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만두'에 해당되는 글 51건

  1. 2015.05.21 [네팔] 달마스타리
  2. 2015.05.19 [네팔] 박타푸르 ②
  3. 2015.05.16 [네팔] 카트만두 ③
  4. 2015.05.14 [네팔] 카트만두 ②
  5. 2015.05.13 [네팔] 카트만두 ① (2)

 

네팔 지진 피해 현장을 제대로 본 것은 카트만두 북서쪽에 위치한 농촌마을, 달마스타리(Dharmasthali)에서였다. 이 마을을 찾게된 것은 우리 나라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새삶교육센터가 여기 설치된 인연도 작용했지만, 지진 피해가 제법 큰 마을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현장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달마스타리로 접근하는 도중에도 길거리에 무너진 집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하지만 그 정도는 달마스타리에 비해선 약과였다. 달마스타리는 전체 가옥 중 60%가 무너졌다고 했다. 성한 집보다 무너진 집이 더 많다는 이야기 아닌가. 달마스타리 이웃에 있는 파담살이란 마을은 60여 채의 가옥 전량이 파손됐다고도 했다.

 

달마스타리 마을에서 직접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원불교 교무로부터 피해 현황을 설명듣고는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은 정말 폭격을 맞은 것처럼 처참하게 널부르져 있었다. 성한 집을 찾기가 어려웠다. 뭐라 할말을 잃었다. 어떤 사람들은 잔해에서 살림살이를 꺼내고 있었고, 어느 노부부는 허물어진 잔재 위에서 보리를 타작하고 있었다. 어차피 살아난 사람은 질긴 삶을 이어가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노란 캡모자에 검정 선글래스를 쓰고 나락을 까부르는 아낙의 모습이 묘하게 다가왔다. 이것도 슬픔을 이겨내는 한 가지 방편이 아닐까 싶었다. 마침 말레이지아와 타이완에서 왔다는 모 불교단체가 마을 주민들에게 구호품을 나눠주고 있는 현장도 둘러보았다.

 

(사진) 달마스타리로 가는 길에 도로 중앙에 앉아 쉬고 있는 소들을 발견했다.

하필이면 번잡한 도로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사진) 카트만두를 벗어나 달마스타리로 가면서 본 지진 피해 현장들.

 

 

 

 

 

 

 

 

 

 

(사진) 달마스타리는 전체 가옥 중 60% 이상이 손상을 입어 피해가 큰 지역이었다.

 

(사진) 지진 피해 현장에서 보리를 까부르는 아낙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다.

 

 

 

 

 (사진) 말레이지아와 타이완 불교 단체에서 현지 구호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다 - 아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캄보디아] 프놈펜-2  (2) 2016.05.05
[캄보디아] 프놈펜-1  (4) 2016.05.04
[네팔] 달마스타리  (0) 2015.05.21
[네팔] 박타푸르 ③  (2) 2015.05.20
[네팔] 박타푸르 ②  (0) 2015.05.19
[네팔] 박타푸르 ①  (0) 2015.05.18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트만두에서 만난 현지인 친구는 마치 예언자처럼 네팔에선 80년마다 커다란 지진이 일어난다고 했다. 어디서 80년이란 주기가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예전에 일어났던 한 가지 사건이 떠올랐다. 1934년에 일어난 대규모 지진으로 인해 박타푸르에 있던 문화재가 상당 부분 파괴되었던 적이 있었다. 올해가 2015년이니 꼭 81년 전에 일어난 사건 아닌가. 그래서 그 친구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담담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덜발 광장에 있는 문화재가 모두 부서진 것은 아니었지만 기단만 남겨놓은 채 상부의 탑은 송두리째 사라진 것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그 앞에서 한쪽 발을 들곤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는 대만 봉사단원들의 철없는 행동을 보곤 절로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덜발 광장을 벗어나 사람들이 주거하는 지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긴 상황이 더 나빴다. 무너진 건물들이 한두 채 보이더니 한꺼번에 왕창 무너진 현장도 나타났다. 건물이 서로 붙어있다시피 해서 하나가 무너지면 옆 건물도 도미노 현상을 막을 수 없었으리라. 벽에 금이 가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무너져내릴 것 같은 건물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옥상에 놓인 화분은 떨어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었다. 현지 사람들은 이제 만성이 된 것인지 손을 놓고 여기저기 앉아만 있었다. 얼굴엔 슬픈 표정도 거의 없었다. 굴삭기 한 대만 열심히 무너진 건물 잔해를 퍼담고 있었다. 마침 카트만두의 한 로타리 클럽에서 구호품으로 쌀을 가지고 왔다. 길게 줄을 선 주민들 앞에서 간단한 전달식을 갖는 것 같았다. 서로 어려움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진) 박타푸르 덜발 광장의 모습. 주로 탑이 많은 손상을 입었다.

