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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2.08 [남도여행 ①] 구례 화엄사 (6)
  2. 2013.10.04 랑탕 트레킹 - 3 (4)
  3. 2013.01.04 순천 낙안읍성과 담양 소쇄원 (4)

 

고등학교 친구들과 12일로 남도 여행을 다녀왔다. 원래는 변산과 선운산을 연달아 산행하려 했는데 폭우가 온다는 일기 예보에 갑작스레 행선지를 바꾼 것이다. 행선지를 바꾼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어디를 가는 지도 모른 채 따라 나섰다. KTX로 대전으로 내려가 친구들과 합류했다. 대구에서 올라온 옵저버 2명을 포함해 모두 11명이 차량 3대에 나눠 타고 구례로 향했다. 지리산 피아골 산행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거론되었지만 그곳 또한 엄청난 행락 인파에 차량 정체를 빚고 있다는 소식을 듣곤 바로 화엄사(華嚴寺)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예보와는 달리 날이 좀 궂기는 했지만 빗방울이 잠시 떨어진 것이 전부였다.

 

화엄사는 내 기억 속에 있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웅장한 규모도 여전했고,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각황전이나 석등, 불탑도 그대로였다. 가을 단풍을 즐기려는 행락객들로 붐비는 것만 제외하면 크게 변한 것은 없어 보였다. 새로운 불사 일으킨다는 광고만 빼고 말이다. 각황전 앞을 서성이며 화엄사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겼던 스무 살 남짓의 내 자신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때는 화엄사가 왜 그리 크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40kg이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혼자 노고단을 오르다가 운무에 길을 잃고 얼마나 산 속을 헤맸던가.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산사를 둘러 보았다.

 

노란 낙엽이 쌓인 오솔길을 걸어 구층암(九層庵)으로 향했다. 가을 정취가 물씬 배어 있었다. 천불보전을 구경하고 다시 발길을 연기암(緣起庵)으로 돌렸다. 대나무 숲 사이로 오솔길이 나타나 우리를 즐겁게 했다. 그 많던 행락객도 여기에선 볼 수가 없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계곡으로 내려서 김밥과 사발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막걸리 한 잔도 빠지지 않았다. 연기암 부근은 가을색이 더 짙었다. 높은 산을 오르지 않아도 가을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더구나 옛 친구들과 정겹게 이야길 나누며 걷는 길이라 부담이 없어 좋았다. 이 오솔길 산책이 얼마나 좋았던지 한 친구는 힐링의 길을 걸었노라 실토를 했다.

 

 

대전에서 고속도로를 달려 구례에 닿았다. 누렇게 익은 나락이 고개를 숙인 채 우리를 반겼다.

 

 

 

 

 

 

 

 

 

오랜만에 다시 화엄사를 찾았다. 화엄사는 백제시대에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각황전 등 4점의 국보와 보물 4점을 간직하고 있다.

 

구층암의 천불보전.

 

 

 

 

구층암에서 연기암에 이르는 오솔길이 운치가 있어 좋았다.

단풍도 곳곳에서 접할 수 있어 가을 한 복판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연기암을 오르니 멀리 섬진강이 내려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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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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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E성형외과 2014.12.08 1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풍이 살아있네요^^

    날씨는 춥지 않았나요?

    • 보리올 2014.12.08 1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날씨가 흐려서 오히려 단풍의 색감이 살아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햇빛이 있었더라면 투영광은 좋았겠지만 너무 현란할 수 있거든요. 제가 갔을 때가 11월 초라 그리 춥지는 않았습니다.

  2. justin 2014.12.12 1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시 미래에 갔다온 기분입니다. 저도 나중에 친구들과 옛 추억을 떠올리며 여행을 갔다오겠죠? 한국 단풍은 참 곱고 이쁩니다. 나무들이 한복을 입고 방기는 것 같습니다. 기분이 절로 좋아집니다.

  3. 설록차 2015.04.14 0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고운 가을색이에요...
    대나무밭 사이에서 나는 쏴~ 하는 소리...신비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분들도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산행동무 되시기를~

 

로지의 잠자리 풍경은 늘 비슷하다. 좁고 딱딱한 나무 침대에서 잠이 들면 그 때부턴 무슨 의미인지도 헤아리기 어려운 묘한 장면들이 영화처럼 수시로 바뀌다가 잠에서 깬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거의 없다. 가끔은 꿈인지 생시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아마 이것도 히말라야 신들을 만나는 신나는 경험 중 하나 아닐까 싶다.

 

밤부라는 단어를 쓴 마을답게 주변에 대나무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그렇다고 엄청난 숲을 이룰 정도는 아니었다. 히말라야에도 대나무가 자란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 정도라고나 할까. 나무숲을 관통하는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히말라야에서는 흔치 않은 길이다. 맞은 편에서 내려오던 독일 아가씨 한 명이 매직 포리스트(Magic Forest)!’라고 표현한 것을 듣고 보아서 그런지 숲길이 더 매력적이었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낮은 관목을 통과하자, 숲이 사라지며 풍경이 트이기 시작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해발 고도를 1,000m나 올린다. 연이틀 1,000m씩을 올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해발 고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더 높은 고도였더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점심은 리마가 수제비를 준비했다. 히말라야 산속에서 먹는 수제비라 더 맛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 밴쿠버 한인 산우회 회장을 역임한 최정숙, 안영숙 두 여걸은 이런 호사가 어디 있냐고 연신 감탄을 거듭한다.

