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곤 주를 벗어나 아이다호(Idaho) 주로 들어섰다. 워싱턴 주나 오레곤 주는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지만 아이다호는 솔직히 첫 발걸음이었다. 아이다호의 주도인 보이시(Boise)부터 들렀다. 인구 21만 명을 지닌 중간 크기의 도시라 다운타운도 그리 번잡하지가 않았다. 발길 가는대로 도심을 거닐며 보이시만의 특징을 찾아보려 했지만 한두 시간 안에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파이브 가이스(Five Guys)에서 햄버거로 저녁을 먹은 후에 보이시를 떴다. 21번 하이웨이를 타고 북상을 해서 스탠리(Stanley)로 향했다. 21번 하이웨이는 폰데로사 파인 시닉 루트(Ponderosa Pine Scenic Route)라 불리기도 하는데, 시골 풍경이 많은 2차선 도로였고 구불구불해서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큰 마을도 나타나지 않고 마땅한 숙소조차 구하지 못 해 강가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 캠핑을 해야 했다.

 

아이다호의 시골길을 달려 스탠리(Stanley)에 도착했다. 인구 60명의 한적한 산골 마을이지만 3,000m의 고봉들이 줄지어 있고 낚시가 워낙 유명해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호젓함을 즐기고 유유지적하기엔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어 보였다. 우리가 스탠리로 들어설 즈음부터 먹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들이 낮게 깔린 구름에 모습을 감춘 것이 좀 유감스럽긴 했다. 소투스 시닉 바이웨이(Sawtooth Scenic Byway)에 속하는 75번 도로를 따라 해발 2,652m의 걸리나 서미트(Galena Summit)를 지나 케첨(Ketchum)으로 들어섰다. 케첨 역시 작은 마을이었지만 리조트가 있어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사실 이 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헤밍웨이다. 말년에 여기에 정착해 살다가 1961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곳이기 때문이다. 헤밍웨이 무덤이 여기에 있어 공동묘지도 둘러 보았다. 갑자기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해 재빨리 차로 대피를 해야 했다.





아이다호의 주도인 보이시는 미국 100대 도시 끝자락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다.



보이시 도심을 거닐곤 파이브 가이스에서 큼직한 햄버거로 저녁을 먹었다.



폰데로사 파인 시닉 루트는 산악 풍경이 많아 마치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해발 3,000m가 넘는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스탠리는 너무나 한적해 진정한 휴양지다웠다.




베이커리 겸 카페인 스탠리 베이킹 컴패니(Stanley Baking Company)엔 마을 주민과 관광객들로 꽤나 붐볐다.

커피와 함께 간단한 요리와 시나몬 롤로 점심을 해결했다.





스탠리에서 케첨을 가기 위해 75번 하이웨이를 탔다. 이 도로 또한 소투스 시닉 바이웨이라 불린다.



케첨 공동묘지에 있는 헤밍웨이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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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04.04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다호의 주도치고 도시가 크지는 않네요~ 헤밍웨이도 비록 저 곳에서 자살을 하였지만 그 죽음이 사람의 발길을 몰고 오게 됐네요~!

    • 보리올 2017.04.06 07: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이다호는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거대한 화산지형이 있어 놀랐다. 다음에 소개하겠지만. 헤밍웨이가 왜 이런 시골까지 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더라. 유명인사의 죽음까지도 사람의 이목을 끌다니...

 

사람이 몸을 뒤척일 때마다 이층 침대는 삐걱삐걱 소리를 내고 밤새 코를 고는 사람에다 연달아 기침을 하는 사람도 있어 알베르게에선 숙면을 취하기가 어렵다. 순례의 한 부분으로 빨리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마음이 편하다. 시도때도 없이 잠에서 깨지만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워낙 길어 실제로 잠이 부족하진 않다. 오전 6 30분에 일어나 살며시 밖으로 나왔다. 다른 사람들 잠을 깨울까 싶어 고양이 걸음을 하고 말이다. 혼자서 아침을 준비한다. 인스턴트 식품인 시금치 된장국에 어제 구입한 가늘고 짧은 면발을 넣고 끓인 수프가 아침 메뉴였다. 우리 입맛에 맞는데다 씹지 않고 그냥 넘겨도 되는 면발이라 먹기에 부담이 없었다. 7 30분에야 배낭을 꾸려 알베르게를 나섰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길을 홀로 걷는다. 새벽엔 공기가 너무 서늘해서 자켓을 꺼내 입었다. 오른쪽으로 폭이 좁은 강이 흐르는데 그 너머로 도로가 지나는지 가끔씩 씽씽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동녘 하늘이 조금씩 밝아 오더니 어설프게 해가 떠올랐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성당을 들어가보려 했지만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다. 하지만 트리니다드 데 아레(Trinidad de Arre)에 있는 성당은 예외였다. 다리 끝에 세워진 위치도 특이했지만 사람이 없는데도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이다. 크레덴시알(Credencial)에 찍으라고 스탬프도 밖에 내놓았다. 규모는 작지만 기품이 있어 보였다. 성당을 나오면서 1유로 동전을 기부함에 넣었다.

