텡보체 호텔을 떠나기 전, 로지 여주인인 밍마 양지(Mingma Yangi)를 불러내 기념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네팔에서는 흔치 않은 여성 산악인에다 로지를 운영하면서 사업 수완도 만만치 않은 여장부다. 남체로 향하는 내리막 길은 고산병 걱정이 없어 좋았다.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여길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 일행들은 무슨 이야기거리가 그리 많은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다를 떨며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오늘이 지나면 에베레스트도, 로체도, 그리고 아마다블람도 보기가 쉽지 않을 터. 전망이 좋은 곳이 나타나면 이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 그래도 가장 압권은 야크 똥을 말리는 현장. 담벼락 돌에다 척척 붙여서 1차 건조를 한 다음에 땅 바닥에 넓게 펴서 말리고 있었다. 혹시 이 천연 연료도 화석 연료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겠지? 옛날엔 우리 시골에서도 소똥을 말려 불소시개로 썼던 일이 생각났다.

 

늦어도 정오까지는 남체 바자르에 도착할 것으로 보았는데 의외로 길이 멀었다. 거의 쉬지도 않고 걸었음에도 12시에서 30분이 지나서야 남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유만만한 후미는 당연히 거기서 1시간이 더 걸려서 도착을 했다. 점심은 남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쿰부 로지에서 정 상무가 한 턱 쏘았다. 야크 시즐러와 모모라 불리는 만두가 나왔는데 제법 맛이 좋았다.

 

가게에 나와 있던 로지 주인 할머니가 정모에게 특별 대접을 한다. 우리가 시키지도 않은 음식을 정모에게만 따로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오랜 인연이 있는 듯 했다. 물론 그 음식은 우리가 대부분 먹어치워 정모는 거의 한 점도 먹질 못했다. 영국에서 공부한 큰딸이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을 벽에 걸어 놓았다. 이 산골에서 아이를 영국 유학까지 시키다니 놀랍기만 했다. 그 동생쯤으로 보이는 다른 딸이 계산대를 지키고 있었는데, 너무 돈을 밝히는 듯 해서 인상은 좀 별로였다.  

 

아직까지 아마다블람의 위용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남체를 싸고 있는 산 봉우리들은 구름에 가려 기품을 많이 잃었다. 원래는 남체에서 하룻밤을 묵을 예정이었으나, 시간적 여유가 생겨 기왕이면 몬조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조르살레에서 국립공원 경내를 벗어났다. 우리 트레킹의 종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지루한 내리막을 걸어 몬조에 도착했다.    

 

저녁상에는 남체에서 사온 수육이 올라왔다. 남체에 맡겨 놓았던 팩소주도 돌고 돈다. 모처럼 거나한 술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모두가 고산병이란 걱정거리가 사라진 덕택이다. 소주가 부족했는지 거기에 럭시, 양주까지 등장을 했다. 모두들 기분좋게 취했다. 젊은 피들은 저녁 늦게까지 노래를 부르고 난리다. 이 늦은 시각까지 현지인들은 길가 마루에서, 담벼락에서 목을 빼고 우리를 구경한다. 참으로 할 일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나저나 마당에 텐트를 친 다른 나라 트레커들이 죽을 맛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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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rtyLUV 2013.07.10 1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중간의 음식들 너무 먹고 싶네요~^^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2. 보리올 2013.07.11 0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특이한 음식일 뿐입니다. 우리 한식보다 맛있다고 이야기하긴 좀 그렇습니다. 네팔 가시면 한 번 먹어보세요.

  3. 안영숙 2013.10.03 0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돌담벽에 붙어 놓은 야크 거시기 위에 있는 예쁜 노랑 자캣 아가씨는 지금 도대채 뭘 하는 걸랑?

