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포르투(Porto)에 도착했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추억이 어린 포르투를 다시 찾게 된 것이다. 그 당시도 1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내 머릿속에 포르투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겨 놓기엔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포르투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숙소를 잡는 것이었다. 버스를 함께 타고 온 한국 젊은이를 쫓아가 호스텔을 잡았다. 이름이 갤러리 호스텔이었는데 실내 장식도 꼭 전시장처럼 꾸며 놓았다. 친절하게도 직원이 포르투에서 꼭 봐야할 명소를 지도에 표시해주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직원들 모두가 무척 친절했다. 이 호스텔은 온라인 상으로 한국 젊은이들에게서 호평을 받는 것 같았다. 투숙객 중에 한국인들이 유난히 많은 것이 그 증거리라.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도우루(Douro) 강 하구에 자리잡은 항구 도시인 포르투는 포르투갈의 제 2의 도시다. 포르투갈이란 나라 이름이 이 도시에서 나왔으니 비록 그 위세가 리스본에 밀리긴 하지만 그래도 자부심을 가질만 했다. 도심 지역은 그리 크지 않아 걸어서 하루, 이틀이면 웬만한 명소는 모두 돌아볼만 했다. 일단 호스텔 직원이 설명해준 명소를 서너 개의 권역으로 나누었다. 맨 처음 찾아간 곳은 시청사의 북서쪽에 있는 볼량 시장(Mercado do Bolhao)과 알마스 성당(Capela das Almas), 마제스틱 카페(Majestic Café)를 위주로 해서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지도 한장 달랑 들고는 관광객 모드로 전환해 세 시간 정도 천천히 걸었던 것 같았다.

 

 

 

 

포르투엔 고풍스런 분위기가 넘쳐났고 정감이 가는 골목과 건물도 많았다.

여기저기서 길거리 행사도 열리고 있어 관광도시로서의 격조를 느낄 수 있었다.

 

 

 

리베르다지(Liberdade) 광장에 면해 있는 임페리얼 맥도널드는 꽤나 유명한 곳이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 매장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입구에 독수리상이 세워져 있었고,

내부는 샹들리에와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되어 있어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햄버거를 하나 시켜 간식으로 먹었다.

 

 

 

1913년에 개관한 리볼리 극장(Teatro Rivoli)과 그 주변 모습

 

 

 

 

 

볼량 시장는 치즈나 빵, 올리브, 훈제고기, 소시지 등을 팔던 재래시장으로 19세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요즘엔 야채나 과일, 와인 등 품목이 좀더 다양해졌다. 특이하게도 사방으로 둘러싸인 건물 안에 노천 시장이 들어서 있었다.

 

 

 

 

알마스 성당은 파란 타일을 사용한 아줄레주(Azulejo) 장식을 하고 있어 눈길을 잡아 끌었다. 성당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까지도 아줄레주를 사용했다. 이 아줄레주는 16세기에 포르투갈로 유입된 아랍 문화권의 영향이라 한다.

 

 

 

1921년에 오픈한 마제스틱 카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냥 구경만 하고 지나쳤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는데,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이 여기서 책을 썼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프란세지냐(Francesinha)를 시식해보려 했지만 부득이 다른 곳에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포르투 시내를 운행하는 트램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존재였다. 1872년에 말이 끄는 트램을 운행하기 시작해

1895년에 전기 구동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때는 30여 개 노선이 있었지만 지금은 3개만 살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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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 구간만 걸으면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창문을 열고 날씨를 확인했더니 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하늘에서 시련을 주는구나 싶었다. 이곳의 일기예보는 왜 이리 잘 맞는 것이냐며 속으로 구시렁거리다가 밖으로 나섰다. 어둠이 짙게 깔린 오전 8시 정각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우의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제법 컸다. 바닷가를 따라 걷다가 십자가를 만나는 지점에서 도로를 건넜다. 어느 식당 앞에 있는 표지석을 발견하곤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피스테라에서 무시아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선 것이다. 표지석에 있는 조가비 표식은 산티아고에 이르는 순례길 표식과 비슷해 보였지만 위로 뿔 두 개가 달려 약간 다르게 만들어 놓았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산 살바도로(San Salvador)를 지나 부싼(Buxan)으로 들어섰다. 마을 이름이 우리나라 부산을 연상시켰다. 어느 집 담장에 순례자를 위해 주스와 사과를 내놓았다. 도네이션 박스도 없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주스를 한잔 따라 마셨다. 부싼을 벗어나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데 왼쪽으로 바다가 나타난다. 하루 종일 바다를 보며 걷는 줄 알았는데 이제사 바다를 본다. 순례길을 벗어나 바다로 나갔다. 모래 언덕이 넓게 형성돼 해변은 보이지 않았다. 우중충한 하늘, 거센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거기에 굵은 빗방울까지 어우러져 바다 풍경이 좀 칙칙했다. 작은 마을 몇 개를 지났다. 마을마다 개를 기르는 집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것도 덩치가 산만한 녀석들을 말이다. 한 녀석이 문을 뛰쳐나와 목청껏 짖으며 나에게 덤벼들기에 스틱으로 한대 때려주었다. 강아지를 부르며 좇아나오는 주인의 눈초리가 사납게 느껴졌다.

