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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25 산티아고 순례길 27일차(빌라세리오~세) (2)
  2. 2015.11.25 산티아고 순례길 7일차(로그로뇨~아쏘프라) (6)

 

하룻밤 묵은 마을엔 가게가 없었고 알베르게에도 취사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 배낭에 넣고 다니던 비상식도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다. 8km 정도 떨어져 있는 산타 마리냐(Santa Marina)까지 가서 아침을 먹자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어제 저녁에 알베르게에서 만난 40대 초반의 한국인과 얼마를 함께 걸었다. 슬로바키아에서 왔다는 친구는 엄청 큰 배낭을 지고 우리를 앞질러 간다. 텐트도 있길래 캠핑을 하면서 왔냐고 물었더니 실제 텐트는 세 번인가 치고 매일 알베르게에 묵었단다. 그럴 것이면 텐트는 무엇하러 가지고 다니나 싶었다. 산타 마리냐 성당 앞에 있는 바에서 토스트로 아침 식사를 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토스트가 아니라 이건 일종의 샌드위치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성당을 둘러 보았다.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있는 성당은 공동묘지를 수호하고 있는 듯 했다.

 

몬테 아로(Monte Aro)란 야트마한 산자락에 자리잡은 조그만 마을을 몇 개 지났다. 건너편 아래쪽으론 푸른 초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이 보였다. 아침부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가끔 빗방울이 흩날린다. 신기하게도 우의만 걸치면 비가 그치길 몇 차례 거듭했다. 사람들이 갈리시아 지방의 변덕스런 날씨를 자주 이야기하더니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스팔트 길을 걸어 코르쏜(Corzon)으로 내려서는데 멀리 큰 호수가 나타났다. 처음엔 바다인 줄 알았는데 바다가 아니라 댐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호수였다. 코르쏜의 산 크리스토보(San Cristovo) 성당과 그 옆에 조성된 공동묘지는 무슨 전시장처럼 보였다. 공동묘지를 이렇게 아름답게 꾸며놓은 곳은 솔직히 처음 보았다. 성당 입구에는 십자가가 서있었고 종탑은 성당 건물과 동떨어져 따로 세워져 있었다. 종탑이 본당 건물과 떨어져 있는 것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올베이로아(Olveiroa)로 들어섰다. 어느 건물 벽면에 큰 글씨로 마을 이름을 적어 놓았다. 이렇게 마을 이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마을을 빠져나오면서는 난해한 벽화도 만났다. 피카소의 그림을 흉내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마을 뒤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풍력발전기가 세찬 바람을 타고 열심히 돌고 있었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더니 꽤 높은 고원지대로 올랐다. 저 아래 계곡엔 댐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하류엔 제법 폭이 넓은 강이 흘러가고 있었다. 오로고소(OLogoso)에서 점심을 먹었다. 알베르게를 겸하는 식당인지라 주인이 자꾸 여기서 자고 가라고 권한다. (Cee)까진 너무 멀다고 슬며시 겁도 주었다. 도대체 거리가 얼마나 되기에 그러냐고 물었더니 15km란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충분히 가고도 남지.

 

오스피탈(Hospital)에 있는 카미노 데 피스테라 안내소는 문이 닫혀 있었다. 벽면에 붙은 지도와 거리표를 대충 훝어 보았다. 카바이드를 생산하는 커다란 공장이 나왔고 곧 갈림길이 나타났다. 오른쪽은 무시아로, 왼쪽은 피스테라로 간다. 왼쪽으로 들어섰다. 머지 않아 평원을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운치 있는 길이 나왔다. 마치 선자령 어디쯤을 걷는 것 같았다. 산 속에 성당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그 이름이 산 페드로 마르티르(San Pedro Martir) 성당이라 했다. 근처에 인가나 마을도 없는데 이곳에 성당을 세우면 도대체 누가 찾아온다는 말인가. 그 까닭을 내 머리론 이해할 수 없었다. 산길은 오르내림을 계속 하다가 이번엔 공사 중인 비포장도로를 걷게 되었다. 불도저가 도로 표면을 막 밀어 놓은 곳은 방금 내린 비로 진흙탕이 되어 걷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야트마한 언덕에서 공사 구간이 끝났다. 그런데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바다가 나타날 것이라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엔 잘못 들었겠지 했다. 곧장 언덕 위에 올라서자 저 앞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뿌연 날씨 탓에 시야가 밝진 않았지만 분명 바다였다. 바다가 눈에 들어오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바다쪽으로 내려서면서 점차 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그만 점으로 보이던 배들도 점점 크게 다가왔다. 세에 도착해 알베르게부터 잡았다. 여긴 사립 알베르게였는데 숙박비로 12유로를 받는다. 수퍼마켓에 들러 장을 보았다. 파스타로 저녁을 마치자 피로가 몰려온다. 내일 일찍 피스테라에 도착하기 위해 오늘 40km가 넘는 거리를 걸은 탓이다. 그래도 내일이면 땅끝에서 망망대해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산타 마리냐 마을로 가면서 마주친 시골 풍경

 

공동묘지를 지키고 있는 산타 마리냐의 고풍스런 성당

 

 

마로냐스(Maronas) 마을을 지났다. 축사 안에서 소 한 마리가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갈리시아 지방 특유의 평화로운 들판이 펼쳐졌다.

