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데이인 10월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상한 꿈을 두 개나 꾸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그 의미 파악에 골몰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치 하늘의 계시인 듯 해서 솔직히 하루 종일 머릿속이 꽤나 복잡했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뒤치닥거리다가 530분에 부엌으로 나왔다. 파스타에 렌틸콩을 얹어 아침으로 먹고 7시도 되기 전에 밖으로 나섰다.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한 시간 넘게 걸어야 했다.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 보였는데 구름이 살짝 벗겨지며 일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가 떠오른다는 느낌도 없이 허무하게 일출이 끝났고 말았다. 조금 있으니 시커먼 구름이 몰려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았다.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산 훌리안(San Julian) 성당은 전설에 비해서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었다. 어느 가게엔 마을 이름을 산 쑬리안(San Xulain)이라 적어놓아 좀 헤깔렸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나도 모른다. 훌리안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어느 날 사냥을 가서 사슴을 잡았다. 그 사슴이 죽기 전에 언젠가 부모를 죽이게 될 것이라 훌리안에게 경고를 했다. 그 예언을 들은 훌리안은 고향을 떠났다. 몇 년 후에 그의 소재를 알아낸 부모가 그를 찾아 갔는데, 훌리안은 외출중이었고 훌리안의 아내는 피곤해 하는 두 노인을 자신의 침대에 재웠다. 외출에서 돌아온 훌리안은 침대 위의 두 사람을 보고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착각하고 칼로 두 사람을 죽인다. 나중에 전모를 알게된 훌리안은 로마로 순례를 떠나 순례자를 위한 병원을 짓고 회개를 하며 살았다. 몇 년이 지나 천사가 내려와 훌리안의 죄를 사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카사노바(Casanova)를 지나 갈리시아 자치주의 루고 주에서 코루냐(Coruna) 주로 들어섰다. 어제 본 가옥들은 검은 슬레이트 석판으로 지붕을 이었는데 여긴 가옥들이 모두 둥근 모양의 붉은 기와를 썼다. 레보레이로(Leboreiro)의 성당도 작고 초라했다. 이곳도 전설이 전해진다. 이 성당 자리에 원래 샘이 있었는데 낮에는 신비로운 향기가, 밤에는 반짝이는 빛이 흘러 나왔단다. 그 주변을 파보니 성모상이 나와 성당으로 모셨는데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원래의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샘터가 있던 곳에 성당을 지어 바쳤더니 다시는 성모상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팡이 하나만 들고 내 앞으로 추월해가는 순례자들을 만났다. 짐이 없어 그런지 속도가 무척 빨랐다. 남자 둘, 여자 둘로 봐서는 두 부부로 보였다.

 

아치형 다리를 건너 푸레로스(Furelos)로 들어섰다. 산 후안 성당이 있었으나 문은 닫혀 있었다. 여기서부턴 행정구역상 멜리데(Melide)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공장지대를 지나 멜리데로 들어섰다. 도시 규모가 꽤 컸다. 풀포라 불리는 문어요리가 유명한 곳이라 원조격에 해당하는 풀페리아 에쎄키엘(Pulperia Ezequiel)을 찾아갔다. 큰 길에 접해 있어 쉽게 찾았다. 둥근 나무판에 문어를 이층으로 쌓아 그 위에 파프리카와 올리브 오일을 뿌려 나오는데 가격은 14유로를 받았다. 문어가 연하기도 했지만 맛도 뛰어났다. 와인은 한 병에 4유로를 받는데 난 반병만 먹겠다 해서 2유로만 냈다. 사기 그릇을 와인잔으로 사용하는 낭만도 누렸다. 멜리데 도심을 잠깐 둘러 보았다. 교구 성당과 그 옆에 있는 테라 데 멜리데(Terra de Melide) 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은 무료였는데 1유로를 도네이션하니 직원이 활짝 웃어줬다.