 

오전 11시 조금 넘어 리레스(Lires)에 도착했다. 오늘 구간의 중간쯤에 있는 마을이다. 알베르게와 카페가 있는 유일한 곳이라 카페에 들러 맥주와 크로아상으로 간식을 했다. 여기서 크레덴시알에 스탬프를 받았다. 다시 숲으로 올라 임도를 걸었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무성한 숲이 나타났다. 줄을 맞추어 일정한 간격으로 심은 인공조림 현장이었다. 유칼립투스가 3년이면 13m까지 자라는 속성을 이용해 손쉽게 펄프용 목재를 얻으려는 것이다. 프랑코 독재 정권은 스페인에 자생하는 참나무를 베어내고 거기에 이 유캅립투스를 심도록 했다. 그 결과 갈리시아 지방의 1/3은 유캅립투스가 덮고 있다고 한다. 난 이 유칼립투스 나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유칼립투스 숲에선 다른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고 동물 또한 먹잇감이 없어 살지 않는다. 나무에서 나오는 껌 같은 끈적한 유액이 새들을 죽인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비를 피해 점심을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적당한 장소를 찾다가 너무 허기가 져서 길 가운데 배낭을 내려놓고 비를 맞으며 빵과 사과로 점심을 때웠다. 길에서 만난 사람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는데 하필이면 길바닥에서 점심을 먹는 와중에 차가 한대 올라오더니 나를 불쌍한 듯 쳐다보며 지나갔다. 내가 봐도 내 꼴이 좀 그랬다. 또 다시 작은 마을 몇 개를 지났다. 규모가 작은 것 외엔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어느 마을에서 무시아 3km란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지난 29일 동안 915km에 이르는 거리를 걸어온 여정이 이제 곧 끝난다 생각하니 가슴이 찡했다. 절로 걸음이 빨라졌다. 산티아고에서 순례를 마감하지 않고 피스테라와 무시아까지 걸은 것에 대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 길 또한 옛 순례길이기도 했지만 피스테라와 무시아가 대서양에 면한 스페인의 서쪽끝, 나아가 유럽 대륙의 서단이기 때문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무시아로 들어섰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바닷가에 면해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형형색색의 집들이 마을을 밝게 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었다. 간간히 뿌리는 비를 맞으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곤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산티아고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사람에게 주는 또 하나의 순례증서를 받았다. 모두 세 장의 순례증서를 손에 쥔 것이다. 배낭을 내려놓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바람은 무척 강했지만 비는 잠시 소강상태다. 해발 68m의 몬테 코르피뇨(Monte Corpino)에 올랐다. 여기서 바라보는 마을이 볼만했다. 그 반대편 바닷가에 자리잡은 성당으로 내려섰다. 엄청 큰 돌을 쪼개 놓은 조형물과 바위 위에 세워진 등대,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 등을 차례로 돌아 보았다. 발길을 돌려 마을로 향했다. 피스테라에 이어 또 하나의 땅끝 풍경을 본 것으로 진짜 순례를 마쳤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각에 비 내리는 피스테라를 빠져 나가고 있다.

 

 

피스테라를 막 벗어나 산 마르티뇨(San Martino)로 들어섰다.

 

부싼 마을을 지날 때 한 가정집 담장에 주스와 사과가 놓여 있어 주스 한잔을 따라 마셨다.

 

부싼을 벗어난 곳에서 왼쪽 사구 너머로 성난 바다가 보였다.

 

리레스 마을의 어느 농가 앞에 예전에 쓰던 농기구를 골동품처럼 전시해 놓고 있었다.

 

 

 

리레스를 지나 산길로 접어 들었다. 양쪽으로 숲이 우거져 마치 산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인공으로 조림한 유캅립투스 나무가 도처에 깔려 있었다. 표피가 벗겨진 유칼립투스 나무가 다양한 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가로운 목가적 풍경을 지닌 모르킨티안(Morquintian) 마을

 

비구름에 가린 나무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쑤라란테스(Xurarantes) 마을에서 무시아가 3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무시아를 30여 분 남겨놓고 바다를 다시 만났다. 해변엔 갈매기들이 바다를 등지고 모여 있었다.

