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랜드 티톤을 거슬러 올라가기로 했다. 파크 게이트를 지나 오른쪽에 있는 작은 교회를 찾아 들었다. 우람한 산세를 배경으로 평야에 홀로 서있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맘에 들어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니 그 끝에 커다란 유리창이 있고 그것을 통해 그랜드 티톤이 보인다. 하느님 대신 그랜드 티톤을 모셔다 놓은 것 같았다. 공원 내 어느 곳에서나 그랜드 티톤을 볼 수가 있지만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은 제니(Jenny) 호수가 아닐까 싶다. 바로 지근 거리에서 올려다 볼 수 있는 위치라서 전날에 이어 다시 찾았다. 그랜드 티톤에 있는 하이킹 코스를 걸으려면 이 호수를 건너야 접근이 가능하다.

 

 

 

 

잭슨 호수를 도는 크루즈를 타기 위해 콜터 베이(Colter Bay) 선착장을 다시 찾았다. 잭슨 호수는 길이가 25km에 이르는 큰 호수로 해발 고도 2,054m에 위치한다. 티톤 레인지와 스네이크 강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보듬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출항 시각을 잘못 알았다. 10분 늦게 도착했더니 배는 출항을 하지 않았는데 우리를 추가로 태울 수는 없단다. 부득이 크루즈 대신 카누로 변경을 했다. 잭슨 호수에서 카누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수심이 깊은 곳으로 나가자 집사람이 겁을 내며 자꾸 돌아가잔다. 두 시간 렌트가 기본인데 집사람 때문에 좀 일찍 들어왔다.

 

 

 

 

이제 그랜드 티톤을 떠나 사우스 다코타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여행의 말미가 다가온 것이다. 돌아갈 때는 다른 루트를 택했다. 모런 정션(Moran Junction)을 거쳐 리버튼(Riverton), 캐스퍼(Casper)를 지나 동쪽으로 달렸다. 또 다시 와이오밍의 넓은 평원지역을 지나치게 되었다. 도로는 심심할 정도로 곧게 뻗어 있고, 도로 옆 목초지는 온통 누런 빛 뿐이다. 푸른 하늘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가끔 지형에 변화가 생기면 카메라를 들고 차에서 내리곤 했다.

 

 

 

 

 

 

우리 뒤로 석양이 진다. 붉게 타오르는 하늘을 뒤로 하고 러스크(Lusk)까지 열심히 차를 몰았다. 와이오밍 가장 동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 러스크는 사우스 다코타와 인접해 있다. 도로와 나란히 뻗어있는 기찻길로는 심심치 않게 기차가 지나간다. 도대체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일일이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200량은 충분히 될 듯 하다. 미국은 그런 나라다. 기차도 길지만 하루종일 차로 달려도 지도 한 뼘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오늘 이렇게 무심히 지나가면 언제 다시 이 길을 달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상념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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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다코타에서 와이오밍으로 주 경계선을 막 넘어와 보어 버펄로 점프(Vore Buffalo Jump)라는 곳을 방문했다. 예전에 북미 인디언들이 벼랑으로 버펄로를 유인해 떨어뜨려 잡았던 곳이다.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한 연례 행사였다. 우리 도착이 늦었던지 문은 열려 있는데 돈 받는 사람은 없었다. 벼랑은 그리 높지 않았다. 집사람은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 과연 버펄로가 죽을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하지만 뒤따라 떨어지는 버펄로로부터 연속적으로 강한 충격을 받으면 충분히 압사당할 것으로 보였다. 밑으로 걸어 내려가 버펄로 잔해를 발굴하고 있는 현장도 둘러 보았다.