 

아르쑤아(Arzua)도 제법 컸지만 현대식 건물이 많아 큰 관심을 끌진 못했다. 도심 한 가운데 있는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을 뿐이다. 아르쑤아를 벗어나 작은 계곡이 많은 구간을 지나는데 의외로 오르내림이 심한 편이었다. 아르쑤아에서 살세사(Salcesa)까지 10km를 더 걸어 오늘 걸은 거리도 40km를 넘겼다. 다음 날 산티아고에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 오늘 조금이라도 더 걷자는 생각이었다. 살세다에 있는 투어리스트 알베르게에 들었다. 일종의 여행자 호텔인데 한 구석에 알베르게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침대 8개가 전부였다. 먼저 도착한 한국인 아가씨 두 명은 알베르게 비용으로 트윈룸을 배정받았다고 자랑하던데 나에겐 알베르게 침대를 준다. 이 방으로 한국인 젊은이 3명이 더 들어왔다. 점심으로 준비했다가 먹지 못한 빵과 계란, 과일로 혼자 저녁을 때웠다.

 

어둠 속에서 만난 이정표에 산티아고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산 훌리안의 전설이 서려있는 12세기 로마네스크 방식의 산 훌리안 성당

 

폰테 캄파냐(Ponte Campana)의 카사 도밍고(Casa Domingo)엔 커다란 조가비 장식이 있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속해 있는 코루냐 주로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표지석

 

 

레보레이로 마을과 산타 마리아 성당 앞에 설치된 카베세이로(Cabeceiro).

가난한 사람들의 오레오(Horreo)라 불리기도 하는데 버드나무로 광주리를 만들어 그 위에 짚을 얹었다.

 

레보레이로의 산타 마리아 성당. 성모상에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멜리데의 도심 풍경

 

 

 

멜리데에서 문어요리로 유명한 식당인 풀페리아 에쎄키엘

 

 

멜리데 중심에 있는 상티 스피리투스(Sancti Spiritus) 교구 성당

 

 

 

교구 성당 바로 옆에 있는 테라 데 멜리데 박물관은 이 지역 민속 박물관이었다.

 

 

 

멜리데에서 1km 외곽지역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 안에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입장은 무료였지만 나올 때 도네이션을 받아 1유로를 주고 나왔다.

 

 

보엔테(Boente) 마을 중앙에 외관을 하얗게 칠한 산티아고 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보엔테의 N-547 도로변에서 아이들이 소품을 가지고 나와 판매를 하고 있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 가운데 다리 하나를 건너니 리오(Rio) 마을이 나타났다.

 

 

 