 

트리니다드 도심에선 어떤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커다란 인형 여섯 개에 각기 다른 남녀 의상을 입혀 악대의 반주에 맞춰 시가를 행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의미를 가진 행사인지는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 다리를 건너고 성벽을 지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큰 도시에 속하는 팜플로나(Pamplona)로 들어섰다. 나바라(Navarra) 자치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매년 7월 초에는 700년의 역사를 지닌 산 페르민(San Fermin)이란 유명한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좁은 골목에서 사람과 소가 뒤엉켜 달리는 소몰이 행사가 이 축제의 하일라이트다. 헤밍웨이의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도 이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는데 난 통 기억에 없었다.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며 두 시간 넘게 팜플로나를 구경했다.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좁은 골목길이 마음에 들었고 사람들로 시끌법석한 시청앞 광장도 분위기가 좋았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수퍼마켓에서 신라면 네 개를 샀다. 라면 하나에 1.50유로를 받으니 2,000원이 넘는 금액이다. 대성당으로 갔다. 입장료를 받는데 순례자는 반값이다. 14세기부터 지어졌다는 고딕 양식의 성당을 먼저 보고 카를로스 3세의 무덤과 별도 전시관을 가진 박물관도 둘러 보았다. 나바라 왕국의 왕들이 대관식을 치뤘다는 대성당. 순례길에서 지금까지 본 어떤 성당보다도 크고 화려해 구경할만 했지만 난 이런 대규모 성당을 보면 마음이 그리 유쾌하진 않다. 대성당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타파스(Tapas)와 맥주로 점심을 먹었다. 점원이 타파스라 인정하면서도 자기들은 핀초스(Pinchos)부른다고 사족을 붙인다.

 

팜플로나를 나오면서 시우다델라(Ciudadela)도 구경을 했다. 시우다델라는 별 모양의 요새를 말하는데 요즘엔 정원으로 둘러싸인 공원으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아스팔트와 보드블럭을 걸으니 발바닥이 아파온다. 산을 오르내리는 것보다 이런 평지를 걷는 것이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쑤르 메노르(Cizur Menor)를 지나서 비포장 길로 들어섰다. 양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지닌 넓은 들판이 펼쳐져 풍경은 좀 살아났지만 계속되는 오르막 경사에 햇볕마저 따가워 땀이 제법 많이 났다. 능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풍력발전기 모습도 점점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페르돈 고개(Alto de Perdon)를 넘어 우테르가(Uterga)까지 갈까 고민하다가 고개 직전에 있는 마을, 싸리키에기(Zariquiegui)에서 발을 멈췄다. 이 마을에 있는 사설 알베르게엔 부엌이 없어 음식을 사먹어야 했다. 순례자 메뉴가 11유로를 받는다. 캐나다 퀘벡에서 왔다는 노부부와 한국인 아가씨 등 넷이서 식사를 했다. 수프와 샐러드가 먼저 나왔고 메인으론 햄과 생선요리가 나왔는데 음식은 괜찮은 편이었다. 물 한잔 마시려고 물잔을 달랬더니 순례자 메뉴엔 와인잔 하나만 포함되어 있다고 난색을 표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까닭으로 그런 황당한 내규를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너무 어이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와인잔에 물을 따라 마셨다.

 

해 뜨기 전에 알베르게를 나와 길을 걷는 중에 일출을 맞았다. 일출이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수량이 많지 않은 아르가 강(Rio Arga)에서 낚시를 하는 강태공도 만났다.

 

혼자 순례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는 배낭을 어깨에 메지 않고 이틀이나 저 자세로 배낭을 손에 들고 다녔다.

