적을 비롯해 아즈텍 문명까지 엄청난 유적을 모아 전시하고 있었고, 각 지역별로 출토된 유적을 분리해 전시하기도 했다. 런던의 대영 박물관이나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비교하긴 어려울지 몰라도 멕시코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볼 수 있는 대단한 박물관임에는 분명했다. 멕시코 문화 유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하루를 꼬박 투자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았다.

   

57페소인가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서면 ㅁ자 모양의 박물관이 나타난다. 그 가운데에는 기둥 하나로 넓은 지붕을 받들고 있는 특이한 모양의 분수가 있다. 이 단순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조형물은 1985년 일어난 강도 8의 지진에도 끄덕 없었다고 한다.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페드로 라미레스 바스케스(Pedro Ramirez Vazquez)가 설계한 작품으로 그 기둥에는 멕시코 역사가 상징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1976년 새로 지은 과달루페 바실리카 성당도,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축구와 1970, 1986년 두 차례 월드컵 결승전을 치뤘던 멕시코 시티의 아즈텍 스타디움도 모두 이 사람 작품이었다.

 

 

 

박물관 1층은 선사시대부터 아즈텍 문명까지 멕시코의 각기 다른 문명이 남긴 유물을 12개의 전시실에 전시하고 있었고, 2층은 멕시코 민족사에 많은 공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테오티우아칸에서 보았던 케찰코아틀(Quetzalcoatl) 신전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제 5전시실, 치첸이샤를 비롯한 많은 유적지에서 발굴한 마야 유물을 보여주는 제 10 전시실이 아무래도 내 관심을 많이 끌었다. 하지만 스페인에 의해 망한 마지막 문명이 아즈텍이었기에 아즈텍 유물이 가장 많이 전시되고 있었다.

 

사실 아즈텍 문명은 마야나 잉카 문명에 비해 연대적으로 그리 오래된 문명이 아니다. 아즈텍 문명은 현재 멕시코 시티 일대에 살던 아즈텍 사람들이 14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꽃피웠던 것인데, 우리는 마치 마야나 잉카 문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대 문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스페인이 1521년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킨 후 아즈텍 중심지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 지역에 멕시코 시티를 건설했기에 시간적, 공간적으로 아즈텍 유물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유물 보존 상태도 좋았다. 아즈텍 유물 중에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연 태양의 돌이었다. 이것은 아즈텍 달력인데 그들은 1년을 오늘날처럼 365일로 정확히 계산했다고 전해 진다.

 

 

 

 

 

 

 

 

 

 

  

박물관 순례는 은근히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전시 중인 멕시코의 옛 유물이 워낙 많아 꼼꼼히 보려면 하루를 잡아도 충분치 않을 것 같지만, 반나절 보고는 어디 앉을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그만 밖으로 나왔다. 멕시코 시티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이 한 군데 더 있었기 때문에 몸이 피곤해도 맘대로 쉴 수가 없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박물관을 보기 위해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코요아칸(Coyoacan) 역으로 갔다. 이 지하철 3호선은 가장 붐볐고 유독 잡상인들과 걸인들이 많았다. 역마다 한두 명이 승차해서는 엄청 빠른 말로 시끄럽게 떠들다가 다음 역에서 내리면 다른 잡상인들이 교대로 올라오는 형국이었다.

 