팔레스 데 레이와 더불어 치즈로 유명한 아르쑤아 마을. 현대적인 건물이 많은 마을이라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갈리시아 지역 특유의 옥수수 저장고인 오레오가 자주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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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3.24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떤 꿈을 꾸셨는지 궁금합니다 ~ 글과 사진을 보고나서도 아버지 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배낭에 고히 모셔둔 마지막 신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모처럼 먹은 매운맛에 코에 땀이 났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일출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여명이 제법 아름다웠다. 비만 그쳐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말이다. 길을 가다가 땅에 떨어진 사과 몇 알을 주웠다. 이따가 간식으로 먹자고 배낭에 넣었다. 뉴욕 주에서 왔다는 60대 중반의 케빈과 함께 걸었다. 얼굴은 본 적이 있지만 오늘에서야 통성명을 했다. 뉴욕 주에서 낙농업 NGO로 활동하다가 얼마 전 은퇴를 했단다. 그는 돌로 지은 이 지역 주택이나 돌담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케빈과 함께 카사 수사나(Casa Susana)에서 커피를 한잔 했다. 수사나는 호주에서 온 수잔나의 스페인 이름이었는데, 이 집을 빌려 도네이션제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실내도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축사가 집안에 있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포르토마린(Portomarin)으로 들어섰다. 1960년대 미뇨(Mino) 강에 댐이 건설되면서 옛 도시가 물에 잠기자 역사가 어린 건물들을 현재의 위치로 옯겼다고 한다. 성채처럼 생긴 산 후안(San Juan) 성당이 대표적인 경우다. 미뇨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 시내로 향했다. 마을을 들르지 않고 왼쪽으로 빠져도 되지만 수잔나가 알려준대로 시내를 돌아보고 싶었다. 산 페드로(San Pedro) 성당에서 시작해 중심가를 따라 시내 구경에 나섰다. 산 후안 성당이 단연 돋보였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성당 앞에 있는 광장엔 시청사와 순례자상이 세워져 있었다. 중앙로를 따라 상가가 마주보고 있는데 1층은 회랑으로 되어 있어 걷기에 편했다. 회랑 끝에 Km 88이란 바가 있어 여기서부터 산티아고까지 88km 남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남은 거리는 88km가 아니라 9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포르토마린을 벗어난 오솔길에서 체코에서 왔다는 루시를 만났다. 배낭이 엄청 커서 무게가 얼마나 되냐 물었더니 15kg은 될 것이라 했다. 이 아가씬 길가에서 자라는 버섯에 대해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 이것저것 가르키며 이 모두가 식용 버섯인데 여기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했다. 이름도 모른 채 마을 몇 개를 지나쳤다. 풍경이 그만그만 해서 별 미련은 없었다. 소똥 냄새는 여전했지만 날씨가 점점 맑아져 기분은 절로 좋아졌다. 겨우 비 하나 그쳤다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사람 참 간사하다. 그 즐거움을 방해하는 일이 일어났다. 탁 트인 순례길에서 한 젊은 남녀가 길에 누워 포옹을 한 채로 열렬히 키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명색이 순례길인데 대낮부터 이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라 하진 못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마지 못해 떨어진다. 발걸음을 빨리 해서 현장을 벗어났다.

 

곤싸르(Gonzar)에서 빵과 아침에 주운 사과로 점심을 먹었다. 먹는 것에 비해 열량 소모가 많은 때문인지 뱃살이 홀쭉해졌다. 이제부터 관리를 잘 해야할텐데 말이다. 오스피탈 다 크루쓰(Hospital da Cruz)로 들어서기 전에 아스팔트에 쭈구리고 앉아 송충이를 지켜보던 제이미를 만났다. 처음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라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나중에 K77 표지석이 있는 지점에서 다시 만나 통성명을 하곤 아까 아스팔트에서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았다. 아스팔트를 지나는 송충이가 행여 지나가는 차량에 깔릴까 걱정이 되어 나뭇잎을 이용해 숲으로 유도하는 중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그 아가씨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참으로 마음씨 착한 아가씨였다. 유타 주에서 왔다는 그녀는 평소에도 나비와 곤충을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리곤데(Ligonde)를 지나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까진 꽤 멀게 느껴졌다. 팔라스 데 레이는 왕의 궁전이란 의미라던데, 여기가 예전에 어떤 왕국의 수도였던 모양이었다. 팔라스 데 레이는 인구 4,200명을 가진 제법 큰 도시였다.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최신식으로 깨끗하게 꾸민 공립 알베르게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이 없었다. 그 큰 시설을 나를 포함해 모두 5명이 썼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심까진 1km를 더 가야 했고 도심에도 알베르게가 여러 개 있었다. 부식을 사러 도심으로 가는데 일몰이 시작되었다. 도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석양을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혼자서 부엌을 독차지하곤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단백질을 보충한답시고 고등어 통조림과 소시지를 고추장에 찍어 와인과 함께 먹으니 그 조합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페레이로스에서 아스팔트 길로 내려서면 만나는 산타 마리아 성당은 공동묘지를 끼고 있었다.

 

이름도 모른 채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찻길에 세워진 버스 정류장이 좀 낯설게 다가왔다.

 

 

돌로 지어진 주택들이 많았다. 둥글게 휘어도는 담장 처리도 뛰어났다.

 

회색 돌집에 빨간 대문을 달아 눈길을 끌었다. 그 옆에 화분을 놓아 구색을 맞춘 것도 보기 좋았다.

 

 

 

카사 수사나에서 커피 한잔 마셨다. 카페 주인인 수잔나가 집안도 구경시켜 주었다.