 

 

트리니다드에 들어서면서 만난 바실리카 성당(Basilica de la Trinidad de Arre).

바실리카란 이름을 쓰는 성당치곤 아담하고 소박해서 좋았다.

 

 

 

 

 

트리니다드에선 커다란 인형을 들고 시가 행진을 하는 어떤 행사와 마주쳤다.

 

 

14세기에 지은 이 다리와 구시가를 둘러싼 성벽을 지나 팜플로나 시내로 들어선다.

 

 

 

 

팜플로나는 고풍스러움과 화려함을 함께 겸비한 도시였다. 인파로 붐비는 좁은 골목도 나에겐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무너져버리자 14세기 후반부터 고딕 양식으로 다시 지은 것이 현재의 팜플로나 대성당이다.

많은 유물을 발굴해 따로 전시하고 있었다.

 

 

 

팜플로나 어느 식당에서 타파스와 맥주로 점심을 해결했다. 버섯이 올려진 타파스는 맛이 아주 훌륭했다.

 

팜플로나를 나오면서 옛 요새였던 시우다델라도 들렀다.

 

 

야트마한 산자락이 농지로 바뀌어 누런 색을 지닌 새로운 풍경을 선사했다.

 

 

싸리키에기에도 아담한 규모의 산 안드레스(San Andres) 성당이 저녁 미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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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ove123 2015.11.19 1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부러운 순례길을 다녀오셨네요

    • 보리올 2015.11.19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톨릭 신자이거나 걷기를 좋아하시면 한번 다녀오실만 합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내내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2. 파라다이스블로그 2015.11.19 16: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런 들판은 생기가 없어보인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또 아름다운 면모가 있네요^^ 맛있는 음식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까지, 의미있는 순례길이 되셨을 듯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보리올 2015.11.19 17: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마운 댓글이네요. 감사합니다. 파라다이스란 기업을 알리는 의미도 있겠지만 블로그 정말 깔끔하게 잘 운영하고 계시네요. 저도 예전엔 부산 파라다이스를 자주 갔던 적이 있답니다.

  3. 박소희 2015.11.19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랑스길인가요?첫번째 도시 팜플로냐에 도착하셨네요. 2013년봄에 다녀왔는데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산티아고까지 부디 안전하게 완주하시길..
    부엔까미노^^

    • 보리올 2015.11.20 0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프랑스 길이 맞습니다. 박소희님은 벌써 다녀오셨군요. 지금 순례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11월 초에 마무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기록을 정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4. 시원 2015.11.19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럽습니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걷고 있는 나를 꿈꿉니다
    건강히 완주하시길 바래요^^

  5. justin 2015.12.11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훌륭하다는 타파스의 맛과 스페인의 맥주 맛이 궁금합니다!

    • 보리올 2015.12.11 15: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스페인 맥주 맛이야 비슷하지. 거기 사람들 와인을 많이 마시더구나. 스페인이 와인 산지로도 유명하거든. 와인에 타파스가 잘 어울리는 것 같고. 타파스 정말 괜찮더구나. 요즘 한국인 입맛에 맞는 타파스를 개발 중이다. 나중에 우리 아들에게 해주려고. 그때 스페인 와인 한잔 하자.

  6. 제시카 2016.01.02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일기장을 관리하셨길래 이렇게 눈앞에 아빠의 하루모습이 보일듯말듯 하게 자세히도 쓰셨을까요? 대단하시네용! 저 인형들 저도 두번정도 봤었는데!!!! 바르셀로나에서!궁금하네요 뭔지!

    • 보리올 2016.01.03 0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기를 썼다기보다는 메모를 열심히 했지. 요즘엔 통 기억을 믿을 수 없으니 말야. 사진을 많이 찍어 놓는 것도 나중에 기억을 되살리는데 도움이 되었지.

 

오전 6 30분이 되어서야 알베르게에 불이 들어왔다. 늦어도 8시까지는 퇴실을 하라고 하는데 아침 취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쁠 수밖에 없겠다. 배낭 안에 고히 모셔둔 곰탕 라면 세 개를 끓여 세 명이 나눠 먹었다. 비록 라면 한 봉지지만 남에게 베풀 수 있다는 것이 그냥 좋았다.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지만 알베르게를 나서 도로옆 오솔길로 들어섰다. 길은 어두컴컴했다. 도로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산티아고가 790km 남았다고 적혀 있었다. 차가 달리는 도로라 사람이 걷는 거리완 좀 차이가 나는 듯 했다.

