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창문을 열고 날씨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하고 금방 비가 올 듯 잔뜩 찌푸린 날씨였다. 공항 뒤에 버티고 선 닐기리 연봉이 구름에 가려 전혀 보이질 않았다. 이런 날씨면 소형 비행기가 뜰 수 없을텐데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홀로 호텔을 나와 거리로 나섰다. 어디선가 양떼들이 몰려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좀솜에서 비행기를 탈 때도 바람이 강하다는 이유로 하루를 완전히 공친 날이 있었다. 공항측에서 안내방송도 없이 하루 종일 기다리게 했던 기억이 났다. 오늘도 그러면 안 되는데일단 예티항공 사무실로 가서 운행 여부를 확인해 보았다. 이 날씨에 비행기가 들어오기는 어렵지만 날이 좋아지면 바로 뜰 수가 있단다. 일단 오전 11시까지는 기다려 보자고 한다.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긴딩이 오늘 항공기 운항이 완전 취소되었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일단 버스 티켓부터 구입을 하고 예티항공으로 다시 갔다.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30여 분을 기다렸건만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 않는다. 일부러 사무실을 비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서 몇 번인가 큰 소리로 부르니 그제서야 직원이 나타난다. 항상 큰 소리를 내야 마지 못해 움직이는 이곳 사람들의 수동적인 태도가 좀 얄미웠다. 비행기 운항이 취소된 것은 아니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을 한다. 기다리는 일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여기서 포터들과 헤어졌다. 그들은 버스로 먼저 내려가고 우리만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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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기다림 속에 포카라에서 첫 비행기가 들어왔다. 공항에 몰려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우리가 탈 두 번째 비행기는 아무 소식이 없다. 애를 태우는 기다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공항 경비를 서는 경찰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지더니 두 번째 비행기 소리가 들려온다. 우여곡절 끝에 일행 모두 비행기 탑승을 완료했다. 20인승 소형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올라 구름을 헤치며 날아간다. 하얀 구름이 옆으로 휙휙 지나간다. 갑자기 구름이 걷히면서 산자락이 눈앞에 나타나기를 몇 번인가 반복했다. 이러다가 산기슭과 충돌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포카라에 무사히 도착했다. 시간이 좀 늦어지긴 했지만 무사히 도착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네팔 현지 여행사에서 보낸 파상이란 친구가 미니버스를 가지고 마중을 나왔다. 파상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페와 호수 선착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비엔 베뉴 호텔(Hotel Bien Venue). 3층 공사 때문에 시끄러운 것이 흠이었지만 방이 깨끗하고 넓직해서 좋았다. 호텔을 나와 페와 호수 주변을 거닐며 쇼핑도 했다. 급할 것이 하나도 없는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포카라는 산중에 있는 마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치 크고 화려했다. 이 정도면 문명으로의 귀환이라 부를만 했다. 그 이야긴 우리가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다는 의미 아니던가.    

 

어디서 식사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배낭 여행을 온 젊은이들이 산마루 식당을 추천한다. 네팔인이 하는 식당인데도 한국 음식을 잘한다고 칭찬을 한다. 그 식당에서 뜻밖에 치링을 만났다. 그가 식당의 주방장이자 주인인 모양이었다. 한왕용 대장의 히말라야 클린 원정대에 요리사로 참가했던 치링은 나와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 사이 결혼도 했고 돌이 넘은 아들도 있었다. 부인을 불러 인사를 시켜 부인과 아이와도 상견례를 마쳤다. 치링이 차려준 한국 음식에 입이 즐거웠다. 거기에 맥주까지 한 잔 곁들이니 부러울 게 없었다. 치링이 우리의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이렇게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해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트레킹 요약>

 

밴쿠버 산꾼들과 함께 걸은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은 2009 11 2일 서울을 출발해 11 16일 귀국하는 2주 일정으로 진행을 하였다. 트레킹 자체는 11 3일에 시작해 11 13일 포카라에 도착함으로써 마무리를 지었다. 6명이 참여해 숙식은 모두 트레킹 구간에 있는 로지에서 해결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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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쓰메 2014.01.20 12: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희귀한 풍경들이네요 ㅎㅎ

    • 보리올 2014.01.20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팔은 우리 나라 1950년대 또는 1960년대 모습과 비슷합니다. 촌스런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지요.

  2. 설록차 2014.01.22 0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모로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이셨겠어요...
    저렇게 작은 비행기를 탄 적이 있는데 바람에 흔들리니 롤러코스틀 탄 듯 스릴만점이었어요...사실 무서웠어요...^^

    • 보리올 2014.01.22 07: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히말라야 여행은 여러 지역을 갔었기 때문에 기억이 서로 엇갈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옛 일을 되살려 추억을 꼼씹어 보면 제 가슴엔 늘 훈훈한 여운이 남습니다. 몇 년 못 갔더니 더 생각이 나는군요.

