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15.11.17 산티아고 순례길 1일차(생장 피드포르~론세스바예스) (8)
  2. 2015.07.09 제주 올레길 1코스(시흥리~광치기해변) (2)

 

새벽 6시가 되었는데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리에 누워 마냥 기다리다가 가장 먼저 일어났다. 산티아고 순례 첫째 날인데 시작부터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아침은 알베르게에서 제공했다. 바게트에 버터와 잼이 전부였다. 그 옆에선 헬레나(Helena)란 여자가 건강에 좋다는 유기농 주스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는 사람이 돈 몇 푼을 위해 새벽부터 재료를 들고 온 것은 가상한데 그래도 주스 한 잔에 3유로면 너무 비싸다. 그녀 프로필을 읽다가 캐나다에서도 활동한 적이 있다는 내용을 보곤 바로 주스 한 잔을 주문했다.

 

7시 조금 넘어 알베르게를 나왔다. 어제 루르드(Lourdes)에서 만나 생장 피드포르까지 함께온 김 신부님과 함께 걷는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신부님은 2012년에도 이 순례길을 걸었다고 했다. 생장을 벗어나 가파른 오르막 길을 따라 걸었다. 이 길이 나폴레옹 루트라 했다. 숨도 가프고 땀도 흘렀다. 날씨는 비가 쏟아질 듯 잔뜩 구름을 머금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살포시 여명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상황이다. 생장에서 8km 지점에 있는 오리손(Orisson)에 도착해 알베르게에서 와인 한 잔을 했다. 처음엔 차를 한잔 마시자 했으나 차와 와인이 모두 2유로라 해서 아무 망설임없이 와인으로 정했다. 승용차를 타고와 여기서 순례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론세스바예스로 넘어가는 나폴레옹 루트로 들어선 지가 한참 된 것 같은데 뒤늦게 나폴레옹 루트가 열려 있다는 표식이 나타났다. 눈이 쌓였거나 악천후인 경우에 여기까지 왔다가 되돌아서는 황당한 상황은 없는지 내심 궁금해졌다. 구름 사이로 사람들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어느 정도 올라왔는지 오르막 경사가 좀 순해졌다. 날씨만 맑다면 피레네 산맥의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인데, 그 아름답다는 풍경이 구름에 모두 가려 좀 아쉬울 뿐이었다. 가끔 구름이 걷히면 푸른 초지에 소나 말,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산등성이를 넘자 푸른 초지와 가축들이 사라지고 너도밤나무 숲이 길 양쪽으로 도열하듯 서있었다. 구름에 살짝 가린 숲이 오히려 아름다웠고 누렇게 물든 이파리에서 가을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을 지났다. 거창한 국경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국경이라는 표식 정도는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를 반긴 것은 나바라(Navarra) 자치주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전부였다. 산티아고에서 생장 피드포르를 향해 역으로 걷고 있던 포르투갈 청년은 그래도 프랑스 땅으로 들어선다고 감격에 겨워했다. 우리는 순례 첫날인데 그 친구는 종점에 섰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래도 국경은 너무 싱거웠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길가에 세워진 조그만 쉘터에서 빵과 과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오늘 구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라는 고개에서도 세찬 바람을 맞아야 했다. 고개를 넘으면 줄곧 내리막이다. 배낭을 내려 물을 한 모금 하고 있는데 내 행색이 어땠는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온 사람이 있었다. 미시간 주에서 변호사를 한다는 중국계 미국인 마샬(Marshall)이었다. 함께 내려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중국계라 하지만 자기는 중국말도 못하고 어릴 때 한 번 빼곤 중국에 가본 적도 없단다. 더 웨이(The Way)란 영화를 보고 이 길을 걷는 꿈을 키워왔는데, 잘 걷지도 못하는 부인이 따라왔다고 했다.

 

드디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웅장한 모습의 수도원 건물이 알베르게로 변해 있었다. 어제 생장의 알베르게에서 만나 오늘 구간을 함께 걸은 자크와 필립하고 여기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들은 프랑스 르푸이(Le Puy)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한 달을 걸어왔고 여기서 집으로 돌아갔다가 스페인 구간은 내년에 걸을 예정이란다. 언제라도 쉽게 올 수 있는 이들이 부러웠다. 현대적 시설로 개조한 알베르게에 들었다. 한국인이 10여 명 보였다. 18살 고등학교 3년생도 둘이나 있었다. 김 신부님과 밖에서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고 오후 8시에 시작하는 순례자 미사에 참석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지루하긴 했지만 우리의 앞길을 축복하는 미사라니 쉽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순례자들을 상대로 헬레나가 판매하던 유기농 건강 주스. 인쇄된 프로필을 나누어 주며 자기 홍보도 열심히 한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였지만 구름 사이로 여명이 조금 보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와 노란색 화살표.

