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카로 월브랜 크릭을 건넜더니 거기서부턴 길이 많이 순해졌다. 남쪽 끝단에 있는 어려운 구간은 이제 끝이 난 모양이다. 숲보다는 해안을 따라 걷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눈으로 들어오는 풍경 또한 훨씬 많아졌다. 월브랜 크릭을 지나 해변으로 내려섰더니 그리 깊지 않은 해식 동굴이 하나 나왔다. 한 시간 정도 쭉 해안을 걸었을까.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돋기 시작한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배낭이나 텐트가 젖을까 싶어 우비를 꺼내 입었다. 밴쿠버 포인트(Vancouver Point)를 지났다.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지나쳤다. 보니야 크릭(Bonilla Creek)엔 조그만 폭포가 있었다. 여기서 캠핑을 하면 오랜 만에 샤워도 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다. 배낭을 내리고 이른 점심을 먹었다. 점심이라고 해야 피넛 버터를 잔뜩 바른 토르티야 두 개가 전부인데, 이걸 먹고 한두 시간 지나면 금방 허기를 느낀다.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먹을 것도 덩달아 줄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거센 조류와 해풍을 맞으며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몇 그루가 눈에 띄었다. 하필이면 이런 곳에 뿌리를 내리는 선택을 했을까 싶었지만, 이 나무도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따라 여기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반대편에서 큰 규모의 그룹이 내려왔다. 일행 중에 꽤 많은 청소년들이 섞여 있는 것을 봐선 어느 단체에서 극기 훈련을 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등대가 있는 카마나 포인트(Carmanah Point)가 눈에 들어왔다. 카마나 크릭(Carmanah Creek)은 케이블 카로 건넜다. 곧 이어 인디언 보호구 안에 있다는 쉐이 모니크(Chez Monique) 레스토랑이 나타났다. 이 트레일을 걸은 사람에게서 귀에 따갑게 들었던 이 레스토랑은 천막과 비닐로 지은 가건물이었다. 허접한 외관을 지녔지만 이 식당에선 원주민 노부부가 햄버거와 맥주를 판다. 며칠간 문명 세계의 음식과 단절되었던 하이커들에겐 얼마나 반가운 곳인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이곳을 버거 천국이라 부르기도 했다. 헌데 지난 며칠간 폭풍이 몰아쳐 식재료를 구하러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이야긴 햄버거도 없고 맥주도 떨어졌다는 의미였다. 콜라로 대신 목을 축여야 했다.

 

등대가 있는 카마나 포인트엔 해안으로 길이 없어 해변 끝에서 사다리를 찾아 숲으로 올라왔다. 44km 지점 표식이 있는 곳에서 잠시 등대로 들어섰다. 빨간 지붕을 한 하얀 등대는 1891년에 세워진 것이라니 그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 계단을 타고 다시 해변으로 내려섰다. 몽돌이 많던 바닷가는 금세 커다란 암반으로 변했다. 오랜 세월 조수에 파여 바위가 다양한 형태로 침식되어 있었다. 울퉁불퉁 조각된 바위를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조수가 높지 않은 시각이라 크립스 크릭(Cribs Creek)까지 계속 해안을 걸었다. 거기 있는 캠프 사이트에서 배낭을 내렸다.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라 먼저 온 사람들의 텐트는 대부분 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우린 모래 위에 텐트를 치고 비를 피해 텐트 안에서 취사를 해야 했다. 먼저 온 젊은이들이 땔감을 구해와 해변에 불을 피웠다. 날씨만 좋았다면 낭만이 넘치는 밤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칙칙한 하늘 때문에 감흥이 반으로 줄었을 것이다.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어슴푸레 날이 밝아왔다.

 

월브랜 크릭엔 트레일 정비요원들이 임시 숙소를 마련해 놓았다.

 

 

숲 속을 걷는 대신 해안을 따라 걸었다. 바닷길이라고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숲에 비해 훨씬 편했다.

 

 

 

 

보니야 크릭엔 크지 않은 폭포가 하나 있었다. 푸른 초목과 하얀 포말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바닷가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와 해변으로 밀려온 다시마 줄기, 물고기를 기다리는 그레이트 블루

헤론(Great Blue Heron), 바위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는 바다사자 등이 차례로 눈에 띄었다.

 

 

줄곧 해변을 따라 걸었다. 멀리 카마나 포인트와 등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케이블 카를 타고 카마나 크릭을 건넜다. 케이블 카 타는 횟수도 많이 줄었다.

 

버거도, 맥주도 다 떨어졌다는 쉐이 모니크 레스토랑은 우리 기대를 무참히 무너뜨렸다.

대신 초코렛 바와 콜라를 사서 먹었다. 주인 할아버지와 수다를 떨며 젖은 옷도 말렸다.

 

카마나 포인트에 세워진 등대는 누구나 둘러볼 수 있었지만 등대 안으론 들어갈 수 없었다.

