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트라에서 403번 버스를 타고 카보 다 호카로 향했다. 우리에겐 호카곶으로 불리는 곳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 끝단이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피스테라가, 때론 무시아가 유럽 대륙의 끝이라 불리던데 서경을 확인해보니 여기 호카곶이 더 서쪽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카곶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황량한 바닷가가 나왔다. 곶에는 하얀 건물에 빨간 칠을 한 등대가 하나 있었고 바닷가 쪽으로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명성에 비해선 참으로 단출했다. 십자가 아래에는 여기가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란 루이스 데 카모에스의 싯구가 적혀 있었다. 서경 930, 해발 140m라는 숫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십자가 주변의 바닷가를 산책하며 망망대해를 이룬 대서양과 바위에 부딪혀 하얀 물보라를 만드는 파도를 내려다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모처럼 마주하는 바다에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카스카이스(Cascais)로 이동해서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우리나라 전철 같이 생긴 허름한 기차로 지나는 역마다 모두 정차를 했다.

 

신트라에서 버스를 타고 카보 데 호카에 닿았다.

 

유별난 점은 보이지 않았지만 하얀 건물과 빨간 등대가 강렬한 대조를 보였다.

 

 

 

 

 

망망대해의 대서양을 보면서 절벽 위로 난 오솔길을 걸어 산책에 나섰다.

 

 

 

하얀 물보라를 내며 부서지는 파도와 바닷가에 자생하는 이름 모를 식물이 길손을 반긴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단을 알리는 십자가

 

 

 

 

 

 

망망대해를 보며 한가롭게 산책에 나선 사람들이나 햇볕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 여유로워 보였다.

 

 

 

 

카스카이스 역에서 기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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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스페인과는 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스페인에 비해서는 더 조용하고 시골스럽다고나 할까. 그래도 15세기 대항해시대엔 식민지를 찾아 세계를 주유한 나라 중의 하나였다. 브라질과 마카오가 대표적인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를 이야기할 때 보르고냐 왕조의 뒤를 이어 아비스 왕조를 연 동 주앙 1세와 그의 셋째 아들 동 엔히크(Dom Henrique) 왕자의 역할을 간과할 수는 없다. 포르투갈 어디에서나 엔히크 왕자와 관련된 유적을 접할 수 있지만 포르투에서 가장 큰 대성당(Se do Porto)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그의 청동 기마상을 만날 수 있었다.

 

대성당은 첫 눈에 보기에도 그 고색창연한 모습에 절로 외경심이 들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2세기에 지어졌다지만 여러 차례 개축을 하는 과정에서 각종 건축 양식이 접목되어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고딕 양식의 종탑 두 개가 먼저 눈에 띄고 회랑은 18세기 아줄레주로 장식되어 있었다. 실내는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바로크 풍의 프레스코화와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들어왔다. 높은 언덕 위에 대성당이 지어져 그 앞 광장에 서면 포르투의 도심을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다. 일종의 자연 전망대로 도우루 강도 내려다 보이고 하얀 벽과 붉은 지붕으로 지어진 많은 건축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침 해가 내려앉는 석양 무렵이라 포르투의 도심 풍경이 더욱 환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나 싶다. 내가 마치 동화속 마을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줄레주 장식이 돋보이는 성 일데폰소 성당(Igreja de Santo Ildefonso)은 아주 멋진 건물이었다.

오래 전에 세워진 성당을 헐고 1739년에 이 성당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성 일데폰소 성당에서 포르투 대성당으로 가면서 마주친 도심 풍경

 

대성당으로 오르는데 항해왕자 동 엔히크의 청동 기마상이 먼저 손님을 맞는다.

 

 

 

대성당 앞 광장에서 석양을 맞았다. 포르투 도심을 보기에 아주 좋은 전망대였다.

