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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5.20 [네팔] 박타푸르 ③ (2)
  2. 2015.05.19 [네팔] 박타푸르 ②
  3. 2015.05.18 [네팔] 박타푸르 ①
  4. 2014.03.22 [네팔] 박타푸르 (4)
  5. 2013.12.05 진주에서 네팔을 만나다 - 히말라얀 아트 갤러리 (4)

 

지진으로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보다도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은 사람들을 보는 것이 더 힘들었다. 건물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공터나 밭에는 천막이나 텐트가 세워져 있었고 그 안에는 주민들, 특히 노인들이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다. 한 가구가 들어있으면 최소한 프라이버시는 지켜지련만 보통은 세 가구가 천막 하나를 함께 쓴다고 했다. 천막은 대부분 중국 적십자에서 제공된 것이었다. 중국에선 적십자를 홍십자(紅十字)라 부른다는 것도 네팔에서 알았다. 발빠르게 지원에 나선 중국이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지만 네팔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느 건물 벽면에 붙어있는 공고문의 내용이 궁금해 물어보았더니 피해를 입은 가구를 적어 놓았다고 한다. 행여 구호품이 도착하면 여기에 있는 가구들만 받아야 하는데, 피해 가구를 일일이 확인할 방법이 없어 대상자가 아닌 사람도 구호 물품을 받아가는 모양이었다.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구호품을 받으면 나중에 죽어 지옥에 떨어질 것이란 섬뜩한 경고 문구도 따로 붙어 있었다. 머리를 삭발한 남자들을 가끔 발견할 수 있었다. 네팔에선 직계가족이 죽으면 상주들이 대부분 삭발을 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들 가족 중에 누군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삭발한 머리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피해 가족들을 위해 임시로 설치한 다른 지역의 천막촌도 둘러 보았다. 다들 궁색한 형편이었지만 표정만은 그리 어둡지 않아 네팔 사람들의 낙천적 기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피해 가구를 적어놓은 공고문이 벽면에 붙어 있었다.

 

 

(사진) 머리를 삭발하면 직계가족이 죽었다는 의미인데 그런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사진) 공터에 마련한 임시 천막촌. 몇 가구가 천막 하나에 공동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사진) 다른 지역에 설치된 천막촌을 찾았더니 여기는 대부분이 노인들이었다.

물을 여과하는 장치가 있어 그래도 한 시름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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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영수 2015.05.22 0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에서는 적십자가 아닌 홍십자라고 부르는것은 일반적으로 중국에서는 붉은색을 표기할 때 일반적으로 붉을적(赤)보다는 붉을홍(红)으로 표기를 합니다,
    그래서 적십자가 아닌 홍십자라고 하는 것이구요. 중국홍십자회는 한국으로 말씀드리자면 대한적십자사와 비슷한 곳이며. 현재 국제적십자.적신월연맹의 일원이기도 하구요.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에서는 이를 국제 홍십자. 홍신월연맹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적십자는 한국. 북한.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표기이며. 중국을 비롯해서 대만. 홍콩. 마카오에서는 홍십자로 표기를 하구요.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에서는 헌혈버스와 헌혈의 집도 모두 홍십자회에서 운영을 한답니다,
    이슬람권에서는 적십자사를 적신월사라고 하는데요. 이는 십자가가 기독교와 천주교의 상징이라서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을 이용해서 적신월이라고 하구요.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에서는 이를 홍신월이라고 부른답니다,

    • 보리올 2015.05.22 0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세한 설명 너무나 고맙습니다, 김영수 선생님. 제가 그 분야는 거의 아는 바가 없어서요. 하긴 Red Cross를 각 나라에 맞게 우리는 적십자, 중국은 홍십자 하는 식으로 자체적으로 표현한 것일텐데 제가 적십자와 달라 좀 이상하다 생각을 했던 것 같네요.