 

 

 

무시아도 아름다운 도심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바라본 무시아 마을 뒤로 몬테 코르피뇨가 보인다.

 

 

마을 전경을 보기 위해 십자가가 세워진 몬테 코르피뇨를 올랐다.

 

 

 

 

 

바닷가로 내려서 노사 세뇨라 다 바르카(Nosa Senora da Barca) 성당과 아 페리다(A Ferida)란 조형물,

등대와 바다를 차례로 보았다. 아 페리다는 2002년 프레스티지란 이름의 유조선이

침몰하면서 엄청난 기름 유출이 생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조각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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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sabel 2015.12.30 2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보리울님의 글을 보게되어 우선 축하드립니다 저의 꿈인 산티아고길프랑스길을 마치셨네요 이제부터 꼼꼼히 부러운맘으로 읽어나가겠습니다 혹 궁금한게 있으면 도움을 청해도 되겠지요? 연말에 큰일 무사히 마치셨으니 다가오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보리올 2015.12.31 0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사벨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꾸고 계시는군요. 평생 한번은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준비 잘 하셔서 즐겁게 걸으시기 바랍니다. 혹 궁금한 게 있으시면 저에게 메일(boriol@naver.com)로 연락주세요. 아는 범위에서는 성심껏 답변드리겠습니다.

  2. TISCO 2016.02.12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꿈만 같은 트레킹! 보리올님 글과 사진을 따라 산티아고까지 무임승차 정말 잘했습니다^^ 저 혼자 보고 읽기엔 너무 아까운제요 보리올님 글과 사진을 다른 분들께 소개해도 될런지요?

    • 보리올 2016.02.13 1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과찬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블로그는 아니지만 TISCO님 같은 분이 있어 힘이 납니다. 누구에게나 공개된 공간인만큼 다른 분들께 소개해주시면 저로선 고마운 일이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TISCO 2016.02.13 2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리올님 후기가 훌륭한 길라잡이 이상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아래 URL이 첫글입니다 밴쿠버면 춥겠죠 몸조리 잘하시길^^
      http://cafe.daum.net/nepal-himalaya-news/T3R1/593

    • 보리올 2016.02.14 1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페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네팔 소식과 트레킹 정보가 많더군요. 저도 네팔을 여러 번 다녀왔고 애정도 많은 편입니다. 카페에 소개하는 것은 산티아고 순례기로 국한해주시면 좋겠네요.

    • TISCO 2016.02.15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먼저 사과 말씀부터 올립니다
      몇주 전부터 카페글에 음악을 붙이면 좀 나을까 싶어 붙이고 있는데요
      보리올님 산티아고 후기에도 해서 제 임의대로 음악을 붙였는데요
      가만 생각하니 실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멋대로 음악을 붙였던 것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보리올님의 산티아고 후기!
      저 포함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에 담고 있는 분들이 많겠는데요
      어찌나 세밀하시고 방대하신지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입니다

      히말라야 많은 곳 다녀오신 후기들도 보물이 따로 없다며 감탄 감탄!!
      저희 카페에 소개해 쉐어하면 좋겠지만...
      대신에 히말라야 트레킹 후기 자료가 필요하신 분들이 계실 경우~
      보리올님의 티스토리를 방문토록 말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보리올 2016.02.15 12: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니, 사과하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음악도 별 문제없을 것 같고요. 이렇게 글과 사진이 통째로 카페에 실리는 지는 몰랐거든요. 꼭 블로그 내용이 이사가는 것 같아 산티아고 순례기만 싣자고 한 겁니다.
      .

  3. Justin 2016.04.19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드립니다! 정말 긴 여정이 끝나셨네요! 저도 감격스럽습니다 ~ 순례길 여행은 끝나셨지만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 될 발판이 될거라 믿습니다. 항상 건강 잘 챙기셔서 손자와 함께 3대가 여행을 떠나는 일을 같이 꿈꿔봅니다!

    • 보리올 2016.04.20 0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뒤늦은 축하지만 고맙게 받겠다. 아들과 손자를 데리고 어떤 트레일이라도 걷는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구나.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하룻밤 묵은 마을엔 가게가 없었고 알베르게에도 취사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 배낭에 넣고 다니던 비상식도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다. 8km 정도 떨어져 있는 산타 마리냐(Santa Marina)까지 가서 아침을 먹자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어제 저녁에 알베르게에서 만난 40대 초반의 한국인과 얼마를 함께 걸었다. 슬로바키아에서 왔다는 친구는 엄청 큰 배낭을 지고 우리를 앞질러 간다. 텐트도 있길래 캠핑을 하면서 왔냐고 물었더니 실제 텐트는 세 번인가 치고 매일 알베르게에 묵었단다. 그럴 것이면 텐트는 무엇하러 가지고 다니나 싶었다. 산타 마리냐 성당 앞에 있는 바에서 토스트로 아침 식사를 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토스트가 아니라 이건 일종의 샌드위치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성당을 둘러 보았다.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있는 성당은 공동묘지를 수호하고 있는 듯 했다.