 

해발 고도가 3,430m인 랑탕(Langtang)에 도착했다. 마을이 제법 크다. 랑탕 문화 센터란 건물에 학교를 파한 아이들이 모여 장난을 치고 있었다. 어딜 가나 개구장이들은 근심 걱정없이 활달하기만 하다. 문화 센터란 건물이 낮에는 학교 건물로 쓰이는 모양이었다. 학생들이 모두 빠져 나간 건물에선 무슨 종교 의식을 준비하는지 여자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해질녘 랑탕 구경에 나섰다. 코흘리개 아이들을 구슬려 사진 몇 장 찍고는 학교 건물로 들어갔다. 할머니 한 분이 자리에 앉으라 하더니 자꾸 차를 권한다. 처음엔 괜찮다 손사래를 쳤지만 나중엔 반쯤 강요에 가깝게 변했다. 결국 차를 한 잔 마셨다. 차값으로 100루피를 시주했더니 그것은 사찰에 내는 것이고 차값은 별도로 자기에게 달란다. 대꾸도 않고 그냥 100루피만 주고 밖으로 나왔다.  

 

랑탕의 높이면 고소증세를 걱정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한 대장이 내일 걍진곰파(Kyanjin Gompa)까지만 갔다가 먼저 돌아서겠다 한다. 맥주로 간단한 송별식을 치뤘다. 고산병 때문에 한 잔씩으로 미리 못을 박아야 했다. 이제 또 10시간의 기나긴 취침에 들어가야 한다. 방을 함께 쓰는 후배 김정의 씨와 침대에 누워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를 논하다 잠이 들었다. 화제가 너무 무거워 잠이 쉽게 온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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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영숙 2013.10.04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산증으로 토하고 설사하고 코피까지 동반했던 그때 처량했던 나의 모습도 이젠
    과거로 그리움으로 가물 가물 꿈처럼 한 모퉁이에 남았네요. 랑탕의 추억으로.......

  2. 보리올 2013.10.04 15: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랑탕의 추억이라... 멋진 말이네요. 고산병이야 고산에 들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이지요. 그래도 심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3. 설록차 2013.10.06 0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억을 공유하는 두 분이 나누는 대화가 정겨워요...흔한 경험이 아니지요...^*^

  4. 보리올 2013.10.06 0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 랑탕을 함께 갔던 분입니다. 산을 엄청 잘 타는 여걸인데 연세가 드셨다고 생각하셔서 요즘은 힘든 산행에 나서길 꺼리는 것 같습니다. 세월 앞에선 장수가 없다지만 그래도 자신감을 잃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점심 시간도 되기 전에 벌교 구경을 대충 마쳤다. 귀가 길에 동생은 낙안읍성을 둘러보기 원하고 제수씨는 담양 소쇄원을 가보았으면 한다. 뭐 어려울 것이 있겠는가. 먼저 벌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낙안읍성을 찾았다. 사진 촬영 때문에 두세 번 다녀간 곳이다. 성곽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데 그 안에는 약 90여 가구의 민가와 관아, 객사가 있다. 사적으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 오랜만에 초가집을 볼 수 있어서 내심 행복했다. 인위적으로 너무 잘 관리되고 있어 자연스런 멋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성곽 위로 마을 한 바퀴를 먼저 돈 다음 마을로 들어가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점심은 화순에서 녹차 보리밥으로 해결한 후 담양 소쇄원으로 향했다. 이곳도 사진 촬영차 몇 번 다녀간 곳이다. 대나무 숲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없게 막아 놓아 옛 정취가 많이 줄었다. 썰렁한 정자와 한옥 몇 채가 전부인 그저 그런 관광지로 전락한 느낌이다. 어디에서도 바람에 서걱이는 대나무 숲 특유의 속사귐은 들려오지 않는다. 내가 시인의 마음을 갖지 못해서 그런 모양이다. 이제 귀가를 서둘러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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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록차 2013.07.13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축전공인 아들이 1년간 서울대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한국건축에 관한 책을 가져왔는데 영주 부석사와 담양 소쇄원이 제일 가보고 싶었어요...사람 발길이 잦으면 보존이 어려운가 봅니다...기회가 된다면 기대않고 가야겠네요...^*^

  2. 보리올 2013.07.14 0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야 여러 번 기봤으니까 전과 비교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어서요. 예전에 비해 호젓함이나 고즈넉함이 사라져 섭섭하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꼭 한 번은 가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 justin 2015.12.24 16: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갔다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자 친구와 아버지의 발자취를 좇고 오겠습니다.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