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20.03.18 [이탈리아] 돌로미티; 볼차노 (4)
  2. 2018.09.24 [베트남] 다낭 ③ (10)
  3. 2018.08.30 [베트남] 후에 ④ (2)
  4. 2016.05.25 [캄보디아] 시엠립 - 앙코르 와트 (2)
  5. 2016.05.24 [캄보디아] 시엠립 - 앙코르 톰 (2)

 

이탈리아 돌로미티(Dolomiti) 지역의 볼차노(Bolzano) 인근에 있는 산마을에서 하루를 묵었다. 산에 들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침을 먹기 위해 볼차노 도심에 있는 맥도널드를 찾아갔다. 볼차노는 코르티나 담페초(Cortina dAmpezzo)와 더불어 돌로미티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인구가 10만 명이 넘는 규모로 사우스 티롤(South Tyrol) 주의 주도에 해당한다. 알프스 산맥을 품고 있는 지형적 이점 때문인지 이탈리아에선 삶의 질이 높기로 유명하다. 도심 한 가운데 있는 볼차노 대성당(Duomo di Bolzano)부터 둘러봤다. 11세기에 지어진 건축물이 16세기 증축과 보수를 거쳐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공존하는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대성당의 지붕이 좀 특이했다. 녹색과 흰색, 노란색을 사용한 다이아몬드 모양의 타일로 덮혀 있었다. 실내도 잠시 들어가보았다. 큰 규모임에도 검소하면서도 단아한 풍모를 자랑했다.

 

돌로미티, 아니 이탈리아가 배출한 세계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가 세운 산악 박물관(Messner Mountain Museum; MMM)을 찾아갔다. 메스너는 산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으로 세계 최초로 8,000m급 고봉 14좌를 무산소로 오른 산악인이다. 그가 산악 활동을 하면서 수집한 산과 관련한 컬렉션을 고향인 돌로미티에 박물관을 세워 전시하고 있었다. 돌로미티엔 그 이름으로 모두 6개의 박물관이 있다. 이곳 볼차노에 있는 피르미안(Firmian)은 폐허가 된 고성을 보수해 2006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평소 존경해 마지 않던 산악인이 산과 인간 관계를 규명하고 산악 문화를 전파하려는 노력을 보여줘 속으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아트 갤러리와 화이트 타워, 타워 노스, 터널, 팔라스(Palas) 등에 비치된 전시품을 둘러보았다. 티벳 불교와 힌두교 문화재와 불상도 제법 많았다.

 

 

아침에 볼차노 도심을 찾은 까닭에 한산하고 차분한 도심 풍경을 만났다.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볼차노 대성당은 타일로 장식한 지붕이 시선을 끌었다.

 

 

 

 

 

 

 

 

 

 

 

 

 

 

돌로미티에 있는 6개 메스너 산악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피르미안을 둘러보았다.

성벽과 타워에 비치된 전시물을 통해 메스너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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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명지대학교 미슐랭 2020.03.18 1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넘 재밌어 보여요!! 구독 꾸욱 눌렀습니다~ 제 블로그에도 함 놀러오셔요!

  2. 투자를좋아하는지구별여행자 2020.03.18 1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사진들과 아름다운 여행지 잘 보고 갑니다!!^^




다낭의 또 다른 관광지라는 응우한선(Ngu Hanh Son)을 찾았다. 우리 말로는 오행산(五行山)이라 부르는 곳이다. 다섯 봉우리에 오행의 목화토금수에서 각각 한 자씩 붙였다고 한다. 봉우리 전체가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 영어로는 마블 마운틴(Marble Mountains)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실려 현장에 도착하니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들이 평지에서 하늘로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산은 그 중에서도 물을 의미하는 수산(투어선; Thuy Son)이라 했다. 수산에 있는 암푸 동굴(Dong Am Phu)부터 찾았다. 지옥 동굴이라고도 한다. 동굴이 길게 안으로 이어졌고 곳곳에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좀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꽤나 가파른 계단을 타고 전망대까지 올랐다. 오행산의 다른 봉우리와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동굴 밖으로 나와 돌계단을 타고 삼태사(三台寺)에 올랐다. 사람들로 붐비지 않아 좋았다. 절 밖에 망강대(望江臺)라는 정자가 있어 주변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수산의 암푸 동굴로 드는 입구







암푸 동굴 안에는 희미한 조명 아래 불상을 비롯한 각종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동굴 속 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오르니 바깥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암푸 동굴을 나와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수산의 모습






4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삼태사는 전쟁으로 여러 차례 파괴되어 복원되었다고 한다.