 

 

미뇨 강을 건너 포르토마린으로 들어섰다.

 

포르토마린의 산 페드로(San Pedro) 성당엔 특이하게도 스페인 국기가 걸려 있었다.

 

산 페드로 성당 앞에 조성된 작은 공원에 무슨 까닭인지 커다란 증류기가 세워져 있었다.

 

댐 공사로 수몰된 옛 마을에서 하나하나씩 해체해 현위치에 다시 조립한 산 후안 성당

 

 

포르토마린을 가로지르는 중앙로를 따라 형성된 상가와 주택

 

아스팔트에 10여 분을 쭈그리고 앉아 송충이를 다시 숲으로 되돌려보낸 제이미

 

벤타스 데 나론(Ventas de Naron) 마을에서 본 자판기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의 루트가 표시되어 있었다.

 

벤타스 데 나론의 막달레나(Magdalena) 예배당.

템플 기사단이 순례자를 위해 지은 병원이 19세기에 무너지자, 그 돌로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리곤데 마을. 건물 외벽을 장식한 절묘한 감각에 절로 감탄이 나왔고, 둥근 형태로 돌을 쌓고

그 위에 석판을 얹은 구조도 눈길을 끌었다.

 

나이 지긋한 여자 한 명과 여자아이 둘이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도 순례에 나선 것일까?

 

소들이 풀을 뜯기 위해 들판으로 나가고 있다.

 

 

아이레쎄(Airexe)와 아 칼싸다(A Calzada)에 있는 성당들은 모두 공동묘지 옆에 세워져 있었다.

 

 

팔라스 데 레이의 산 티르소(San Tirso) 성당. 마침 미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팔라스 데 레이 도심에 있는 수퍼마켓을 가다가 맞은 석양에 가슴이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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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3.21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이미의 생명을 소중히하는 자세를 본받아야겠습니다. 모기와 샌드플라이는 아직...

  2. 2019.09.23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아침에 야곱에게 한국 라면을 끓여 줄까 물었더니 사양을 한다. 라면을 끓여 혼자 먹어야 했다. 야곱이 먼저 출발하고 나는 나중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한 때문인지 날은 밝았지만 해는 보이지 않았다. 일출도 없었다. 아침부터 빗방울이 떨어져 배낭 커버를 씌웠더니 바로 그친다. 가끔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동차 도로를 따라 산 마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를 지났다. 도로 폭이 꽤 넓었고 우주선 같이 생긴 저수조가 세워져 있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줄곧 도로를 따라 걷다가 가끔 터널같이 생긴 숲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에 닿기 전에도 무슨 탑처럼 생긴 건물이 세워져 있는데 이것의 용도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엔 오르비고 강을 건너는 아주 긴 다리가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길다는 푸엔테 데 오르비고(Puente de Orbigo)13세기에 지어졌는데, 이 다리에 돈 수에로(Don Suero)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사랑을 얻기 위해 수에로는 이 다리에서 유럽의 내노라하는 기사들과 결투를 벌여 300개의 창을 부러뜨리겠다고 맹세를 했다. 수에로는 1434년 이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룬 후 순례를 떠나 자기 목걸이를 산티아고 상에 걸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Don Quixote)에도 영감을 주었다. 요즘도 매년 6월이면 다리 옆에서 창으로 하는 시합이 열린다. 마을은 다리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다리 건너편이 중심인 것 같았다. 산 후안 성당은 문을 열지 않아 밖에서만 올려다 보았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를 벗어나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이 길은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Villares de Orbigo)로 향하는데, 1km를 더 돌아가지만 풍광이 좋다고 해서 택한 것이다. 밭에서 일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는 농부의 자전거를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가운데 있는 성당에 들렀다가 벤치에 앉아 빵과 과일로 점심을 먹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오더니 스페인어로 뭐라 묻는다. 내 추측으론 배낭 무게가 얼마나 되냐고 묻는 것 같은데 나도 정확히 몰라 그냥 웃어주고 말았다. 메세타가 끝을 보이는지 마을을 벗어나 구릉으로 올랐다. 산티바녜쓰(Santibanez) 마을은 농사 준비로 바빠 보였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 새로 씨앗을 뿌리기 위해 밭을 갈아엎기도 하고 어떤 트랙터는 씨앗을 가득 싣고 밭으로 가고 있었다. 늦가을에 심으면 아마 보리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산티바녜쓰에서 아스토르가(Astorga)까진 11km 거린데 의외로 오래 결렸다. 오늘 걷는 거리는 28km로 다른 날보단 짧은데 피로도는 더 했다. 오른쪽 발가락의 티눈은 여전히 신경이 쓰였다. 오후가 되면 통증이 심해져 다리를 딛기도 어려울 때가 있었다. 꾸준히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도네이션제 매점도 나타났지만 그냥 통과했다. 돌로 만든 성 토르비오 십자가(Cruceiro de Santo Toribio)가 세워진 고개에 섰다. 산 후스토(San Justo)와 아스토르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뒤에 버티고 선 칸타브리카(Cantabrica) 산맥도 보였다. 눈에 들어오면 다 온 것이라 생각했는데 산 후스토에서 아스토르가까지 3km 거리가 꽤 멀었다. 아스토르가는 세비야(Sevilla)에서 올라오는 순례길, 즉 은의 길(via de la plata)을 만나는 곳이었다. 여기서 메세타 지역과 작별을 했다.