지역마다 이정표는 형태를 달리 했지만 노란 화살표는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시야가 훤히 트이진 않았지만 흐린 날씨에도 목가적인 풍경은 감상할 수 있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길은 두 개가 있다. 일반적으론 나폴레옹 루트를 걷지만

눈이 쌓이거나 악천후에는 이 길을 통제하고 발카를로스(Valcarlos) 루트로 우회를 하게 한다.

 

 

두 시간을 걸어 도착한 오리손 알베르게. 차 한 잔 하러 들어갔다가 와인을 마셨다.

하루에 여기까지 걸어와 묵는 순례자들도 있었다.

 

 

 

피레네 산기슭은 방목을 하는 소나 양이 많았다.

트럭에 양을 실으려는 목동과 한사코 차에 타기를 거부하는 양떼도 만났고,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양떼도 보았다.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왔다는 줄리(Julie)와 사이먼(Simon) 부부.

캐나다, 그것도 같은 주에서 왔다는 것만으로도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자 나타난 너도밤나무 숲. 구름과 어우러진 모습이 신비스러웠다.

 

너무도 싱겁게 지난 프랑스-스페인 국경. 국경을 알리는 어떤 표식도 없었다.

 

 

 

바람도 점점 드세지고 이슬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옛 수도원 건물을 현대식 시설을 갖춘 알베르게로 개조를 했다. 하루 183명을 수용할 수 있는 꽤 큰 시설이었다.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은 식당 카사 사비나. 오후 7시가 되어야 순례자 메뉴를 내놓는다.

수프와 메인 메뉴인 헤이크(Hake) 생선요리, 요구르트 해서 3코스에 10유로를 받았다.

와인은 테이블당 한 병을 내놓는데 우리는 둘이라 양은 충분했다. 음식은 대체로 맛이 좋았다.

 

저녁을 마치고 참석한 순례자 미사.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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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mjuliana 2015.11.28 2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두 곧 가려고 준비중입니다
    좋은글 잘 읽어보겠습니당

  2. Justin 2015.12.01 0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디어 아버지의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보게 되네요! 저도 나중에 꼭 걷게 될 순례길을 아버지 블로그 통해서 예습하겠습니다.
    우리 형숙이와 함께요 ^^

    • 보리올 2015.12.01 0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제 아주 온라인에 공개를 하는구나. 우리 형숙이라... 잘 해주고 즐거운 시간 많이 가져라. 순례길도 미리 잘 봐두고. 12월 들어섰으니 한 해 마무리 잘 하길 바란다.

  3. 제시카 2015.12.04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캬~ 여행의 시작은 역시 알코올이죠 ㅋ.ㅋ 저도 유럽에서 물대신 맥주를 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숲속의 사진은 해리포터에서 나온듯한.. 사진같아요 *_* 스페인으로가는 국경을 지나도 스페인인거같지 않겟어요 ㅎㅎㅎㅎ

    • 보리올 2015.12.04 15: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집에 술꾼 한 명 나왔구만. 유럽에선 물 대신 맥주를 마셨다고? 난 순례자 메뉴를 먹을 때나 겨우 와인 한잔 했는데 말이야.

  4. 해인 2015.12.27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인 한 잔에 2유로라니, 1일1와인 하셨었겠네요. 제가 상상했던 알베르게의 시설은 아주 저렴하다기에 조금은 어두침침하고 낡고 시설이 많이 빈약할 줄 알았는데, 세련되고 잘 되있는데요? 상상했던거랑은 아주 달라서 흥미로와요. 세계 각국에서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모여든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하며 걸으시니, 참 좋으셨겠어요.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오신 분들은 더욱더 각별하셨겠다! 이래서 여행이 좋아요 (엄지 척!)

    • 보리올 2015.12.27 1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와, 정말 오랜만에 오셨네. 저 와인은 한잔에 2유로를 받아 엄청 비쌌던 거야. 스페인은 한 병에 2유로 하거든. 그야말로 와인 천국이지. 알베르게는 시설이 천차만별이란다. 이 알베르게는 새로 설비를 갖춰 좋은 편이었지. 순례길에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귄단다. 너도 직접 걸으며 경험을 해보렴.