 

카트만두에서 만난 현지인 친구는 마치 예언자처럼 네팔에선 80년마다 커다란 지진이 일어난다고 했다. 어디서 80년이란 주기가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예전에 일어났던 한 가지 사건이 떠올랐다. 1934년에 일어난 대규모 지진으로 인해 박타푸르에 있던 문화재가 상당 부분 파괴되었던 적이 있었다. 올해가 2015년이니 꼭 81년 전에 일어난 사건 아닌가. 그래서 그 친구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담담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덜발 광장에 있는 문화재가 모두 부서진 것은 아니었지만 기단만 남겨놓은 채 상부의 탑은 송두리째 사라진 것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그 앞에서 한쪽 발을 들곤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는 대만 봉사단원들의 철없는 행동을 보곤 절로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덜발 광장을 벗어나 사람들이 주거하는 지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긴 상황이 더 나빴다. 무너진 건물들이 한두 채 보이더니 한꺼번에 왕창 무너진 현장도 나타났다. 건물이 서로 붙어있다시피 해서 하나가 무너지면 옆 건물도 도미노 현상을 막을 수 없었으리라. 벽에 금이 가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무너져내릴 것 같은 건물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옥상에 놓인 화분은 떨어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었다. 현지 사람들은 이제 만성이 된 것인지 손을 놓고 여기저기 앉아만 있었다. 얼굴엔 슬픈 표정도 거의 없었다. 굴삭기 한 대만 열심히 무너진 건물 잔해를 퍼담고 있었다. 마침 카트만두의 한 로타리 클럽에서 구호품으로 쌀을 가지고 왔다. 길게 줄을 선 주민들 앞에서 간단한 전달식을 갖는 것 같았다. 서로 어려움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진) 박타푸르 덜발 광장의 모습. 주로 탑이 많은 손상을 입었다.

 

 

 

 

 

 

 

 

 

 

 

(사진) 주민들이 주거하는 지역은 폭격을 맞은 듯 많은 건물들이 무너지고 말았다.

인명 피해도 많았겠고 이재민도 많이 생겼을 것 같았다.

 

 

 (사진) 카트만두 로타리 클럽에서 트럭에 쌀을 싣고와 자체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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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타푸르(Bhaktapur)는 지진 피해가 상당히 심하다고 들었다. 네와르 족이 지은 고풍스런 목조 건축물이 많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인데, 오래된 문화재가 꽤 손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번 지진으로 문화재 외에도 박타푸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가옥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박타푸르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네팔 교구청에서 내준 차를 타고 박타푸르로 향했다. 붉은 벽돌로 지은 문 옆에 주차를 하곤 걸어서 박타푸르로 접근했다. 왼쪽에 위치한 인공 연못에선 그물로 잉어를 잡고 있었다. 지나가던 구경꾼도 많았다. 팔짝팔짝 뛰는 팔뚝만한 잉어가 저울 위에 놓이는 즉시 팔려 나갔다. 식량이 부족한 비상 상황이라 잉어잡이를 특별히 허가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덜발 광장(Durbar Square) 쪽으로 걸었다. 양쪽으로 더 좁은 골목들이 가지를 치고 있었지만 그저 눈으로 구경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야채 몇 단을 내어놓은 상인이나 면도에 열중하고 있는 이발사도 지나쳤다. 지진으로 내려앉은 전깃줄은 대충 끈으로 묶어 놓았다. 지나는 행인들을 위해 종이에 그려 넣은 해골 표식이 일종의 경고 표시이었고 그 외엔 어떤 안전장치도 없었다. 행인이 알아서 피해가라는 의미같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한쪽으로 기운 건물을 막대로 받혀놓은 현장을 지나며 조금씩 지진 피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예상했던 피해보다는 훨씬 적다는 것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진) 일본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2011년 건설한 카트만두-박타푸르간 4차선 도로.

지진의 영향으로 한쪽 2차선 도로가 1m 이상 주저앉았다

 

 

 

 

 

 

(사진) 박타푸르 초입에 있는 인공 연못에서 그물로 잉어를 잡아 팔고 있었다.