뜨거운 땡볕을 마다 않고 꽤 먼 거리를 걸어 프리다 칼로 박물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을 닫아 버렸다. 정기 휴일도 아닌데 왜 문을 닫았을까. 내가 멕시코를 찾은 주요 원인 중에 하나가 프리다 칼로를 만나기 위함인데 사전 통지도 없이 이러면 어쩐단 말이냐. 좀 허탈했다. 여기를 찾아온 젋은이들도 황당해하긴 마찬가지. 멕시코에 다시 오라는 의미인가?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다. 18세 꽃다운 나이에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었지만, 절망과 좌절을 이겨내고 운명과 맞서 침대에서 그림을 그렸던 여자다. 슬픔이 가득하고 일면 광기가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특히 사진으로 본 슬픈 얼굴의 자화상은 너무 처연해 보였다. 디에고 리베라와 부부가 되었지만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다시 소칼로 광장으로 나왔다. 멕시코 시티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어디를 오고갈 때 자주 들리게 된다. 멕시코 시티 대성당이라 불리는 메트로 폴리타나 성당(Catedral Metropolitana)을 찾았다. 중남미 최고의 성당 가운데 하나인데, 우리나라 명동 성당이라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1520년에 짓기 시작해 근 300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대성당을 들어가니 제단은 온통 금칠을 해놓았다. 유럽에 있는 성당과 외양은 비슷했으나 스테인드 글라스가 없는 것이 좀 달랐다. 이 대성당도 지반 침하로 바닥이 갈라지고 건물이 기우는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과달루페 옛 성당과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아즈텍 원주민들이 가장 신성시했던 신전을 허물고 그 위에 대성당을 지은 스페인 정복자에게 보내는 슬픈 영혼들의 소박한 복수가 아닐까 싶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서점 2013.08.07 15: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멕시코엔 여러문명의 기억이 남아있네요 ^^

  2. 보리올 2013.08.07 16: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멕시코를 다녀온 후에야 멕시코를 보는 제 시각이 상당히 많이 변했습니다. SONBE님도 시간이 허락하면 꼭 한 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님의블로그도 다양한 내용으로 잘 꾸며 놓으셨더군요. 잘 봤습니다.

 

마야 문명은 멕시코 남동부와 유카탄 반도, 과테말라 등에서 꽃 피웠던 고대 문명을 말한다. 2,000년 전에 생긴 것으로 추정하며, 8~9세기에 전성기를 구가하곤 10세기 들어 고대 마야 문명이 멸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야 문명과 톨텍(Toltec) 문명이 혼합된 치첸이샤 유적은 그보다 조금 늦은 10세기 이후에 번성했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빽빽한 밀림 속에 독창적인 고대 문명을 이루고도 어느 날 갑자기 수수께끼처럼 사라져버린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마야인들은 돌을 조각하는 기술이 무척 뛰어났다. 종이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상형문자와 20진법, 숫자 0(zero)를 발명하였고, 천체를 관찰하기 위해 피라미드를 지었을 정도로 천문학이 발달했다. 치첸이샤의 엘 카스티요, 즉 쿠쿨칸 신전(Temple of KuKulkan)은 이런 목적도 지니고 있다 한다. 마야인들이 사라진 까닭을 혹자는 도시 간의 전쟁 또는 인구 증가와 기후 변화로 인한 천재지변 발생 등을 이야기하고, 혹자는 지배층이 늘어나면서 신전 건설 붐이 일어 노역에 동원된 피지배층이 급격히 감소한 탓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아마 이 모두가 원인일런지도 모른다.

 

칸쿤에서 치첸이샤까지는 200km 거리였지만 도중에 세노테를 들르고 점심 식사까지 하면서 시간을 끌더니 다섯 시간만에 도착을 했다. 오후 2시에 버스를 내리는데 4 30분까진 돌아오라고 한다. 치첸이샤의 현지 가이드를 만나 영어로 설명을 들었다. 본격적으로 피라미드 구경에 나서기 전에 조그만 사고가 발생했다. 길가 노점상에서 창문을 올려 열어 놓았는데 하필이면 거기에 오른쪽 눈썹 부위가 찍혀 1cm 정도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것이다. 가이드가 응급 차량으로 날 데려가 응급조치를 받고 눈썹에 반창고를 붙였다. 먼저 출발한 일행들을 찾았지만 보이질 않는다. 혼자 맘대로 돌아다니다 나중에 가이드와 일행들을 다시 만났다.