 

 

 

선댄스(Sundance)에서 90번 하이웨이를 빠져 나와 데블스 타워(Devel’s Tower)로 방향을 잡았다. ‘악마의 탑이란 이름을 가진 바위 아래서 하루를 묵을 예정이었다. 이 지역도 사우스 다코타의 마운트 러시모어처럼 블랙 힐스 국유림에 속한다. 높이 386m의 원뿔형으로 생긴 데블스 타워는 미국 내에선 유명한 랜드마크로 통한다. 어떤 사람은 이를 자연의 마천루라 부르기도 한다. 황야에 거칠 것 없이 홀로 우뚝 서있는 모습이 나에겐 신비롭게 보였다. 어찌 보면 나무를 잘라낸 밑둥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데블스 타워는 화산이 폭발하면서 마그마가 쏟아져 나오다가 땅 속에서 굳은 것이 후에 외곽 지층이 침식되면서 외부로 노출된 것이다. 1906년에 미국 최초의 국가 모뉴멘트(명승지)로 지정을 받았다. 당시 테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런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미국 역사를 위해 자연으로부터 빌려 왔다. 정말 멋진 표현이 아닐 수 없다. ,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 Of The Third Kind)>에서 이곳이 외계인들이 착륙하는 곳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 데블스 타워를 누가 처음 올랐을까? 초등은 18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우보이였던 윌리엄 로저스(William Rogers)와 윌라드 리플리(Willard Ripley)가 나무 사다리를 이용해 어려운 구간을 돌파해 초등을 이뤄낸 것이다. 이에 얽힌 뒷이야기가 재미있다. 1893 7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을 기해 그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데블스 타워 등반을 공언했고, 그 소식을 듣고 1천여 명의 구경꾼이 몰여 들었다. 정상에 서서 성조기를 꺼내 흔드는 이벤트도 준비해 당일 행사를 완전 축제 분위기로 만들었다. 이 두 등반가의 부인들은 관중을 상대로 음료과 식사를 팔아 짭짤한 수익을 챙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요즘엔 1년에 1,000여 명의 등반가들이 정상에 선다고 한다.    

 

해질녘 멀리서 데블스 타워를 처음 접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어두워진 시각임에도 타워 바로 밑까지 올라가 타워를 올려 보았다. 외경심이 절로 일었다. 이런 신성한 땅에는 남다른 기운이 있다지 않는가. 그런 기운을 직접 몸으로 받고 싶었다. 그래서 타워 아래 캠핑장에서 홀로 침낭을 깔고 비박을 시도했다. 침낭 밖으로 얼굴만 내놓고 하늘에서 북두칠성을 찾았다. 곰에게 쫓겨 이 타워 위로 도망친 일곱 소녀가 북두칠성이 되었다는 인디언 전설을 조금 전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일출 시각에 맞춰 데블스 타워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곤 다시 타워 아래로 다가가 2km에 이르는 타워 트레일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다양한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가 있었다. 타워 아래는 위에서 떨어진 바위들로 너덜지대를 이루고 있었고, 타워는 오각형, 아니면 육각형 모양의 석주들이 외곽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것도 주상절리(柱狀節理)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암벽을 타기 위해 바위로 향하는 젊은이들과 인사도 나누었다. 다람쥐들이 솔방울을 모아 겨울 식량으로 저장하기 위해 땅에 파묻는 모습도 지켜 보았다. 이 녀석들이 파묻은 곳을 잊어버려야 거기서 싹이 튼다. 엄마 나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바로 다람쥐들의 건망증이다. 참으로 절묘한 자연의 궁합이 아닐 수 없다. 북미 인디언들이 여기서 기도를 하고 나무에 오색 천을 걸어놓은 현장도 목격했다. 어쩌면 우리나라 무속신앙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이곳을 성지로 숭배해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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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니카 2013.07.09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으로 또 봐도 신비로운 '데블스타워', 석양빛을 받은 거대한 모습은 외경심마저 들었더랍니다

  2. 보리올 2013.07.10 13: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멀리서 저 데블스 타워를 처음 보았을 때 난 가슴이 무척 뛰었다오. 언젠가 미국을 가면 꼭 보고 싶었던 바위였는데 실제로 그 아래 섰을 때의 가슴 설레임이란...

  3. 2013.07.11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보리올 2013.07.09 08: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고맙습니다. 박영석 대장은 이 세상에 큰 족적을 남기고 한 걸음에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저에겐 나름 그 친구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어 그 친구 발자취를 찾아 언젠가 히말라야를 찾을 겁니다. 아들 손 잡고 간다면 더더욱 좋겠지요.