 

 

 

 

 

 

 

 

 

 

 

 

 (사진) 덜발 광장으로 향하는 골목길을 걸었다. 여긴 지진 피해를 많이 받지 않아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어둡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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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동남쪽에 자리잡은 네팔 고대 왕국 박타푸르(Bhaktapur)를 둘러봤다.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난 네와르 족들이 건설한 도시로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네팔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난 몇 번 다녀간 곳이지만 네팔에 처음 온 일행들이 있어 그냥 건너뛰기가 쉽지 않았다. 외국인에겐 입장료로 10불씩을 받지만 네팔인들은 무료로 들어간다. 고풍스런 건축물과 장식물, 사원, 석상들이 도시에 밀집되어 있어 커다란 박물관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특히 붉은 벽돌을 많이 사용해 고풍스러움을 더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해 정문을 들어서면 덜발 광장(Durbar Square)과 왕궁이 먼저 나타난다. 덜발 광장은 왕궁이란 의미로 카트만두에도 있고 파탄에도 있다. 박타푸르엔 덜발 광장 외에도 두 개의 광장이 더 있다. 중요한 건축물은 이 세 개의 광장 주변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 양식이나 장식품이 서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달라 그 차이를 가늠키 어려웠다. 네와르 부족의 뛰어난 손재주에 절로 감탄이 새어나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박타푸르엔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묘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박타푸르의 또 다른 매력이라 하면 나만의 생각일까. 문화재도 사람과 함께 숨쉬고 온기를 나눌 때 그 존재가치가 더욱 부각되지 않을까 싶다. 광장을 벗어나면 사람들이 들끓는 골목들이 나타난다. 공예품이나 옷감, 악기를 파는 가게도 있고 먹거리를 파는 조그만 식당도 많다. 과일 가게 앞에선 한 남자아이가, 큰 나무 앞에선 여자아이가 우리를 보곤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다. 세파에 때묻지 않은 그들 표정에 우리도 모처럼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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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토종감자 2014.03.22 1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번째 사진 참 좋네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 인상적이예요.

    • 보리올 2014.03.22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참으로 부러워하는 여행을 하시는군요. 정말 멋진 삶이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토종감자님이 갑자기 부러워집니다. 네팔은 아직도 순진한 동심을 만날 수 있는 곳이랍니다. 언제 수입오이를 앞세워 한번 다녀 오시지요.

    • 토종감자 2014.03.22 2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네팔이며 인도, 라오스 등등 가보고 싶은 곳은 너무 많은데, 아직 기회가 없었네요.
      꼭 만들어야죠, 기회 ^^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블로그 제목, 너무 마음에 들어요!
      딱 제가 하고 싶은 여행이네요. ^^

    • 보리올 2014.03.22 23: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역마살을 가지곤 태어났는데 그 동안은 직장생활하느라 한 곳에 매여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야 거의 비슷하겠지만 말입니다. 많이 다니시고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토종감자님 블로그 제목도 재미있던데요.

 

 

진주까지 내려온 김에 박정헌 대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이 친구는 사천 출신의 산사람으로 산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전형적인 경상도 터프가이 같았다. 그런 그가 2012 8 31일 진주에다 히말라얀 아트 갤러리(Himalayan Art Gallery)를 오픈했다는 이야기를 페이스북을 통해 들었다. 난 그가 열심히 산에나 다니는 산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히말라야 예술에 대한 안목이 이렇게 높은 줄은 미처 몰랐다. 어떤 작품들로 갤러리를 꾸몄을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박대장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바위꾼 중 한 명이다. 알파인 스타일로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던 거벽등반가였다. 지난 2005년인가, 후배 최강식과 둘이서 히말라야 쿰부 지역의 촐라체를 등반하고 하산하다가 최강식이 크레바스에 빠지는 사고를 당했다. 9일간의 사투 끝에 조난 사고에서 둘 다 살아 돌아온 기적같은 이야기를 <>이란 책으로 엮었다. 물론 그 댓가로 두 사람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야 했다그 후 박대장은 거벽 등반에서 패러글라이딩으로 방향을 전환해 여전히 히말라야를 찾고 있다. 패러글라이딩으로 장장 2,400km에 이르는 히말라야 횡단 비행을 해낸 것이다. 한 마디로 대단한 친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어느 잡지사와 인터뷰한 내용이 생각난다. 촐라체 조난 사고 당시의 심경 묘사가 너무나 절절해 그걸 보는 순간 내 가슴이 먹먹해졌던 기억이 난다.    