 

대성당 앞 광장에 십자가처럼 세워진 페로우리뇨(Pelourinho)는 우아한 모습과는 달리 죄인을 묶어놓고

매질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건축 양식이 혼재된 포르투 대성당은 포르투를 대표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산티아고 순례길 가운데 하나인 포르투갈 길이 대성당 앞을 지나고 있었다.

 

 

 

 

 

대성당 앞 광장에서 바라본 포르투 역사지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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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 구간만 걸으면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창문을 열고 날씨를 확인했더니 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하늘에서 시련을 주는구나 싶었다. 이곳의 일기예보는 왜 이리 잘 맞는 것이냐며 속으로 구시렁거리다가 밖으로 나섰다. 어둠이 짙게 깔린 오전 8시 정각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우의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제법 컸다. 바닷가를 따라 걷다가 십자가를 만나는 지점에서 도로를 건넜다. 어느 식당 앞에 있는 표지석을 발견하곤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피스테라에서 무시아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선 것이다. 표지석에 있는 조가비 표식은 산티아고에 이르는 순례길 표식과 비슷해 보였지만 위로 뿔 두 개가 달려 약간 다르게 만들어 놓았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산 살바도로(San Salvador)를 지나 부싼(Buxan)으로 들어섰다. 마을 이름이 우리나라 부산을 연상시켰다. 어느 집 담장에 순례자를 위해 주스와 사과를 내놓았다. 도네이션 박스도 없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주스를 한잔 따라 마셨다. 부싼을 벗어나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데 왼쪽으로 바다가 나타난다. 하루 종일 바다를 보며 걷는 줄 알았는데 이제사 바다를 본다. 순례길을 벗어나 바다로 나갔다. 모래 언덕이 넓게 형성돼 해변은 보이지 않았다. 우중충한 하늘, 거센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거기에 굵은 빗방울까지 어우러져 바다 풍경이 좀 칙칙했다. 작은 마을 몇 개를 지났다. 마을마다 개를 기르는 집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것도 덩치가 산만한 녀석들을 말이다. 한 녀석이 문을 뛰쳐나와 목청껏 짖으며 나에게 덤벼들기에 스틱으로 한대 때려주었다. 강아지를 부르며 좇아나오는 주인의 눈초리가 사납게 느껴졌다.

 

오전 11시 조금 넘어 리레스(Lires)에 도착했다. 오늘 구간의 중간쯤에 있는 마을이다. 알베르게와 카페가 있는 유일한 곳이라 카페에 들러 맥주와 크로아상으로 간식을 했다. 여기서 크레덴시알에 스탬프를 받았다. 다시 숲으로 올라 임도를 걸었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무성한 숲이 나타났다. 줄을 맞추어 일정한 간격으로 심은 인공조림 현장이었다. 유칼립투스가 3년이면 13m까지 자라는 속성을 이용해 손쉽게 펄프용 목재를 얻으려는 것이다. 프랑코 독재 정권은 스페인에 자생하는 참나무를 베어내고 거기에 이 유캅립투스를 심도록 했다. 그 결과 갈리시아 지방의 1/3은 유캅립투스가 덮고 있다고 한다. 난 이 유칼립투스 나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유칼립투스 숲에선 다른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고 동물 또한 먹잇감이 없어 살지 않는다. 나무에서 나오는 껌 같은 끈적한 유액이 새들을 죽인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비를 피해 점심을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적당한 장소를 찾다가 너무 허기가 져서 길 가운데 배낭을 내려놓고 비를 맞으며 빵과 사과로 점심을 때웠다. 길에서 만난 사람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는데 하필이면 길바닥에서 점심을 먹는 와중에 차가 한대 올라오더니 나를 불쌍한 듯 쳐다보며 지나갔다. 내가 봐도 내 꼴이 좀 그랬다. 또 다시 작은 마을 몇 개를 지났다. 규모가 작은 것 외엔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어느 마을에서 무시아 3km란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지난 29일 동안 915km에 이르는 거리를 걸어온 여정이 이제 곧 끝난다 생각하니 가슴이 찡했다. 절로 걸음이 빨라졌다. 산티아고에서 순례를 마감하지 않고 피스테라와 무시아까지 걸은 것에 대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 길 또한 옛 순례길이기도 했지만 피스테라와 무시아가 대서양에 면한 스페인의 서쪽끝, 나아가 유럽 대륙의 서단이기 때문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무시아로 들어섰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바닷가에 면해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형형색색의 집들이 마을을 밝게 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었다. 간간히 뿌리는 비를 맞으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곤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산티아고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사람에게 주는 또 하나의 순례증서를 받았다. 모두 세 장의 순례증서를 손에 쥔 것이다. 배낭을 내려놓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바람은 무척 강했지만 비는 잠시 소강상태다. 해발 68m의 몬테 코르피뇨(Monte Corpino)에 올랐다. 여기서 바라보는 마을이 볼만했다. 그 반대편 바닷가에 자리잡은 성당으로 내려섰다. 엄청 큰 돌을 쪼개 놓은 조형물과 바위 위에 세워진 등대,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 등을 차례로 돌아 보았다. 발길을 돌려 마을로 향했다. 피스테라에 이어 또 하나의 땅끝 풍경을 본 것으로 진짜 순례를 마쳤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각에 비 내리는 피스테라를 빠져 나가고 있다.