 

카마나 포인트와 크립스 크릭 사이는 주로 돌과 바위로 이루어졌다. 조수에 침식된 다양한 모습의 암석을 볼 수 있었다.

 

 

크립스 캠프 사이트에 도착해 하루 일정을 마감했다. 비를 뿌리는 날씨라 캠프 파이어도 별 흥취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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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7.01.27 05: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부 전합니다
    즐감하고 공감 꾸욱 누르고 갑니다

  2. justin 2017.02.15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때 마셨던 콜라는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저도 산길의 진흙탕보다는 해안가의 모래길이 더 편하고 파도 소리와 확 트인 시야를 즐기면서 갈 수 있었습니다~ 햄버거를 못 먹은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3. 나무와숲 2017.06.09 1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려놓으신 글과 사진을 열심히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유용한 정보가 많아 메모도 하면서요ㅎ
    다시한번 머리숙여 감사 드립니다^^ 꾸벅~^^

    • 보리올 2017.06.09 1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블로그가 어느 누구에게 도움이 된다니 솔직히 기쁩니다. 제가 7, 8월은 유럽에 갈 예정이라 님이 WCT를 걸을 때는 여기에 없습니다. 나중에 후일담을 듣고 싶네요.

 

컬럼비아 강을 건너 오레곤 주로 들어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마운트 후드(Mt. Hood)였다. 해발 3,429m의 높이를 가진 산으로 오레곤 주에선 가장 높은 봉우리다. 오레곤 주 북부 지역, 특히 컬럼비아 강을 따라 여행하다 보면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채 하늘로 우뚝 솟아 있는 마운트 후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멀리서 보아도 그 위용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26번 하이웨이를 타고 샌디(Sandy)를 지나 발견한 스틸 크릭 캠핑장(Still Creek Campground)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오랜만에 즐기는 캠프 파이어도 낭만이 있었고, 나무 빼곡한 숲속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하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마운트 후드 지역에서 산행에 나설 곳은 미러 호수 트레일(Mirror Lake Trail). 하이웨이에서 바로 접근할 수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여기선 트레일에 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이라 664번 트레일이라 불렀다. 미러 호수까지 왕복하고 거기에 호수를 한 바퀴 돌아도 거리는 2.8마일, 4.5km에 불과했다. 이건 산행이라기보다는 가벼운 산책에 가까웠지만 일행들 컨디션에 따르기로 했다. 힘이 남는 사람은 호수 뒤에 있는 톰 딕 해리 리지(Tom Dick Harry Ridge)로 오르면 더 뛰어난 풍경을 즐길 수 있다고 들었지만 우린 호수를 한 바퀴 돌고는 하산을 했다.

 

캠프 크릭(Camp Creek)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바로 산행이 시작된다. 하얀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베어 그라스(Bear Grass)가 여기저기 눈에 띄어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나무가 빼곡한 숲길을 걸어 그리 어렵지 않게 미러 호수에 도착했다. 너무나 조용하고 아름다운 호수였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안에 마운트 후드의 반영을 담기엔 충분했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사진작가들의 방문이 많은 곳이라니 언제 시간이 되면 빛이 좋은 시각에 이곳을 다시 찾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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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섬(Vancouver Island) 서쪽 해안에 자리잡은 포트 렌프류(Port Renfrew)로 가는 길이다. 포트 렌프류를 둘러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베이스를 치고 후안 데 푸카 마린 트레일(Juan de Fuca Marine Trail)을 걷기 위해 그곳으로 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밴쿠버에서 밴쿠버 섬으로 가려면 BC 페리를 타야 한다. 모두 네 명이 팀을 이룬 우리는 츠와센(Tsawwassen)에서 빅토리아(Vicoria)로 가는 페리에 올랐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얻으려는 갈매기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손바닥에 과자 부스러기를 올려놓고 갈매기를 유인하는 사람들의 교성에 시끄러운 갈매기 울음 소리까지 더해져 갑판이 꽤나 시끌법적했다.

 

 

 

 

 

