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양식'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7.08 [포르투갈] 코임브라 ② (2)
  2. 2013.08.02 [멕시코] 크레파스 마을, 과나후아토 - 2 (2)

 

 

코임브라 대학교를 나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대성당으로 향했다. 코임브라에는 대성당이라 불리는 곳이 두 군데 있다. 서로 멀리 떨어지진 않았지만 구 대성당과 신 대성당으로 구분해서 부른다. 먼저 찾아간 곳은 신 대성당(Se Nova de Coimbra)이었다. 예수회에서 1598년부터 근 100년에 걸쳐 완공한 성당이다. 외관에선 바로크 양식이, 실내에선 중앙 제단과 제단 양쪽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 두 개가 눈에 띄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그리 요란하지 않아서 좋았다. 성당으로 연결된 복도엔 성물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 있었다. 예수회 성자로 유명한 성 프랜시스 제이비어(St. Francis Xavier)의 나무 조각상도 볼 수 있었다. 신 대성당 옆에 있는 성 주앙 데 알메디나(São João de Almedina) 성당은 문을 열지 않아 들어갈 수가 없었고, 그 옆에 있는 마차도 데 카스트로 국립박물관(Museo Nacional de Machado de Castro)은 안으로 들어가진 않고 전망대에서 코임브라 도심을 조망하기만 했다.

 

골목길을 따라 구 대성당(Se Vehla de Coimbra)으로 내려섰다. 코임브라 대학 바로 아래 자리잡고 있었다.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포르투갈을 건국한 아폰수 1(Afonso I)가 코임브라를 수도로 정하고 구 대성당을 건축한 것이 아직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13세기에 완공되었다고 하니 그 역사가 꽤 깊다. 국토회복운동, 즉 레콩키스타가 벌어졌던 시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라 그 의미가 더욱 크다 하겠다. 그 시대상을 반영한 것인지 외관은 당시 유행했던 아랍 풍의 건축양식이 일부 남아있는 것으로 보였다. 투박한 외관은 성당이라기보단 무슨 요새처럼 생겼다. 안으로 들어서니 엄청난 크기의 대왕조개 껍질이 눈에 들어왔다. 성수대로 쓰고 있었는데 인도양에서 가져왔다는 설명이 있었다. 중앙 제단과 성 사크레멘투 예배당을 둘러보곤 옆문을 통해 회랑으로 나왔다. 로마네스크에서 고딕 양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회랑이라 했다. 곳곳에 묘석이 있는 것을 봐선 무덤도 있는 듯했다.

 

 

 

새로 지은 도서관 건물이 있는 대학 입구 곳곳에 조각품이 세워져 있었다.

 

코임브라 신 대성당(Se Nova de Coimbra)의 정면 모습

 

 

신 대성당 내부의 중앙 제단과 파이프 오르간

 

 

신 대성당 한 켠에 마련된 전시실에는 18세기에 목각한 성 프랜시스 제이비어의 흉상도 있었다.

 

  

 

마차도 데 카스트로 국립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진 않고 전망대에서 코임브라 도심을 바라보았다.

 

로마네스크 양식이 많이 남아 있는 구 대성당의 동쪽 모습

 

 

로마네스크 양식에 아랍 풍이 일부 섞여 있는 서쪽 정문이 구 대성당의 출입구 역할을 했다.

 

대성당으로 들어서니 성수대로 쓰고 있는 커다란 조개 껍질이 눈에 띄었다.

 

 

 

대성당의 중앙 제단과 16세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예수와 사도들 상을 조각한 사크레멘투 예배당

 

18세기에 제작한 묵주의 성모 마리아상. 이슬람 영향을 받은 벽면 타일 장식이 눈길을 끌었다.