 

다음 행선지는 커스터 주립공원 남쪽에 있는 윈드 케이브(Wind Cave) 국립공원. 이 국립공원도 1903년에 지정됐으니 다른 곳에 비해선 역사가 꽤 깊은 편이다. 1881년 사슴을 잡으러 나왔던 형제가 이상한 바람소리에 동굴 입구를 발견했다. 조그만 동굴에서 불어온 바람에 모자가 벗겨져 날아가더니 다음에는 모자가 동굴로 빨려 들어가는 신기한 현상이 발생했단다. 그래서 공원 이름에 윈드가 들어간 것 같았다.

 

윈드 케이브는 공원 입장료를 따로 받진 않았지만 레인저가 안내하는 동굴 탐사 프로그램인 내추럴 투어(Natural Tour)1인당 9불씩 내고 등록을 해야 했다. 동굴은 좁고 길었다. 1시간 가량 레인저를 따라 동굴을 걸었다. 가끔 머리가 돌에 부딪혀 몹시 아팠다. 300여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가 동굴 구경을 마치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아직 동굴 전체에 대한 탐사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극히 일부분만 이루어진 탓에 전체 길이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솔직히 동굴 자체는 이렇다 할 특이점은 없었다. 다른 석회석 동굴에서 흔히 발견되는 종유석도 없었다. 동굴 안 온도는 연중 섭씨 11도를 유지하고 있다, 1평방마일의 단위 면적 안에서는 가장 긴 동굴을 가지고 있다, 나무 상자처럼 생긴 네모 모양의 박스워크(Boxwork)는 여기서 90% 이상 발견된다 등의 일련의 레인저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예전에 동굴을 탐사할 때 썼던 촛불을 담은 등을 보여주었고 진짜 암흑을 체험한다고 동굴 속의 모든 등을 끄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오래 전에, 그러니까 슬로베니아가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하기 전인 20여 년전에, 슬로베니아에 있는 포스토니아 동굴을 다녀온 적이 있다. 솔직히 그 이후로는 다른 동굴들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석회 동굴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는 그 동굴은 길이가 20km에 이른다고 했다. 입구에서 궤도 열차를 타고 2km를 들어가 한 시간 이상 동굴 속 종유석을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신기한 모양의 종유석들이 즐비했었다. 음악회를 개최할 정도로 넓은 광장도 있었다. 그에 비해선 윈드 케이브 동굴은 너무 좁고 볼거리도 적었다.

 


 


 



 

공원을 빠져 나오다 몇 무리의 버펄로 떼와 조우를 했다. 야생 상태에서 살아가는 버펄로는 처음 보는 것이다. 떼를 지어 풀을 뜯고 있었다. 한두 마리는 무리를 벗어나 홀로 쉬고 있었다. 공원 당국에서는 버펄로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경고를 준다. 사람이 다가가면 공격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체중이 1톤이나 나가는 녀석이 시속 50km의 속도로 달려오면서 공격을 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멀리서 버펄로 떼를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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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인 2013.06.10 15: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버팔로가 저렇게 생겼었구나.. 버팔로 버팔로 참 많이도 들어봤지만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는 가물 가물 했었는데.. 저것이 버팔로였구나!!

  2. 보리올 2013.06.10 23: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으로 현장 학습을 했구만. 그래, 미국과 캐나다 대평원 지역에서 살던 버팔로가 맞지. 지금은 거의 멸종을 했지만 말야. 이젠 캐나다보단 미국에 더 많을 걸. 버팔로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바이슨(Bison)이 더 정확한 표현일 거야.

 

래피드 시티를 벗어나 16번 하이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마운트 러시모어(Mount Rushmore)로 가는 길이다. 차로 30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었다. 마운트 러시모어는 어릴 때 배웠던 <큰바위 얼굴>의 무대인지라 나름 감회가 깊었다. 연간 3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올 정도로 유명한 곳으로 꼽혀 아침 시각임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네 명의 얼굴을 커다란 바위에 사람 손으로 조각해 놓았다.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과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테오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그리고 애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바로 그 주인공들.