 

몬테 아로(Monte Aro)란 야트마한 산자락에 자리잡은 조그만 마을을 몇 개 지났다. 건너편 아래쪽으론 푸른 초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이 보였다. 아침부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가끔 빗방울이 흩날린다. 신기하게도 우의만 걸치면 비가 그치길 몇 차례 거듭했다. 사람들이 갈리시아 지방의 변덕스런 날씨를 자주 이야기하더니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스팔트 길을 걸어 코르쏜(Corzon)으로 내려서는데 멀리 큰 호수가 나타났다. 처음엔 바다인 줄 알았는데 바다가 아니라 댐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호수였다. 코르쏜의 산 크리스토보(San Cristovo) 성당과 그 옆에 조성된 공동묘지는 무슨 전시장처럼 보였다. 공동묘지를 이렇게 아름답게 꾸며놓은 곳은 솔직히 처음 보았다. 성당 입구에는 십자가가 서있었고 종탑은 성당 건물과 동떨어져 따로 세워져 있었다. 종탑이 본당 건물과 떨어져 있는 것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올베이로아(Olveiroa)로 들어섰다. 어느 건물 벽면에 큰 글씨로 마을 이름을 적어 놓았다. 이렇게 마을 이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마을을 빠져나오면서는 난해한 벽화도 만났다. 피카소의 그림을 흉내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마을 뒤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풍력발전기가 세찬 바람을 타고 열심히 돌고 있었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더니 꽤 높은 고원지대로 올랐다. 저 아래 계곡엔 댐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하류엔 제법 폭이 넓은 강이 흘러가고 있었다. 오로고소(OLogoso)에서 점심을 먹었다. 알베르게를 겸하는 식당인지라 주인이 자꾸 여기서 자고 가라고 권한다. (Cee)까진 너무 멀다고 슬며시 겁도 주었다. 도대체 거리가 얼마나 되기에 그러냐고 물었더니 15km란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충분히 가고도 남지.

 

오스피탈(Hospital)에 있는 카미노 데 피스테라 안내소는 문이 닫혀 있었다. 벽면에 붙은 지도와 거리표를 대충 훝어 보았다. 카바이드를 생산하는 커다란 공장이 나왔고 곧 갈림길이 나타났다. 오른쪽은 무시아로, 왼쪽은 피스테라로 간다. 왼쪽으로 들어섰다. 머지 않아 평원을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운치 있는 길이 나왔다. 마치 선자령 어디쯤을 걷는 것 같았다. 산 속에 성당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그 이름이 산 페드로 마르티르(San Pedro Martir) 성당이라 했다. 근처에 인가나 마을도 없는데 이곳에 성당을 세우면 도대체 누가 찾아온다는 말인가. 그 까닭을 내 머리론 이해할 수 없었다. 산길은 오르내림을 계속 하다가 이번엔 공사 중인 비포장도로를 걷게 되었다. 불도저가 도로 표면을 막 밀어 놓은 곳은 방금 내린 비로 진흙탕이 되어 걷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야트마한 언덕에서 공사 구간이 끝났다. 그런데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바다가 나타날 것이라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엔 잘못 들었겠지 했다. 곧장 언덕 위에 올라서자 저 앞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뿌연 날씨 탓에 시야가 밝진 않았지만 분명 바다였다. 바다가 눈에 들어오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바다쪽으로 내려서면서 점차 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그만 점으로 보이던 배들도 점점 크게 다가왔다. 세에 도착해 알베르게부터 잡았다. 여긴 사립 알베르게였는데 숙박비로 12유로를 받는다. 수퍼마켓에 들러 장을 보았다. 파스타로 저녁을 마치자 피로가 몰려온다. 내일 일찍 피스테라에 도착하기 위해 오늘 40km가 넘는 거리를 걸은 탓이다. 그래도 내일이면 땅끝에서 망망대해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산타 마리냐 마을로 가면서 마주친 시골 풍경

 

공동묘지를 지키고 있는 산타 마리냐의 고풍스런 성당

 

 

마로냐스(Maronas) 마을을 지났다. 축사 안에서 소 한 마리가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갈리시아 지방 특유의 평화로운 들판이 펼쳐졌다.

