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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2.04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① (8)
  2. 2018.09.10 [베트남] 호이안 ③ (8)
  3. 2018.09.06 [베트남] 호이안 ② (2)
  4. 2018.09.03 [베트남] 호이안 ① (2)
  5. 2018.08.30 [베트남] 후에 ④ (2)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Ljubljana)에 입성했다. 류블랴나라는 말이 슬로베니아어로 사랑하다란 의미를 지녔다니 이름이 꽤나 낭만적이었다. 예전에 슬로베니아가 유고 연방의 일원으로 있었을 때 이곳을 스쳐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솔직히 기억나는 것은 도시 이름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류블랴나는 인구가 3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다른 나라 수도와 비교하면 작아도 너무 작았다. 하지만 도시 인구 가운데 대학생이 5만 명에 이른다니 젊은 피가 도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심도 크지 않았다. 도심을 관통하는 류블랴니차 강을 따라 볼거리들이 몰려 있어 천천히 걸어다니며 감상하기에 좋았다. 게다가 이름있는 레스토랑이나 노천 카페가 강가에 자리잡고 있어 도심 풍경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었다. 그 가운데 자리를 잡고 슬로베니아 전통 음식이나 커피, 맥주를 음미하며 가까이에서 도심을 즐길 수 있는 것이 류블랴나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사실 류블랴나에 도착한 시각이 어중간한 오후라 숙소부터 체크인을 하고 시내 구경을 겸해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딸이 웹에서 검색한 식당은 율리아(Julija)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프란체 프레셰렌 시인의 첫사랑 이름이 율리아였던 것이 떠올라 마음에 들었다. 율리아 식당이 있는 골목이 류블랴나의 먹자 골목인 모양이었다. 식당도 많았고 사람들 왕래도 잦았다.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길어 테이블도 간신히 잡았다. 이 식당에서 유명하다는 낙지 요리를 시켰다. 육질은 부드러웠지만 맛은 그리 뛰어나진 않았다. 식사를 마치곤 트리플 브리지라고도 불리는 트로모스토브예(Tromostovje) 다리로 산책에 나섰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세 개의 다리가 있는데, 그 디자인이 특이하고 밤에는 조명이 비춰 독특한 풍경을 선사한다. 다리를 건너면 프레셰레노브 광장(Prešerenov Trg)이 나오는데, 거기서 프레셰렌 동상과 프란시스코회 성당을 비롯한 주변 건축물, 특수 조명으로 밝힌 야경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류블랴나 도심으로 걸어가는 길에 부드러운 햇살이 노란색을 칠한 건축물에 내려앉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슬로베니아를 대표하는 건축가 요제 플레츠니크(Jože Plečnik)가 설계한 국립 & 대학 도서관 건물은

책을 펼친 모양으로 창문을 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류블랴나 성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곧 류블랴니차 강에 닿았다.

 

 

 

 

 

류블랴니차 강을 따라 서점과 가게, 식당, 카페 등이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었다.

 

식당이 늘어선 골목에서 앞치마나 소품에 옛 재봉틀을 이용해 문자나 경구를 수놓는 가게, 베쩨니나(Vezenina)를 만났다.

 

우리의 먹자 골목에 해당하는지 식당이 줄지어 나타났다.

 

 

 

율리아 식당에서 슬로베니아산 와인과 요리로 저녁 식사를 즐겼다.

 

 

트리플 브리지와 프란시스코회 성당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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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건축창고 2019.12.04 1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네 느낌이 너무 좋아요 ㅎㅎ

    건물 느낌도 좋구요~^^

  2. Choa0 2019.12.04 22: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작년 여름에 방문했었는데요.
    구시가도 예쁘고
    그렇게 크지 않아 도보로 충분히 돌아다닐 수 있어 좋았어요.^^

  3. 주연공대생 2019.12.05 0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지네요 정말!
    좋은 자료 잘보고 갑니다. 구독할게요!^^

    • 보리올 2019.12.05 16: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축구, 그 중에서도 EPL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잘 하지도 못 하면서 열심히 공을 차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멋진 댓글 감사합니다.

  4. 해인 2020.01.07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라 이름에 LOVE가 들어가는 유일한 나라, slovenia. 그래서 수도 이름에도 사랑이 들어가는군요! 사랑이 넘치는 사랑스러운 나라였나요?

    • 보리올 2020.01.07 2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도시 이름에 사랑이란 의미가 들어가서 그런 것은 아니고 류블랴나는 원래 아담하고 예쁜 도시다. 너도 직접 보게 되면 좋아할 거다.