 

 

 

 

 

 

 

 

 

 

 

(사진) 주민들이 주거하는 지역은 폭격을 맞은 듯 많은 건물들이 무너지고 말았다.

인명 피해도 많았겠고 이재민도 많이 생겼을 것 같았다.

 

 

 (사진) 카트만두 로타리 클럽에서 트럭에 쌀을 싣고와 자체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다 - 아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팔] 달마스타리  (0) 2015.05.21
[네팔] 박타푸르 ③  (2) 2015.05.20
[네팔] 박타푸르 ②  (0) 2015.05.19
[네팔] 박타푸르 ①  (0) 2015.05.18
[네팔] 카트만두 ③  (0) 2015.05.16
[네팔] 카트만두 ②  (0) 2015.05.14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타멜을 벗어나 아싼(Asan) 시장으로 향했다. 사람사는 냄새를 맡기엔 재래시장보다더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쪽으로 가면서도 이번 지진으로 시장도 막대한 타격을 받았으면 어쩌나 싶었다. 예상대로 시장 규모는 예전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상인 숫자도 많이 줄었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의 활력은 여전했다. 사람들이 바삐 오가고 물건값을 두고 흥정하는 소리로 시끄럽기까지 했다. 예기치 못한 지진으로 나라 전체가 침통한 분위기라 해도 어차피 산 사람은 삶을 영위해야 하고 그런 민초들의 치열한 삶이 시장엔 있었다.

 

길거리 좌판에 몇 가지 물건을 올려놓곤 마냥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이 많았다. 야채 몇 단이 전부인 상인도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만한 이이들 넷이 꽃송이 몇 개를 올려놓곤 매대를 차렸다. 가격을 물어보는 사람도 없는데 아이들 표정은 진지했다. 누가 저것을 사러 올까 궁금했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차분히 기다릴 수는 없었다. 좁은 골목 양쪽으론 두세 평에 불과한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판매하는 품목도 노점상보단 다양했다. 약재가게를 비롯해 생선가게, 야채가게, 튀김가게, 옷가게도 있었고 고기를 썰고 있는 푸줏간도 있었다. 두 팔이 잘린 마네킹이 쓰레기로 버려진 장면을 보곤 절로 미소가 나왔다. 네팔을 찾을 당시의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사진) 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에 여념이 없는 시장 상인들. 꼬마 상인들의 심각한 표정이 재미있었다.

 

 

 

 

 

 

(사진) 가게를 가지고 있는 상인들은 노점상에 비해선 그래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사진) 한가로운 릭샤꾼의 손에도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쓰레기장에는 팔이 잘린 마네킹이 버려져 있었다.

 

 

(사진) 어둠이 내려 앉아도 가게는 밤늦게까지 불을 밝혔다.

 

 

 

(사진) 최근에 문을 열었다는 한식당 궁.

식당도 깨끗하고 음식도 정갈했지만 음식값이 다른 식당에 비해선 좀 비싸지 않나 싶었다.

 

 

'여행을 떠나다 - 아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팔] 박타푸르 ②  (0) 2015.05.19
[네팔] 박타푸르 ①  (0) 2015.05.18
[네팔] 카트만두 ③  (0) 2015.05.16
[네팔] 카트만두 ②  (0) 2015.05.14
[네팔] 카트만두 ①  (2) 2015.05.13
중국 저장성 우전 동책 ③  (0) 2015.05.08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네팔 현지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카톨릭 교구청을 찾았다. 네팔 전역에 약 8,000명의 카톨릭 신도가 있어 34개 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네팔에 교구청이 생기고 주교좌 성당까지 생긴 것이다. 오랫동안 국교로 지정되었던 힌두교가 왕정이 무너지면서 덩달아 국교에서 철회되어 현재 네팔에선 종교 선택의 자유가 인정되고 있다 한다. 주교를 면담하기 전에 어썸션 성당(Assumption Parish)에서 미사부터 참여를 해야 했다. 카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전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무려 한 시간 반이나 걸려 다섯 명의 신부가 집전한 미사는 경건하게 치뤄졌다.

 

우리의 주요 임무인 구호기관을 면담하고 지진 피해 현장을 살펴보고 난 후에 막간을 이용하여 타멜(Thamel)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여기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이전과 크게 다른 점은 거리를 활보하는 외국인의 숫자가 현격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타멜 경기에 치명적인 타격이 있을 것이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길 빌었다. 타멜 거리에도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들이 가끔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사람들이 사는 주거 공간이 나온다. 흙벽돌을 쌓아 지은 허름한 건물이 이번 지진에 용케도 살아 남았다.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안감을 느낄까 걱정이 앞섰다.

 

 

 

 

 

(사진) 네팔 주교좌 성당인 어썸션 성당에서 진행된 미사에 참여를 하였다.

 

 

(사진) 미사가 끝나고 기도 호텔(Hotel Kido) 안에 있는 일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사진) 카트만두의 길거리 모습은 여전히 활기로 넘쳤다.