 

 

 

치첸이샤 마야 유적은 몇 개의 피라미드 신전와 궁전, 공놀이 경기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제법 규모가 컸다. 6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이뤄진 유적이라 했다. 2007 7 7,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New 7 Wonders)를 발표하면서 이 치첸이샤 유적을 그 중의 하나로 선정했다. 중국 만리장성과 인도 타지마할, 이탈리아 콜로세움, 페루 마추픽추 등과 함께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또한 이 유적은 유네스코에서 198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엘 카스티요(El Castillo)라 불리는 치첸이샤의 중심 피라미드는 이집트 가자 지구의 피라미드에 비해선 작은 편이지만, 과학적인 정밀함에선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다. 4면체로 구성된 높이 23m의 이 피라미드는 네 면에 91개씩의 계단이 있고 여기에 중앙 계단까지 합하면 모두 365개가 된단다. 우리 1년의 365일과 똑같지 않은가. 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에는 기우는 해가 계단에 비추면 그들이 숭배하는 뱀신, 즉 쿠쿨칸의 형상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피라미드가 정방위에서 17도 틀어져 있기 때문이라 하는데, 이는 현대 과학으로도 설명이 어렵다 한다. 그런 까닭으로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뽑혔다 하고.

 

엄청 가파른 급경사 계단이 꼭대기로 향하는데 아쉽게도 오를 수는 없었다. 몇 년 전에 할머니 한 분이 이 45도 경사를 내려오다 추락사해서 출입을 막은 것이다. 꼭대기에는 신관이 인신공양을 했던 현장이 있다고 한다. 태양신을 숭배하며 영생을 꿈꾸던 마야인들은 사람의 심장을 바쳐 여기서 제를 올린 것이다. 피라미드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 손벽을 치면 공명이 생겨 메아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몇몇 무리의 사람들이 가이드를 따라 힘차게 박수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1,000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전사의 궁전도 둘러 보았다. 출입금지 구역이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돌을 쌓아 기둥을 만들어 놓았는데 둥근 모양도 있었고 사각 기둥도 볼 수 있었다. 기둥에는 전사의 모습이나 동물을 조각해 놓았다. 재규어와 독수리 제단도 돌아보았다. 재규어가 사람 심장을 먹는 모습, 독수리가 심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재규어와 독수리가 숭배의 대상이었다니촘판틀리(Tzompantli)의 해골 조각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희생자들을 이렇게 기리는 제단까지 만들어 놓았으니 병주고 약주는 처사가 아닌가.

 

 

 

 

 

 

 

 

   

공놀이 경기장도 박수를 치면 공명이 생겼다. 이 경기장도 치첸이샤의 주요 볼거리 중의 하나다. 가로 70m, 세로 168m인 경기장에서 팔꿈치와 무릎, 엉덩이만 써서 공을 벽 가운데 높이 매달린 골대에 넣는 경기란다. 골대를 보면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회의가 들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 경기에서 이긴 팀을 제물로 심장을 도려내 신에게 바친다니 누가 경기를 이기려 하겠는가? 다음 세상에 왕족이나 귀족으로 태어난다고 믿어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단 말인데 나로선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경기장 벽에는 잘려진 머리에서 일곱 갈래의 피가 솟구쳐 뱀이 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해서 열심히 찾아 보았지만 형체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설록차 2013.07.26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0여년 전에 사람의 손으로 거대한 돌건축물을 짓자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들었을까요...무너지지 않고 아직 버티도 있는 것도 신기하고~~유물이 남아있어 후대인들이 마야족을 연구하고 기억하는거네요... 안경 쓰신 분으로 사고가 그만하기 다행입니다...^^

  2. 보리올 2013.07.26 1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구한 역사를 가진 건축물은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대에 이런 건축물을 짓는다면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들어갔을까 한숨이 나오지만 후대는 그런 희생을 모르고 경탄할 수 있으니까요. 새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된 대부분의 문화재 또한 옛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그랬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가 보유할 수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