망강대에서 바라본 오행산의 다른 봉우리들과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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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런투 2018.09.24 19: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이 예쁘네요 ^^
    같은 곳을 갔는데도 저랑 사진 퀄러티가 너무 다르네요 ㅋ

  2. 나이샤7 2018.09.24 1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보았습니다^^

  3. 잉여토기 2018.09.25 1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태사와 망강대에세 내려다본 마을 조망 뷰도 좋고, 동굴 안에 부처님과 나한님들에 조명 후광도 인상적인 곳이네요.

  4. twelve22 2018.09.26 07: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달에 딸이랑 다낭에 처음가는데
    꼭 가보고 싶네요~~~^1
    잘보고 갑니다 ~~

  5. justin 2018.10.26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그러라는 법은 없지만 불상들이 어둠과 조명이 만들어내는 연출 효과로 인해 상당히 화려하네요~



후에 왕궁을 나와 왕궁 입장료에 포함된 후에 궁정 박물관에 들렀다. 응우옌 왕조의 유물 3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고 했다. 황제가 사용했다는 침대가 눈에 띄었고, 식탁이나 부엌용품 외에도 복식, 고서도 있었다. 여기도 실내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 야외에 전시된 것만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궁정 박물관을 나오다 바로 그 옆에 있는 전쟁 기념관이 눈에 띄어 들어가 보았다. 대포와 탱크, 전투기, 수송기를 전시하고 있었다. 월남전에서 포획한 미군 항공기도 몇 대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 나라가 미국 편에 서서 파병까지 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인지 미국이 패배한 전쟁 유품을 보는 감정이 좀 묘했다.

 

왕궁 지역을 벗어나 1601년에 지은 티엔무 사원(Chua Thien Mu)으로 향했다. 두 발로 걷는 것엔 자신 있다고 건방을 떨다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오토바이 호객꾼을 뿌리치고 걷는데 햇볕이 얼마나 뜨거운지 얼굴이 익는 것 같았다. 더위에 지쳐 길거리 식당에서 잠시 쉬면서 점심을 먹었다. 후에에서 유명하다는 분보(Bun Bo)를 시켰다. 식당 안 사람들이 나를 흘낏거리며 웃는 것을 보면 관광객이 찾는 곳은 아닌 모양이다. 4km를 걸어 티엔무 사원에 도착했다. 유람선이 사람을 싣고 와 엄청난 인파를 쏟아낸다. 흐엉 강에서 계단을 올라 7층탑 아래에 섰다. 높이 21m의 이 탑은 응우옌 왕조 치세인 1844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각 층마다 불상이 있다고 하던데 탑으로 드는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본당이 있는 사원도 둘러보았지만 볼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유람선에 지친 몸을 싣고 호텔로 돌아왔다.




응우옌 왕조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후에 궁정 박물관을 방문했다.





전쟁 기념관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사용했던 중화기와 항공기를 모아 전시하고 있었다.




티엔무 사원의 팔각형 7층탑은 후에를 상징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꽤 유명하다.




티엔무 사원의 본당에 있는 청동 포대화상 외에는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티엔무 사원을 찾은 현지인들이 꽤 많았다.





유람선을 타고 흐엉 강의 풍경을 감상하며 후에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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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10.02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는 상황이 어떻게 달랐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베트남 사람들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전쟁이 나서 그것도 미국을 상대로 끝까지 지지 않고 버틴 것을 보면 우리 나라 사람들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가봅니다.

    • 보리올 2018.10.02 18: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상 전쟁에서 처음으로 미국을 꺽은 나라가 베트남이라 하지 않냐. 지리적 이점을 많이 이용했다곤 하지만 그만큼 국민성이 강인하다고 봐야겠지.