 

아스토르가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었다. 한국인도 몇 명 보였다. 침대 정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알베르게 바로 앞에서 무슨 유적 발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스페인어 설명만 있어 뭔지는 모르겠다. 시청 앞 에스파냐 광장을 지나 대성당으로 갔다. 대성당은 규모가 꽤 컸지만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에피스코팔 궁전(Palacio Episcopal)도 문이 닫혔다. 이 궁전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가 설계한 것으로 가우디가 카탈로니아 밖에 지은 건축물 세 개 중의 하나라 했다. 1889년에 착공해 1913년에 완공했다. 원래는 주교의 거처로 지어졌으나 한때는 팔랑헤라는 프랑코 시대의 정당 사무실로 쓰였고 지금은 순례 박물관(Museo de los Caminos)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대성당이나 궁전 모두 겉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수퍼마켓에 들러 시장을 봤다. 엄청 다양한 물품들이 있어 무엇을 해먹을지 머릿속이 분주했다. 빵과 과일에 캔으로 된 생선, 그리고 맥주와 와인을 샀다. 캔맥주는 하나에 35센트, 와인은 한 병에 2유로도 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사재기를 하고 싶었지만 배낭에 지고 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다음에 도착하는 마을에도 대형 수퍼마켓이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모처럼 냄비에 밥을 해서 배불리 먹었다. 서울에서 온 이두열 선생, 이영호 선생을 식당에서 만나 와인을 같이 나누어 마셨다. 며칠 전에 길에서 만났던 권영익 선생도 합류를 했다. 이 양반은 이번이 여섯 번째 산티아고 순례라 했다. 순례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전역을 하고 순례에 나선 젊은이 둘과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입대일자와 제대일자가 같은 동기생을 여기서 만났다고 신기해 했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 탓에 일출도 대충 넘어가고 말았다.

 

이른 시각에 산 마틴 델 카미노를 지나쳤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로 향하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걷다가 가끔 숲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는 중세 시대에 놓여진 멋진 다리 양쪽에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에 도착해 마을에 있는 성당에도 들렀다.

 

 

들판에 씨앗을 뿌리기 위해 분주했던 산티바녜쓰 마을

 

허물어진 흙담 옆에 도네이션제 매점을 차려 놓았지만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십자가가 세워진 고개 위에선 산 후스토와 아스트로가가 내려다 보였다.

 

산 후스토는 별다른 특징은 없었으나 초입에 순례자 상이 세워져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대성당 첨탑을 따라 아스토르가로 들어섰다. 여기도 순례자 상이 있었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아스토르가 시청사는 세 개의 타워를 가지고 있었다.