 

 

 

고딕 양식의 회랑엔 의외로 묘석들이 많았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인에이 2019.07.08 08: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멋진 사진들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골목길 탐방이 은근히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부실한 아침에 배도 고프고 해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이달고(Hidalgo) 시장부터 찾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 안에 있는 먹자 골목에 대해선 익히 들은 적이 있었다. 시장은 사람들로 넘쳐 흘렀다. 전통 복장을 갖춰 입은 아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남자 아이들은 예외없이 얼굴에 수염을 그려 넣기도 했다. 오늘이 무슨 축제일인가? 그러고 보니 아까 무슨 퍼레이드가 지나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갑갑증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관광 안내소에서 지도 한 장을 구해 본격적으로 과나후아토 구경에 나섰다. 우선 눈에 보이는 성당이란 성당은 모두 들어가 보았다. 카톨릭 국가답게 성당의 문턱이 높지 않아 좋았다. 유럽에서 보았던 성당보다 화려하다 말하긴 어려웠지만 멕시코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바로크 양식으로 노랗게 칠을 한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그래도 볼만 했다. 여기에 안치된 성모상은 1557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와 그의 아들 펠리페 2세가 은을 생산해 공급해준 보답으로 과나후아토에 선물한 것이란다.

 

 

 

 

지도에 적힌 번호를 따라 관광지를 두루 돌아 보았다. 많은 길거리 동상과 조각품, 광장을 지나쳤다. 돈키호테 동상 외에는 딱히 그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태어났다는 박물관(Casa Diego Rivera)은 꼭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문을 열지 않았다. 발길 닿는대로 후아레스 극장(Thatro Juarez)과 우니온 정원(Jardin de la Union)도 지났다. 시민과 관광객이 엉켜 한가롭게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라 파스 광장(Plaza de la Paz)은 시내 중심에 있다 보니 몇 번을 지나친다.

 

 

 

 

 

 

 

과나후아토 대학(Universidad de Guanajuato) 앞은 엄청난 인파로 붐볐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다. 그런데 이곳은 아침에 길을 잘못 들어 이미 지나갔던 곳이 아닌가. 아침에 본 것은 새벽 시장이 아니라 무슨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길가에 상인들이 먹거리와 기념품을 팔고 있었고, 카메라를 들고 기념 사진을 찍어주는 곳도 많았다. 멕시코 전통 의상을 입은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언덕 위에 있는 과달루페(Guadalupe) 성당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손에는 신에게 바칠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계란을 넣어 오기도 했다. 성당 안으로 향하는 인파를 따라 갔다. 줄이 너무 길고 사람이 많아 한 발짝 앞으로 가는데 몇 분이 걸렸다. 순례에 동참해 성당을 한바퀴 돌아 나오는데 한 시간도 더 걸렸다.

 

 

 

 

 

 

 

과나후아토에서 키스의 골목은 꼭 보라 했건만 난 그리 흥미가 없었다. 가난한 젊은 광부와 딸이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아버지가 딸을 죽였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연인들은 빨간 칠을 한 세 번째 계단에서 키스를 하지 않으면 불행한 일을 당한다고 한다. 오후 3시가 넘자 시내 구경을 서둘러 마감했다. 멕시코 시티로 돌아가기로 했다. 터미널 가는 낡은 버스를 탔다. 요금은 5페소. 여기선 보안 검색을 하지 않는다. 5시간을 달려 멕시코 시티에 닿았다. 소칼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미고(Amigo)란 호스텔에 묵었다. 3인실을 이용했는데 하룻밤에 1인당 210페소를 주었다. 시설도 깨끗하고 이 가격에 아침, 저녁이 포함되어 있었다.

 

 

Posted by 보리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해인 2013.08.03 15: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베니스의 부라노섬이 연상되는 마을이에요! 형형색색 칼라풀한 집들이 시선을 확 끄는군요!!!!!! 오늘 밤 베니스에서의 여정을 추억하며 잠들어야 할 듯 해요..

  2. 보리올 2013.08.03 1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니스는 몇 번 다녀왔지만 부라노 섬은 갔던 기억이 없구나. 예전에 베니스 앞바다의 무슨 유리 공예품 만드는 섬에 갔었는데 거기가 부라노 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