 

 

 

 

 

 

이 조각상은 조각가 거트존 보그럼(Gutzon Borglum) 1927년부터 1941년에 걸쳐 공사한 끝에 완공을 했다. 400명의 인부가 14년간 엄청난 다이나마이트를 사용해 공사를 했음에도 한 명도 죽지 않았다고 한다. 먼저 공사 과정을 담은 14분짜리 필름을 감상한 후 1km도 되지 않는 프레지덴셜 트레일(Presidential Trail)을 돌았다. 여러 각도에서 조각상을 볼 수 있었다. 얼굴 크기만 18m에 달하지만 아래에서 올려다 보아서 그런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이 캐리 그랜트가 출연했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로케이션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방문지는 커스터(Custer) 인근에 있는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 조각상. 이 역시 산을 깍아 수(Sioux) 족이 배출한 걸출한 전사 크레이지 호스를 기념하는 조각상을 만들고 있는 현장이다. 1948년에 공사를 시작해 현재도 작업을 하고 있다. 공정으로 보면 20%나 제대로 완성되었을까? 하지만 이 공사가 완공이 되면 폭 195m, 높이 172m를 가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조각상이 탄생할 것이란다. 현재 모습을 드러낸 얼굴 크기만 27m에 이른다.

 

 

 

 

이 공사 시작은 수 족의 염원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땅, 블랙 힐스(Black Hills)에 미국 대통령 네 명의 얼굴을 새긴 미국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로 그 인근에 크레이지 호스 기마상을 세우기로 하고 마운트 러시모어 공사에 참여했던 코작 지올코브스키(Korczak Ziolkowski)라는 폴란드계 조각가에게 부탁을 한다. 단돈 174달러로 시작한 공사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진전을 이뤘다. 얼굴이 형체를 드러내자 미국 정부에서 지원을 하겠다고 했으나 원주민 염원 사업에 그 돈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통큰 결정이었다.

 

공사 과정을 담은 비디오를 통해 재원 마련에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코작의 가족과 자원봉사자, 기부자의 재정적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진척이 엄청 느린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1인당 입장료 10불이 처음엔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공사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공사 현장으로 접근하는 버스를 타는데도 따로 돈을 받는다.

 

 

 

 

서부시대 건물로 치장한 커스터 시티를 지나 커스터 주립공원으로 향했다. 야생으로 살아가는 버펄로를 보고 싶어서 일부러 경유지로 넣은 것이다. 하지만 주립공원 입장료로 또 15불을 받으려 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버펄로 보는데 15불이면 적은 금액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시간도 부족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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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 쉘프 네이처(Cliff Shelf Nature) 트레일에는 물기가 많아 숲이 형성되어 있었다. 붉으죽죽 한 가지 색으로 도배한 듯한 황무지에 이런 녹색 숲이 있다니 이 또한 얼마나 신기한 장면인가. 꼭 칠면조 같이 생긴 조류 한 가족이 숲으로 먹이를 찾아 나왔다. 대장의 지휘 아래 줄을 지어 이동을 한다. 숲 속에서 풀을 뜯는 사슴도 눈에 띄었다.

 

 

 

 

시다 패스(Cedar Pass)를 지나 캐슬(Castle) 트레일 입구에서 일몰이 시작되었다. 이 트레일은 배드랜즈 국립공원의 속살을 볼 수 있는 코스로 그 길이는 16km에 달한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에 쫓겨 이 트레일을 몇백 미터 걷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산 꼭대기에 햇살이 남아 바위를 붉게 물들인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포실(Fossil) 트레일도 한 바퀴 돌았다.

 

 

 

 

 

 

 

 

 

 

파노라마 포인트에 이르자, 산 꼭대기를 붉게 물들인 마지막 빛 한 줌을 담으려는 사진작가들 몇 명이 삼각대를 펼쳐놓고 있었다. 석양을 등지고 촬영에 여념이 없는 그들 모습이 오히려 아름답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그들의 감동이 내게 전해오는 듯 했다. 석양을 배경으로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서있던 젊은이 몇 명이 또 다른 모델이 되어 주었다.

 

240번 도로를 타고 다시 월로 빠져 나왔다. 64km에 이르는 도로를 달려 배드랜즈 국립공원의 속살을 돌아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국립공원의 노스 유니트(North Unit)에서도 극히 일부만 본 것이다. 규모가 더 큰 남쪽 배드랜즈는 아예 둘러볼 엄두도 내질 못했다. 나머지는 다음 기회에 보자 마음을 먹었다. 시간이 허락하면 다시 한 번 오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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