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입맛을 잃고 누룽지만 찾는 사람들이 늘어 내심 걱정이 앞선다. 일행들 걷는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 고소 적응을 위해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고소에 몸이 점점 힘들어지는 모양이다. 물을 많이 마셔라, 천천히 걸어라 다시 한번 주문을 했다. 토롱 라(Thorong La)까진 며칠 더 고생을 해야 하는데 그 때까지 다들 아무 일 없이 버텨주어야 할텐데……. 피상을 벗어나자 길가에 추모탑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거기엔 우리 나라 영남대 산악부의 추모 동판이 있었다. 1989년 안나푸르나 2봉 원정시 대원 두 명이 사망했다고 적혀 있었다.

 

훔데(Humde)가 멀리 내려다 보이는 날망에 섰다. 마을을 따라 곧게 뻗은 하얀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혹시 저것이 공항 활주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훔데에 공항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마을에 도착해서야 그것이 공항이 맞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그만 관제탑도 세워져 있었다. 1주일에 두 편의 비행기가 포카라로 연결된다 했다. 우리 일행 중에 어느 누가 도저히 토롱 라를 넘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비행기로 돌아서야 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또 한 군데의 검문소를 통과했다.    

 

안나푸르나 지역은 티벳과 접경을 이루는만큼 티벳인들이 많이 모여 산다. 길을 걸으며 티벳 불교의 유적 또한 많이 만난다. 그들의 삶이 결코 종교와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도 스님 두 분이 고소 증세도 무척 힘들어 한다. 두통에다 속까지 메슥거리는 증상까지 나타났다. 누가 보아도 전형적인 고산병 증세다. 몸이 힘들면 자주 쉬는 게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 아니던가. 예정보다 일찍 점심 식사를 하자고 일행들을 불러 세웠다. 안나푸르나 3봉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나푸르나 2봉과 4봉을 거쳐 3봉까지 왔으니 그래도 많이 온 셈이다. 식당 한 켠엔 빛바랜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리네 시골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부턴 길가에 얼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자락 폭포에도 하얀 얼음이 매달려 있었다.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 아니겠는가. 앞으론 보온에도 신경을 써야 할 판이다. 뭉지(Mungji)란 마을은 안나푸르나 연봉들을 보기에 아주 좋은 위치에 있었다. 안나푸르나 2봉과 3, 4봉이 모두 한 눈에 보인다. 그 동안 2봉 뒤에 숨어 잘 보이지 않던 4봉까지 뚜렷히 보였다. 브라카(Braka)에 있는 곰파는 규모가 대단했다. 4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절이라 했지만 경내까진 들어가지 않았다. 그 대신 길가에 세워진 천상천하유아독존상을 돌아나왔다.

 

해발 3,540m에 자리잡은 마낭(Manang)에 도착했다. 토롱 라를 넘기 전에 있는 마을 중에선 가장 큰 동네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EBC)를 가는 길목에 있는 남체(Namche)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깊은 산골에 있으면서도 웬만한 편의 시설은 다 갖추고 있었다. 병원도 있고 빵집과 카페도 있었다. 산악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영화관도 있다고 했다. 저녁을 먹기 전에 마을을 한 바퀴 휙 둘러보는 것으로 일차 구경을 마쳤다. 우리는 여기서 하루를 쉬며 고소 적응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렇다고 로지에서 마냥 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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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팩타민 2014.01.13 12: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간만에 트래킹 다녀왔을대가 새록새록 하네요.. ^^
    힘들어도 보는 풍경이 좋아서 가끔 사진을 봐도 두고두고 좋은 곳이 되었어요 ^^

    • 보리올 2014.01.13 1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동경이나 향수, 추억을 모두 가지고 계시겠죠. 벌써 히말라야를 다녀오신 모양이군요. 좋은 추억이 되어 삶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몬조에서 루크라까지만 가면 된다. 부담없는 여정이라 출발 시각도 늦추었다. 9시에 로지를 나섰다. 좁은 골목에서 옷차림이 깨끗한 학생들과 교행을 하게 되었다. 첫눈에 네팔 학생들은 분명 아니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 보았다. 싱가포르에서 수학여행을 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그렇지. 그래도 열 서너 살 정도 되는 중학생들이 수학여행을 히말라야로 왔다니 너무나 의외였다. 그 중엔 싱가포르에 유학 중이라는 한국 학생도 한 명 끼어 있어 우리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그들은 남체까지만 간다고 했다.