  4. 보리올 2013.10.03 0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가 그래도 허패의 캐나다 집단가출 당시 막동이였던 우리 '민갱이'입니다. 에베레스트 트레킹 갔을 때는 결혼 전이라 한국에 짝이 없으면 네팔로 시집 보내려 시험삼아 장작 좀 들어보라 했더니 영 아니올시다였지요. 저 정도 무게면 건장한 우리도 들지를 못합니다. 네팔 여인네는 머리로 사뿐히 잘도 들어 올리더구만. 하여간 우리 민갱이는 지금 한국에서 멋진 남편 만나 잘 살고 있답니다.

 

고소 적응을 위해 남체에서 하루 쉬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냥 로지에 머무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에베레스트 뷰 호텔을 지나 쿰중(Kumjung)까지 갔다오기로 하고 8 30분에 로지 앞에 집결했다. 박 대장과 정상욱 상무는 로지에 남겠다 한다. 가벼운 고소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몇 명 나왔지만 전반적으로 다들 컨디션은 좋은 듯 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속도를 달리해 오르막길을 오른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남체 마을 모습에 카메라를 꺼내는 횟수가 늘어났다.

 

수목한계선에 위치한 파노라마 뷰 로지에 닿았다. 파란 하늘 아래 웅장한 봉우리들이 도열해 있었다. 에베레스트뿐만 아니라 로체(Lhotse)눕체(Nuptse)같은 높고 웅장한 봉우리들이 우리 시야에 들어왔고, 오른쪽에 아마다블람(Ama Dablam) 보였다.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아마다블람이 오히려 더 웅장하게 다가온다. 다들 예기치 못한 엄청난 풍경에 연신 감탄사를 쏟아낸다. 히말라야의 위압적인 풍경에 압도되었다고나 할까.   

 

파노라마 뷰 로지에 근무하는 한 현지 여성이 유창한 우리 말로 인사를 건넨다. 어떻게 한국말을 배웠냐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몇 년간 근무한 적이 있단다. 그래도 너무 잘 한다. 점심은 에베레스트 뷰 호텔에서 먹기로 했다. 음식을 시켰는데 인원수가 많아서 그런지 시간이 너무 걸린다. 땀이 식어 추위를 느낄 때가 되어서야 음식이 나왔다. 한 시간이 더 걸린 것 같았다. 여기 사람들 너무 느긋한 것 아니야? 호텔 매니저에게 항의를 한 후에야 요리사와 웨이터들 동작이 좀 빨라졌다.

 

대부분은 여기서 돌아서기로 했고 나를 포함한 아홉 명은 쿰중을 들려 다른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좀 돌아가기는 하지만 에베레스트 초등자 힐러리 경이 쿰중에 세웠다는 학교를 들러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쿰중엔 모양새가 비슷한 집들이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힐러리 학교는 산 속에 있는 학교치고는 시설이 꽤 좋았다. 운동장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도 만났다. , 컴퓨터 교실도 들어가 보았는데, 한국산악회의 실버 원정대에서 지어주었다고 적어 놓아 내심 자랑스러웠다.  

 

쿰중에서 남체로 내려가는 길에 옛 공항을 지났다. 루크라에 새로 비행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여기를 이용했다고 한다. 카트만두에서 바로 이 고도까지 올라오면 고소 증세가 만만치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루크라에 새로 공항을 지었을까? 여기서 바라보는 조망도 무척 훌륭했다. 푸른 잔디가 깔린 사면에서 산악 마라톤을 하는 사람도 만났다. 나로선 숨 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 고도에서 마라톤이라니? 우리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라 그저 어리벙벙해졌다.