 

지난 번에는 앙코르 와트(Angkor Wat)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새벽 5시에 일어나 툭툭이를 타고 갔었는데 이번에는 한낮에 자전거를 타고 앙코르 와트를 찾았다. 앙코르 톰에서 앙코르 와트로 이동하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볶음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날씨가 너무 뜨거워 나무 그늘에서 앙코르 와트를 싸고 있는 해자를 바라보며 한참을 쉬었다. 앙코르 와트엔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앙코르 와트는 12세기 초에 수리야바르만 2(Suryavarman II)에 의해 창건된 사원이다. 처음엔 힌두교 사원으로 지었다가 나중에 불교사원으로 쓰였다고 한다. 옛 크메르 왕국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 때문에 1992년 일찌감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엄청난 일출 인파로 붐볐던 호수는 한산했다. 호수를 한 바퀴 돌아 안으로 들어섰다. 대낮에 보는 앙코르 와트는 새벽보다 신비함이 좀 덜했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중앙 성소부터 가기로 했다. 경사가 무척 급한 계단을 올라야 했다. 중앙탑과 그것을 둘러싼 네 개의 탑, 그리고 회랑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신성한 공간이라 게단을 오르기 전에 모자를 벗으라 하고 짧은 바지를 입은 사람은 천으로 다리를 감싸도록 한다. 회랑을 따라 걸으며 탁 트인 앙코르 와트의 풍경을 여유롭게 즐겼다. 그 아래 2층엔 목이 잘린 불상들이 많았다. 한켠에는 불상을 모아 간단하게 불전을 만들어 놓았다. 오렌지색 가사를 입은 스님 한 분이 스마트폰에 정신을 팔다가 손님이 시줏돈을 내놓으면 얼른 축문을 읽는다. 너무 세속적인 모습이라 웃음이 나왔다.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 공명이 생긴다는 방을 거쳐 맨 아래에 있는 1층 회랑으로 내려섰다. 아래 회랑엔 엄청난 양의 부조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부조의 섬세함, 정교함이 돋보였다. 힌두 신화나 크메르 왕국의 군인들이 전쟁에 나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등 그 내용을 이해하면서 본다면 하루도 부족할 것 같았다. 오래 전에 무슨 기술이 있어서 이렇게 섬세하게 조각을 했을까 내심 놀랍기까지 했다. 한 번 보고 지나간 곳이기에 시간을 줄여 구경을 마쳤다. 어쩌면 날씨가 너무 더워 대충 건너뛰었는 지도 모른다. 3층에 걸쳐 있는 회랑만 모두 둘러보아도 엄청난 운동량이 될 것 같았다. 무거운 다리를 끌고 앙코로 와트 입구로 나왔다. 정자나무 아래서 30여 분을 쉬면서 새로 구입한 1.5리터 생수를 전부 마셔 버렸다.

 

 

앙코르 와트로 들어가는 문은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해가 지는 서쪽은 사후세계 또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정면에서 바라다 보는 앙코르 와트. 수미산을 의미하는 중앙의 높은 탑을 네 개의 탑이 둘러싸고 있다.

 

 

 

앙코르 와트 상층부를 장식하고 있는 건축물에서 세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상층부 성소로 오르는 계단은 경사가 상당히 심했다.

 

 

 

 

가장 높은 위치에서 바라본 앙코르 와트의 건축물과 바깥 풍경. 열기구가 한가롭게 하늘을 떠다니고 있다.

 

 

상층부 성소에서 만난 와불. 곳곳에 불상이 비치되어 있었고, 압살라 조각도 많이 눈에 띄었다.

 

 

2층엔 회랑 외에도 불상을 모아 만든 불전이 있어 참배객들을 받았다.

 

 

 

 

1층 회랑엔 섬세한 부조가 끝없이 새겨져 있었다. 힌두 신화의 내용이나 전투 장면, 전쟁에 나가는 모습 등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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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6.19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로만 듣던 앙코르와트를 직접 보시다니 부럽습니다. 그런데 왜 예전부터 이나라 저나라 머리가 잘린 불상이 많은걸까요?

    • 보리올 2016.06.19 1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는 청춘이고 나는 노년에 들었는데 젊은 네가 왜 부러워하는지 모르겠다. 영원하지는 않지만 이제 시간은 네 것인데 말이다. 불상의 목이 잘린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타 종교의 배타적 신념이나 다산 등을 노린 미신이 아닐까 싶구나.