  3. 제시카 2014.03.18 0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혀 다른 풍경이네요... 저런 문화를 접해본적도 없으니 신기하기만 하네요~ 양들 엉덩이에 핑크색 염색된것도 귀엽구.. ㅎㅎㅎㅎ

    • 보리올 2014.03.18 06: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언제 네팔이나 함께 갈까? 네가 겪어본 세상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배울 점이 많을 거야. 우리 막내 데리고 히말라야 산길을 걸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 버킷 리스트에 하나 추가해야 되겠다. 그리고 저 양 엉덩이에 칠한 페인트는 주인이 자기 재산이란 것을 표시한 것이란다.

  4. 2015.03.14 0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5.03.14 1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블로그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무슨 의미신지요? 저는 꾸준하게 글을 올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솔직히 저는 알래스카를 가본 적이 없어서 엔드님 여행 계획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5. 김치앤치즈 2016.08.10 1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나푸르나 등반 후 먹은 한국음식은 과연 어떤 맛이었을까요...^^
    답글 보니 안나푸르나 또 가실 것 같은데요.ㅎㅎ

    • 보리올 2016.08.10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주 맛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 음식을 하는 네팔 현지인이 꽤 있습니다. 도시나 트레킹 도중에도 가끔 김치를 맛볼 수 있고요. 네팔은 언제라도 다시 가고 싶습니다.

 

새벽 6시까지 공항에 도착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전해진 슬픈 소식은 날씨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하며 언제 올지도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네팔 국내선은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가 운행하다 보니 툭하면 기상조건을 들어 결항을 한다. 공항 앞에 짐을 쌓아 놓고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죽치고 있을 수밖에. 한 마디로 좀솜에서 발이 묶인 것이다. 그 흔한 안내 방송도 없고 어느 누가 나와서 미안하단 말 한 마디 없다. 이런 것을 보면 영락없는 후진국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모든 신경은 공항 출입문에 쏠려 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었고, 출입문 가까운 곳에 마냥 머물러 있어야 했다. 참으로 무료한 시간이었고 좀이 쑤셨다. 카고백에 기대 잠을 청하는 일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이 어수선해지면서 포카라에서 비행기가 떴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포카라로 갈 수 있겠단 희망을 갖게 되었다. 비행기가 도착한다는 사이렌 소리까지 내며 공항도 부산을 떨었지만, 비행기는 끝내 내리지 못하고 되돌아가 버렸다.

 

아침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렇게 멍하니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여행하다 보면 이런 일도 생기기 마련이지. 느긋하게 마음을 먹자.’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이렇게 손님을 무작정 기다리게 만드는 것 외에는 정말 다른 방안이 없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 손님들이 모두 좀솜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라면 무슨 대안이 있을 법 한데 말이다. 하여간 이렇게 하루를 완전히 공친 다음에야 호텔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숙소를 시설이 약간 더 좋은 닐기리 호텔로 바꾼 것으로 마음을 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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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레테에서 4일에 걸쳐 올라온 길을 이틀에 내려가기로 했다. 이젠 고소 적응에서 자유로운 편이라 걷는 속도를 빨리 해도 큰 문제는 없다. 베이스 캠프 출발을 서둘렀다. 새벽 5시 기상, 6시 출발로 운행 일정을 앞당긴 것이다. 미리스티 강을 따라 올라온 길을 되밟아 갔다. 날씨가 맑아 운행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미리스티 강을 건너기 위해 내려왔던 경사길을 다시 올라가는 것이 오늘 가장 고된 일이다. 세 시간을 쉬지 않고 힘겹게 올라야 했다. 모두들 노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배낭을 내려놓고 땡볕에 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점심으로 지급받은 주먹밥과 삶은 계란, 감자로 요기를 했다. 먼 거리를 운행하거나 이동하는 중간에 부억을 설치하기 어려울 때 이런 방법을 많이 쓴다.

 

오늘은 제법 빨리 걸었다. 이미 지나갔던 길이라 사진 찍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없었기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일찍 닐기리 베이스 캠프에 마련한 야영장에 도착했다. 얀과 함께 스탭들이 텐트치는 것을 거들었다. 얀은 이런 일을 즐겨한다. 배울 점이 많은 친구다. 원정 내내 한국식 식사도 마다 않던 이 프랑스 돌쇠가 원정이 끝날 쯤에 걸린 감기 때문에 양 콧구멍에 휴지를 말아 넣은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옥의 티라고나 할까. 텐트 옆에 누워 모처럼 여유롭게 해바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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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잠을 편히 잤다. 아침에 일어나 컨디션 점검부터 한다. 사지 멀쩡하고 머리, 배 모두 별다른 이상이 없다. 고소 증세가 깜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럼 이제 고소 적응을 모두 끝냈다는 의미인가? 코스도 어제에 비해 훨씬 쉬웠다. 해발 4,400m까지 올라간 다음엔 미리스티 강(Miristi Khola)이 있는 3,500m 지점까지 내려 간다. 오늘은 강가 어디선가 야영을 한다고 들었다. 고산병 증세에 마음을 뺐겨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사이에 안나푸르나 주봉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안나푸르나를 만난 것이다.