 

 

피스테라를 막 벗어나 산 마르티뇨(San Martino)로 들어섰다.

 

부싼 마을을 지날 때 한 가정집 담장에 주스와 사과가 놓여 있어 주스 한잔을 따라 마셨다.

 

부싼을 벗어난 곳에서 왼쪽 사구 너머로 성난 바다가 보였다.

 

리레스 마을의 어느 농가 앞에 예전에 쓰던 농기구를 골동품처럼 전시해 놓고 있었다.

 

 

 

리레스를 지나 산길로 접어 들었다. 양쪽으로 숲이 우거져 마치 산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인공으로 조림한 유캅립투스 나무가 도처에 깔려 있었다. 표피가 벗겨진 유칼립투스 나무가 다양한 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가로운 목가적 풍경을 지닌 모르킨티안(Morquintian) 마을

 

비구름에 가린 나무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쑤라란테스(Xurarantes) 마을에서 무시아가 3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무시아를 30여 분 남겨놓고 바다를 다시 만났다. 해변엔 갈매기들이 바다를 등지고 모여 있었다.

 

 

 

무시아도 아름다운 도심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바라본 무시아 마을 뒤로 몬테 코르피뇨가 보인다.

 

 

마을 전경을 보기 위해 십자가가 세워진 몬테 코르피뇨를 올랐다.

 

 

 

 

 

바닷가로 내려서 노사 세뇨라 다 바르카(Nosa Senora da Barca) 성당과 아 페리다(A Ferida)란 조형물,

등대와 바다를 차례로 보았다. 아 페리다는 2002년 프레스티지란 이름의 유조선이

침몰하면서 엄청난 기름 유출이 생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조각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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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sabel 2015.12.30 23: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보리울님의 글을 보게되어 우선 축하드립니다 저의 꿈인 산티아고길프랑스길을 마치셨네요 이제부터 꼼꼼히 부러운맘으로 읽어나가겠습니다 혹 궁금한게 있으면 도움을 청해도 되겠지요? 연말에 큰일 무사히 마치셨으니 다가오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보리올 2015.12.31 0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사벨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꾸고 계시는군요. 평생 한번은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준비 잘 하셔서 즐겁게 걸으시기 바랍니다. 혹 궁금한 게 있으시면 저에게 메일(boriol@naver.com)로 연락주세요. 아는 범위에서는 성심껏 답변드리겠습니다.

  2. TISCO 2016.02.12 14: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꿈만 같은 트레킹! 보리올님 글과 사진을 따라 산티아고까지 무임승차 정말 잘했습니다^^ 저 혼자 보고 읽기엔 너무 아까운제요 보리올님 글과 사진을 다른 분들께 소개해도 될런지요?