죽음은 한 순간이다. 크레바스에 빠진 후배를 구하려고 할 때 내 안에서 또 다른 내가 나와서 나를 유혹했다. 또 다른 나는 최강식은 죽었다고 나에게 끝없이 속삭였다. 후배가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죽는 길이고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사는 길이었다. 23m 깊이 크레바스는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다. 후배의 몸무게를 지탱하느라 나도 척추가 나간 상황이라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자일을 끊어야만 내가 살 수 있었다. 크레바스 안에서 후배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 오히려 절망했다.”    

 

갤러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전화를 걸어 정확한 위치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박대장이 갤러리 문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늦은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갤러리에 들어서자, 여긴 한국이 아니라 네팔 박타푸르나 파탄에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 갤러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정성을 들이고 신경을 쓴 기색이 역력했다. 박대장의 안내로 전시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네팔 네와르 건축양식으로 조각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네와르 2층 창틀과 공작새 문양 창틀은 네와르 최고의 목각 장인인 레드 샴 실파카(Radhey Shyam Silpakar)가 기증한 작품이라고 한다. 네팔에서 꽤 유명한 조각들인데 여기서 볼 수 있다니 신기했다. 작품을 고르고 여기까지 가져온 박대장의 노고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그 외에도 박대장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찍은 히말라야 사진과 소품이 걸려 있었다. 그는 히말라야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산사람이 분명했다. 박물관 뒤에 차실을 하나 마련해 놓아 거기서 차 한 잔을 마셨다. <>이란 책에 저자 서명을 해서 건네준다. 오래 전에 사서 읽었던 책이지만 고맙게 받았다. 어떤 연유로 히말라얀 아트 갤러리를 세웠는지 물었고, 그의 비전을 들었다. 그는 네팔 산악 지역에 사는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세우고, 히말라야 예술가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며, 세르파의 탐험 활동을 지원하는 꿈을 이루고 싶다 했다. 그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매달 얼마씩를 후원하는 약정서에 서명을 해서 박대장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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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드래곤 2013.12.05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시품도 중요히지만 좋은일도 하시는군요

  2. 보리올 2013.12.05 14: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일들이 더 확산되어야 한다고 전 생각합니다. 박대장이 갤러리를 오픈한 취지가 좋으니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리라 믿습니다. 그나저나 드래곤님도 사진과 여행 좋아하시는 것을 보니 역마살이 대단하신가 봅니다.

  3. 설록차 2013.12.07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향이 가까워 진주에 갤러리를 열었겠지만 위치가 좀 아쉬워요... 서부 경남의 요충지라해도 히말라야 문화를 이해하고 찾아올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길 바깥에 위치한 조각 창문틀이 손상되지 않고 잘 보관이 될런지 걱정됩니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만든 조각을 보니 예술을 넘어 참선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을것 같아요... 옮겨온 분의 정성도 대단하구요... 배 건너에 외가가 있고 본적도 진주에 있어 그 일대가 눈에 선합니다...^^

  4. 보리올 2013.12.07 1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방이란 한계는 분명히 있겠죠. 하지만 박대장의 본거지라 이 갤러리를 발판으로 지역 특성을 살린 여러 행사가 치뤄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어떤 일이든 열정이 대단한 친구니 잘 꾸려 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언제 고향 가시면 한번 들러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