 

순례자들을 상대로 돈벌이에 나선 택시 회사의 광고가 자주 눈에 띄었다.

 

 

코르쏜에는 아름다운 공동 묘지와 성당이 있었다.

 

올베이로아 마을의 벽화를 보면서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좀 답답했다.

 

 

올베이로아를 지나 고원으로 오르니 댐과 그 건너편 능선에 설치된 풍력발전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오로고소 마을의 카페에서 점심으로 햄이 들어간 보카딜료스에 맥주를 시켰다.

 

오스피탈 마을엔 카미노 데 피스테라 안내소가 있었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오스피탈에서 피스테라와 무시아 가는 길이 갈렸다. 피스테라를 먼저 가기로 했다.

 

 

고원을 굽이쳐 흐르는 순례길이 눈앞에 펼쳐져 순례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산길을 걸으며 저 아래 보이는 마을을 지나쳤다. 무슨 수도원 건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숲속에 홀로 세워진 산 페드로 마르티르(San Pedro Martir) 성당

 

순레길이 지나는 비포장도로가 공사를 하고 있어 진흙탕을 지나야 했다.

 

 

언덕 위로 올라서자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세 마을도 눈앞에 나타났다.

 

 

 

 

 

바닷가에 자리잡은 세는 꽤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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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4.14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동묘지에 신경을 많이 쓴거같아요 ~ 이쁩니다! 바다를 볼 수 없었던 순례길을 쭉 걸으시다가 끝내 보시게 되었을때 감회가 어떠셨어요?
    마치 백두대간 구간을 걷다가 마지막 봉우리를 찍고 하산하는데 찻길이 보이는 느낌일거같아요~

    • 보리올 2016.04.14 2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언젠가 바다가 나타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바다를 보니 이제 끝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네 표현대로 백두대간 끝내고 진부령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생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25일 동안 꾸준히 걸어 오늘 산티아고로 입성한다. 그렇게 흥분되거나 가슴이 설레진 않았다. 더군다나 대서양에 면해 있는 땅끝마을 피스테라와 무시아까지 4일을 더 걸을 것을 생각하니 종점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남들을 깨울까 싶어 불도 켜지 않고 배낭과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와 다시 짐을 쌌다. 출발을 하기 직전에야 안경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알베르게로 돌아가 침대를 뒤졌는데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배낭에 있는 짐을 모두 꺼냈더니 맨 밑바닥에서 나왔다.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채로 말이다. 카운터에서 테이프를 빌려 임시로 붙여 놓았다. 살세다 마을을 통과해 나오는데 강아지들이 합창을 하듯 일제히 짖어댄다. 동녘 하늘에 붉은 기운이 퍼지더니 불쑥 해가 솟았다. 순례 마지막 날의 날씨가 화창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마을 간격이 많이 좁아졌다. km씩 떨어졌던 마을이 이제는 불과 몇 백 미터에 하나씩 나타났다. 오전에 벌써 크지 않은 마을을 몇 개나 지났다. 한 마을에선 문이 열린 오레오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 보관 중인 옥수수가 드러났고 배고픈 참새들이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가고 있었다. 참새의 굶주림까지 걱정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골 사람들의 인심이 느껴졌다. 내가 다가서는 것을 어찌 감지했는지 녹음된 음성이 갑자기 흘러 나와 날 놀래켰던 마을도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마지막 말, 부엔 카미노는 알아 들었다. 어느 곳에 있는 알베르게를 선전하는 내용 같았다. 어제부터 느낀 것인데 길가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부쩍 많이 보였다. 지금까진 참나무가 많았는데 말이다.

 

