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꼽아보니 며칠 전은 아들 생일이었고 오늘은 큰딸 생일이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생일 축하한다는 이야기도 해주지 못했다. 마음 속으로 미안하긴 했지만 그런 일로 위성 전화를 쓰자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밖으로 떠도는 일이 많다 보니 가족들 생일 챙기기가 쉽지 않다. 하기야 내 생일도 집을 떠나 텐트 안에서 보내는 경우도 많으니 역마살 낀 사람의 운명이라 생각할 수밖에.

       

오늘은 당말에서 고소 적응을 위해 하루 휴식을 하기로 했다. 지친 대원들 표정이 밝아졌다. 각자 알아서 자신의 몸 상태에 맞춰 시간을 보냈다. 야영장 돌 위에 앉아 참선하듯 해바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배낭을 조그맣게 꾸려 근처 봉우리를 다녀오는 사람도 있었다. 난 텐트에서 낮잠을 즐기다가 카메라를 들고 주변 촬영을 다녔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식당 텐트에 둘러 앉아 이런저런 화제로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다. 가끔 매점에도 놀러가 윈도우 쇼핑을 즐기기도 했다.

  

돌로 쌓아 만든 허름한 매점에서 파는 물건이라야 맥주와 럭시, 그리고 과자 몇 종이 전부였다. 우리야 고산병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 분위기니 포터들을 상대로 장사할 수밖에 없으리라. 여기까지 맥주를 운반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 매점에서 받는 맥주값은 우리에게도 너무 비싸단 느낌이었다. 맥주 한 병에 600루피면 카트만두의 다섯 배고, 마네반쟝이나 눔 가격의 네 배 수준이다.

 

한 대장이 식당 텐트에서 나오다가 갑자기 허리를 삐끗한 모양이다. 처음엔 별 것 아니겠지 했는데 점점 허리에 엄청난 통증이 오는 것 같았다. 한 손으로 허리를 부여 잡고 걷는 자세도 구부정하다. 리더인 한 대장이 이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대원들 모두 긴장한 표정이었다. 저녁 식사 후 김덕환 선배가 직접 마사지까지 해주고 약도 먹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밤새 토하고 난리가 났다. 근데 허리를 다쳤는데 왜 토하지? 설마 한 대장이 고소 증세를 보이는 것은 아니겠지? 한 대장은 옆에서 끙끙 앓는데 난 속으로 이런 의문만 들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날이 맑은 대신 바람이 무척 강했다. 이 바람을 뚫고 헬기가 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위성 전화로 카트만두에 연락해 헬기를 요청했다. 이 정도 날씨면 헬기 뜨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는 회신도 들어왔다. 한 대장과 김덕환 선배가 남아 원 선배를 보내고 뒤쫓아오기로 했다. 나머지 일행은 당말 베이스 캠프(해발 4,800m)로 출발했다. 완만한 오르막 길을 따라 오르는 중에 헬기가 계곡 사이를 통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랑레 카르카를 지나면서 고산 식물들의 키가 현저히 작아진 것을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무는 대부분 시야에서 사라졌고 땅에 바짝 웅크린 식생들만 조금 남았다. 히말라야의 수목한계선을 넘어선 것이다. 그에 비해 시야는 훨씬 넓게 트였다. 멀리 눈을 뒤집어쓴 설봉과 거기에 둥지를 튼 빙하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우리가 가는 방향 저 앞에 곧 마칼루가 나타난다고 해서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처음으로 마칼루의 진면목을 대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런 순간인가.

 

빙하 위 모레인 지역을 걸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고도 4,000m를 넘어서면 하루에 고도 700m를 올리는 것도 솔직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다리며 머리 모두 무거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운행 속도를 늦추고 심호흡을 자주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오른쪽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 작은 고개 위에 올라서자, 우리 눈 앞에 거대한 설산 하나가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시야를 꽉 채우며 다가오는 저 산이 정녕 마칼루란 말인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솟구치는 감동을 추스려야 했다.

 

그 다음엔 오르막도 거의 없었다. 한 시간은 걸어야겠지만 저 끝에 당말 베이스 캠프가 보였다. 당말 베이스 캠프는 마칼루 남벽 아래에 바룬 계곡이 갑자기 확 넓어지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칼루와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어 어떤 원정대가 여기를 베이스 캠프로 쓸까 궁금했다. 바룬 강은 이제 폭 2~3m의 작은 개천으로 변해 있었다.