포트 렌프류는 빅토리아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린다. 페리에서 내려 빅토리아를 지나 14번 하이웨이를 타고 해안가를 달렸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밴쿠버 섬 남단에 위치한 수크(Sooke)에 닿았다. 잠시 차에서 내려 바닷가를 거닐까 하다가 조금 더 올라가 프렌치 비치(French Beach)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프렌치 비치는 여름 시즌이 끝난 때문인지 인적이 끊겨 쓸쓸하기만 했다. 캠핑장도 텅 비어 있었다. 적막강산이란 단어는 이런 때 써야 어울리지 않을까. 해변에서 가장 가까운 피크닉 테이블을 찾아 점심을 먹은 후에 잠시 해변을 거닐었다. 1.6km에 이른다는 자갈밭 해변에는 달랑 우리만 있었다. 태평양의 한 부분인 후안 데 푸카 해협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다시 14번 하이웨이를 타고 북서쪽으로 달리다가 조던 리버(Jordan River)에서 차를 멈췄다. 커피 한 잔이 생각나던 차에 도로 옆에 자리잡은 시골 카페가 우리 발목을 잡은 것이다. 데자 뷰(Déjà Vu)란 이름을 가진 이 조그만 카페는 모든 것이 여유로웠다. 혼자 카페를 지키고 있던 여주인은 손님이 없어도 아무 걱정이 없어 보였다. 주인이 직접 만들었다는 시나몬 번스(Cinnamon Buns)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사실 시나몬 번스의 달콤한 맛이 쌉쌀한 커피와 좋은 궁합을 보여 평소에도 좋아했지만, 한적한 시골 카페에서 이렇게 훌륭한 시나몬 번스를 맛볼 줄이야 어찌 알았겠나. 일행들도 카페 분위기에, 시나몬 번스의 달콤한 맛에 다들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이런 분위기를 가진 카페를 우연히 발견하는 것도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차이나 비치(China Beach)에도 잠시 들렀다. 여기가 47km에 이르는 후안 데 푸카 마린 트레일의 남쪽 기점이기 때문이다. 1994년 빅토리아에서 열린 영연방 대회를 기념해 1996년에 이 트레일을 만들었다고 적힌 기념 동판도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부터 트레일을 걷는 것이 아니라 포트 렌프류 인근에 있는 북쪽 기점으로 올라간다. 차이나 비치 바닷가로 내려서 한가롭게 해변을 거닐었다. 바삐 움직일 일이 없어 우리 발걸음도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해변엔 다시마 줄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원통형 줄기의 크기도 대단했지만, 공 모양의 머리에 머리카락이 뻗친 모양새가 신기했다. 하지만 이 머리같이 생긴 부분이 뿌리로 바위에 붙어 몸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고 들었다.

 

 

 

 

 

 

너무 여유를 부렸던 모양이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포트 렌프류에 닿았다. 마을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바로 캠핑장으로 이동했다. 파치다트(Pacheedaht) 캠핑장은 여기에 사는 원주민 부족이 관리하고 있는 듯 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돈 받는 사람이 없었다. 캠핑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자진 등록하는 서류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일단 사이트를 정하고 텐트부터 쳤다. 만일 관리인이 있다면 나중에 돈을 받으러 오겠지 하고 편하게 마음 먹었다. 하지만 끝내 돈을 달라는 사람은 없었다. 이틀을 무료로 묵는 횡재를 한 것이다. 캠핑장은 바닷가 모래사장과 붙어 있어 해변으로 나가기가 편했다. 해가 저물며 노을이 내려 앉았다. 캠프 파이어를 둘러싸고 밤늦게까지 이야기 꽃을 피웠다. 가을이 한창인 10월인데도 날은 그리 춥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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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시카 2014.03.26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석양이 이뻐요.. 저는 bc ferry 하면 몇번이고 탔는데 처음으로 중학생때 친구들이랑 농구 여행간 기억이 너무 나요~ 그립다..

    • 보리올 2014.03.26 17: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래도 페리를 타면 비행기나 기차를 탔을 때처럼 어딘가 멀리 떠나는 기분이 들지 않니? 여행을 떠나는 들뜬 마음 같은 것 말야. 네가 농구 시함하러 갈 때도 페리를 탔기 때문에 더 생각이 났을 거야.

  2. 설록차 2014.03.28 0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이런 노래를 부르실것 같은 분위기에요...ㅎㅎ
    다시마 몸통이 나무 뿌리처럼 생겼네요...처음 봅니다...^^

    • 보리올 2014.03.28 0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캠핑의 매력은 아무래도 캠프파이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가 이어지고 잔불에 고구마나 감자 구워먹는 재미가 있거든요. 스테이크를 구워 와인 한 잔 하는 것도 너무 좋고요.

  3. 해인 2014.03.30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Juan de Fuca 이 지명이름 정~말 오랜만에 들어봄과 동시에 정겹네요. 한창 고등학교때 사회시간에 지오그래피 배울때 "이름 참 요상하다~" 하면서 이 지명이름이 머리 깊숙히 박혔었는데, 나중에 시간이 조금 지나고 왜 캐나다는 영국 영향을 더 많이 받았는데 왜 여기 이름이 서반아어일까? 하면서 열심히 wikipedia를 뒤적거리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지도 속에서만 보면 그 해협의 이름을 딴 트레일에~ 갔다오셨다니 뭔가 신기방기합니다.

    • 보리올 2014.03.30 13: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지명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넌 학교에서 배운 모양이구나. 스페인 어로 작명한 것도 알고. 수업 시간에 졸지는 않은 것 같구나. 너도 걷는 것을 좋아했다면 함께 데리고 갈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