 

중간에 닐기리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건너야 하는 곳이 있었다. 폭이라야 2m 정도 되었을까. 가운데 돌이 놓여져 있어 건너뛰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수량이 엄청났고 그 아래는 폭포라 행여 다리를 잘못 디뎌 떨어지면 수십 미터를 똑바로 낙하해 격류 속으로 휩쓸일 판이다. 일단 미끄러지면 살 확률은 전혀 없어 보였다. 벼랑 아래를 보고 나니 다리도 떨리고 속으로 겁도 났다. 다행히 세르파 한 명이 중간에 버티고 서서 한 사람씩 손을 잡고 무사히 건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 맑았던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산 아래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구름이 눈에 보였다. 오전에는 맑았다가 오후에 흐려지는 이 지역 특유의 날씨 패턴이 되풀이된다. 미리스티 강까지 꽤 가파른 경사를 내려서야 했다. 이 경사길을 내려가면서 하행 구간에는 이 경사를 치고 올라야 한다는 생각에 지레 한숨이 나왔다. 왜 이 코스는 꾸준히 오르지 않고 오르락 내리락 널뛰듯 해 우리를 이리 못살게 구는지 모르겠다.

 

야영지는 빙하 지대라 했다. 빙하 지대라면 이 아래가 커다란 얼음덩어리란 말 아닌가. 오랜 기간 흙이 쌓이고 나무가 자라 빙하 지대란 낌새를 전혀 눈치챌 수가 없었다. 강가에 텐트를 치고 야영 준비를 마쳤다. 빙하 녹은 물로 오랜 만에 세수도 하고 발도 닦았다. 포터들은 바위 옆에 모닥불을 피워놓곤 빙 둘러앉아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 추위를 잊으려는 그들 나름의 고육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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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좀 일찍 일어났다. 고소라서 편히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이유도 있지만, 다울라기리에 햇살이 내려앉는 광경을 보고 싶었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날이 맑아 기분이 상쾌했다. 그렇게 드라마틱하진 않았지만 따사로운 햇빛 한 줄기가 다울라기리에 살포시 내려앉는 모습도 보았다. 이번 구간 중에 고소 적응에 가장 중요한 날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베르 카르카에서의 하룻밤은 우리 몸이 해발 3,000m가 넘는 지점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고산병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머리가 뽀개질 것 같고 속이 메스꺼운 증상이 가장 보편적이었다. 나는 다행히 그리 힘들지 않았다. 대원들 상태를 꼼꼼히 챙기던 김덕환 선배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해발 4,200m의 닐기리 베이스 캠프까지 또 고도를 올려야 하는데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처음부터 급경사길이 나타나 곤역을 치뤘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무려 세 시간을 걸어서야 광할한 초지가 펼쳐진 구릉지대에 올랐다. 초원을 배경으로 히말라야 특유의 고산 풍경이 펼쳐진다. 풍경에 압도되어 움직이기가 싫었다. 우리를 따르던 다울라기리와 이젠 작별을 해야 한다. 대신 닐기리 북봉(6,839m)와 바라하 시카 봉(7,649m)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바라하 시카 봉을 안나푸르나 주봉으로 착각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안나푸르나 주봉도 나타나겠지.

 

아침까진 별 이상이 없었는데 급경사 오르막에서 너무 힘이 들었다. 머리가 아프고 속도 불편하다. 다리는 힘이 없어 발을 떼기가 너무 무거웠다. 내가 익히 아는 고산병 증세를 그대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속으로 덜컥 겁이 났다. 지난 해에는 더 높은 곳도 무사히 지났는데, 이번에는 4,000m 고도에서 어찌 이런 증상을 보인단 말인가. 김덕환 선배에게 증상을 이야기했더니 약 한 봉지를 건네 준다. .

 

고도를 높일수록 기압은 떨어지고 산소량은 줄어드니 몸에 이상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 개개인이 느끼는 증상은 천차만별이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 두통과 구토, 무기력, 졸음이다. 히말라야 원정 경험이 많은 한 대장의 고산병 판단 기준은 너무 간단했다. 산에서 식사를 하지 못하면 고산병으로 판단한단다. 그나마 밥상 앞에 앉을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숟가락을 잡는 손끝에 힘이 들어간다.

 

오늘 야영장도 닐기리 기슭에 있는 양떼 숙영지다. 그들 배설물 위에서 하루 더 자야 했다. 텐트 안까지 배설물 냄새가 가득했지만, 그래도 풀을 뜯어 먹은 동물의 배설물이라 깨끗할 것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초저녁엔 구름이 가득하다가 한밤중이 되면 구름이 걷히며 별이 총총하다. 며칠간 비슷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해발 4,200m 야영장에서 보는 하늘은 정말 가까워 보였다. 도시에선 보기 어려운 별과 은하수가 하늘을 수놓은 모습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별똥별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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