 

하늘이 밝아 오는 시각에 부르게테(Burguete)에 도착했다. 이곳은 헤밍웨이가 스페인에 머무를 당시 송어 낚시를 하러 자주 오던 마을이라 했다. 그가 체류했던 호텔은 길가에 제법 번듯한 건물로 남아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헤밍웨이를 자주 접하게 된다. 플로리다에 살았던 그의 집도, 아이다호에 있는 그의 무덤도 보았으니 말이다. 어제부터 함께 걷는 학생이 현금이 필요하다고 해서 은행으로 갔더니 새벽부터 문을 열어 깜짝 놀랐다. 하지만 현금지급기가 없어 다른 은행으로 가야 했다. 마을 밖에선 서서히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자욱한 안개 위로 해가 솟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여기도 산악 지형에 속하는지 제법 오르내림이 심했다. 숲길도 많아 나무 터널을 지나는 곳도 몇 군데 있었다. 예쁜 마을을 지났다. 붉은 지붕에 흰 벽을 지닌 집들은 나름 고풍스런 느낌이 들었다. 현대식 성당이 있는 에스피날(Espinal)을 지나 알토 데 에로(Alto de Erro)를 넘으니 쑤비리(Zubiri)가 그리 멀지 않았다. 21km 거리를 6시간에 걸어 오후 2시에 쑤비리에 도착했다. 김 신부님과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로 점심 식사를 했다. 웨이트리스가 아침에 한국어를 배웠다며 우리에게 ‘안녕’이란 단어를 몇 번이나 써먹는다.

 

신부님은 쑤비리에서 묵겠다고 해서 작별 인사를 건네고 마을을 빠져 나왔다. 난 일정이 빠듯해 남들보다는 조금씩 더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쑤비리를 빠져나오는 다리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줄리와 사이먼 부부를 만났다. 순례길에서 또 만나자 했지만 그들이 나를 따라잡을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홀로 유유자적 걷는 길에 햇볕이 작렬한다. 가을이 한창인 10월에도 이럴진데 한여름에는 얼마나 뜨거울까 싶었다. 조그만 마을을 두 갠가 지나 오후 4시에 라라소아냐(Larrasoana)에 도착했다.

 

거기엔 지자체, 즉 무니시팔(Municipal)에서 운영하는 조그만 알베르게가 있었다. 그 많던 한국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맥주 한잔으로 먼저 목을 축인 후 장을 보러 수퍼마켓으로 갔다. 알베르게에 조그만 부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이 닫혀 있는 수퍼마켓은 벨을 누르면 이층에서 주인이 내려와 물건을 판다. 물건도 종류가 많진 않았다. 쌀과 파스타 면, 그리고 과일을 좀 샀다. 계산을 하니 우리 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계산기 앞에도 ‘맛있게 드세요’라고 한글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인이 이 순례길에 많기는 정말 많은 모양이다.

 

알베르게에서 혼자 저녁을 준비했다. 밥을 해서 곰탕 라면에 넣고 죽처럼 만들었다. 양이 많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난 사실 한국 음식에 대한 집착은 별로 없다. 한달 내내 스페인 음식만 먹으라 해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면 돈이 크게 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순례자 메뉴로 식사를 했는지 알베르게로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든다. 덕분에 나만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다 밤늦게 침실로 들었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론세스바예스를 빠져 나와 순례길로 접어 들었다.

 

 

안개가 마을을 덮고 있는 부르게테.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 발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은행은 문을 열었다.

 

헤밍웨이가 자주 찾아와 묵었다는 부르게테 호스탈.

 

 

 

부르게테 마을을 벗어나니 안개 사이로 해가 솟았다. 소를 방목하는 목장에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쑤비리 마을로 향하는 순례길에도 따스한 햇살이 내려쬐고 있었다.

 

 

에스피날로 들어서는 초입에서 나뭇줄기 사이로 빛내림이 펼쳐졌고, 안개또한 마을을 동화속 풍경으로 만들었다.

 

 

 

지나는 마을마다 예쁜 집들로 가득했다. 석조 건물을 하얗게 칠해 더 아름다웠던 것 같았다.

