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캐시드럴 피크(Cathedral Peak, 3005m)를 오르는 날이다. 지난 1년 가까이 무릎에 통증이 있어 과연 오를 수 있을까 솔직히 의구심부터 들었다. 갈 수 있는 만큼만 가기로 했다. 오전 8시 30분에 숙소를 나서 캐시드럴 피크 호텔의 하이커스 파킹에 차를 주차했다. 호텔로 걸어가다가 급커브에서 트레일 표식을 발견하곤 산길로 들어섰다. 댐으로 막힌 조그만 호수를 하나 지났다. 호수에서 캐시드럴 피크까지 20.5km란 이정표가 보였다. 편도인지, 왕복인지는 표시가 없었지만 왕복이 분명했다.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되더니 나무 한 그루 없는 능선으로 올라섰다. 하늘엔 구름이 제법 많았지만 햇볕이 나면 그 뜨거움이 장난이 아니었다. 계속 오르막이 나타나 은근히 무릎에 신경이 쓰였다. 앞에서 걷던 친구도 자꾸 멈춰서는 뒤처진 나를 기다리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두 시간 가량 꾸준히 걸어 올랐을까. 왼쪽 무릎 통증은 그렇다 쳐도 돌계단이나 바위를 오를 때 줄곧 오른쪽 다리만 쓰게 되니 오른쪽 허벅지에서 쥐가 자꾸 났다. 앞서 가는 친구를 불러 세워 어디서 점심이나 먹자고 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내겐 점점 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9~10시간 산행에 두 발로 걸어 올라야 하는 등반고도가 1,600m라니 내 무릎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속이 쓰리지만 친구만 다녀오라고 했다. 정상을 앞에 두고 중도에 산행을 포기한 경우는 내 생애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혼자 쉬고 있으려니 한 젊은이가 엄청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영국에서 왔다는 조(Joe)에게 먼저 오른 내 친구가 있으니 필요하면 도와주라고 부탁했다. 정상 부위에 기어올라야 할 벼랑이 몇 군데 있어 추락하면 위험하단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땡볕에서 무작정 몇 시간을 기다리기가 그래서 아픈 무릎과 허벅지를 달래며 천천히 해발 2,420m의 오렌지 필 갭(Orange Peel Gap)까지 오르기로 했다. 경사가 급했고 바위도 많았지만 느릿느릿 오렌지 필 갭에 올랐다. 능선 너머의 산악 풍경은 지금까지 보았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게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늘이 없는 곳이라 쉴 곳이 마땅치 않았다.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봉우리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해발 2,500m는 되어 보였다. 밑에선 뾰족해 보이던 봉우리는 의외로 정상이 평평했다. 맘껏 쉬고는 내 속도를 고려해 먼저 하산하기로 했다.
무척 지루한 하산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걸 어찌 올라왔나 싶었다. 수시로 멈춰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았다. 드라켄스버그 산맥에 속한 높다란 봉우리들이 커다란 장벽을 만들고, 그 안에는 푸른 잔디로 이뤄진 구릉과 계곡이 넘실대는 모습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아프리카에도 이런 산악 지형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만 바라보아도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정상에 가지 못 한 섭섭함도 좀 가셨다. 조그만 물줄기가 지나는 벼랑 아래서 그늘을 발견했다. 성질이 고약하다는 원숭이 바분(Baboon)이 떼를 지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여기서 3시간을 기다렸다. 가이드를 동반한 백인 남녀 5명이 내려오면서 ‘네 친구 10분 뒤에 내려올 거다’며 지나친다. 오후 5시가 훨씬 넘어 영국 젊은이 조와 친구가 함께 내려왔다. 친구도 길을 잘 못 들어 정상에 오르지는 못 했다고 한다. 두 번째 도전이었던 그 친구에겐 무척 아쉬운 일이었다. 조와 함께 디디마 리조트로 돌아와 시원한 맥주로 갈증부터 달랬다.
캐시드럴 피크 호텔로 오르는 길목에서 만난 트레일 헤드
나무가 드문드문 자라는 계곡, 그 주변을 푸르게 꾸민 초지가 나타나 오르막 길의 고단함을 달래줬다.
바위로 이루어진 경사면을 지나 능선 위로 올라서면 웅장한 산악 지형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오른쪽에 캐시드럴 피크, 왼쪽엔 아우터 혼과 이너 혼이 구름에서 벗어나 모습을 드러냈다.
고도를 높일수록 캐시드럴 피크 밸리의 아름다운 풍경이 더 넓게 눈에 들어왔다.
트레일은 능선을 따라 계속 오르막으로 이어졌고, 해발 2,000m를 넘기자 더위도 좀 가셨다.
오렌지 필 갭을 오르기 전에 이른 점심을 먹으며 멋진 산사면과 봉우리를 눈에 담았다.
오렌지 필 갭에 올라 현지 가이드를 동반한 두 명의 하이커를 만났다. 정상을 밟고 기분 좋게 산을 내려가는 길이었다.
해발 2,500m 정도로 추정되는 이름 모를 봉우리에 올라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맘껏 쉬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많다 보니 산봉우리에 올라 여간해선 찍지 않던 셀피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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