    • 보리올 2016.02.13 1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과찬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블로그는 아니지만 TISCO님 같은 분이 있어 힘이 납니다. 누구에게나 공개된 공간인만큼 다른 분들께 소개해주시면 저로선 고마운 일이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TISCO 2016.02.13 2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리올님 후기가 훌륭한 길라잡이 이상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아래 URL이 첫글입니다 밴쿠버면 춥겠죠 몸조리 잘하시길^^
      http://cafe.daum.net/nepal-himalaya-news/T3R1/593

    • 보리올 2016.02.14 1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페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네팔 소식과 트레킹 정보가 많더군요. 저도 네팔을 여러 번 다녀왔고 애정도 많은 편입니다. 카페에 소개하는 것은 산티아고 순례기로 국한해주시면 좋겠네요.

    • TISCO 2016.02.15 1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먼저 사과 말씀부터 올립니다
      몇주 전부터 카페글에 음악을 붙이면 좀 나을까 싶어 붙이고 있는데요
      보리올님 산티아고 후기에도 해서 제 임의대로 음악을 붙였는데요
      가만 생각하니 실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멋대로 음악을 붙였던 것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보리올님의 산티아고 후기!
      저 포함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에 담고 있는 분들이 많겠는데요
      어찌나 세밀하시고 방대하신지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입니다

      히말라야 많은 곳 다녀오신 후기들도 보물이 따로 없다며 감탄 감탄!!
      저희 카페에 소개해 쉐어하면 좋겠지만...
      대신에 히말라야 트레킹 후기 자료가 필요하신 분들이 계실 경우~
      보리올님의 티스토리를 방문토록 말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보리올 2016.02.15 12: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니, 사과하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음악도 별 문제없을 것 같고요. 이렇게 글과 사진이 통째로 카페에 실리는 지는 몰랐거든요. 꼭 블로그 내용이 이사가는 것 같아 산티아고 순례기만 싣자고 한 겁니다.
      .

  3. Justin 2016.04.19 15: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드립니다! 정말 긴 여정이 끝나셨네요! 저도 감격스럽습니다 ~ 순례길 여행은 끝나셨지만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 될 발판이 될거라 믿습니다. 항상 건강 잘 챙기셔서 손자와 함께 3대가 여행을 떠나는 일을 같이 꿈꿔봅니다!

    • 보리올 2016.04.20 0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뒤늦은 축하지만 고맙게 받겠다. 아들과 손자를 데리고 어떤 트레일이라도 걷는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구나.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밤새 비바람이 몰아쳐 잠을 자면서도 신경이 쓰였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날씨부터 확인을 했다. 여전히 비바람이 강했다. 이런 날씨에 선뜻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는데 알베르게 관리인이 들어와 청소를 할테니 밖으로 나가란다. 우의를 꺼내 입고 문을 나섰으나 금방 물에 젖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의 시작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도심 한 가운데에선 표지석이나 화살 표식을 찾기가 어려웠다. 일단 해변으로 갔더니 거기에 표지석이 있었다. (Cee)는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이라 시간을 내서 도심과 바닷가를 둘러보려 했지만 날씨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세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코르쿠비온(Corcubion)으로 들어섰다. 거센 파도를 피해 많은 배들이 여기서 피항을 하고 있었다. 높지 않은 고개를 하나 넘었다. 고개 위에서 멀리 피스테라 등대가 보였다. 땅끝 마을이 드디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에스토르데(Estorde)에선 잠시 길에서 벗어나 해변으로 들어가 보았다. 파도가 거세게 몰려왔다. 대서양이 몹시 화가 난 모습이었다. 사르디네이로(Sardineiro)에서 피스테라까지 7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보았다.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느냐에 따라 비를 맞는 부위가 달랐다. 해변으로 난 길에서는 얼굴로 파고드는 빗줄기 때문에 머리를 제대로 들 수가 없었다. 물에 빠진 생쥐 모습으로 피스테라에 닿았다. 땅 위에 돌로 만든 조가비 표식이 나타났고 형형색색의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눈에 보기에도 예쁜 마을이었지만 그걸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어디에서 비를 피하면서 몸을 말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사람들에게 물어 알베르게를 찾아갔는데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오후 1 30분에 문을 연다고 한다. 항구 주변을 서성이다가 빗줄기가 너무 굵어 버스정류장에서 비를 피하며 빵과 과일로 점심을 때웠다. 내가 보기에도 좀 청승맞아 보였다.