호이안은 16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까진 무역항으로 번창했다. 기독교가 베트남에 상륙한 것도 17세기 호이안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다낭이 새로운 무역항으로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호이안은 상대적으로 침체를 겪기 시작했다. 이런 까닭으로 호이안이 오랜 기간 과거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원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호이안은 오랜 세월을 버텨낸 전통 가옥과 좁은 골목으로 유명하다. 꼭 베트남 방식의 전통 가옥을 고집하지도 않았다. 무역항답게 중국과 일본의 건축 양식도 자연스레 섞이게 된 것이다. 조그만 마을임에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일 것이다. 목조 건물이 주를 이루는 건축물은 대부분 외관을 노란색으로 칠해 도심을 밝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란색이 점차 퇴락하여 내 눈에는 더욱 정감이 넘치는 색채로 바뀌어 있었다. 오후 들어 몰려드는 관광객과 뒤섞여 호이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차량이 다니지 않는 널찍한 도로를 걸으며 여유롭게 주변을 구경할 수 있었다.






호이안엔 노란색으로 치장한 건물이 많아 나름 독특한 도심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견딘 전통 양식의 건축물에는 상점이나 카페, 레스토랑 등이 관광객을 상대로 성업 중이었다.




호이안은 베트남 전통 등으로 장식한 야경이 워낙 유명한 지역이라 대낮에도 등을 파는 가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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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trick30 2018.09.10 1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등이 굉장히 화려하네요 ㅎ 호이안 이라는 곳은 좀 낯선데 여기도 가볼만 하겠네요^^ 잘보고 갑니다 ㅎㅎ

    • 보리올 2018.09.10 16: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에서 직항이 생겨 요즘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 베트남 다낭인데, 호이안은 다낭에서 아주 가깝습니다. 다낭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호이안을 들르곤 합니다.

    • Patrick30 2018.09.10 1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그렇군요 ㅎ 저는 다낭 밖에 몰랐습니다. ^^ 가고 싶은 곳은 많은데 돈도 시간도 한정이라 고민스럽군요 ㅎㅎ

    • 보리올 2018.09.10 2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언제 베트남 가실 일이 있으면 호이안 꼭 들러보세요. 마을은 작지만 정감이 가는 곳입니다.

  2. 런투 2018.09.18 09: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밤에 보는 등불은 정말 예쁘더라구요.
    낮밤 모두 아름다운 곳이 호이안이더라구요

  3. justin 2018.10.16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색깔하나가 마을 전체 분위기라든지 여러 부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신기합니다!

    • 보리올 2018.10.17 0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렇게 마을 전체를 하나의 색깔로 통일하려면 전통이나 기후, 주민들의 합의 가운데 어느 하나가 있었을 게다. 시간이 지나면 그게 그 마을의 캐릭터로 굳을테고.



호이안을 가로지르는 투본 강(Song Thu Bon)은 호이안에서 남중국해를 만나 바다로 빠진다. 호이안이 과거 동남아 무역항으로 부상한 이유에는 이런 지정학적 위치가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강폭이 그리 넓지 않은 투본 강을 따라 걸었다. 오전에는 좀 한적했지만 오후가 되면서 사람들로 꽤 붐볐다. 강에는 노를 젓는 나룻배가 즐비했고, 지나가는 관광객을 상대로 호객을 하느라 다들 바빠 보였다. 강 옆으로 전통 건축물에 가옥, 상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마을과 강가 풍경,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표정을 눈에 담으며 걷다 보니 어느 덧 발길은 호이안 시장에 닿았다. 이런 재래시장에선 서민들의 꾸밈없는 삶을 지켜볼 수 있어 좋다. 시장 안에 간이 식당이 몇 개 있어 한 집에 자리를 잡았다. 호이안 대표 음식으로 통하는 까오라우(Cao Lau)를 시켰다. 일본 소바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쫄깃하고 굵은 면 위에 삶은 돼지고기와 구운 껍데기 등이 고명으로 올라왔다. 맛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관광객을 싣고 투본 강을 오르내리는 나룻배는 호이안의 대표적인 풍경 가운데 하나다.





투본 강을 유람하는 나룻배와 아름다운 호이안 마을 풍경이 어우러져 편안한 분위기를 선사했다.


투본 강에 노을이 내려앉았다.




강가에 자리를 잡은 노점 식당과 과일 장사꾼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호이안 시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까지 몰려 꽤나 혼잡했던 호이안 시장




시장 안에 있는 식당에서 이른 저녁으로 호이안의 별미라는 까오라우를 먹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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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10.12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장 풍경이 다채롭습니다~ 문득 서민들이 쓰고 다니는 모자와 어깨에 매는 과일 바구니 같은 것들은 누가 발명했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오래토록 편안히 사용하네요~



카멜 버스로 후에를 출발해 다낭(Da Nang)을 경유, 호이안(Hoian)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 짐을 풀고 바로 호이안 구경에 나섰다. 발길 닿는 대로 그냥 걸었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이안은 베트남 중부에 있는 도시다. 요즘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는 다낭에서 40분 거리에 있어 그리 멀지 않다. 도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음에도 한때는 동남아시아의 중계무역 거점으로 활약을 했다. 약간은 퇴락해 보이는 건물들이 세월을 머금은 채 빼곡하게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 많은 전쟁을 치룬 나라에서 여기는 피해를 입지 않은 듯했다.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덕분에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이리라. 골목을 몇 군데 돌고 났더니 허기가 져서 길가 식당에서 바게트에 각종 재료를 넣은 반미(Banh Mi)로 점심을 때웠다. 입에도 맞았지만 간단하게 먹기도 좋았다.