 

이른 오후에 당말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아직도 서편에 햇살이 많이 남아 있어 그 동안 사용했던 텐트, 침낭을 꺼내 말렸다. 야영지도 크고 평평해서 텐트 간격을 널찍하게 쳤다. 우리 도착에 앞서 매점이 문을 열었다. 어제 만났던 다와 부자가 우리 소식을 듣고는 급히 올라온 것이다. 하지만 맥주 한 병에 600루피씩 달라니 누가 그 비싼 맥주를 사먹겠는가. 더구나 고산병 걱정에 다들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말이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늘 구간에 낙석 위험 지대가 있어 얼음이 녹기 전에 그곳을 통과하자고 새벽 4시에 기상해 출발을 서둘렀다. 이번에는 바룬(Barun) 강으로 내려간다. 어렵사리 올라온 고도를 또 다시 뚝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런 후 강을 옆에 끼고 완만한 오르막을 따르면 된다. 내려서는 도중에 뭄북(Mumbuk) 야영장에서 대원들과 함께 잠깐 동안이나마 쓰레기 치우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부터 설사면이 꽤 가파르다. 창피스럽게도 이 설사면에서 7번이나 넘어졌다. 엉덩방아야 바로 일어나면 되지만 한 번은 설사면 10 m를 미끄러져 내려와 여러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카메라를 눈 속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손을 높이 들고 넘어졌는데, 그 때문인지 오른발이 약간 뒤틀리면서 무릎에 순간적인 통증을 느꼈다. 좀 불편하긴 했지만 큰 부상이 아니라 천만다행이었다.

 

바룬 강으로 내려섰다. 이제부턴 물줄기를 거슬러 원류까지 줄곧 오르기만 하면 된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곡 오른쪽으론 소나무가 빼곡하고 왼쪽엔 랄리구라스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누구의 손길도 타지 않은 원시림으로 보였다. 푸른 이끼도 많았다. 산사태로 무너져내린 산사면 아래에는 너덜지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몇 개의 카르카를 지났다. 카르카란 초지가 있어 야크나 양을 방목해 키우는 곳을 일컫는데, 타시가온 사람들이 봄이면 이곳으로 들어와 소와 양을 키우고 가을이 되면 마을로 돌아간다.

      

강을 따라오르는 길은 완만하고 순했다. 하얀 설산을 바라보며 걷다가 강을 건너면 양리 카르카(Yangle Kharka)에 닿는다. 점심을 먹기 위해 배낭을 내려 놓고 쉬는 도중에 영국에서 온 한 식물학자를 만났다. 3개월간 체류하며 히말라야의 식물종을 연구하고 있단다. 혼자서 가이드와 포터 6명을 데리고 다닌다. 당말 베이스 캠프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부자도 만났다. 다와와 그의 아들 치링이었는데, 7살짜리 치링이 등짐을 지고도 제법 잘 쫓아간다.

 

조금 욕심을 내서 해발 4,100m의 자크 카르카(Jark Kharka)까지 하루에 끊었다. 고도를 높일수록 바룬 강의 폭이 점점 좁아진다. 펄쩍 뛰면 건널 수 있는 개천 수준으로 변했지만 흘러가는 강물이 내는 소리는 여전히 우렁찼다. 원용덕 선배의 상태가 아주 나빠졌다. 며칠 간의 고된 일정 때문인지 몸에 이상 징후를 보이며 너무 괴로워한다. 일단 내일 아침에 헬기를 불러 카트만두로 후송시키기로 합의를 보았다. 오늘 밤에 아무 일도 없어야 할텐데

 

고산병에 대한 한 대장과 김덕환 선배의 진단법은 좀 다르다. 고산 원정 경험이 많은 한 대장은  일단 밥숟가락을 들지 못하면 고산병으로 본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김덕환 선배는 이와는 달리 의학적으로 접근한다. 높은 곳에 오르면 평소 약했던 부위가 탈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고, 진짜 위험한 고소 증세는 오줌을 제대로 누지 못하는 증상이란다. 이게 발전하면 폐수종이 되기 때문에 고소에서 이뇨제 처방은 보편적이다. 난 아직 매끼 밥도 잘 먹고 오줌도 잘 누는 편이니 걱정은 좀 덜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밤새 싸락눈이 텐트를 때렸다. 춥고 축축한 텐트 안에서 날씨를 걱정하며 바깥 날씨를 살피니 하늘이 너무나 쾌청한 것이 아닌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 같았다. 오늘은 십튼 라를 넘어야 하는 심적 부담이 있었는데 날씨만 좋다면야 뭔들 못하겠는가. 눈길 산행에 대비해 스패츠를 착용했다. 히말라야가 처음인 사람에겐 오늘 구간이 처음으로 맞는 시련일 것이다. 조금 있으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고 아우성을 치겠지!

 

이 고도에서의 하룻밤이 녹녹치 않았던 모양이다. 고소 증세로 밤새 고생한 대원들이 김덕환 선배를 찾아 증상을 설명한다. 특히, 젊은 축에 속하는 윤석진 선배와 김백규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무도 내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네!” 약을 건네며 김덕환 선배가 농으로 한 마디 던진다. 어딘가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매번 빠지지 않고 팀닥터로 참가해 대원들 건강을 챙기는 양반인데, 고소 증세는 아닌 것 같고 어제 저녁에 도마 자매로부터 사서 마신 맥주가 문제인가? 고산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숙취 아닐까 싶었다.

