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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1.31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WCT) ⑥ (4)

 

텐트에서 나와 날씨부터 살폈다. 하늘에 구름이 가득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어제에 비하면 아주 훌륭한 날씨다. 텐트를 걷고 수지아트 폭포(Tsusiat Falls)로 향했다. 등산화를 벗어 들고 무릎까지 빠지는 개울을 건넜다. 바다에서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파도에 바지가 좀 젖기도 했다. 30여 분 지나 수지아트 폭포에 닿았다. 캠핑장에는 텐트가 제법 많았다. 절벽 아래 조그만 동굴에서 비박을 한 커플도 있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폭포 구경부터 했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에선 꽤 유명한 폭포인데 실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낙차 5~6m에 폭은 10m 정도나 될까. 폭포 뒤로 푸른 하늘이 조금 보이기 시작해 얼마나 기뻤던지 모른다. 폭포 남쪽에서 긴 사다리를 타고 숲길로 들어섰다. 클라나와 강(Klanawa River)까진 계속해서 숲길을 걸었다. 가끔 물웅덩이도 나타났지만 별 어려움은 없었다. 24km 지점을 지나니 벼랑 위에 누가 벤치를 설치해 바다를 바라보게 해놓았다. 국립공원의 배려인지, 아니면 어느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의 작품인지 알 수는 없었다. 클라나와 강은 케이블 카로 건넜다. 강폭이 넓어 줄을 당기는 것이 꽤나 힘이 들었다.

 

클라나와 강에서 뱀필드에 있는 트레일 종료 지점까지는 하루에 주파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제 끝이 보인다는 이야기다.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클라나와 강에서 다시 해변길을 걸었다. 바닷가 부목에 앉아 잠시 쉬면서 텐트를 꺼내 바람에 말렸다. 어느 좌초선에서 떨어져 나온 앵커가 눈에 띄었다. 발렌시아(Valencia)란 배가 1906년 좌초된 곳이 여기 어디라 하던데 그 배의 유물이 아닐까 싶었다. 숲에선 트레일 옆에 버려진 동키 엔진도 보였다. 19km 지점을 지났더니 이번엔 빨간색으로 칠한 안락의자 두 개가 나왔다.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몇 개의 다리를 건넜다. 여긴 개울 위에 다리를 놓아 편히 지날 수 있었다. 소코위스 크릭(Tsocowis Creek)도 다리로 건넜다. 다리 아래에 있는 조그만 폭포에서 한 남자가 중년의 여자를 알몸으로 벗겨놓고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 나이에 옷을 벗고 카메라 앞에 서다니 그 용기가 대단했다. 우린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소코위스 크릭에서 바닷가로 나왔더니 모래사장에 난파선 흔적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선체를 이뤘던 철판이 반쯤 모래 위에 드러났고 수면 위로는 철골도 보였다. 선박이 대형화하기 전인 20세기 초까진 배들이 거센 조류를 이겨내지 못하고 해안으로 밀려와 난파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죽하면 이 지역을 태평양의 무덤(Graveyard of the Pacific)이라 불렀을까. 난파한 선박에서 뭍으로 올라온 선원들 역시 무성한 숲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발렌시아 호의 좌초로 100여 명 사망한 것이 기폭제가 되어 캐나다 정부는 전화선이 깔렸던 길을 생명을 구하는 트레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론 선박이 대형화하면서 조난 사고가 줄어 무용지물로 변했다. 그 덕분에 지금은 하이킹 트레일로 빛을 보니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달링 리버(Darling River)에 도착해 텐트를 쳤다. 뱀필드를 출발해 들어온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쳐 남으로 내려간다. 바다에서 다시마를 따다가 라면을 끓였다. 다시마를 넣는다고 못마땅해 하던 아들은 라면이 왜 이리 맛있냐며 연신 젓가락질이다. 그렇게 트레일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을 맞았다.

 

 

개울을 건너다가 바닷물에 바지가 젖기도 했다. 밀물이라 그런지 파도가 거세게 밀려왔다.

 

 

수지아트 캠프 사이트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며칠씩 여기에 머무르는 사람도 있었다.

 

 

수지아트 폭포는 명성에 비해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일단 비가 내리지 않아 속도를 내기가 쉬웠다. 날씨도, 바다 풍경도 살아나는 것 같아 기운이 났다.

 

클라나와 강을 건넌 뒤 해변으로 나왔더니 어느 좌초선에서 떨어져 나온 닻이 눈에 띄었다.

 

 

숲길도 엄청 편해졌다. 동키 엔진이 트레일 옆에 버려져 있었다.

 

 

소코위스 크릭에서 해변으로 나와 휴식을 취했다. 여기서도 난파선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뱀필드를 출발해 남으로 향하는 하이커들이 달링 리버의 해변을 걷고 있다.

 

 

달링 리버에 일찌감치 텐트를 치고 모처럼 여유롭게 오후 시간을 즐겼다.

 

 

달링 리버에서 맞은 일몰. 저녁엔 달까지 떠서 내일이면 트레일을 벗어나는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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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02.24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에 트레일에 들어설때 끝까지 갈려면 한참 남았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몇일이 지나고나니까 내일이면 끝난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금치 못 했습니다. 참 사람 마음이라는게 신기합니다. 한동안 자연속으로 들어가 익숙해있던 문명과 이별을 하고 여러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쳐야해서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하고 시도때도없이 배고프고 비가 오면 온 몸이 젖고 춥고 집에 가고 싶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여정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고 나니까 그때 그 순간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 보리올 2017.02.26 05: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장문의 댓글을 달았네. 그때는 현실이고 지금은 추억이니 그럴 거야. 당연히 현실은 힘들 수도 있고. 그래서 추억이 더 아름다운 것 아닐까?

  2. 지애 2017.04.14 0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멋진 곳에 다녀오심에 박수를 보냅니다.
    베낭 무게를 최소화 한다면 몇키로쯤 될까요?
    물론 짐꾸리기 나름이겠지만....

    • 보리올 2017.04.18 14: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어떤 장비를 가져가고 음식을 어떻게 드시느냐에 따라 차이가 많겠죠. 대개 남자는 20~25kg, 여자는 15kg 내외는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