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하는 시기에 한국에 있는 친구가 남아공으로 날아왔다. 체온 측정 등 방역에 신경을 쓰긴 했으나 입국 제한이나 자가 격리 같은 조치는 없던 시기였다. 요하네스버그에 사는 친구와 셋이서 드라켄스버그 산맥 북쪽에 위치한 로열 나탈 국립공원(Royal Natal National Park)을 찾았다. 숙소는 국립공원 경내에 있는 텐델레 리조트(Thendele Resort)에서 2박을 했다. 예상보다 늦게 숙소에 도착한 까닭에 왕복 5시간 걸린다는 투켈라 협곡((Thukela Gorge)까진 가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갈 수 있는 만큼은 가보기로 했다. 투켈라 협곡으로 가는 길에 그 유명한 앰피씨어터(Amphitheatre)의 장엄한 풍경을 접할 수 있다고 들어 그 모습을 잠시라도 맛보고 싶었다. 하지만 원형극장이란 의미의 앰피씨어터는 아쉽게도 구름에 숨어 그 웅장한 자태를 볼 수는 없었다. 드라켄스버그 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산악 지형인 앰피씨어터는 해발 3,000m 높이의 바위 절벽이 병풍을 친 듯이 5km나 도열해 있다. 수직 절벽의 높이는 500m에 이른다고 했다.

 

텐델레 리조트에서 투켈라 협곡으로 가는 길이 연결되어 있어 바로 트레일로 들어섰다. 국립공원 측에선 투켈라 협곡까지 편도 7km, 왕복에 대략 5시간 30분이 걸린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다. 산사면이나 깊은 골짜기가 녹색 초지로 덮여 있어 풍경 자체가 시원했다. 나무도 드문드문 눈에 띄어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었다. 앰피씨어터는 구름에 모습을 감췄지만 그 앞에 있는 조그만 봉우리들은 울퉁불퉁한 산세를 뽐내고 있었다. 앰피씨어터가 없으니 오히려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흘렀다. 산길 아래엔 수량이 많지 않은 투켈라 강이 흐르고 있었다. 한 시간 이상을 걸었을까. 능선에 마치 버섯처럼 생긴 기묘한 모습의 바위가 나타났다. 바위 밑둥이 침식된 탓에 가는 목에 큰 머리가 놓인 형국이 되었다. 이곳을 다녀간 적이 있는 남아공 친구가 이쯤에서 돌아서자고 했다. 중간 지점까지는 간 것 같았다. 아무 미련없이 되돌아섰다. 숙소로 돌아가 바비큐를 준비하고 와인 한 잔 곁들일 생각에 발걸음도 가벼웠다.

 

텐델레 리조트에 세워진 국립공원 안내 게시판에 간단한 지도가 마련되어 있었다.

 

 

투켈라 협곡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좀 특이하게 생겼다.

 

 

푸른 초지를 지나고 계류를 건너 산길은 서서히 고도를 높여 나갔다.

 

 

 

 

 

우리 오른쪽엔 앰피씨어터 대신 아기자기한 암릉이 나타나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했다.

 

곳곳에 사암으로 구성된 지층이 나타났고 어느 곳은 오랜 침식을 거쳐 벼랑이 된 곳도 있었다.

 

투켈라 협곡까지 다녀오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이 지점에서 되돌아섰다.

 

 

 

하산하는 길. 트레일 아래로 투켈라 강이 흐르고 그 너머로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해질녘 낮은 햇살을 받으며 능선에 걸린 구름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텐델레 리조트에서 하루를 묵은 다음 날 아침에 앰피씨어터의 전모를 담을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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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자옷 쇼핑몰 2020.10.31 1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 요즘시기에 대리만족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보리올 2020.11.01 07: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코로나 사태로 지루함을 느끼는 여행자들이 엄청 많죠. 그래서 전 예전에 겪은 여행 경험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시 채비를 갖추고 내리막 길로 들어섰다. 우리가 걷는 산길 옆으로 다랑이 논이 눈에 들어왔고, 계곡 건너 산사면에는 더 많은 다랑이 논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이 구간이 다랑이 논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이 아닌가 싶었다. 마치 손바닥 크기만한 논들이 경사면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어 묘한 매력을 풍긴다. 우리 나라에도 다랑이 논으로 유명한 지역이 있다지만 사파 지역과 비교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았다.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로 장관이라 하긴 어렵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한 뼘의 땅을 얻기 위해 산사면을 개간하고 층층이 논을 만든 억척스러움이 느껴졌다. 물소와 돼지들도 논밭을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계곡 아래에 있는 타반 마을로 내려섰다. 큰 산줄기가 만든 계곡 속에 자리잡은 산골 마을이었다. 안커피(Anh Coffee)라 간판을 단 카페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개울 옆에 자리잡고 있어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이곳으로 트레킹을 오는 사람이 많은 탓인지 카페는 사람들로 붐볐다. 수공예품을 팔려고 모여든 장사꾼까지 뒤섞여 꽤나 시끌벅적했다.


 



사파 트레킹을 하면서 전통 복장을 한 현지인들을 길에서 만나는 기회가 많았다.


 

고지에 자리잡은 사파에서 계곡 아래로 내려서는 코스라 조망이 뛰어난 곳이 많았다.


 



이리저리 방향을 틀면서 계곡 아래로 이어지는 산길이 무척 정겨웠다.



 







사파 트레킹이 유명해진 배경에는 소수민족과 더불어 다랑이 논도 한 몫 했을 것으로 본다.



산 속에 자리잡은 타반 마을로 들어섰다.



안커피란 카페에서 베트남 현지식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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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쓰는 엔지니어 2018.10.19 1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랭이논 사진 인상적이에여 ㅎㅎㅎㅎ 트래킹 하는 동안 눈이 쉴틈이없을거같아요 ㅎㅎ

    • 보리올 2018.10.19 2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코스가 그리 어렵지 않아 편한 마음으로 산골 마을과 다랑이 논을 즐기면 되더군요. 시간이 허락하면 한 번 다녀오시길 권합니다.

  2. justin 2018.11.13 1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길을 걷는다기보다는 포장되어있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자연과 다랑이논과 마을을 둘러보는 식이네요~

    • 보리올 2018.11.14 0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 맞다. 진짜 산속 트레일을 걷는다기보다는 경사가 있는 산사면을 따라 마을과 마을을 잇는 소로를 걷게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