 

타로코시(Tharokosi)에 도착하기 직전에 마오이스트 깃발을 들고 온 현지인이 통행료를 요구한다. 정모가 직접 나서 우리 일행이 모두 24명이라 했더니 무슨 소리냐며 들어갈 때 31명으로 카운트를 했다고 한다. 돈 받는 일이라고 이렇게 치밀할 줄은 정말 몰랐다. 헬기를 타고 몇 명은 먼저 하산을 했기에 인원이 줄었다 해명을 했다. 1인당 100루피씩 통행료를 냈다. 안나푸르나에 비해선 그래도 싸서 좋았다.

 

카트만두로 먼저 내려갔던 허 화백과 박 대장이 여기까지 마중을 나왔다. 우리와 함께 점심을 먹겠다고 식사도 거르곤 기다리는 시간 내내 맥주로 배를 채웠는 모양이다. 비록 헤어진지 며칠밖에 안 되었지만 다들 반갑게 부둥켜 안으며 해후를 즐겼다. 박 대장은 그 사이 카트만두에서 부인과 둘째 아들을 데리고 왔다. 타로코시에서 점심을 먹었다.

 

빗방울이 간간이 돋더니 루크라 도착할 즈음엔 진눈깨비로 변해 버렸다. 구름이 잔뜩 끼어 시야도 그리 좋지 않았다. 트레킹 마지막 날에 날이 궂은 것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고산 지역에서 비를 맞았다면 청승맞은 것은 둘째치고 저체온증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서서히 진눈깨비가 눈으로 바뀌더니 눈송이가 점점 커진다. 고산 지역에서도 보지 못한 눈을 드디어 루크라에서 보게 되었다. 설마 내일 비행기 뜨는데 문제는 없겠지?  

 

루크라에선 다와(Dawa)가 운영하는 히말라야 로지에 들었다. 식당도 넓고 시설도 좋은 편이었다. 특히 화장실이 깨끗해 마음에 들었다. 다와는 루크라에선 유명 인사다. 이곳을 지나는 대부분의 원정대가 다와에게 부탁해 포터나 좁교, 식량을 구한다. 거의 만능 해결사라고나 할까. 그래서 돈도 많이 벌었고 이 지역에선 영향력도 제법 세다. 다행히 박 대장과 정모와는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어서 우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저녁에 또 한 차례 술 파티가 벌어졌다. 허 화백과 박 대장이 카트만두에서 공수해온 와인이 한 순배 돌았다. 저녁 메뉴는 닭도리탕. 어제에 이어 오늘도 너무 많이 먹고 마셔 배도 부르고 다들 기분좋게 취했다. 이리 미련스럽게 먹고 마시는 자신을 탓하면서 호준이를 데리고 맥주 한 잔 하러 또 밖으로 나섰다. 많은 일행들 뒷바라지하며 고생이 많았을텐데 맥주 한 잔이라도 사주고 싶었다. 박 대장이란 거물이 참가하게 되어 일정에 변경이 많았던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실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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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rtyLUV 2013.07.10 16: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와우! 멋지네요!^^
    좋은 사진과 글 잘 보고 갑니다~

  2. 보리올 2013.07.11 03: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칭찬의 댓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댓글 덕분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곤 합니다.

  3. 안영숙 2013.10.02 2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한번 가보고 싶은데,,, 유효기간이 임박해서 포기.

  4. 보리올 2013.10.03 07: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회장님이 유효기간 임박했다 하면 다른 사람들은 거의 폐차 상태일텐데 이거 어쩌면 좋죠? 어떻게 하면 유효기간 연장할 수 있을지 빨리 묘안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7시에 기상을 했지만 출발은 10시가 되어서야 할 수 있었다. 며칠 전 페리체를 지날 때 일행 몇 명이 능선에 올라 돌을 쌓아 화정이 추모탑을 조촐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페리체를 떠나기 전에 거길 오르자 의견이 모아졌다. 화정이는 한국여성산악회의 아콩카구아 원정을 대비해 훈련을 받던 중 얼마 전에 북한산에서 세상을 떴다. 우리 <침낭과 막걸리> 식구들에겐 한 가족을 잃는 엄청난 슬픔이었다. 추모탑은 아주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마다블람과 타부체, 로부체가 빤히 보이는 곳이었다. 평생을 산사람으로 살았던 친구니 좋아하겠다 싶었다. 돌탑 속 화정이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좋은 경치 벗삼아 편히 쉬게나.