 

 

가우디가 설계한 에피스코팔 궁전. 가우디는 이 건물 신축에 이견이 많았던것으로 보인다.

 

 

 

 

아스토르가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걸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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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15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 역사, 미술시간에 배웠던 고딕, 바로크 양식이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때는 시험 잘 보기 위해 열심히 외웠는데 정말 그때 그 순간인것 같습니다.

    • 보리올 2016.02.16 0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찌 배웠다고 그 모든 것을 다 알겠냐. 그런 것을 배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만 해도 대단하지. 살아가면서 그게 궁금한 경우가 생겨 다시 책을 보면 그땐 확실히 기억을 하게 될 거다.

 

배낭을 꾸려 아랫층 식당으로 내려왔다. 테이블 가운데 비스켓이 담겨 있는 바구니가 있어 몇 개 집어 먹었다. 처음엔 순례자들을 위해 누가 가져다 놓은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바구니 안에 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것도 도네이션을 요구하고 있었다. 비스켓 값으로 2유로를 통에 넣었다. 알베르게를 나서니 구름이 역동적으로 움직여 일출이 장관일 것 같았다. 일출까지는 시간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걸어가는 도중에 동이 트는 것을 보기로 했다. 마을을 벗어나 30분쯤 걸었을까. 붉게 물든 구름이 동녘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 설레는 장면이 드디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 자리에 서서 붉은 하늘에 푹 빠져 들었다.

 

예전에 템플 기사단의 영지였다는 테라디요스(Terradillos)에 도착했다. 벽돌로 지은 성당이 보였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돌로 지은 성당이었는데 여긴 벽돌로 지은 것이었다. 석조 건물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렇게 건축 양식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돌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문이 잠겨 있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모라티노스(Moratinos)엔 조그만 언덕 아래 굴을 파서 그 안에 와인을 저장하는 셀러를 만들어 놓았다. 저장고 앞으로 갔더니 안은 들여다 볼 수 없었지만 와인 냄새는 풀풀 풍겨 나왔다. 화살 표식이 분명치 않아 마을에서 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밭 사이로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길을 따라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San Nicolas del Real Camino)에 닿았다. 여기도 땅에 굴을 파서 와인 저장고를 만들었다.

 

산 니콜라스를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팔렌시아 주에서 레온(Leon) 주로 들어섰다. 순례길엔 이를 알리는 표지판이 없어 도로로 나가 차량용 표지판을 찍어야 했다. 멀리 사아군(Sahagun)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까닭인지 길을 우회해 작은 성당으로 향하게 했다. 비르헨 델 푸엔테(Virgen del Puente) 성당이라고 한다. 사아군도 큰 도시답게 성당이 무척 많았다. 현재는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는 트리니다드(Trinidad) 성당과 그 옆에 있는 산 후안(San Juan) 성당을 둘러보고 산 베니토(San Benito) 수도원의 잔재인 아치형 문도 보았다. 지금은 그 문 아래로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가 놓였다. 베니토 수도원은 알폰소 6세를 지원하는 정치적 도박에 성공해 한때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수도원으로 군림했었다. 오랫동안 엄청난 영화를 누리다가 18세기 대형 화재로 한 순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산 베니토 수도원 뒤에 있는 산 티르소(San Tirso) 성당을 둘러보곤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산 로렌쏘(San Lorenzo) 성당도 찾아갔다. 사아군은 무데하르 건축 양식의 태동지라 불리는데, 무데하르(Mudejar) 양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두 성당이었기 때문이다. 성당을 둘러보면서 무데하르 건축 양식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무데하르란 12~17세기에 유행한 것으로 유럽의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에 스페인을 점령했던 아랍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스페인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말한다. 이 양식은 주로 벽돌을 사용하고 특히 종루에 벽돌과 타일을 세련되게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사아군에서 베르시아노스 델 카미노(Bercianos del Camino)까지 10km 구간이 무척 멀게 느껴졌다. 솔직히 오후가 되면 늘 그랬다. 왼쪽 발목은 거의 회복이 되었는데 이젠 오른쪽 발가락에 생긴 티눈이 문제다. 요즘 들어 통증이 상당했는데 이것도 오후가 되면 더 심해졌다. 칼싸다 델 코토(Calzada del Coto)에서 길이 갈라진다. 왼쪽 오리지널 루트를 택했다. 거기서 베르시아노스까지는 5km. 도네이션제로 운영하는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어떻게 운영하는지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시설은 형편없는데도 침대는 거의 다 찼다. 사람은 도착하지 않았는데 누가 먼저 와 침대를 미리 잡아놓은 것 같았다. 나중엔 침대가 모자라 방바닥에 매트리스만 깔고 자기도 했다. 난 운좋게 침대 하나를 잡아 숙박비와 식사비로 10유로를 기부함에 넣었다.