 

피스테라는 피니스테레(Finisterre)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것은 로마어에서 나왔는데 로마인들은 이곳을 세상의 끝이라 보았다. 그들보다 먼저 여기 살았던 켈트족도 카보 피니스테레(Cabo Finisterre)에 있던 태양 신전으로 가기 위해 이 길을 걸었다고 한다. 중세 시대엔 야고보 성인의 주검이 스페인으로 돌아온 궤적을 찾아 순례자들이 여길 찾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카미노 데 피스테라가 카미노 데 산티아고보다 더 오래된 순례길이었던 셈이다. 다시 알베르게로 갔더니 문을 열었다. 크레덴시알을 보여주고 또 한장의 순례증서를 발급받았다. 이 알베르게는 산티아고에서 걸어온 사람만 들어올 수 있어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마을에서 한국인을 10여 명 보았는데 모두 차량을 이용해 온 모양이었다. 침대를 정리해 놓은 후에 밖으로 나왔다. 빗줄기가 가늘어져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것마저도 얼마 있으니 그치기 시작했다.

 

바다는 여전히 칙칙했지만 다양한 색채감을 뽐내는 마을 분위기에 그나마 위안을 얻었다. 바다에 떠있는 조그만 보트들도 정겨워 보였다. 날씨만 좋았더라면 이 풍경도 괜찮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아쉽긴 했다. 하지만 어쩌랴. 날씨는 내 소관사항이 아니니 말이다. 마을을 벗어나 등대가 있는 땅끝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편도 2.2km의 거리라 부담이 없었다. 등에 배낭도 없으니 발걸음이 자연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땅끝 마을이란 지정학적인 의미가 나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등대 자체는 그다지 아름답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0.00km라 적혀 있는 표지석과 바위에 설치해 놓은 등산화 조각, 순례를 마친 사람들이 물건을 태운다는 소각장까지 두루 살펴보았다. 순례자들이 남겨놓은 메모, 소지품들이 안테나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티벳불교에서 사용하는 룽다도 걸어 놓았는데 그건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먹구름이 조금씩 걷히며 바다가 꿈틀꿈틀 살아나고 있었다. 고깃배 한 척도 통통거리며 바다를 가로질러 갔다. 어디에선 구름 사이로 햇살이 삐져나오기도 했다. 해질 때까지 기다릴까 하다가 아무래도 석양을 기대하긴 어려워 그냥 마을로 돌아왔다. 알베르게엔 사람들로 제법 붐볐다. 침대가 모두 찼다. 모처럼 밥을 지어 그 위에 콩수프를 얹어 먹었다. 이번 순례길에서 즐겨 먹던 메뉴가 밥이나 파스타 위에 콩을 얹어 먹는 것이었다. 새롭게 발굴한 메뉴였는데 만들기 쉽고 영양도 괜찮았다. 설거지를 하는 중에 한 서양 노인네가 쌀을 가지고 밥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찌 밥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쌀로 죽을 만들어 거기에 렌틸콩과 치즈를 넣어 저녁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 음식의 이름이 뭐냐 했더니 이름은 없단다. 시식해 보라고 한 접시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것이 의외로 맛이 괜찮았다.

 

파스타 면에 콩을 얹어 간단히 만든 아침 메뉴

 

세의 도심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은 외관을 하얗게 칠해 깔끔해 보였다.

 

 

바다가 움푹 들어온 곳에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세 해변을 거닐며 마주친 풍경들.