 

페리체를 벗어나 전원이 기념 사진을 한 장 박았다. 하산에서 오는 여유 때문일까.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여기저기서 사진 찍는다 정신이 없다. 산을 오를 때의 긴장감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하긴 그만큼 힘들게 올랐기에 하산의 여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쇼마레를 지나 팡보체에서 점심을 먹었다. 김치 수제비가 일품이었다. 팡보체 고개를 내려오면서 희준, 현조의 추모탑을 다시 찾았다.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한 번 지나간 길이라지만 방향이, 시간이 달라서 그런지 생소한 느낌을 준다. 마음이 여유로워진 탓인지 색다른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시간이 많아졌다. 산길에서 피어나는 먼지만 없었다면 금상첨화였을텐데 그 점이 좀 아쉬웠다. 커다란 티벳 사원이 있는 텡보체에 도착했다. 산 아래에서 가스가 밀려온다. 우리 시야에서 사원도, 로지도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기후가 전형적인 쿰부의 겨울 날씨라고 한다. 여기도 이제 겨울로 접어드는가?       

 

트레킹을 하면서 내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설산 풍경보다는 오고가는 마을에서 순진무구한 악동들을 만나는 것이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은 카메라를 거부하는 녀석들도 나왔다. 히말라야 다른 지역과는 좀 다른 반응이었다. 야크가 평화롭게 풀을 뜯는 풍경도 좋았다. 남체 위에 있는 지역에선 이 야크가 주요 운송수단으로 쓰인다. 야크 숫놈과 일반소를 교배해 좁교라는 종자를 얻는데, 이 좁교는 남체 아래에서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일종의 전국구라고나 할까.

 

호준이와 핀조를 텡보체 사원에 보내 예불 시간에 특별히 화정이 추모제를 지낼 수 있는지 물어보라 했다. 예불 중에 링포체 큰스님이 간단하게 화정이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단다. 시주는 알아서 내라고 해서 내 주머니에서 100불이란 꽤 큰 돈이 나갔다. 대원들도 십 여명 넘게 예불에 참석을 했다. 예불은 우리처럼 그렇게 엄숙하지 않아 좋았다. 긴 나팔같이 생긴 악기와 북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엄숙함보다는 자유분방함이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염불 소리는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링포체 큰스님이 화정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식당에선 카드놀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돈을 딴 사람이 하산해서 저녁 한 끼를 쏘겠다 약조를 하고 시작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거금을 따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필수가 그래도 돈을 좀 딴 모양이었다. 따기는 땄는데 거금을 따지는 않아 한 턱 쏘지 않아도 되니 그것 참 실속있는 친구로군. 제 주머니만 두둑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나야 그런 재주가 없어 그냥 옆에서 구경만 하였다. 대신 문경 형님이 맥주를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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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 적응을 한다고 일부러 쿰중까지 다녀왔건만 아침부터 이상하게 발걸음이 무겁다. 계곡을 따라 잘 닦인 길을 줄지어 오른다. 걷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숨을 고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어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필수는 그런대로 회복이 된 것 같은데, 석균이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처음 히말라야를 찾은 사람에게 말로만 들었던 고소 증세가 점점 현실이 되어 가는 듯 했다. 하지만 어쩌랴. 고산에 들면 많은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인 것을. 

 

남체를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 기념탑을 만났다. 1953년에 초등을 했으니 2003년에 세운 탑이다. 기념탑 주변에서 아마다블람이 빤히 올려다 보였다. 일행들보다 조금 앞서 정모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캉주마 마을에 도착했다. 길목에 좌판을 설치해 놓고 각종 장신구를 팔고 있었다. 이렇게 조악해 보이는 장신구를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가게에서 밀크 티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 트레킹을 시작해 처음으로 야크를 보았다. 여기 사람들에게 야크는 매우 소중한 재산이다. 우유를 짜서 야크 치즈를 만들고 짐을 나르는 운송 수단으로도 이용한다. 심지어 야크 똥도 햇볕에 잘 말리면 훌륭한 땔감이 된다.