 

큰 도시란 의미를 가진 앙코르 톰(Angkor Thom)은 가로 3km, 세로 3km의 정방형도시로 크메르 왕국의 마지막 수도였다. 12세기에 이미 인구 70만 명을 가진 도시였다면 아마도 그 당시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에 속했을 것이다. 도시는 수로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외부와는 다섯 개의 문으로만 연결되어 있다. 앙코르 와트에 비해선 면적도 훨씬 넓었고 볼거리도 더 많았다. 앙코르 톰의 중심은 단연 바이욘(Bayon) 사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욘을 먼저 둘러보고 바푸온(Baphuon) 사원을 지나 코끼리 테라스까지 걷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지만 난 그 반대로 돌았다. 지난 번에 그렇게 돌았기 때문이었다. 코끼리 테라스는 왕이 군대를 사열하거나 전쟁에 나가는 출정식이 열렸던 장소였다. 코끼리 머리 석상뿐만 아니라 벽면은 갖가지 조각들로 가득했다. 바푸온 사원은 지난 번에 너무 힘들게 오르내렸던 곳이라 다시 가지는 않았다.

 

앙코르 톰 중앙에 위치한 바이욘 사원으로 갔다. 이 사원은 앙코르 유적 가운데에선 상당히 큰 불교사원에 속한다. 자야바르만 7(Jayavarman VII) 통치하던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앙코르 와트보다는 100여 년 뒤에 세워진 셈이다. 바이욘의 백미는 아무래도 크메르의 미소라 부르는 사면상이 아닐까 싶다. 20만 개가 넘는 돌을 쌓아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을 수없이 조각해 놓았는데, 돌 하나를 깍은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돌을 깍아 서로 각을 맞췄으니 그 수고가 말도 아니었을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자야바르만 7세가 사후에도 크메르 왕국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사면상이 조각된 탑들이 늘어선 3층에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각각 네 개의 미소상을 가진 54개의 석탑이 중앙성소를 바라보도록 세워졌다고 하는데 현재는 36개 석탑에 150개의 크메르 미소만 남아 있다.

 

앙코르 톰으로 들어서기 위해 다리를 건너 동문을 통과했다. 문 위에는 크메르의 미소라 불리는 사면상이 조각되어 있다.

 

손님을 싣고오는 툭툭이로 앙코르 톰은 분주했다. 대형버스는 들어올 수가 없어 아무래도 툭툭이가 대세를 이뤘다.

 

 

 

왕이 군대를 사열하거나 전쟁 출정식을 거행했다는 코끼리 테라스

 

중앙성소를 중심으로 세워진 탑들이 하늘로 솟아있는 바이욘 사원의 전경

 

 

바이욘 사원으로 드는 초입은 다른 유적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바이욘 사원의 진가는 누가 뭐래도 탑에 조각된 사면상의 은근한 미소에 있다고 본다.

 

바이욘 사원 중앙에 모셔져 있는 불상. 안으로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했다.

 

타프롬과 마찬가지로 바이욘 사원도 폐허가 되긴 했지만 나무 뿌리에 의한 공격은 받지 않았다.

 

 

 

바이욘 사원 밖으로 나오니 사방이 트인 건물 안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다.

스님도 있었고 불공 준비로 바쁜 보살도 여럿 보였다.

 

앙코르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비석이 바이욘 사원 밖에 세워져 있었다.

 

남쪽에 있는 좁은 문을 억지로 통과해 들어오려던 이 트럭 때문에 교통 체증이 생겼다.

 

남문 밖에 있는 다리 위엔 돌로 조각된 신상들이 늘어서 있었다. 새로 만들어 붙인 신상의 머리가 영 어색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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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6.15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메르의 미소가 묘한 매력이 있네요. 옛날 캄보디아 왕들은 웃는 상이였나봅니다.

    • 보리올 2016.06.16 0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실제로 미소짓는 상을 조각하려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얼굴 크기에 비해 입을 크게 하고 양쪽 입끝을 위로 치켜올려 웃는 얼굴을 만든 듯 하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