 

우리가 양떼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양들이 우리를 지켜보는 듯 했다.

 

 

나무 사이로 뚫린 길은 그늘을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시원한 청량감도 선사했다.

 

 

쑤비리로 드는 지점에 고딕 양식의 라비아 다리(Puente de la Rabia)가 있다.

거기서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온 줄리, 사이먼을 다시 만났다.

 

 

 

10유로짜리 순례자 메뉴로 점심을 먹은 쑤비리의 오기 베리(Ogi Berri) 식당. 메인으론 빠에야가 나왔다.

 

에스퀴로츠(Esquirotz)란 조그만 마을에서 화려한 꽃장식을 한 집을 발견했다.

 

 

 

 

그리 크지 않은 라라소아냐 마을의 시골 모습.

 

저녁으로 준비한 곰탕라면죽. 산에서 캠핑하면서 즐겨먹던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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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1.20 23: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링크해서 구독하렵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저도 가고
    싶은 곳! 함께 걸어가는 기분입니다

    • 보리올 2015.11.21 0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의 응원에 정말로 힘이 솟는 느낌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가시는 꿈을 꾸시면 언젠가는 꼭 이루어질 겁니다. 저도 함께 기원하겠습니다.

    • 농돌이 2015.11.21 07: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감사합니다
      봉급쟁이 터는 날 바로?
      오늘은 김장합니다 새벽에 씻어서
      놓고보니 산 입니다 ㅋ 종손의 무게거니 합니다
      멋진 글과 사진 소망합니다

    • 보리올 2015.11.21 0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종갓집에서 김장을 하고 계시는군요. 예전에 시골집에서 김장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2. justin 2015.12.08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례길 사진이 산과 같은 풍경의 사진과 틀립니다. 자연과 인간과 동물이 잘 어우러져있습니다.

    • 보리올 2015.12.08 1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래도 사람사는 마을을 연결해 걷는 것이기 때문에 산 속을 걷는 산행과는 풍경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지. 순례길 전구간에 산행같은 곳은 세 구간뿐이었다.

  3. 해인 2015.12.27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쁘게 꽃장식이 된 집들 사진을 보니, 빨리 봄이 왔으면 하는 저는 역시 천상여자인가봐요 ;) 갑자기 옛날에 살던 하우스가 그립기도 하고요. 그런데 끼니를 저렇게 때우시니... 살이 쭉쭉 빠지겄어요. 하루에 20-30km를 걸으면서 소비되는 열량은 엄청나겠죠?

    • 보리올 2015.12.27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통 성인의 하루 대사량을 2,500 칼로리로 본다면 30km를 걸으면 아마 에너지로 5,000칼로리는 쓰지 않을까 본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섭취하는 열량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지. 다이어트엔 정말 최고라 생각한다.

  4. 제시카 2015.12.31 1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우리아빠 사진 완전 짱이네용... 빛이내리는사진하구, 안개속에서 홀로 서있는 나무사진이 넘 이뻐요.. 저렇게 간단히 끼니 때우셨으니 그렇게 살이 빠지시죠!! 앞으로 하루에 하나씩 읽어야겠네염 ㅋㅋㅋㅋ

 

플로리다 반도 남서쪽으로 길게 줄지어 형성된 작은 섬들을 통틀어 플로리다 키(Florida Keys)라 부른다. 뾰족한 열쇠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그런 이름을 얻은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 32개의 섬을 42개 다리로 연결해 총 240km에 이르는 긴 도로를 만들었다. 미국다운 발상이라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우리나라도 요즘 섬을 다리로 연결하는 시도가 많지 않은가.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연한 <트루 라이즈(True Lies)> 촬영지로 내게 각인된 곳이라, 이번 플로리다 여행에서 꼭 들러야 할 곳으로 꼽았었다.  

 

마이애미에서 1번 국도를 타고 키웨스트(Key West)를 찍으러 출발을 했다. 끝이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다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다리 위에선 차를 세울 수 없어 바다를 제대로 구경하기 쉽지 않았고, 섬에선 바다를 조망하는 위치가 낮아 역시 바다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 유명한 쪽빛 바다와 산호초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저 양옆에 바다를 끼고 끝없이 이어진 다리를 달리고 또 달려야 했다. 미국 최남단을 찾아가는 길이 좀 지루해졌다.

