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까지 내려온 김에 박정헌 대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이 친구는 사천 출신의 산사람으로 산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전형적인 경상도 터프가이 같았다. 그런 그가 2012 8 31일 진주에다 히말라얀 아트 갤러리(Himalayan Art Gallery)를 오픈했다는 이야기를 페이스북을 통해 들었다. 난 그가 열심히 산에나 다니는 산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히말라야 예술에 대한 안목이 이렇게 높은 줄은 미처 몰랐다. 어떤 작품들로 갤러리를 꾸몄을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박대장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바위꾼 중 한 명이다. 알파인 스타일로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던 거벽등반가였다. 지난 2005년인가, 후배 최강식과 둘이서 히말라야 쿰부 지역의 촐라체를 등반하고 하산하다가 최강식이 크레바스에 빠지는 사고를 당했다. 9일간의 사투 끝에 조난 사고에서 둘 다 살아 돌아온 기적같은 이야기를 <>이란 책으로 엮었다. 물론 그 댓가로 두 사람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야 했다그 후 박대장은 거벽 등반에서 패러글라이딩으로 방향을 전환해 여전히 히말라야를 찾고 있다. 패러글라이딩으로 장장 2,400km에 이르는 히말라야 횡단 비행을 해낸 것이다. 한 마디로 대단한 친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어느 잡지사와 인터뷰한 내용이 생각난다. 촐라체 조난 사고 당시의 심경 묘사가 너무나 절절해 그걸 보는 순간 내 가슴이 먹먹해졌던 기억이 난다.    

죽음은 한 순간이다. 크레바스에 빠진 후배를 구하려고 할 때 내 안에서 또 다른 내가 나와서 나를 유혹했다. 또 다른 나는 최강식은 죽었다고 나에게 끝없이 속삭였다. 후배가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죽는 길이고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사는 길이었다. 23m 깊이 크레바스는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다. 후배의 몸무게를 지탱하느라 나도 척추가 나간 상황이라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자일을 끊어야만 내가 살 수 있었다. 크레바스 안에서 후배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 오히려 절망했다.”    

 

갤러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전화를 걸어 정확한 위치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박대장이 갤러리 문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늦은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갤러리에 들어서자, 여긴 한국이 아니라 네팔 박타푸르나 파탄에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 갤러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정성을 들이고 신경을 쓴 기색이 역력했다. 박대장의 안내로 전시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네팔 네와르 건축양식으로 조각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네와르 2층 창틀과 공작새 문양 창틀은 네와르 최고의 목각 장인인 레드 샴 실파카(Radhey Shyam Silpakar)가 기증한 작품이라고 한다. 네팔에서 꽤 유명한 조각들인데 여기서 볼 수 있다니 신기했다. 작품을 고르고 여기까지 가져온 박대장의 노고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그 외에도 박대장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찍은 히말라야 사진과 소품이 걸려 있었다. 그는 히말라야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산사람이 분명했다. 박물관 뒤에 차실을 하나 마련해 놓아 거기서 차 한 잔을 마셨다. <>이란 책에 저자 서명을 해서 건네준다. 오래 전에 사서 읽었던 책이지만 고맙게 받았다. 어떤 연유로 히말라얀 아트 갤러리를 세웠는지 물었고, 그의 비전을 들었다. 그는 네팔 산악 지역에 사는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세우고, 히말라야 예술가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며, 세르파의 탐험 활동을 지원하는 꿈을 이루고 싶다 했다. 그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매달 얼마씩를 후원하는 약정서에 서명을 해서 박대장에게 전달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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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드래곤 2013.12.05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시품도 중요히지만 좋은일도 하시는군요

  2. 보리올 2013.12.05 14: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일들이 더 확산되어야 한다고 전 생각합니다. 박대장이 갤러리를 오픈한 취지가 좋으니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리라 믿습니다. 그나저나 드래곤님도 사진과 여행 좋아하시는 것을 보니 역마살이 대단하신가 봅니다.

  3. 설록차 2013.12.07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향이 가까워 진주에 갤러리를 열었겠지만 위치가 좀 아쉬워요... 서부 경남의 요충지라해도 히말라야 문화를 이해하고 찾아올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길 바깥에 위치한 조각 창문틀이 손상되지 않고 잘 보관이 될런지 걱정됩니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만든 조각을 보니 예술을 넘어 참선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을것 같아요... 옮겨온 분의 정성도 대단하구요... 배 건너에 외가가 있고 본적도 진주에 있어 그 일대가 눈에 선합니다...^^

  4. 보리올 2013.12.07 1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방이란 한계는 분명히 있겠죠. 하지만 박대장의 본거지라 이 갤러리를 발판으로 지역 특성을 살린 여러 행사가 치뤄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어떤 일이든 열정이 대단한 친구니 잘 꾸려 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언제 고향 가시면 한번 들러 보세요.

