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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9.03 [베트남] 호이안 ① (2)
  2. 2015.07.06 한라산



카멜 버스로 후에를 출발해 다낭(Da Nang)을 경유, 호이안(Hoian)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 짐을 풀고 바로 호이안 구경에 나섰다. 발길 닿는 대로 그냥 걸었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이안은 베트남 중부에 있는 도시다. 요즘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는 다낭에서 40분 거리에 있어 그리 멀지 않다. 도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음에도 한때는 동남아시아의 중계무역 거점으로 활약을 했다. 약간은 퇴락해 보이는 건물들이 세월을 머금은 채 빼곡하게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 많은 전쟁을 치룬 나라에서 여기는 피해를 입지 않은 듯했다.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덕분에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이리라. 골목을 몇 군데 돌고 났더니 허기가 져서 길가 식당에서 바게트에 각종 재료를 넣은 반미(Banh Mi)로 점심을 때웠다. 입에도 맞았지만 간단하게 먹기도 좋았다.

 

호이안은 투본(Thu Bon) 강가에 위치한 작고 조용한 마을이지만, 훼손되지 않은 건축물이 남아 있어 베트남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변해 있었다. 일본인이 지었다는 내원교(來遠橋) 앞에 섰다. 일본교라고도 불린다. 임진왜란 다음 해인 1593년에 여기에 터를 잡은 일본 상인들이 지었다는 한국 관광객의 가이드 설명이 들려왔다. 당시엔 일본인 마을이 있을 정도로 일본과 교류가 많았다고 한다. 가끔 중국 화교들이 세웠다는 사원이나 회관, 화교들이 살았던 고택을 볼 수 있었다. 1786년 중국 광동 출신 상인들이 지었다는 광조회관(廣肇會館)의 패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삼국지의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라고 삼국지 주요 인물을 그린 그림이 많았다. 일본, 중국 풍의 건물이 많다는 것은 호이안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던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버스가 호이안에 도착했다. 버스 터미널이나 정류장도 아닌 길가에 차를 세우곤 사람들을 내렸다.


마을 진입로에 호이안을 소개하는 간판부터 나타났다.



일본 상인들이 16세기 말에 지었다는 내원교. 돌다리에 지붕이 있고 한쪽에 사찰이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광조회관은 광동 출신 화교들이 재물의 신, 관우를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었다.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 놓은 사찰, 법보사(法寶寺; Chau Phap Bao)


호이안 거리에도 오토바이가 많았지만 자전거도 가끔 눈에 띄었다.



미술품이나 공예품을 파는 가게



유행에 민감한 신사복이나 숙녀복을 취급하는 상점도 있었다.



월남쌈의 재료인 라이스페이퍼, 즉 반짱을 만드는 공장도 둘러 보았다.



반미를 팔던 길거리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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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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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10.10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곳이라도 전쟁에 의한 피해를 받지 않고 보존되어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저희 나라도 그 많은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면 유적, 유물이 참 많이 남았을텐데 아쉽기만 하네요~

    • 보리올 2018.10.14 07: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타깝지만 전쟁통에 사라지는 유적들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 전쟁이 없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으니...

 

제주도 한라산을 오르기로 한 고등학교 동기들 8명이 제주공항에 모였다. 서로 출발지가 다르고 설사 출발지가 같더라도 항공사나 출발시각이 달라 아예 제주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난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캐나다에서 좀 일찍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아공에 사는 친구 한 명이 사전 연락도 없이 제주공항에 나타나 반가움이 더 했다. 친구들은 모처럼 한라산을 오른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는 모양이었다. 한라산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영산이면서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해발 1,950m의 고도를 자랑하는 산이니 그럴 만도 했다. 바닷가 횟집에서 소주 한잔으로 오랜만의 만남을 자축하곤 제주 시내에 있는 모텔을 잡아 하룻밤을 보냈다.

 

내가 한라산을 처음 찾은 것은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내 눈으로 백록담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삼국지에 나오는 촉한의 유비가 제갈공명의 초옥을 세 번이나 찾아가 군사로 맞아들인 일을 일컫는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이런 경우에 쓰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백록담은 삼고초려와 비슷했다. 백록담을 보기 위해 한라산을 오른 적이 세 번이었는데 이번에서야 그 진면목을 보았기 때문이다. 첫 산행에선 온통 희뿌연 가스만 보아야 했고, 두 번째는 눈보라 치는 악천후로 정상 출입을 통제해 그 아래 대피소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산행은 성판악에서 시작해 관음사로 내려섰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지만 해가 뜬 이후에야 성판악에 도착했다. 아침 7시 산행 시작이 좀 늦어진 것이다. 성판악 매표소 앞에는 산행을 준비하는 엄청난 인파로 붐볐다. 주차장도 빈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는 꾸준한 오르막이 계속된다. 급경사는 없지만 등반고도도, 거리도 만만치 않아 다리가 꽤나 뻐근했다. 정상까지 오르막 등산로의 길이는 9.6km.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적혀 있었다. 출발점인 성판악이 해발 750m니까 정상까지의 등반고도는 무려 1,200m에 이른다. 우리 나라에서 등반고도 1,000m가 넘는 곳이 흔치 않은데 한라산이 그 중의 하나였다.

 

진달래 대피소에서 사발면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웠다. 여기를 정오 이전에 통과하지 못하면 정상으로 오르는 것을 통제한다고 한다. 다행히 날씨도 화창했고 시간적인 여유도 많았다. 아이젠을 하고 쉬엄쉬엄 눈길을 오르다 보니 어느덧 백록담에 닿았다. 정상에 있는 이 화구호는 둘레 길이가 3km에 이르고 폭이 500m나 된다. 처음 접한 백록담 진면목에 가슴이 벅찼다. 구석구석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좋았다. 거기에 제주 10경 가운데 하나라는 백록담에 쌓인 눈, 즉 녹담만설(鹿潭晩雪)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한라산이 내게 준 보너스였다. 기서 관음사 안내소까진 또 8.7km의 하산길이 우릴 기다렸다. 이 하산 코스가 의외로 경사가 심했다. 눈이 녹으면서 길이 미끄럽기도 했다. 산행을 모두 끝냈더니 노곤함이 밀려온다. 다들 해수온천탕으로 몰려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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