 

로지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또 수다를 떨었다. 수다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미국의 한 TV 방송국에서 예티 촬영을 나왔다고 부산했다. 촬영 장비에 인원까지 그 규모가 엄청났다. 그나저나 예티에 대한 소문만 분분했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직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이렇게 대규모 촬영팀을 보내다니 돈이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 가서 예티를 찍을 것인지는 직접 물어보지 못했다. 하여간 그네들 때문에 로지가 무척 시끄러웠다. 시끌법적한 분위기를 피해 몇 명 데리고 밖으로 맥주 한 잔 하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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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3.06.30 2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마음에 두고 있는 산입니다
    꼭 가보고 싶습니다
    멋진 사진과 풍광에 감사드립니다
    올 봄에 떠났어야 했는데,,,,, 목구녕이 포도청이라,,,,

  2. 보리올 2013.06.30 2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농돌이님, 에베레스트가 마음 속에 간절한 염원으로 남아 있으면 조만간 이루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자료가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몸 조심해서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3. 고윤 2013.06.30 22: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대단해요 저도 뭐든된다면 한번 가보고 싶네요 ㅜㅜ

  4. 보리올 2013.06.30 2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을 좋아하시면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는 꼭 한 번 다녀오시길 강추합니다. 고산 증세로 몸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5. 설록차 2013.07.21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 중턱에 있는 좁은 길을 걸어가자면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나요? 힐러리경이 세운 학교라니 더 자세히 드려다 보게 됩니다...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우리 수건돌리기와 비슷한듯~실제 웅장한 산을 보게 되면 어떤 느낌일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예티가 무엇입니까? 추가) 틀린 글자를 수정했더니 글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6. 보리올 2013.07.21 15: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산길은 양호한 편입니다. 더 위험한 구간도 많지요. 예티란 전설로만 이야기되는 히말라야 설인(雪人)을 말합니다. 하얀 털을 가진 커다란 고릴라를 연상하시면 됩니다. 설인을 봤다는 사람은 제법 많습니다만 어느 것도 증명이 되지는 않았지요.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되었다. 이곳으로 오를 때 낙석 사고가 있었던 구간이라 출발시각을 앞당기기로 했다. 새벽녘 어스름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일찍 식사를 마치고 출발을 서둘렀다. 고산병에 시달리던 사람들도 빨리 이 고지를 벗어나고 싶어하리라. 두 시간 가량 열심히 걸었을까. 우리 양옆에 있던 절벽이 사라지고 산자락이 제법 멀리 자리잡았다. 낙석 위험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도 멀리서 돌 구르는 소리는 요란했다.

 

선두는 어디를 지나는지 우리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급히 쫓아갈 이유도 없기에 여유롭게 주변 경치를 둘러본다. 그 때, 우리 오른쪽 뒤편으로 거대한 산군 하나가 나타났다. 꿈 속에서나 그리던 에베레스트가 우리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그 옆에 있는 로체와 로체샤르도 보인다. 이들을 맞을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다가오다니무심하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바위를 찾아 그 위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경건한 마음으로 에베레스트를 올려다 보았다. 모처럼 한가하던 카메라가 다시 바빠졌다.

 

상행 구간에 무척이나 지겨웠던 바룬 빙하의 너덜지대를 또 걷는다. 무릎이 시큰거려도 멈출 수는 없는 일. 거의 3일간 너덜지대를 걸었으니 입에서 신물이 날만 하다. 우리가 걷는 너덜지대 아래에서 우렁찬 물소리가 들린다. 빙하 아래로 물이 개천이 되어 흐르는 것이다. 그 위를 이렇게 태연하게 걷고 있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당말 베이스 캠프로 내려오면서 각양각색의 돌무늬가 시선을 끌었다. 바위로 생성되어 이렇게 계곡으로 떨어져 마모될 때까지 수 만년이 흘렀겠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이런 무늬를 보게 된다. 일행들과 떨어져 돌무늬에 관심을 보이다가 가장 늦게 당말 베이스에 도착했다. 라면을 끓여 늦은 점심을 대신했다. 도중에 삶은 계란과 감자로 요기를 해서 그런지 그리 시장하진 않았다.