 

호텔 밖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느낌에 잠을 깼다. 간밤에 엉뚱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짐을 나르던 야크 여덟 마리가 밤새 어디론가 도망을 쳤다고 한다. 로부체로 도망을 간 것 같다고 몰이꾼이 그 방향으로 쫓아간 사이 우리 팀의 사다인 옹추가 짐을 지키는 묘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별난 일이 다 벌어진다 싶었다. 단조로운 트레킹에 변화를 주려는 야크의 충정으로 여기기로 했다.  

  

페리체를 출발해 계곡을 따라 완만한 경사를 치고 올랐다. 오늘은 고도 700m를 올려 해발 4,900m까지 오르니 다들 긴장이 되는 하루리라. 얕은 개울을 건널 때는 살얼음 위를 조심조심 건너야 했다. 11월 말이면 얼음이 꽁꽁 얼어붙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산길에도 눈을 전혀 볼 수가 없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눈과 얼음이 없는 초겨울의 히말라야를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여기도 지구 온난화는 피해갈 수가 없는 모양이다.

 

어제 저녁까지는 식사를 거르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정모는 우리의 팀웍을 무척 부러워했다. 30여 명 일행 중에 아직까지 고산병으로 뻗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오늘 구간에선 고도를 높일수록 힘에 겨워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늘이 고비다. 조금만 더 힘내라 서로를 격려하면서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 수밖에.

 

세 시간을 꾸준히 오른 다음에 투크라(Thukla, 4620m)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오늘은 유독 문경 형수와 진원 부부가 힘들어 한다. 투크라 로지에선 촐라체가 바로 코앞에 우뚝 버티고 있다. 우직한 성격의 경상도 산사나이, 박정헌 대장이 올랐던 등반 루트를 어림짐작으로 더듬어 보았다. <>이란 책에서 생사의 기로에 섰던 원정 기록을 읽었는데 그 현장에 내가 서 있다니 이 감격을 뭐라 표현할까.

 

투크라에서 세르파 무덤에 이르는 오르막에서 대부분 녹초가 되었다.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점점 넓어진다. 세르파 무덤엔 여기저기 탑이 세워져 있어 산에서 죽어간 영혼들을 기리고 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유명을 달리한 현장을 보니 마음이 짠해졌다. 죽음을 돈과 명예로 바꿀 수는 없을텐데고도를 높이면서 다리가 풀리고 때론 구토까지 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팀닥터 기탁 형님의 손길이 무척 바빠졌다.

 

쿰부 빙하 하단에 해당하는 모레인 지역을 따라 걸었다. 돌과 모래로 덮여 있어 빙하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돌이 많은 너덜지대라고나 할까. 로부체의 칼라파타르 로지에 들었다. 로지 앞으로 메라 피크(Mehra Peak, 5820m)가 자리잡고 있었고, 그 왼쪽엔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눕체가 버티고 있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직 에베레스트와 로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원래 주인공은 늘 뒤에 나오는 법 아닌가?

 

아직까진 큰 사고없이 어려움을 헤쳐 나왔다. 인원이 많음에도 특유의 팀웍으로 힘든 상황을 잘 이겨내고 있었다. 팀에 흐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한 몫을 했다. 허 대장의 은근한 카리스마가 작용한 탓일 게다. 저녁 식사 전에 대원들이 모여 일정을 협의했다. 고락셉(Gorakshep)까진 모두가 함께 운행을 하고, 내일 오후 칼라파타르(Kala Patthar)와 모레 오전에 갈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EBC)는 각자의 컨디션에 따라 다녀오기로 했다.

 

칼라파타르 로지는 지금까지 묵었던 로지에 비해 시설이 형편 없었다. 아예 밖에서 비박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생수 한 병에도 280루피를 달란다. 산 아래에 비해선 거의 7배 수준이다. 야크 똥을 태우는 난로 주변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소에서의 잠은 꼭 환각 상태와 비슷해 별 희한한 꿈을 꾸게 된다. 그것이 싫어 가능하면 늦게 자려고 일부러 밤늦게까지 버틴다. 열심히 야크 똥을 난로에 부었다. 이 야크 똥도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똥도 돈을 주고 사야 하다니……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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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07.30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웅장한 에베레스트를 보니 벤쿠버 주위의 산이 귀엽게 보이네요...실제 눈으로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ㅠㅠ 맥주값은 고도와 비례해서 올라간다 하셨지요...그럼 물값도 마찬가지...^^

  2. 보리올 2013.07.30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말라야의 산들, 그 중에서 에베레스트의 위용은 대단합니다. 무척 위압적이라고 할까요. 열심히 운동하시고 체력 키우셔서 직접 한번 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