산티아고 경내로 들어섰다.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대성당까진 11km를 걸어야 했다. 공항 활주로가 끝나는 지점을 지나 라바코야(Lavacolla)에 도착했다. 예전 사람들은 순례를 하면서 거의 씻지를 못하다가 여기서 몸을 씻곤 산티아고로 들어갔다고 한다. 라바코야의 어느 성당을 지나는데 마침 미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그 앞에 있는 임시 가판대에서 꽈배기를 한봉 샀다. 도로를 건너다 발견한 가게에서 사과와 콜라를 사서 꽈배기와 함께 점심으로 먹었다. 산티아고를 10km 남겨놓은 지점부터는 거리를 알리던 표지석이 사라져 버렸다. 몬테 도 고쏘(Monte do Gozo)에 도착했다. 얕은 언덕 위에 교황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기념해 만든 탑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었다. 순례길에서 가장 크다는 몬테 도 고쏘 알베르게는 무려 400명을 수용한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들어섰다. 이곳을 순례한 유명인사들의 부조를 넣어 만든 높다란 탑이 순례자들을 맞는다. 갈리시아 자치주의 주도답게 건물이나 식당이 크고 화려했다. 조가비 표식을 따라 대성당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이 이리저리 엉켜 상당히 복잡했지만 내 눈엔 오히려 정겹게 보였다. 세월을 머금은 고풍스러움도 물씬 풍겼다. 그래서 산티아고의 올드타운이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것이다. 1075년에 착공해 1211년 완공된 대성당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백파이프 부는 사람의 환영을 받았다. 1유로를 기부했다. 대성당 앞 광장으로 들어갔다.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완주를 축하하거나 바닥에 앉아 대성당을 올려다 보며 감동의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아쉽게도 대성당 첨탑은 보수 중이라 거푸집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순례자협회에서 순례증서를 발급받았다. 증서 발급은 무료였지만 순례증서를 넣는 통은 2유로에 판다. 순례자협회에서 추천한 알베르게는 15분 거리에 있었다. 세미나리오 메노르(Seminario Menor) 188명을 수용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알베르게에서 석양을 지켜 보았다. 오후 7 30분에 예정된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대성당으로 갔다. 먼저 성당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보고 미사에 참석했다.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 불리는 향로는 정해진 요일이나 누가 도네이션을 하는 경우에 좌우로 움직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순례자들이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이 향로를 피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순례자 미사도 마쳤으니 이제 공식적인 순례는 모두 끝났구나 싶었다. 시원섭섭하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 벅찬 감동에 절로 눈물이 났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나에겐 그런 감동은 없었다.

 

살세다 마을을 빠져나오며 일출을 맞았다.

 

옥수수가 들어있는 오레오 문이 열려 있어 참새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N-547 도로를 만나는 지점에서 햇빛에 비친 내 그림자를 찍어 보았다.

 

산타 이레네(Santa Irene)에 있는 작은 성당은 반쯤 숲속에 숨어 있었다.

 

산티아고 경내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석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길을 걸었다. 순례자들이 공항 외곽에 쳐놓은 철망에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놓았다.

 

산 팔로(San Palo) 마을에 있는 이름 모를 성당을 지나쳤다.

 

 

라바코야의 베나발(Benaval) 성당에선 미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몬테 도 고쏘의 교황 바오로 2세 방문 기념탑

 

산티아고 도심으로 들어서면서 만난 기념탑에는 왕가의 인물이나 교황 등 유명인사들의 부조가 새겨 있었다.

 

 

산티아고의 도심 풍경

 

 

 

 

 

 

 

 

오브라도이로(Obradoiro) 광장에선 산티아고 대성당을 올려다 볼 수 있다.

시청사와 호텔 등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의 위용도 대단했다.

 

순례자협회에서 크레덴시알에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순례증서를 발급받았다.

 

산티아고 도심엔 알베르게가 없어 좀 걸어나가야 했다. 규모가 큰 세미나리오 메노르를 소개받아 하룻밤 묵었다.

 

세미나리오 메노르 알베르게는 언덕 위에 있어 산티아고 도심을 배경으로 석양을 볼 수 있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저녁에 순례자 미사가 열렸다. 무사히 순례를 마친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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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춘 호 2015.12.22 09: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가고싶게 만드는 후기인것 같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따뜻한 곳으로 떠나고 싶네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멋진 하루 되세요.

    • 보리올 2015.12.22 1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춘호님도 여행을 아주 좋아하시는 분이더군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글 부탁 드립니다.

  2. Preya 2015.12.22 1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하셨습니다 +_+/
    멋진 순례길이었네요.

  3. 농돌이 2015.12.23 0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고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생을 살면서 기념비적인 획을 하나 그으셨습니다
    일이라는 것이 하나의 과정이 지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오래 오래 행복할 것 같습니다
    지중해까지 가시는지요?

  4. Justin 2016.04.04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짝짝짝~ 일단 산티아고에 입성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티눈과 발목 상태가 좋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오셨네요! 대단하십니다!

    • 보리올 2016.04.07 15: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뒤늦게 이런 축하를 받는구나. 지금은 발목 부상도, 티눈도 다 잊었는데 말이다. 처음엔 왜 이 길을 걷나 싶었는데 다 끝내니 다시 걷고 싶더구나.

