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칼루'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3.03.04 마칼루 하이 베이스 캠프 <3>
  2. 2013.03.03 마칼루 하이 베이스 캠프 <2>
  3. 2013.03.02 마칼루 하이 베이스 캠프 <1>

 

밤새 개가 짖는 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예정보다 일찍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왔다. 비는 그쳤지만 구름이 가득한 우중충한 날씨를 보인다. 덕분에 날씨가 선선해졌다. 아룬(Arun) 강을 건너기 위해 줄곧 내리막 길을 걸어 850m 고도를 낮추었다. 힘들게 올라온 높이를 이렇게 허무하게 반납하는 일처럼 아쉬운 것이 없다. 눔에서 계곡 건너 빤히 보이던 세두아(Sedua)까진 강을 건넌 후, 800m 고도를 올려야 하고 오늘의 목적지, 타시가온(Tashigaon)까진 거기서 다시 고도 610m를 올려야 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사람을 녹초로 만드는 지옥 코스가 계속되었다.

 

세두아에서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고 입산 신고를 했다. 여기서 마칼루-바룬 국립공원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과거엔 반군 세력권 안이라 관리 사무실을 열 수가 없었다. 반군이 제도권으로 들어가면서 사무실을 다시 열게 된 것이다. 그래도 어느 건물엔 낫 모양이 그려진 빨간 깃발이 나부끼고 있어 섬찟한 마음이 들었다. 마오이스트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오지 지역은 아직도 마오이스트의 영향력이 강하단 의미 아니겠는가.

  

오후 2시가 넘어 섹시난다에서 늦은 점심을 들었다. 너무 지치고 허기진 일행들에게 비빔냉면이 건네졌다. 눈이 동그레진 대원들, 허겁지겁 그릇에 얼굴을 파묻었다. 동네 꼬마들이 모두 몰려와 우리 식사 장면을 보면서 저희들끼리 재잘대며 웃는다. 우리가 졸지에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이다. 식사가 끝나자 절묘하게 시간을 맞춰 빗방울이 떨어진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후엔 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린다. 다시 빗길 산행 채비를 갖췄다.

  

또 긴 오르막을 걸어야 했다. 길 옆으로 논과 밭이 펼쳐진다. 보리밭이 아름답게 펼쳐진 타시가온에 도착했다. 해발 2,110m. 이 마을 이후로는 사람사는 동네가 없단다. 양이나 염소를 치는 목동들이나 가끔 만날 있을 것이다. 한 대장이 쿡 템바에게 염소를 한 마리 잡으라 지시한다. '먹은 만큼 간다' 한 대장의 평소 지론 외에도 이 마을을 떠나면 양이나 염소 사기도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긴 닭이 의외로 비쌌다. 염소 한 마리와 닭 다섯 마리 가격이 엇비슷하다. 닭 다섯 마리는 우리 대원들만 먹을 양이지만 염소 한 마리를 잡으면 포터들까지 모두가 포식할 수가 있다.

 

고기 냄새를 좇아 마오이스트를 자칭하는 앳된 아가씨 두 명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사다인 옹추를 통해 마을 발전 기금을 기부해 달라 한다. 요청인지, 협박인지가 좀 헛갈렸다. 마오이스트가 제도권으로 들어온 이 마당에 무슨 돈 요구냐며 한 대장이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한밤중에 총을 가지고 나타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우린 옆에서 마음을 졸일 수밖에. 하지만 밤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텐트를 친 곳 바로 옆에 있던 가게가 졸지에 주막으로 변해 버렸다. 굳게 문이 닫혔던 가게가 우리 출현에 급작스레 문이 열리더니 이제는 주모가 호객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주모는 이 마을에 사는 도마 자매. 언니인 도마는 30살이고 동생은 23살이란다. 베이스 캠프 가는 구간에 매점을 더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위에 있는 매점으로 올라갈 작정인 모양이다. 우리를 봉으로 본 것 같은데, 점점 비싸지는 맥주를 누가 그리 많이 팔아줄런지 모르겠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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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알리는 수탉이 너무 일찍 울었다. 그 뒤를 이어 강아지 짖는 소리, 나무에서 짹짹거리는 새소리에 더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반. 옆 텐트에서도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모두 첫 야영에 가슴이 설레 일찍 일어난 모양이다. 나와 텐트를 같이 쓰는 한 대장도 일어나 헤드랜턴을 켜더니 책을 꺼내 든다.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조언을 담은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대장은 다른 산사람에 비해 상당히 가정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더위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도대체 섭씨 30도가 넘는 히말라야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어제 입었던 긴팔 옷을 벗고 반팔 티셔츠를 걸쳤음에도 흘러 내리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다. 햇볕에 노출된 팔은 금방 빨갛게 익어 버렸고. 고산병보다 일사병에 심신이 지쳐간다. 다리는 왜 이리 무거운지히말라야에 오면 통상 사계절을 다 겪는 느낌이다. 이렇게 덥다가 고도를 높이면 겨울같은 날씨를 만나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짐이 많아진다.

 

산허리를 잘라 도로를 놓는 공사 현장을 지나게 되었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바위 절단면이 의외로 매끈했다. 사람 손으로는 이렇게 잘 자를 수는 없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남자들은 쭈그리고 앉아 구경만 하고 무거운 해머를 들고 바위를 깍는 사람은 대개 여자들이었다. 하루 일당으로 얼마나 받는지 물어 보았다. 150루피를 받는다 한다. 이렇게 일하고 하루 2,000원 좀 넘는 금액을 받는다? (Num)까지 도로를 놓는 이 공사는 몇 년 전에 시작을 했지만 어느 누구도 언제 완공될지 모른다. 오로지 사람 힘에 의존해 망치로 돌을 깨고 있으니 년은 걸리겠지.

