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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멕시코 시티 – 국립 인류학 박물관

여행을 떠나다 - 중남미

by 보리올 2013. 8. 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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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인류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으로 가는 길. 지하철 역에서 나와 무슨 공원인가를 지나치는데 담장 너머로 한국정이라 이름 붙은 정자가 하나 나타났다. 자세히 보기 위해 차풀테펙(Chapultepec) 공원 입구를 찾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무슨 정원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었다. 한국정을 세운 배경을 설명해주는 안내판에는 한글이나 영어는 없었다.  스페인어로만 적으면 난 까막눈이 되는데 말이다. 나중에서야 이 정자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우리 정부가 멕시코에 기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이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고국의 흔적을 찾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멕시코 시티에 오면 이 인류학 박물관은 꼭 봤으면 한다. 그 규모도 엄청 나지만 박물관 자체도 세계적인 수준이라 감히 이야기 하고 싶다. 스페인 통치 이전 멕시코에 존재했던 찬란한 문화를 전시하고 있었다. , 테오티우아칸과 마야 유적을 비롯해 아즈텍 문명까지 엄청난 유적을 모아 전시하고 있었고, 각 지역별로 출토된 유적을 분리해 전시하기도 했다. 런던의 대영 박물관이나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비교하긴 어려울지 몰라도 멕시코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볼 수 있는 대단한 박물관임에는 분명했다. 멕시코 문화 유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하루를 꼬박 투자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았다.

   

57페소인가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서면 ㅁ자 모양의 박물관이 나타난다. 그 가운데에는 기둥 하나로 넓은 지붕을 받들고 있는 특이한 모양의 분수가 있다. 이 단순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조형물은 1985년 일어난 강도 8의 지진에도 끄덕 없었다고 한다.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페드로 라미레스 바스케스(Pedro Ramirez Vazquez)가 설계한 작품으로 그 기둥에는 멕시코 역사가 상징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1976년 새로 지은 과달루페 바실리카 성당도,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축구와 1970, 1986년 두 차례 월드컵 결승전을 치뤘던 멕시코 시티의 아즈텍 스타디움도 모두 이 사람 작품이었다.

 

 

 

박물관 1층은 선사시대부터 아즈텍 문명까지 멕시코의 각기 다른 문명이 남긴 유물을 12개의 전시실에 전시하고 있었고, 2층은 멕시코 민족사에 많은 공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테오티우아칸에서 보았던 케찰코아틀(Quetzalcoatl) 신전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제 5전시실, 치첸이샤를 비롯한 많은 유적지에서 발굴한 마야 유물을 보여주는 제 10 전시실이 아무래도 내 관심을 많이 끌었다. 하지만 스페인에 의해 망한 마지막 문명이 아즈텍이었기에 아즈텍 유물이 가장 많이 전시되고 있었다.

 

사실 아즈텍 문명은 마야나 잉카 문명에 비해 연대적으로 그리 오래된 문명이 아니다. 아즈텍 문명은 현재 멕시코 시티 일대에 살던 아즈텍 사람들이 14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꽃피웠던 것인데, 우리는 마치 마야나 잉카 문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대 문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스페인이 1521년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킨 후 아즈텍 중심지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 지역에 멕시코 시티를 건설했기에 시간적, 공간적으로 아즈텍 유물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유물 보존 상태도 좋았다. 아즈텍 유물 중에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연 태양의 돌이었다. 이것은 아즈텍 달력인데 그들은 1년을 오늘날처럼 365일로 정확히 계산했다고 전해 진다.

 

 

 

 

 

 

 

 

 

 

  

박물관 순례는 은근히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전시 중인 멕시코의 옛 유물이 워낙 많아 꼼꼼히 보려면 하루를 잡아도 충분치 않을 것 같지만, 반나절 보고는 어디 앉을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그만 밖으로 나왔다. 멕시코 시티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이 한 군데 더 있었기 때문에 몸이 피곤해도 맘대로 쉴 수가 없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박물관을 보기 위해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코요아칸(Coyoacan) 역으로 갔다. 이 지하철 3호선은 가장 붐볐고 유독 잡상인들과 걸인들이 많았다. 역마다 한두 명이 승차해서는 엄청 빠른 말로 시끄럽게 떠들다가 다음 역에서 내리면 다른 잡상인들이 교대로 올라오는 형국이었다.

 

뜨거운 땡볕을 마다 않고 꽤 먼 거리를 걸어 프리다 칼로 박물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을 닫아 버렸다. 정기 휴일도 아닌데 왜 문을 닫았을까. 내가 멕시코를 찾은 주요 원인 중에 하나가 프리다 칼로를 만나기 위함인데 사전 통지도 없이 이러면 어쩐단 말이냐. 좀 허탈했다. 여기를 찾아온 젋은이들도 황당해하긴 마찬가지. 멕시코에 다시 오라는 의미인가?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다. 18세 꽃다운 나이에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었지만, 절망과 좌절을 이겨내고 운명과 맞서 침대에서 그림을 그렸던 여자다. 슬픔이 가득하고 일면 광기가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특히 사진으로 본 슬픈 얼굴의 자화상은 너무 처연해 보였다. 디에고 리베라와 부부가 되었지만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다시 소칼로 광장으로 나왔다. 멕시코 시티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어디를 오고갈 때 자주 들리게 된다. 멕시코 시티 대성당이라 불리는 메트로 폴리타나 성당(Catedral Metropolitana)을 찾았다. 중남미 최고의 성당 가운데 하나인데, 우리나라 명동 성당이라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1520년에 짓기 시작해 근 300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대성당을 들어가니 제단은 온통 금칠을 해놓았다. 유럽에 있는 성당과 외양은 비슷했으나 스테인드 글라스가 없는 것이 좀 달랐다. 이 대성당도 지반 침하로 바닥이 갈라지고 건물이 기우는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과달루페 옛 성당과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아즈텍 원주민들이 가장 신성시했던 신전을 허물고 그 위에 대성당을 지은 스페인 정복자에게 보내는 슬픈 영혼들의 소박한 복수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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