 

함께 한라산을 올랐던 친구들과 헤어져 제주도에 홀로 남았다. 모처럼 제주까지 온 김에 제주 올레길을 한 구간만이라도 걸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올레길이 처음 열렸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2007년 캐나다에서였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장거리 트레일이 생겼다는 소식이 반가웠고 어떻게 연결해서 무엇을 보여주려 했을까 내심 궁금증이 일기도 했었다. 서귀포에 들러 오희준 추모공원을 잠시 방문한 후 표선에 사는 후배를 만났다. 이 친구는 제주산악구조대를 이끌고 있는데 2014년에는 대한민국 산악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주 동일주 노선인 701번 버스를 타고 성산포로 이동해 하룻밤 묵고는 그 다음 날 일출을 보러 성산일출봉에 올랐다. 일출은 기대처럼 멋진 장면을 연출하진 않았다. 구름 사이로 잠시 모습을 드러낸 햇살에 만족해야만 했다.

 

내가 오늘 걷는 구간은 올레길 1코스다. 가장 먼저 열린 길이라 1코스란 명예를 얻었다. 비록 하루 걷는 일정이지만 가능하면 맨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올레길은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착상을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한 방향으로 걷지만, 제주 올레길은 해안선을 따라 오름과 마을을 지나면서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다. 올레란 말도 잘 선택한 것 같았다. 거리에서 집으로 연결된 긴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 이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트레일 이름이 되었다. 동일주 버스에서 내려 시흥초등학교 옆으로 난 소로 입구에 섰다. 1코스를 알리는 표지판과 느릿느릿 걷는 조랑말을 표현한 간세가 이방인을 맞는다. 오늘 15km 거리에 5~6시간을 걸어야 한다고 표지판은 친절히 알려주고 있었다.

 

소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밭과 밭 사이를 나눈 돌담길을 걷는다. 밭에 숨어있는 무덤도 돌로 경계를 쌓았다. 현무암이 지천인 제주도를 자랑하는 듯 했다. 금세 제주올레 안내소에 닿았다. 안에 잠시 들렀더니 코스 설명이나 안내보다는 제주올레 패스포트와 기념품 팔기에 더 열심인 것 같았다. 바로 말미오름으로 오르는 구간이 나타났다. 표지판에는 두산봉이라 소개하고 있었다. 이 오름에 서니 성산일출봉이 한 눈에 보이고 바다 건너편으론 우도가 빤히 보였다. 하늘에서 바다로 쏟아지는 빛줄기가 장관이었다. 성산일출봉과 그 앞에 자리잡은 마을, 초록색 논밭이 한 폭의 그림을 그려놓은 것 같았다. 제주 오름에 올라야 볼 수 있는 특유의 풍경이 이런 것 아닐까 싶었다.

 

알오름을 오르는 구간에서 모녀로 보이는 두 여자를 만났다. 두 모녀의 올레길 여행이 정겹고 아름다워 보였다. 카메라 하나로 서로의 사진만 찍어주기에 둘을 함께 찍어줄까 물었다가 단칼에 퇴짜를 맞았다. 혼자 온 내가 의심스러웠는지 경계하는 눈치가 심해 먼저 하산을 서둘렀다. 알오름에서 내려와 마을을 만났다. 오름 두 개가 1코스 오르막의 전부였고 나머진 마을을 가로지르고 해변을 따라 걸었다. 1132번 도로를 건너고 예쁜 색깔로 벽을 칠한 종달리를 지났다. 한자어 이름일텐데 종달새가 연상되어 느낌이 좋았다. ‘소심한 책방에 들러 커피 한 잔 하면서 책을 뒤적이다가 딸에게 선물할 책도 한 권 샀다. 해안도로를 걸을 때는 줄에 매달아 오징어를 말리는 장면도 목격했다. 바닷가 마을의 소소한 일상이 길손의 눈을 즐겁게 했다.

 

고깃배들이 즐비한 성산항을 둘러보고는 오조해녀의 집에서 전복죽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죽 한 그릇에 11,000원을 받아 제주도 물가에 좀 놀랬다. 성산일출봉이 점점 가까워졌다. 성산일출봉은 1코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랜드마크였다. 해수면에서 불과 179m 높이라는데도 하늘 높이 솟은 느낌이 들었다. 성산일출봉은 빼어난 경관과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이어 세계지질공원으로도 등재가 되었다 한다. 마침내 광치기해변에 도착함으로써 1코스 구간을 마무리했다. 사진 찍으며 유유자적 걷다 보니 6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문득 오전에 들렀던 제주올레 안내소 유리창에 있던 글귀가 떠올랐다. ‘놀멍, 쉬멍, 걸으멍.’혼자서 천천히 걷는 내 모습에 딱 어울리는 제주도식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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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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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7.09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07.09 17: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런 제안 몇 번 받았는데 제 블로그가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이 아닙니다. 아마 광고를 해도 수익은 별로 없고 이미지만 버릴 것 같아 주저하는 마음이 많습니다.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연락을 드리지요. 어쨌든 제안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