 

호이안은 투본(Thu Bon) 강가에 위치한 작고 조용한 마을이지만, 훼손되지 않은 건축물이 남아 있어 베트남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변해 있었다. 일본인이 지었다는 내원교(來遠橋) 앞에 섰다. 일본교라고도 불린다. 임진왜란 다음 해인 1593년에 여기에 터를 잡은 일본 상인들이 지었다는 한국 관광객의 가이드 설명이 들려왔다. 당시엔 일본인 마을이 있을 정도로 일본과 교류가 많았다고 한다. 가끔 중국 화교들이 세웠다는 사원이나 회관, 화교들이 살았던 고택을 볼 수 있었다. 1786년 중국 광동 출신 상인들이 지었다는 광조회관(廣肇會館)의 패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삼국지의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라고 삼국지 주요 인물을 그린 그림이 많았다. 일본, 중국 풍의 건물이 많다는 것은 호이안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던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버스가 호이안에 도착했다. 버스 터미널이나 정류장도 아닌 길가에 차를 세우곤 사람들을 내렸다.


마을 진입로에 호이안을 소개하는 간판부터 나타났다.



일본 상인들이 16세기 말에 지었다는 내원교. 돌다리에 지붕이 있고 한쪽에 사찰이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광조회관은 광동 출신 화교들이 재물의 신, 관우를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었다.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 놓은 사찰, 법보사(法寶寺; Chau Phap Bao)


호이안 거리에도 오토바이가 많았지만 자전거도 가끔 눈에 띄었다.



미술품이나 공예품을 파는 가게



유행에 민감한 신사복이나 숙녀복을 취급하는 상점도 있었다.



월남쌈의 재료인 라이스페이퍼, 즉 반짱을 만드는 공장도 둘러 보았다.



반미를 팔던 길거리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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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10.10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곳이라도 전쟁에 의한 피해를 받지 않고 보존되어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저희 나라도 그 많은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면 유적, 유물이 참 많이 남았을텐데 아쉽기만 하네요~

    • 보리올 2018.10.14 07: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타깝지만 전쟁통에 사라지는 유적들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 전쟁이 없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으니...



후에 왕궁을 나와 왕궁 입장료에 포함된 후에 궁정 박물관에 들렀다. 응우옌 왕조의 유물 3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고 했다. 황제가 사용했다는 침대가 눈에 띄었고, 식탁이나 부엌용품 외에도 복식, 고서도 있었다. 여기도 실내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 야외에 전시된 것만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궁정 박물관을 나오다 바로 그 옆에 있는 전쟁 기념관이 눈에 띄어 들어가 보았다. 대포와 탱크, 전투기, 수송기를 전시하고 있었다. 월남전에서 포획한 미군 항공기도 몇 대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 나라가 미국 편에 서서 파병까지 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인지 미국이 패배한 전쟁 유품을 보는 감정이 좀 묘했다.

 

왕궁 지역을 벗어나 1601년에 지은 티엔무 사원(Chua Thien Mu)으로 향했다. 두 발로 걷는 것엔 자신 있다고 건방을 떨다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오토바이 호객꾼을 뿌리치고 걷는데 햇볕이 얼마나 뜨거운지 얼굴이 익는 것 같았다. 더위에 지쳐 길거리 식당에서 잠시 쉬면서 점심을 먹었다. 후에에서 유명하다는 분보(Bun Bo)를 시켰다. 식당 안 사람들이 나를 흘낏거리며 웃는 것을 보면 관광객이 찾는 곳은 아닌 모양이다. 4km를 걸어 티엔무 사원에 도착했다. 유람선이 사람을 싣고 와 엄청난 인파를 쏟아낸다. 흐엉 강에서 계단을 올라 7층탑 아래에 섰다. 높이 21m의 이 탑은 응우옌 왕조 치세인 1844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각 층마다 불상이 있다고 하던데 탑으로 드는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본당이 있는 사원도 둘러보았지만 볼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유람선에 지친 몸을 싣고 호텔로 돌아왔다.




응우옌 왕조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후에 궁정 박물관을 방문했다.





전쟁 기념관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사용했던 중화기와 항공기를 모아 전시하고 있었다.




티엔무 사원의 팔각형 7층탑은 후에를 상징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꽤 유명하다.




티엔무 사원의 본당에 있는 청동 포대화상 외에는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티엔무 사원을 찾은 현지인들이 꽤 많았다.





유람선을 타고 흐엉 강의 풍경을 감상하며 후에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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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10.02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는 상황이 어떻게 달랐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베트남 사람들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전쟁이 나서 그것도 미국을 상대로 끝까지 지지 않고 버틴 것을 보면 우리 나라 사람들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가봅니다.

    • 보리올 2018.10.02 18: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상 전쟁에서 처음으로 미국을 꺽은 나라가 베트남이라 하지 않냐. 지리적 이점을 많이 이용했다곤 하지만 그만큼 국민성이 강인하다고 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