 

조그만 배들이 코르쿠비온 앞바다로 피항을 왔다.

 

 

코르쿠비온 마을의 모습. 산 마르코스(San Marcos) 성당의 뾰족한 첨탑과 십자가가 인상적이었다.

 

 

코르쿠비온에서 산 로케(San Roque)로 오르는 길목에서 되돌아본 바다 풍경

 

이 지역은 옥수수 저장고인 오레오를 대부분 돌로 만들었고 그것을 버섯 모양의 받침대가 버티고 있었다.

 

산 로케 수도원 경내를 알리는 표식. 도네이션제로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하나 있다고 들었다.

 

에스토르데 마을의 해변으로 내려갔더니 파도가 거세게 밀려왔다.

 

 

해변으로 난 길을 걸어 피스테라로 접근하고 있다.

 

 

 

피스테라도 울긋불긋한 건물들이 많아 아름다운 면모를 지녔다.

 

 

피스테라의 바닷가 풍경

 

마을을 벗어나자 무너진 건물에 땅끝으로 가는 이정표를 그려 놓았다.

 

 

등대가 보이는 지점에 순례자 상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땅끝에 세워진 등대가 망망대해의 대서양을 굽어 보고 있었다.

 

순례길의 끝을 알리는 표지석엔 0.00km란 거리 표시가 적혀 있었다.

 

땅끝 마을을 알리는 표지석

 

등대 아래에 설치된 안테나에는 순례를 마친 사람들의 기념픔들이 매달려 있었다.

 

 

해수면에 햇살이 비춰 석양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으나 곧 비가 다시 내렸다.

 

알베르게에서 한 노인이 만들어 맛을 보라고 나에게 건네준 렌틸치즈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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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2.28 2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생하셨어요 ㅠㅠㅠ
    행복한 여행이셨기를 ,,,

    • 보리올 2015.12.28 23: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생은요. 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하루 종일 비 맞는 일은 좀 그렇지만 말입니다. 갈리시아 지역에서 의외로 비를 많이 맞았습니다.

  2. Seattle 2015.12.29 03: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꾸준히 걸으셔서 피스테라까지 오셨군요. 뿌듯한 보람이 느껴지는군요. 저희는 산티아고 도착후 렌트카로 피스테라와 무시아를 돌아 봤습니다.
    까미노를 걷기전 종교는 없어서 순례자 라고 하기는 무리지만 책에서 미국2대 대통령 존애담스가 독립전쟁때 조지워싱턴 장군의 명령으로
    프랑스에 지원 요청을 하러 피스테라에서 파리까지 까미노를 역으로 걸었다는 이야기를 읽고 나름 역사 기행길이라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길을 걸었습니다. 길을 걸어보니 관광상품화 되어있어서 성당을 빼고는 종교적 느낌은 안나고 길 싸인도 유럽의 오래된 문학적 길이라는
    팻말이 자주 보이더군요.

    정성껏 쓰신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보리올 2015.12.29 05: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꼭 종교적인 순례자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실제로 비종교적인 이유로 더 많은 사람들이 걷는다 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랬고요. 제가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데 언제 시간이 되시면 차나 한잔 하고 싶군요.

    • Seattle 2015.12.29 08: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얼마전부터 보리올님 포스팅들을 자주 보았는데 세계 이곳저곳 많이 걸으셨더군요.
      생각도 넒으시고 건강한 생활을 하시는것 같아 읽을때마다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몇년전에 가족끼리 시애틀에서 차로 알래스카 호머를 왕복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들렸던 리아드 온천과 탑오브더월드 하이웨이 포스팅을 보리올님 포스팅에서 보니 반갑더군요. 정말 좋았던 곳 이었거든요.