 

계곡을 건너기 위해 한참을 내려선 다음에야 풍기텡가 마을에 도착했다. 점심으로 맛있는 칼국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기를 채우고 따가운 햇살을 피해 낮잠도 청했다. 허 화백의 일본인 친구인 사카이 다니씨는 컨디션이 좋은지 칼국수도 잘 먹는다. 히말라야가 초행임에도 고소 증세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미리 연습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인 모양이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지그재그 산길을 따라 무거운 다리를 옮긴다. 건조한 날씨 탓에 길에서 엄청난 먼지가 일었다. 그룹이 열을 지어 가다 보니 앞사람이 일으킨 먼지를 뒷사람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호흡을 잠시 멈추면 금방 머리가 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초겨울 히말라야에서 눈이 없는 건조한 날씨와 이렇게 심한 먼지를 만날 것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앞사람과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거나 아예 맨앞으로 나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속도를 좀 올렸다. 먼지 속에서 고도 600m를 올리느라 나름 고생이 많았다.      

 

텡보체(Tengboche)에 도착했다. 능선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마을 텡보체에는 규모가 큰 티벳 불교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쿰부 지역은 티벳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티벳 강점을 피해 티벳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에 많이 정착해 산다. 마을 어디에나 티벳 불교의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얼굴 생김새와 의상도 산 아래와는 달라 보였다.

 

히말라야 뷰 로지에 묵었다. 산악인 출신이라는 여주인은 박대장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었다. 저녁 메뉴는 비빔밥. 고추장을 듬쁙 넣고 쓱쓱 비벼 먹었다. 두세 명을 제외하곤 다들 식욕이 왕성해 보였다. 여주인이 서비스라고 만두 몇 접시를 내왔다. 나중엔 와인까지 들고 온다. 박 대장에게 보이는 호의에 우리가 호강한다. 몸 컨디션이 그리 나쁘지 않아 나도 와인 몇 잔을 받아 마셨다.

 

카메라를 들고 로지 밖으로 나왔다. 조그만 언덕 위에 대한민국의 에베레스트 등정 2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흔히 고상돈 기념비라 불리지만 비석 어디에도 고상돈이란 이름은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사원에서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몇몇도 스님들을 따라 예불이 열리는 법당으로 들어섰다. 1시간 20분을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했다. 그렇게 조촐하게나마 오희준과 이현조의 명복을 비는 시간을 가졌다.

 

로지 앞뜰 평상에 둘러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마다블람 왼쪽 기슭이 밝아오더니 갑자기 둥근 달이 불쑥 떠올랐다. 보름에서 하루나 이틀 지난 모습이었다. 그래도 달이 무척 밝았다. 하늘을 수놓던 별들이 달의 출현에 모두 숨을 죽인다. 이런 기막힌 월출의 순간을 그냥 넘길 기탁 형님이 아니지 않는가. 맥주와 와인을 시켰다. 해발 3,800m가 넘는 높이에서 달에 취해 또 술을 마시다니 내 스스로 자충수를 두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 순간을 놓치면 후에 무척 후회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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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집팔이소녀 2013.07.02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영만 선생님 아니신가???

  2. 보리올 2013.07.03 0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화가 허영만 선생님이 맞습니다, 오랜 산행을 통해 우리는 허 대장님이라 부릅니다. 산행에선 부드럽고 은근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대단한 분입니다.

 

고소 적응을 위해 남체에서 하루 쉬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냥 로지에 머무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에베레스트 뷰 호텔을 지나 쿰중(Kumjung)까지 갔다오기로 하고 8 30분에 로지 앞에 집결했다. 박 대장과 정상욱 상무는 로지에 남겠다 한다. 가벼운 고소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몇 명 나왔지만 전반적으로 다들 컨디션은 좋은 듯 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속도를 달리해 오르막길을 오른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남체 마을 모습에 카메라를 꺼내는 횟수가 늘어났다.