  

치치라(Chichila)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치치라를 출발하자 빗방울이 돋기 시작했다. 배낭 커버를 씌우고 우산을 꺼내 들었다. 근데 이게 여우비였다. 금방 그치더니 다시 햇빛이 쨍 내리쬔다. 해발 2,100m에 있는 데우랄리를 지나 산길은 내리막을 시작하더니 무레, 눔으로 계속 고도를 낮춘다. 눔의 해발 고도는 1,560m. 눔에 점점 가까워지자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시 우산을 꺼내 들었다.

    

11시간 걸려 도착한 눔은 능선 위에 묘하게 자리잡은 마을이었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장시간 운행에 다들 지친 표정이었다. 만보계를 가지고 온 사람이 오늘 36,000보를 걸었고, 이는 24km에 해당되는 거리라 한다. 빗줄기 속에서 텐트를 쳤다. 포터가 메고 오는 카고백을 기다렸다. 그 안에 있는 침낭이 젖으면 큰일인데 다행히 비닐로 카고백을 둘러싸 비를 맞지는 않았다. 저녁에 닭도리탕이 나왔는데 양이 무척 적었다. 마을에서 닭 두 마리를 간신히 구했단다. 밥은 남았는데 닭도리탕은 금방 없어지고 말았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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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는 마칼루(Makalu, 해발 8,463m)하이 베이스 캠프를 청소하기 위해 한왕용 대장의 <클린 마운틴 캠페인> 다시 참여를 했다. 마칼루에 이르는 길은 에베레스트나 로체에서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다르다. 다른 8,000m급 고봉에 비해 베이스 캠프의 고도도 상당히 높다. 그럼에도 이 캠페인에 참가한 인원 14명의 평균 연령은 엄청 높았다. 한 대장으로선 좀 걱정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평생을 산과 더불어 살아 오신 분들이니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선 현명하게 잘 판단하리라 믿었다.

 

마칼루는 에베레스트 동쪽으로 불과 27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런데도 에베레스트와 로체가 있는 쿰부 지역을 지나지 않는다. 가장 보편적인 접근 방법은 카트만두에서 툼링타르(Tumlingtar)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 멀리 동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것이다.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가는 길처럼 로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길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카트만두를 떠나면서부터 매일 텐트를 쳐야 했고, 속에서 빗방울과 싸락눈을 피해야 했다. 그래도 그것은 낭만이 있어 좋았다.

 

마칼루에 이르는 길은 적잖은 다리품을 요구한다. 어렵사리 올라온 고도를 뚝 떨어뜨려 두 개나 되는 강을 건너야 하고, 중간에 해발 4,170m의 십튼 라(Shipton La)를 넘어야 한다. 초반부터 고산병 증세로 힘이 드는데,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바룬(Barun) 강을 따라 베이스 캠프로 다가갈수록 양옆 벼랑에서 떨어져 내리는 낙석도 겁났지만, 지겹게 걸어 올라야 하는 빙하 위 너덜지대는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지금 생각을 해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그런 곳이었다.

 

카트만두에서 하루를 묵은 안나푸르나 호텔을 떠나 공항으로 갔다. 오전 11시발 툼링타르행15인승 고르카(Gorkha) 항공기를 타기 위해서다. 출발시각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안내가 없다가 12시 반이 되어서야 비행기가 늦어진다고 이야길 한다. 누가 매점에서 맥주를 사다가 나누어 준다. 얼마에 샀냐고 물었더니 캔당 150루피. 하지만 그 뒤에 간 한 대장은 100루피에 샀다. 그 다음 사람은 다시 150루피. 마지막 사람은 135루피. 도대체 맥주 가격이 왜 널 뛰듯 하는지 궁금했지만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다. ‘엿장수 맘대로가 정답 아닌가 싶었다. 산에 들기도 전에 취기로 머리가 띵해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오후 1시가 넘어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 청사라 보기엔 너무 허술한 툼링타르 공항에 비행기가 내렸다. 비포장 활주로 빼고는 잡초만 무성한 풀밭이었다. 온통 연기에 그을은 식당에서 감자를 삶아 점심을 대신했다. 우리의 출현에 신기해하는 현지인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베이스 캠프를 향해 트레킹을 시작한다. 마네반장(Mane Bhanjyang)까지는 지프를 이용했다. 4월 하순의 뜨거운 햇살과 무더위에 땀은 비 오듯 하고 고물차에서 풍기는 역한 휘발유 냄새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빨리 시원한 산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지나치는 마을마다 "나마스테"하면서 두 손을 모으는 아이들 덕분에 그나마 더위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마네반장의 축구장 한 켠에 텐트 7동과 식당 텐트 한 동을 쳤다. 축구하는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일부 빼앗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네들도 공을 차면서 우리를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쳐다 보곤 한다.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보았다. 길 양쪽에 상가가 자리잡은 꽤 큰 마을이었다. 무슨 물건을 파는지 가게를 둘러보다가 야영지에서 신을 슬리퍼를 하나 샀다. 이 사람들은 이런 슬리퍼를 신고 베이스 캠프도 간다. 우리는 튼튼한 등산화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이게 삶과 레저의 차이인가?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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