      밴쿠버에 사시는군요. 저도 언젠가 보리올님을 만나뵙고 하이킹이나 여행하신 이야기들을 듣고 싶군요. 한 일,이년은 두아이 학교때문에 바쁘겠지만 그후 제가 밴쿠버근처 가게되면 블로그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 보리올 2015.12.29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기저기 다녔다고 자랑만 늘어놓는 것 같아 블로그를 괜히 하나 싶을 때도 있었는데 님의 글이 큰 힘이 됩니다. 언제 밴쿠버 오실 일이 있으면 꼭 연락주십시요. 따끈한 커피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3. Justin 2016.04.15 09: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지구가 둥글지 않고 저곳이 땅끝마을이었으면 바다의 끝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해봅니다. 그러면 완전 다른 세상이었겠죠? 이제 종종 집에서 콩요리를 먹을 수 있겠네요 ~ 먹음직스럽습니다!

    • 보리올 2016.04.15 1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땅끝마을이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설정에 불과한데 거기에 집착하는 것 같아 내 자신이 싫어지기도 한다. 저 콩요리는 간편해서 많이 해먹었다. 네 동생들은 별로 좋아하지를 않더구나. 나중에 한번 시식할 기회를 주마.

 

하룻밤 묵은 마을엔 가게가 없었고 알베르게에도 취사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 배낭에 넣고 다니던 비상식도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다. 8km 정도 떨어져 있는 산타 마리냐(Santa Marina)까지 가서 아침을 먹자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어제 저녁에 알베르게에서 만난 40대 초반의 한국인과 얼마를 함께 걸었다. 슬로바키아에서 왔다는 친구는 엄청 큰 배낭을 지고 우리를 앞질러 간다. 텐트도 있길래 캠핑을 하면서 왔냐고 물었더니 실제 텐트는 세 번인가 치고 매일 알베르게에 묵었단다. 그럴 것이면 텐트는 무엇하러 가지고 다니나 싶었다. 산타 마리냐 성당 앞에 있는 바에서 토스트로 아침 식사를 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토스트가 아니라 이건 일종의 샌드위치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성당을 둘러 보았다.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있는 성당은 공동묘지를 수호하고 있는 듯 했다.

 

몬테 아로(Monte Aro)란 야트마한 산자락에 자리잡은 조그만 마을을 몇 개 지났다. 건너편 아래쪽으론 푸른 초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이 보였다. 아침부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가끔 빗방울이 흩날린다. 신기하게도 우의만 걸치면 비가 그치길 몇 차례 거듭했다. 사람들이 갈리시아 지방의 변덕스런 날씨를 자주 이야기하더니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스팔트 길을 걸어 코르쏜(Corzon)으로 내려서는데 멀리 큰 호수가 나타났다. 처음엔 바다인 줄 알았는데 바다가 아니라 댐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호수였다. 코르쏜의 산 크리스토보(San Cristovo) 성당과 그 옆에 조성된 공동묘지는 무슨 전시장처럼 보였다. 공동묘지를 이렇게 아름답게 꾸며놓은 곳은 솔직히 처음 보았다. 성당 입구에는 십자가가 서있었고 종탑은 성당 건물과 동떨어져 따로 세워져 있었다. 종탑이 본당 건물과 떨어져 있는 것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올베이로아(Olveiroa)로 들어섰다. 어느 건물 벽면에 큰 글씨로 마을 이름을 적어 놓았다. 이렇게 마을 이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마을을 빠져나오면서는 난해한 벽화도 만났다. 피카소의 그림을 흉내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마을 뒤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풍력발전기가 세찬 바람을 타고 열심히 돌고 있었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더니 꽤 높은 고원지대로 올랐다. 저 아래 계곡엔 댐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하류엔 제법 폭이 넓은 강이 흘러가고 있었다. 오로고소(OLogoso)에서 점심을 먹었다. 알베르게를 겸하는 식당인지라 주인이 자꾸 여기서 자고 가라고 권한다. (Cee)까진 너무 멀다고 슬며시 겁도 주었다. 도대체 거리가 얼마나 되기에 그러냐고 물었더니 15km란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충분히 가고도 남지.