 

수목한계선에 위치한 파노라마 뷰 로지에 닿았다. 파란 하늘 아래 웅장한 봉우리들이 도열해 있었다. 에베레스트뿐만 아니라 로체(Lhotse)눕체(Nuptse)같은 높고 웅장한 봉우리들이 우리 시야에 들어왔고, 오른쪽에 아마다블람(Ama Dablam) 보였다.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아마다블람이 오히려 더 웅장하게 다가온다. 다들 예기치 못한 엄청난 풍경에 연신 감탄사를 쏟아낸다. 히말라야의 위압적인 풍경에 압도되었다고나 할까.   

 

파노라마 뷰 로지에 근무하는 한 현지 여성이 유창한 우리 말로 인사를 건넨다. 어떻게 한국말을 배웠냐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몇 년간 근무한 적이 있단다. 그래도 너무 잘 한다. 점심은 에베레스트 뷰 호텔에서 먹기로 했다. 음식을 시켰는데 인원수가 많아서 그런지 시간이 너무 걸린다. 땀이 식어 추위를 느낄 때가 되어서야 음식이 나왔다. 한 시간이 더 걸린 것 같았다. 여기 사람들 너무 느긋한 것 아니야? 호텔 매니저에게 항의를 한 후에야 요리사와 웨이터들 동작이 좀 빨라졌다.

 

대부분은 여기서 돌아서기로 했고 나를 포함한 아홉 명은 쿰중을 들려 다른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좀 돌아가기는 하지만 에베레스트 초등자 힐러리 경이 쿰중에 세웠다는 학교를 들러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쿰중엔 모양새가 비슷한 집들이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힐러리 학교는 산 속에 있는 학교치고는 시설이 꽤 좋았다. 운동장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도 만났다. , 컴퓨터 교실도 들어가 보았는데, 한국산악회의 실버 원정대에서 지어주었다고 적어 놓아 내심 자랑스러웠다.  

 

쿰중에서 남체로 내려가는 길에 옛 공항을 지났다. 루크라에 새로 비행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여기를 이용했다고 한다. 카트만두에서 바로 이 고도까지 올라오면 고소 증세가 만만치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루크라에 새로 공항을 지었을까? 여기서 바라보는 조망도 무척 훌륭했다. 푸른 잔디가 깔린 사면에서 산악 마라톤을 하는 사람도 만났다. 나로선 숨 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 고도에서 마라톤이라니? 우리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라 그저 어리벙벙해졌다.

 

로지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또 수다를 떨었다. 수다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미국의 한 TV 방송국에서 예티 촬영을 나왔다고 부산했다. 촬영 장비에 인원까지 그 규모가 엄청났다. 그나저나 예티에 대한 소문만 분분했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직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이렇게 대규모 촬영팀을 보내다니 돈이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 가서 예티를 찍을 것인지는 직접 물어보지 못했다. 하여간 그네들 때문에 로지가 무척 시끄러웠다. 시끌법적한 분위기를 피해 몇 명 데리고 밖으로 맥주 한 잔 하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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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3.06.30 2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마음에 두고 있는 산입니다
    꼭 가보고 싶습니다
    멋진 사진과 풍광에 감사드립니다
    올 봄에 떠났어야 했는데,,,,, 목구녕이 포도청이라,,,,

  2. 보리올 2013.06.30 2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농돌이님, 에베레스트가 마음 속에 간절한 염원으로 남아 있으면 조만간 이루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자료가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몸 조심해서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3. 고윤 2013.06.30 22: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대단해요 저도 뭐든된다면 한번 가보고 싶네요 ㅜㅜ

  4. 보리올 2013.06.30 2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을 좋아하시면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는 꼭 한 번 다녀오시길 강추합니다. 고산 증세로 몸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5. 설록차 2013.07.21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 중턱에 있는 좁은 길을 걸어가자면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나요? 힐러리경이 세운 학교라니 더 자세히 드려다 보게 됩니다...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우리 수건돌리기와 비슷한듯~실제 웅장한 산을 보게 되면 어떤 느낌일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예티가 무엇입니까? 추가) 틀린 글자를 수정했더니 글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6. 보리올 2013.07.21 15: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산길은 양호한 편입니다. 더 위험한 구간도 많지요. 예티란 전설로만 이야기되는 히말라야 설인(雪人)을 말합니다. 하얀 털을 가진 커다란 고릴라를 연상하시면 됩니다. 설인을 봤다는 사람은 제법 많습니다만 어느 것도 증명이 되지는 않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