 

텐트에 들어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갑자기 궂어지며 비바람에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런 때는 밖으로 나도는 것보다 침낭 안이 최고다. 어느 새 낮잠에 빠졌다. 이러다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 큰일인데 하면서도 잠을 뿌리치지 못했다. 저녁을 일찍 먹으면 보통 10시간에서 11시간을 잠으로 때워야 하는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 엄청난 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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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는 마칼루(Makalu, 해발 8,463m)하이 베이스 캠프를 청소하기 위해 한왕용 대장의 <클린 마운틴 캠페인> 다시 참여를 했다. 마칼루에 이르는 길은 에베레스트나 로체에서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다르다. 다른 8,000m급 고봉에 비해 베이스 캠프의 고도도 상당히 높다. 그럼에도 이 캠페인에 참가한 인원 14명의 평균 연령은 엄청 높았다. 한 대장으로선 좀 걱정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평생을 산과 더불어 살아 오신 분들이니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선 현명하게 잘 판단하리라 믿었다.

 

마칼루는 에베레스트 동쪽으로 불과 27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런데도 에베레스트와 로체가 있는 쿰부 지역을 지나지 않는다. 가장 보편적인 접근 방법은 카트만두에서 툼링타르(Tumlingtar)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 멀리 동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것이다.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가는 길처럼 로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길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카트만두를 떠나면서부터 매일 텐트를 쳐야 했고, 속에서 빗방울과 싸락눈을 피해야 했다. 그래도 그것은 낭만이 있어 좋았다.

 

마칼루에 이르는 길은 적잖은 다리품을 요구한다. 어렵사리 올라온 고도를 뚝 떨어뜨려 두 개나 되는 강을 건너야 하고, 중간에 해발 4,170m의 십튼 라(Shipton La)를 넘어야 한다. 초반부터 고산병 증세로 힘이 드는데,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바룬(Barun) 강을 따라 베이스 캠프로 다가갈수록 양옆 벼랑에서 떨어져 내리는 낙석도 겁났지만, 지겹게 걸어 올라야 하는 빙하 위 너덜지대는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지금 생각을 해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그런 곳이었다.

 

카트만두에서 하루를 묵은 안나푸르나 호텔을 떠나 공항으로 갔다. 오전 11시발 툼링타르행15인승 고르카(Gorkha) 항공기를 타기 위해서다. 출발시각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안내가 없다가 12시 반이 되어서야 비행기가 늦어진다고 이야길 한다. 누가 매점에서 맥주를 사다가 나누어 준다. 얼마에 샀냐고 물었더니 캔당 150루피. 하지만 그 뒤에 간 한 대장은 100루피에 샀다. 그 다음 사람은 다시 150루피. 마지막 사람은 135루피. 도대체 맥주 가격이 왜 널 뛰듯 하는지 궁금했지만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다. ‘엿장수 맘대로가 정답 아닌가 싶었다. 산에 들기도 전에 취기로 머리가 띵해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오후 1시가 넘어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 청사라 보기엔 너무 허술한 툼링타르 공항에 비행기가 내렸다. 비포장 활주로 빼고는 잡초만 무성한 풀밭이었다. 온통 연기에 그을은 식당에서 감자를 삶아 점심을 대신했다. 우리의 출현에 신기해하는 현지인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베이스 캠프를 향해 트레킹을 시작한다. 마네반장(Mane Bhanjyang)까지는 지프를 이용했다. 4월 하순의 뜨거운 햇살과 무더위에 땀은 비 오듯 하고 고물차에서 풍기는 역한 휘발유 냄새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빨리 시원한 산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지나치는 마을마다 "나마스테"하면서 두 손을 모으는 아이들 덕분에 그나마 더위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마네반장의 축구장 한 켠에 텐트 7동과 식당 텐트 한 동을 쳤다. 축구하는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일부 빼앗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네들도 공을 차면서 우리를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쳐다 보곤 한다.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보았다. 길 양쪽에 상가가 자리잡은 꽤 큰 마을이었다. 무슨 물건을 파는지 가게를 둘러보다가 야영지에서 신을 슬리퍼를 하나 샀다. 이 사람들은 이런 슬리퍼를 신고 베이스 캠프도 간다. 우리는 튼튼한 등산화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이게 삶과 레저의 차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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