 

 

 

 

 

 

 

 

(사진) 타멜의 길거리 풍경과 골목 안으로 숨어있는 주거 공간.

 

 

(사진) 일본인이 운영하는 우동집은 손님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었다.

 

 

'여행을 떠나다 - 아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팔] 박타푸르 ①  (0) 2015.05.18
[네팔] 카트만두 ③  (0) 2015.05.16
[네팔] 카트만두 ②  (0) 2015.05.14
[네팔] 카트만두 ①  (2) 2015.05.13
중국 저장성 우전 동책 ③  (0) 2015.05.08
중국 저장성 우전 동책 ②  (0) 2015.05.07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어느 후배의 부탁으로 급히 네팔을 다녀오게 되었다. 지난 425일 발생한 대규모 지진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효율적인 지원방안을 찾기 위한 방문이었다. 카트만두야 그 동안 여러 차례 다녀온 곳이기에 낯선 곳에 대한 설레임은 없었다. 언론 매체를 통해 엄청난 지진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침통한 마음으로 비행기 트랩을 내려섰다. 하지만 차창을 스치며 지나가는 카트만두 도심은 예전과 같이 활력이 넘쳤다. 사람과 차량이 도로에 넘쳤고 매연, 클랙션 소리도 여전했다. 아무리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카트만두에선 무너진 건물이나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가물에 콩나듯 어쩌다 무너져내린 집이 한두 채 보였다. 카트만두는 실제로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았다. 사람들 얼굴도 평안하기 짝이 없었다.

 

카트만두를 걸으며 카트만두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왕궁의 담장이 길게 무너져내렸고 넓은 공터나 운동장에는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일까? 아니면 집이 무너질지도 모를 걱정에 밖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팔 전역에서 8,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는 상황에서 카트만두가 이만 해서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트만두 도심의 건물이나 가옥이 피해를 입었더라면 사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카트만두 아래에 자리잡은 거대한 암반이 지진 피해를 줄였다는 이야기가 사실인 모양이다.

 

그렇게 신이 많다는 네팔에서 이 무슨 참변이냐고 한 마디 했더니 네팔인 친구가 답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신이 많았으니까 피해가 이 정도로 그쳤던 것이 아니냐는 반문에 할말을 잃었다. 지진이 발생했던 날이 네팔 휴일이었던 토요일이었다. 시각도 정오 직전인 오전 1155분이었다고 한다. 그 이야긴 집 안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는 의미다. 만약 이 지진이 자정 무렵에 일어났다면 집 안에서 잠자고 있던 엄청난 사람들이 참변을 당했을 것이란다. 이런 상황에선 어울리지 않겠지만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진짜 네팔 신들이 많은 덕이 아닌가 싶었다.

 

 

(사진) 카트만두 트라뷰반 공항에 내렸다. 공항 앞에 늘어선 인파의 환영을 받았다.

 

 

(사진) 담장 아래 쌓인 붉은벽돌이 내 눈에 비친 첫 지진 피해였다. 피해가 크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진) 카트만두의 유명 이태리 레스토랑인 파이어 앤드 아이스(Fire and Ice)에서 리소토로 점심을 해결했다.

 

 

 

(사진) 그리 크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들었던 빌라 에베레스트(Villa Everest)는 지붕에서 기와 두 장 떨어진 것이 전부였다.

벽면 사진 속에선 박영석 대장이 웃는 모습으로 우릴 맞았다.

 

 

 

 

(사진) 왕궁 담장이 꽤 많이 무너져 있었다. 통째로 넘어진 어느 담장은 보도로 변했다.

잔디밭에 세워진 천막도 볼 수 있었다.

 

 

(사진) 빨래터를 지나면서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사진) 저녁을 해결한 카트만두의 한식당 서울 아리랑.

 

'여행을 떠나다 - 아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팔] 카트만두 ③  (0) 2015.05.16
[네팔] 카트만두 ②  (0) 2015.05.14
[네팔] 카트만두 ①  (2) 2015.05.13
중국 저장성 우전 동책 ③  (0) 2015.05.08
중국 저장성 우전 동책 ②  (0) 2015.05.07
중국 저장성 우전 동책 ①  (0) 2015.05.06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설록차 2015.05.24 1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팔에 다녀오셨어요...
    카트만두 같은 대도시에 피해가 적은 것은 천만다행이네요...
    낙천적인 사람들이라 잘 이겨낼거다 하셨지만 얼마나 불안하고 불편할지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일본이나 필리핀 지진 때 보다 언론에서도 덜 다루는 것 같아요..더 가난한 나라 아닙니까...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클텐데 빠른 복구를 빌겠습니다...

    • 보리올 2015.05.24 2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갑자기 네팔 다녀올 기회가 생겼습니다. 네팔의 현실을 참 잘 보셨습니다. 관광 수입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나란데 요즘은 그나마 트레커들도 발길을 끊고 있어 걱정입니다. 얼마간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