 

오스피탈(Hospital)에 있는 카미노 데 피스테라 안내소는 문이 닫혀 있었다. 벽면에 붙은 지도와 거리표를 대충 훝어 보았다. 카바이드를 생산하는 커다란 공장이 나왔고 곧 갈림길이 나타났다. 오른쪽은 무시아로, 왼쪽은 피스테라로 간다. 왼쪽으로 들어섰다. 머지 않아 평원을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운치 있는 길이 나왔다. 마치 선자령 어디쯤을 걷는 것 같았다. 산 속에 성당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그 이름이 산 페드로 마르티르(San Pedro Martir) 성당이라 했다. 근처에 인가나 마을도 없는데 이곳에 성당을 세우면 도대체 누가 찾아온다는 말인가. 그 까닭을 내 머리론 이해할 수 없었다. 산길은 오르내림을 계속 하다가 이번엔 공사 중인 비포장도로를 걷게 되었다. 불도저가 도로 표면을 막 밀어 놓은 곳은 방금 내린 비로 진흙탕이 되어 걷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야트마한 언덕에서 공사 구간이 끝났다. 그런데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바다가 나타날 것이라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엔 잘못 들었겠지 했다. 곧장 언덕 위에 올라서자 저 앞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뿌연 날씨 탓에 시야가 밝진 않았지만 분명 바다였다. 바다가 눈에 들어오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바다쪽으로 내려서면서 점차 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그만 점으로 보이던 배들도 점점 크게 다가왔다. 세에 도착해 알베르게부터 잡았다. 여긴 사립 알베르게였는데 숙박비로 12유로를 받는다. 수퍼마켓에 들러 장을 보았다. 파스타로 저녁을 마치자 피로가 몰려온다. 내일 일찍 피스테라에 도착하기 위해 오늘 40km가 넘는 거리를 걸은 탓이다. 그래도 내일이면 땅끝에서 망망대해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산타 마리냐 마을로 가면서 마주친 시골 풍경

 

공동묘지를 지키고 있는 산타 마리냐의 고풍스런 성당

 

 

마로냐스(Maronas) 마을을 지났다. 축사 안에서 소 한 마리가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갈리시아 지방 특유의 평화로운 들판이 펼쳐졌다.

 

순례자들을 상대로 돈벌이에 나선 택시 회사의 광고가 자주 눈에 띄었다.

 

 

코르쏜에는 아름다운 공동 묘지와 성당이 있었다.

 

올베이로아 마을의 벽화를 보면서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좀 답답했다.

 

 

올베이로아를 지나 고원으로 오르니 댐과 그 건너편 능선에 설치된 풍력발전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오로고소 마을의 카페에서 점심으로 햄이 들어간 보카딜료스에 맥주를 시켰다.

 

오스피탈 마을엔 카미노 데 피스테라 안내소가 있었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오스피탈에서 피스테라와 무시아 가는 길이 갈렸다. 피스테라를 먼저 가기로 했다.

 

 

고원을 굽이쳐 흐르는 순례길이 눈앞에 펼쳐져 순례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산길을 걸으며 저 아래 보이는 마을을 지나쳤다. 무슨 수도원 건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숲속에 홀로 세워진 산 페드로 마르티르(San Pedro Martir) 성당

 

순레길이 지나는 비포장도로가 공사를 하고 있어 진흙탕을 지나야 했다.

 

 

언덕 위로 올라서자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세 마을도 눈앞에 나타났다.

 

 

 

 

 

바닷가에 자리잡은 세는 꽤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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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4.14 1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동묘지에 신경을 많이 쓴거같아요 ~ 이쁩니다! 바다를 볼 수 없었던 순례길을 쭉 걸으시다가 끝내 보시게 되었을때 감회가 어떠셨어요?
    마치 백두대간 구간을 걷다가 마지막 봉우리를 찍고 하산하는데 찻길이 보이는 느낌일거같아요~

    • 보리올 2016.04.14 2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언젠가 바다가 나타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바다를 보니 이제 끝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네 표현대로 백두대간 끝내고 진부령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