 

순례자들을 상대로 돈벌이에 나선 택시 회사의 광고가 자주 눈에 띄었다.

 

 

코르쏜에는 아름다운 공동 묘지와 성당이 있었다.

 

올베이로아 마을의 벽화를 보면서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좀 답답했다.

 

 

올베이로아를 지나 고원으로 오르니 댐과 그 건너편 능선에 설치된 풍력발전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오로고소 마을의 카페에서 점심으로 햄이 들어간 보카딜료스에 맥주를 시켰다.

 

오스피탈 마을엔 카미노 데 피스테라 안내소가 있었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오스피탈에서 피스테라와 무시아 가는 길이 갈렸다. 피스테라를 먼저 가기로 했다.

 

 

고원을 굽이쳐 흐르는 순례길이 눈앞에 펼쳐져 순례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산길을 걸으며 저 아래 보이는 마을을 지나쳤다. 무슨 수도원 건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숲속에 홀로 세워진 산 페드로 마르티르(San Pedro Martir) 성당

 

순레길이 지나는 비포장도로가 공사를 하고 있어 진흙탕을 지나야 했다.

 

 

언덕 위로 올라서자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세 마을도 눈앞에 나타났다.

 

 

 

 

 

바닷가에 자리잡은 세는 꽤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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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4.14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동묘지에 신경을 많이 쓴거같아요 ~ 이쁩니다! 바다를 볼 수 없었던 순례길을 쭉 걸으시다가 끝내 보시게 되었을때 감회가 어떠셨어요?
    마치 백두대간 구간을 걷다가 마지막 봉우리를 찍고 하산하는데 찻길이 보이는 느낌일거같아요~

    • 보리올 2016.04.14 2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언젠가 바다가 나타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바다를 보니 이제 끝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네 표현대로 백두대간 끝내고 진부령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인스턴트 미역국에 가는 면을 넣어 따끈한 수프를 끓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을 수 있다니 감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너무 사치스럽단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바게트에 버터를 발라 먹는 것보단 속이 든든했고 돈도 적게 들었다. 알베르게를 나와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산티아고 성당 앞을 지나는데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열어놓은 것이 아닌가.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제단 장식이 다른 성당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 제단에 있는 산티아고 상은 그렇다 쳐도 그 아래에 대문 모양의 장식은 무엇이고, 왼쪽 제단에 있는 저 신기한 문양은 또 뭐란 말인가. 외계인이 만든 디자인이 이럴까 싶었다.

 

로그로뇨는 대도시답게 도심을 빠져나오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외곽에 있는 공장지대를 지나는데 동녘에서 해가 떠오른다. 붉은 햇살이 공장 건물을 비추는 가운데 서서히 도시를 벗어났다. 커다란 저수지를 만났고 거기서 먹이를 찾아 이른 아침부터 밖으로 나온 청설모와 인사를 나눴다. 조금씩 고도를 높이는 순례길 주변엔 온통 포도밭 천지였다. 와인 산지에 들어섰음을 진즉에 알 수 있었다. 고가다리를 건너 나바레테(Navarrete)에 닿았다. 고대부터 도기를 만든 도시답게 아순시온(Asuncion) 성당 옆에는 도공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성당에서 11번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성당 안에 들어가 내부를 살펴보았다. 화려한 제단 장식이 먼저 눈에 띄었다.

 

벤토사(Ventosa)에서 점심을 먹었다. 카페에 들러 보카딜료스(Bocadillos)를 시켰는데 엄청 큰 바게트 안에 하몽과 치즈가 들어 있었다. 너무 뻑뻑해 맥주가 없었더라면 먹는데 애를 먹었을 것이다. 포도밭은 계속되었다. 수확이 끝난 곳도 있었고 아직 포도송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곳도 있었다. 와인을 담그려면 이미 수확을 마쳤어야 할텐데 아직 수확을 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설마 여기서 아이스 와인을 만들 생각은 아니겠지. 배고픈 순례자들이 포도밭에 손을 대는 것 같았다. 내 앞을 걷던 부부도 수시로 포도밭을 드나들었고, 어떤 사람은 비닐 봉지에 한 가득 포도를 따서는 손에 들고 가기도 했다. 달콤한 포도 과즙을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였지만 주인 허락이 없는 이상 포도밭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오후라 그런지 몸이 나른했다. 나헤라(Najera)까지 기껏 10km 남짓한 거린데 가도가도 끝이 없는 것 같았다. 햇볕은 따가운데 바람은 의외로 차다. 하루 종일 자켓을 벗을 수가 없었다. 나헤라로 내려서기 전에 멀리 데만다(Demanda) 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해발 2,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도열해 있었다.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해발 2,262m의 산 로렌쏘(San Lorenzo)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나헤라는 꽤 현대화된 도시로 보였다. 산 밀란(San Millan)에 있는 수도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 그곳으로 가는 대중교통이 있나 알아봤지만 버스편은 없었다. 그렇다고 택시로 다녀오기엔 부담이 컸다. 나헤라에서 하룻밤 묵을 계획을 바꿔 좀더 가기로 했다.