 

빵에다 피넛버터를 듬뿍 발라 아침으로 먹었다. 에너지를 축적한다 생각하고 와인 남은 것도 마저 비웠다. 이 마을에서 하루를 묵은 한국인이 꽤 많아 보였는데 이 알베르게엔 한 명도 투숙하지 않았다. 부엌과 와이파이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가랑비를 맞으며 알베르게를 나섰다. 비록 양은 많지 않다 해도 벌써 며칠째 비를 맞으며 걷는다. 어려움을 묵묵히 참아내는 것이 순례자의 태도라 하겠지만 며칠 동안 계속해서 비를 맞으니 기분이 그리 유쾌하진 않다. 갈리시아의 속담에 비를 대비하고 햇살을 원하면 기도하라란 말이 있다는데, 도대체 얼마나 기도를 해야 비가 그칠까 모르겠다. 이러다가 우중충한 날씨가 갈리시아의 첫 인상으로 각인될 것 같았다. 가끔 비가 그치긴 했지만 변덕이 너무 심해 우의를 벗을 수가 없었다.

 

트리아카스텔라 마을 끝에서 길이 갈렸다. 산 씰(San Xil)로 가는 오른쪽 길을 택했다. 사모스(Samos)로 가는 것보다 경치는 별로지만 거리가 짧다고 했다. 비오는 날씨라 앞뒤 생각없이 거리가 짧은 쪽을 택한 것이다. 구름이 많아 갈리시아 지방 특유의 구릉지대를 자세히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었다. 가파른 오르막 길을 걸어 산 씰에 도착했더니 잠시 비가 그치며 햇살이 내리쬐었다. 하지만 10여 분 뒤엔 다시 구름이 하늘을 가리더니 또 다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낙엽이 잔뜩 떨어진 오솔길을 꾸준히 걸었다. 산길 자체는 꽤 정감이 갔다. 천천히 오르막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을 앞질러 가다가 프로미스타에서 헤어진 미국 자매를 다시 만났다. 내 앞에 선 것을 보니 일부 구간을 차로 건너뛴 모양이었다. 간단히 인사만 건네고 앞으로 나섰다.

 

조그만 마을을 여러 개 지났다. 마을 이름을 적어 놓은 곳도 없어 어디를 지나는지도 모른채 그냥 걸었다. 500m 간격으로 세워진 표지판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가옥들 지붕이 좀 특이하게 생겼다. 전에도 몇 차례 보기는 했지만 여긴 지붕을 모두 커다란 석판을 이용해 집을 지은 것이다. 이렇게 얇으면서도 커다란 석판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 나라 너와집과 비슷하단 느낌이 들었다. 갈리시아로 들어와 느낀 것 가운데 하나는 길에 유난히 소똥이 많다는 것이었다. 마을마다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축사를 지날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소똥 냄새가 진동을 했다. 입고 있는 옷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에겐 소똥 냄새가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겠지만 그것도 너무 오래 맡으니 코가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소똥 냄새가 또 하나의 갈리시아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싶었다.

 

사리아(Sarria)로 들어섰다. 꽤 도시가 컸다. 고층 아파트도 보였다. 강을 건너 오르막 길로 들어서니 구시가 분위기가 풍겼고 알베르게도 거의 다 여기 모여 있었다. 그 숫자를 볼 때 순례자들이 이 지역 경제에 상당한 몫을 차지하는 것이 분명했다. 성당도 여기에 많았다. 산타 마리아 성당 벤치에서 빵으로 점심을 때웠다.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를 오다가 몇 개 주웠는데 맛은 시큼했으나 그래도 후식으로 먹었다. 사리아를 빠져 나오다 수도원을 만났다. 문이 닫혀 있어 외관만 살펴보고 있는데 할로윈 복장을 한 아이들이 수 십명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무슨 행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모레가 할로윈이다. 오늘이 몇 일인지도 모른 채 줄곧 걷기만 했는데 벌써 10월 말이 되었다.

 

머리 위로 고가도로가 지나가고 그 아래론 철도가 지난다. 이렇게 건널목을 이용해 철로를 건너가는 것은 순례길에서 처음이 아닌가 싶었다. 이름 모를 마을 몇 개를 또 지났다. 마을 규모도 굉장히 작았다. 어떤 마을은 집이 한 채에 불과한데도 별도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페레이로스(Ferreiros)에 도착하기 직전에 K100 표지판을 보았다. 산티아고가 100km 남았다는 표시라 배낭을 내려놓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제 앞으로 3일만 더 걸으면 산티아고에 도착할 것이다. 페레이로스 알베르게에 들었다. 크진 않았지만 깨끗하고 부엌도 갖춰 놓았다. 육개장 수프에 파스타를 끓여 먹었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 밖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와인 한잔 시켜놓고 시간을 보냈다. 다른 날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산 씰을 지날 때 잠시 비가 그치고 햇살이 나타났다.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오면서 가옥의 지붕이 검정색 석판으로 바뀌었다.