 

룽다가 펄럭이는 궁가르 라까진 줄곧 오르막이었지만 따뜻한 햇살에 경치도 뛰어나 그리 힘든지를 몰랐다. 멀리 동쪽으로 칸첸중가 산군이 자태를 드러낸다. 하지만 십튼 라가 가까워 올수록 대원들 발길이 점점 느려졌다. 햇살이 나면 눈에 반사되는 복사열 때문에 덥다가 구름과 바람이 몰려오면 갑자기 한기가 돈다. "어이구! 징허구먼, 징혀!" 십튼 라를 오르며 어느 대원이 독백처럼 뱉은 말이다. 그래도 어차피 가야만 하는 길. 초반에 해발 4,170m의 십튼 라를 넘는 것이 우리에겐 하나의 부담이었지만, 서로 서로가 의지해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그곳을 무사히 넘었다.

 

사방이 눈으로 둘러싸인 툴루포카리 호숫가에서 수제비로 점심을 먹는 운치란 뭐라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그냥 좋다, 좋다는 소리밖에는 달리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런 조망을 가진 레스토랑이 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날씨는 돌연 싸락눈으로 바뀌었고 주변 봉우리들은 모두 구름 속으로 숨어 버렸다. 눈을 맞으며 도바테(Dobate)에 도착을 했다.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텐트를 쳤다. 바닥은 울툴불퉁해서 허리를 펴고 똑바로 눕기가 힘들다. 그래도 텐트에서 휴식을 취하며 대부분 컨디션을 회복했다. 해발 3,750m로 내려오니 숨쉬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 오늘은 출발부터 비를 맞으며 운행을 해야 할 판. 근데 어째 밖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포터들 일부가 웃돈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것이다. 이 친구들 한 대장을 잘못 봤지. 가만히 앉아서 일방적으로 당할 한 대장이 아니었다. 그 친구들을 정리하고 마을에서 포터를 새로 고용해 짐을 배분했다. 그 때문에 출발이 한 시간이나 늦어졌다. 도마 자매도 우리에게 팔 물건을 한 짐 챙겨들고 우리가 묵을 콩마(Khongma)로 출발을 했다. 콩마에도 매점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타시가온을 출발해 한 시간쯤 걸었을까, 종아리 부근이 간지러워 바지를 들쳤더니 거머리 한 마리가 내 피를 포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들 이야기만 무용담처럼 듣다가 내가 직접 당한 것이다. 몸이 통통해진 녀석을 뜯어내 풀숲으로 버렸다. 이 구간에서 거머리에 물린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양반은 거머리가 허리쪽으로 들어가 텐트 안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헌혈했기에 상처도 나보다 깊었다. 헌데 역설적이게도 거머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청정지역이라니 거머리에게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경사가 급하진 않았지만 끊임없는 오르막 일색이라 꽤나 힘이 들었다. 다라 카르카 부근에서 왼쪽 귀가 뻥 뚫리는 경험을 했다. 고도계를 보니 2,484m. 고산병에 주의하란 신호인가? 부쩍 랄리구라스가 많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네팔 국화(國花)로 유명한 꽃이다. 랄리구라스는 빨간색 한 가지인줄 알았는데, 분홍색도 있고 흰색도 있었다. 해발 3,000m를 넘기면서 눈과 운무, 야생화가 어우러진 이국적 풍경도 만났다. 고소 적응을 걱정해야 하는 높이인만큼 50보 걷고 숨고르기를 하며 천천히 걸었다. 일행들은 앞서 잘도 걷는다.

 

오늘도 징한 하루였다. 고도를 1,400m나 올리는 것도 그랬고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걷는 것도 그랬다. 마지막 400~500m를 올리는 구간은 가파른 설사면을 기어 올라야 했다. 눈에 신발이 빠지며 양말은 젖고 있었다. 가끔 비구름이 걷히며 환상적인 장면을 살짝 보여주며 우리의 노고를 위로했다. 드디어 콩마에 도착했다. 콩마의 해발 고도는 3,530m라 보온에 신경을 써야 했다. 우모복도 입고 고소모까지 챙겨 썼다. 위에 텐트를 쳤다. 벌써부터 고소 증세로 고통을 호소하는 대원들이 나타났다. 음식을 먹지 못하고 토하기까지 한다.

 

콩마엔 허름한 헛간같은 건물이 있었고 도마 자매가 그 안에서 물건을 진열해 놓고 우리를 맞았다. 무거운 병맥주까지 들고 왔다. 내일도 우리 야영지까지 간단다. 한 마디로 대목을 맞은 것이다. 저녁을 먹고 요리사인 템바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친구는 카트만두에선 주먹으로 유명한데, 한식당 주방에서 요리를 배워 이렇게 원정대를 따라 다니게 되었단다. , 그래서 현지인들이 이 친구에게 꼼짝 못한 모양이다. 템바 왈, 마칼루 코스가 마나슬루보다 세 배는 힘들다고 했다. 언제 마칼루를 다녀왔냐고 물었더니 이번이 초행이란다. ?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