 

  

 

중간에 있는 7마일 브리지에 잠시 들렀다. 1912년에 준공된 옛 다리는 몇 차례에 걸친 허리케인의 공격에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1982년 새로 다리를 놓았다. 새로 지은 다리에서 수평으로 달리는 옛 다리를 볼 수가 있다. 영화 <트루 라이즈>에서 테러리스트를 추격하던 슈왈제네거가 비행기에서 미사일을 발사해 다리를 폭파했던 곳도 바로 여기다. 매년 4월에 이 다리에서 마라톤을 연다니 그 시합에 참가해 봤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푸른 바다를 보며 다리 위를 달리는 내 모습을 그려 보았다.

 

 

옛 다리는 낚시꾼들의 놀이터였다. 다리에서 바다로 길게 줄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많이 잡았냐는 질문에 겸언쩍게 웃는 것을 봐서는 수확이 별로인 모양이다. 한 무리 낚시꾼들이 배를 타고 낚시에서 돌아온다.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가면 아무래도 조황이 다를 것 같아 배를 대는 곳으로 내려갔다. 배에서 내리는 사람에게 많이 잡았냐고 물었더니 아이스박스를 열어 자기가 잡은 고기를 보여준다. 60cm가 넘는 물고기를 자랑스럽게 우리에게 내민다. 이 정도면 여기서도 월척으로 치겠지

 

 

 

 

키웨스트는 미국의 최남단이란 지정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땅끝이라 하면 흔히 육지의 끝을 이야기하는데 이들은 섬을 다리로 연결해 새로운 개념의 땅끝마을을 만들고 있었다. 키웨스트 바닷가에 있는, 미국 최남단을 표시하는 표지석에는 쿠바가 90마일 떨어져 있다고 적혀 있다. 미국인들은 공식적으로 갈 수 없는 땅, 쿠바가 저 앞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좀 묘해진다.

 

 

과거 스페인령이었던 키웨스트는 스페인 색채가 꽤 강한 도시다. 도시는 그리 크지 않아 걸어다니면서 구경해도 충분하다. 전기차나 자전거를 렌트해 돌아볼 수도 있다. 아무래도 키웨스트 최고의 볼거리는 멜로리 광장에서의 일몰이 아닐까 싶다. 배를 타고 나가 석양을 보는 선셋 크루즈도 유명하다. 멜로리 광장 주변에 인파가 엄청나 주차장을 찾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도착도 좀 늦었고 구름 속에 가린 석양도 별로였다. 선셋 크루즈에 나선 범선들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 찍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나에겐 오히려 1번 국도(US Route 1)의 남쪽 종점이란 이정표 하나가 더 의미있었다. 1번 국도는 미국 동부지역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도로다. 메인 주의 포트 켄트(Fort Kent)를 출발해 여기까지 3,825km를 달린다. 오래 전부터 아틀랜틱 하이웨이(Atlantic Highway)라 불리던 이 도로는 대부분의 교통량을 I-95 주간 고속도로에 내주고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플로리다 키에선 옛 영화를 재현하고 있는 듯 보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웬만한 도로 하나가 수 천 km를 달리니 미국이란 나라 정말 크긴 크다.

 

  

 

헤밍웨이도 여기를 유명하게 만든 관광상품 중 하나다. 실제 헤밍웨이는 쿠바에서 장기간 체류하면서 <노인과 바다>같은 작품을 썼지만 1920년대, 1930년대에 여기서 살았던 것은 맞다. 그래도 너무 우려먹는 기분이 들었다. 헤밍웨이가 두 번째 부인 폴린(Pauline)과 몇 년 살았던 헤밍웨이 하우스는 시간이 늦어 들어가지 못했고. 헤밍웨이가 술 한 잔 하러 즐겨 찾았다는 슬루피 조스 바(Sloopy Joe’s Bar)는 사람들로 넘쳐나 도저히 들어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여기서의 헤밍웨이 삶보다는 난 솔직히 쿠바에서의 그의 행적이 더 궁금했다.

 

마이애미 호텔로 돌아가는 4시간 밤길 운전에 나섰다. 키웨스트는 유명 관광지라 호텔료가 만만치 않았다. 솔직히 마이애미에서 당일치기로 키웨스트를 다녀가기엔 운전으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열심히 운전하고 와서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명소 몇 군데 보는 것이라면 투자에 비해 효과가 별로란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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