 

나헤리야(Najerilla) 강을 건너 절벽 아래 있는 마을로 향했다. 고풍스런 골목을 지나 산타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에 도착했다. 4유로의 입장료를 받는 것까진 좋은데 여기도 시에스타를 하는지 오후 4시에 다시 문을 연다고 적혀 있었다. 절벽에 있는 동굴과 연결된 수도원은 가르시아 3세를 비롯한 왕족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 했지만 오후 4시까지 기다릴 순 없었다. 거기서 6km를 더 가면 나온다는 아쏘프라(Azofra)까지도 꽤나 지루하게 걸었다. 오후 5시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아쏘프라에 들어섰다.

 

아쏘프라는 그리 크진 않았지만 알베르게는 아주 훌륭했다. 2인실로 되어 있는 방도 좋았고, 깨끗한 시설도 마음에 들었다. 사람도 많지 않았다. 같은 방을 쓰는 스페인 친구 호르헤(Jorge)와 인사를 나눴다. 감기 기운이 있다고 침낭 안에 들어가 나오질 않는다. 와인을 반주 삼아 밥과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식당에서 한국인 부부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부부가 모두 대전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큰 마음 먹고 휴가를 맞춰 함께 순례를 하고 있었다. 대전에서 병원을 하는 친구 이름을 댔더니 잘 알고 있다고 해서 세상 참 좁다 했다. 셋이 와인을 나눠 마시다가 식당으로 나온 호르헤와 일본인 요코까지 가세해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로그로뇨의 산티아고 성당이 아침 일찍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로그로뇨 외곽 공장지대를 지나는데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저수지 주변의 나무숲으로 청설모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나섰다.

 

 

포도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나바레테로 들어섰다.

 

나바레테 초입에서 만난 돈 하코보(Don Jacobo) 와이너리 광고판에 산티아고가 576km 남았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나바레테의 아순시온 성당. 제단 장식이 아주 훌륭했다.

 

 

나바레테를 벗어난 곳에 세워진 공동묘지.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정문은 나바레테 초입에 있던 순례자 병원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벤토사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시켜 점심으로 먹었다.

 

벤토사를 빠져나오는데 순례자 석상을 올려놓은 특이한 이정표를 만났다.

 

지자체마다 이정표 관리가 제멋대로라 이정표 상의 거리 표시 또한 혼란스러웠다. 나바레테를 들어서면서 산티아고가

576km가 남았다는 표식을 보았는데 10km를 더 걸은 지점에서 이번엔 592km 남았다는 표식이 나왔다.

 

 

포도밭이 연이어 나타났고 가끔은 와이너리도 보였다.

 

포요 데 롤단(Poyo de Roldan)은 롤랑이 던진 돌이란 의미다.

이 지역에 살던 골리앗의 후손 페라구트(Ferragut)를 물리치기 위해 샤를마뉴 대제가 기사들을 보냈지만

번번히 실패한 끝에 롤랑(Roland)을 보내 페라구트를 죽였다는 전설이 어린 곳이다.

 

 

 

 

나헤리야 강을 건너 절벽 아래에 형성된 나헤라 구시가로 들어섰다.

 

 

 

산타 마리아 라 레알 수도원은 문을 닫아 바깥만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포도밭에 물을 대기 위한 관개시설이 잘 되어 있는 아쏘프라에 도착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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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농돌이 2015.11.26 16: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 독일 지나는데 포도밭이 노랗게 물들었더니,,, 가을입니다
    여긴 첫눈이 폭설로 왔습니다
    엄지발그락 저녁에 많이 주물르면 피로회복이 빠릅니다
    할 수 있으면 물 따끈하게 데워서 복숭아뼈까기 채우고 알콜 조금 넣고 족탕?
    건승을 빕니다

    • 보리올 2015.11.26 1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에 오늘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은 접했습니다. 폭설이 아니길 빕니다. 오래 걸은 발의 피로를 푸는 쉬운 요법이 있었군요. 다음에 꼭 시도를 해봐야겠네요.

  2. 스페니 2015.11.27 0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기다리며 잘 읽고있습니다
    여러분야에 해박하신것같아 부럽습니다~^^

    • 보리올 2015.11.27 07: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렇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블로그를 찾아와 주시기만 해도 고마운데 말입니다. 해박한 것은 아니고 그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3. Justin 2015.12.31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페인에도 큰 산들이 많은가봅니다. 유럽에 알프스산맥 빼고는 아는 산들이 거의 전무해서 스페인에 그런 큰 산들이 있는줄 몰랐습니다.

    • 보리올 2015.12.31 16: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스페인과 프랑스 경계를 이루는 피레네 산맥엔 제법 높은 산이 많지. 최고봉은 3,400m가 넘고.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 내가 걸은 프랑스 길은 산을 세 개 넘는데 가장 높은 지점은 1,500m 정도 되더구나.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