 

밖으로 나가 석양을 촬영하고 식사 시간에 맞춰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알베르게에 투숙한 모든 사람이 식당에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자원봉사자 두 명이 식사를 준비했는데, 저녁 메뉴는 렌틸콩을 넣은 파스타였다. 빵과 와인도 나왔다. 원래는 34명분을 준비했는데 사람이 늘어 45명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파스타도 양이 무척 적었고 빵과 와인도 마찬가지였다. 음식을 먹기 전에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고 감사의 노래를 부른 다음에 식사를 하는 것은 꽤 인상적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음식은 적었지만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도네이션제 숙소는 확실히 젊고 가난한 순례자들이 많아 보였다. 도네이션을 하지 않는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도네이션제 숙소는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칼싸디야를 벗어나 도로 옆으로 난 길을 걷다가 일출을 맞게 되었다.

 

정서 방향으로 향하는 순례길 위에 키가 큰 그림자 하나가 나를 반겼다.

 

테라디요스 마을을 벗어나 멀리서 뒤를 돌아보며 사진 한장 찍었다.

 

모라티노스에서 산 니콜라스 레알 카미노로 이어지는 순례길을 걷고 있다.

 

땅 속에 굴을 파고 그 안에 와인을 저장하는 와인 셀러가 자주 보였다.

 

 

산 니콜라스 델 레알 카미노 마을. 무데하르 양식을 사용한 산 니콜라스 성당을 지나쳤다.

 

카스티야 레온 자치주의 팔렌시아 주에서 레온 주로 들어섰다.

 

사아군으로 들어가면서 길을 우회해 방문한 비르헨 델 푸엔테 성당

 

알베르게로 쓰이는 사아군의 트리니다드(Trinidad) 성당 앞에 세워진 순례자 상

 

트리니다드 성당 옆에 있는 산 후안 성당은 문이 닫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베니토 수도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정문으로 쓰였던 아치형 문만 남아 옛 영화를 대변하고 있었다.

 

베니토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산 파쿤도(San Facundo) 수도원을 지었으나 지금은 시계탑만 남았다.

 

 

벽돌로 지은 산 티르소 성당. 사아군에서 무데하르 양식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건축물이다.

 

 

산 로렌쏘 성당 역시 이슬람 영향을 받아 벽돌로 지었다.

 

1085년 알폰소 6세에 의해 건립된 아치형 칸토 다리

 

칼싸다 델 코토 마을의 모습. 여길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난 오리지널 루트를 택했다.

 

아스팔드 도로 옆으로 나란히 놓인 순례길을 따라 가로수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순례길에서 멀지 않은 철로 위를 스페인 국영 철도(renfe)가 지나가고 있다.

 

베르시아노스 마을에 도착했다. 햇볕이 강한 때문인지 마을 노인들이 모두 해를 등지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고풍스런 모습의 베르시아노스 알베르게. 도네이션제로 운영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위로 해가 떨어졌다. 일출 못지 않게 일몰도 환상적이었다.

 

 

모든 투숙객이 알베르게 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재미있게 진행을 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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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2.02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땅 속에 굴을 파고 와인 셀러를 만들어놓으면 두더지가 가장 신날거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