 

야곱을 다시 만난 어느 마을의 매장엔 파는 물품이 몇 가지 되지 않았다.

 

길가에서 발견한 순례길 이정표. 저 아래 문양은 무슨 의미인지 도통 모르겠다.

 

푸렐라(Furela) 마을에서 소를 몰고가는 목동을 만났다.

 

 

사모스에서 오는 길과 합류하는 아기아다(Aguiada) 마을, 조그만 성당이 문을 열어 놓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리아는 강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현대식 건물이 많았고 강 건너엔 구시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사리아에서 만난 산타 마리아 성당과 산 살바도르 성당. 둘다 문은 닫혀 있었다.

 

길가에 벽을 파서 순례자상을 세워 놓았는데 왜 철창으로 보호해 놓았는지 모르겠다.

 

언덕 위에 오르니 사리아 마을 뒤로 펼쳐진 산도 눈에 들어왔다.

 

 

 

 

콘벤토 데 라 막달레나(Convento de la Magdalena) 수도원. 할로윈 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몰려왔다.

 

 

개울을 건너는 돌다리도, 낙엽이 깔린 오솔길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빌레이(Vilei) 마을. 소떼가 초지로 이동하고 있었고, 묘하게 생긴 담장 장식도 만났다.

 

 

갈리시아의 전형적인 시골 마을 모습. 밭에는 채소가 사람 키 크기로 자랐다.

 

집집마다 옥수수를 저장하는 창고를 하나씩 세워놓아 눈길을 끌었다.

 

모르가데(Morgade)를 지나니 길가에 작은 성당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바닥도 울퉁불퉁하고 벽에는 낙서도 많았다.

 

산티아고까지 100km 남았다는 표지석을 보고는 페레이로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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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2.16 2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젖소가 홀스타인이네요
    기후가 따뜻한가 봅니다
    즐기시며 걸으세요

    • 보리올 2015.12.17 02: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하얀색과 검정색이 고루 섞인 소가 홀스타인이죠?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럼 그 아래 사진에 있는 누런 소는 고기를 목적으로 키우는 소인가요?

    • 농돌이 2015.12.17 09: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기를 목적으로 키우는 육용소로 보입니다
      브라만인듯 합니다 덩치가 크고 좀 싸납습니다
      뿔이 동물복지로 제각을 안했네요
      소들도 뿔을 자르거나 거세를 하면 조용해집니다 ㅋㅋㅋ
      내시?

    • 보리올 2015.12.17 15: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에 대해 해박하시네요. 제가 중학교 때 시골에서 농업을 배웠는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은 것은 돼지의 임신기간뿐입니다. 앞으로 한수 가르쳐 주십시요.

    • 농돌이 2015.12.17 1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상경을 공부했는데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모두 축산쪽 입니다
      혹시 걸으시다가 치즈(젖소, 염소,양) 만드는 농가, 소세지만드는 곳
      생햄 만드는 곳 들리시면 사진 부탁해요
      관심이 있어서 지난달에 유럽 잠시 다녀왔습니다
      한국 농촌에 희망이 되는 일이 있어야 하기에 그냥 찿아봅니다

    • 보리올 2015.12.18 0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취지가 너무 좋네요. 치즈 등을 만드는 생활 현장을 촬영하는 것 자체는 좋아합니다만 아쉽게도 그런 사진이 없네요. 예전에 네팔에서 야크 치즈 만드는 현장을 보기는 했지만 사진은 없습니다. 앞으로 염두에 두죠.

    • 농돌이 2015.12.18 0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스페인은 하몽과 탄산들어간 포도주
      치즈가 유명합니다
      참고하셔요 전 삼실 가족들과 전주
      한옥마을 대둔산에 팀빌딩 갑니다
      계속되는 일정이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 보리올 2015.12.18 0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잘 알겠습니다. 하몽은 샌드위치에 넣어 많이 먹었습니다. 유명한 치즈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먹어보진 않았고, 탄산 들어간 와인은 금시초문이군요. 동료들과 팀빌딩 가신다고요?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2. Justin 2016.03.17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할로윈을 미국, 캐나다에서만 하는 줄 알았는데 유럽에서도 하나보죠? 아니면 원래 유럽에서 넘어왔나봐요? 아이들이 귀엽습니다~

    • 보리올 2016.03.17 16: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할로윈은 원래 유럽에서 건너온 전통인데 미국 덕분에 널리 퍼지게 되었지. 유럽 켈트 족이 오래 전부터 행하던 축제거든.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이 행사를 보전해 오다가 감자 기근으로 미국 행을 택한 사람들이 많아 미국에서 널리 퍼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