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25일 동안 꾸준히 걸어 오늘 산티아고로 입성한다. 그렇게 흥분되거나 가슴이 설레진 않았다. 더군다나 대서양에 면해 있는 땅끝마을 피스테라와 무시아까지 4일을 더 걸을 것을 생각하니 종점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남들을 깨울까 싶어 불도 켜지 않고 배낭과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와 다시 짐을 쌌다. 출발을 하기 직전에야 안경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알베르게로 돌아가 침대를 뒤졌는데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배낭에 있는 짐을 모두 꺼냈더니 맨 밑바닥에서 나왔다.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채로 말이다. 카운터에서 테이프를 빌려 임시로 붙여 놓았다. 살세다 마을을 통과해 나오는데 강아지들이 합창을 하듯 일제히 짖어댄다. 동녘 하늘에 붉은 기운이 퍼지더니 불쑥 해가 솟았다. 순례 마지막 날의 날씨가 화창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마을 간격이 많이 좁아졌다. km씩 떨어졌던 마을이 이제는 불과 몇 백 미터에 하나씩 나타났다. 오전에 벌써 크지 않은 마을을 몇 개나 지났다. 한 마을에선 문이 열린 오레오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 보관 중인 옥수수가 드러났고 배고픈 참새들이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가고 있었다. 참새의 굶주림까지 걱정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골 사람들의 인심이 느껴졌다. 내가 다가서는 것을 어찌 감지했는지 녹음된 음성이 갑자기 흘러 나와 날 놀래켰던 마을도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마지막 말, 부엔 카미노는 알아 들었다. 어느 곳에 있는 알베르게를 선전하는 내용 같았다. 어제부터 느낀 것인데 길가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부쩍 많이 보였다. 지금까진 참나무가 많았는데 말이다.

 

산티아고 경내로 들어섰다.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대성당까진 11km를 걸어야 했다. 공항 활주로가 끝나는 지점을 지나 라바코야(Lavacolla)에 도착했다. 예전 사람들은 순례를 하면서 거의 씻지를 못하다가 여기서 몸을 씻곤 산티아고로 들어갔다고 한다. 라바코야의 어느 성당을 지나는데 마침 미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그 앞에 있는 임시 가판대에서 꽈배기를 한봉 샀다. 도로를 건너다 발견한 가게에서 사과와 콜라를 사서 꽈배기와 함께 점심으로 먹었다. 산티아고를 10km 남겨놓은 지점부터는 거리를 알리던 표지석이 사라져 버렸다. 몬테 도 고쏘(Monte do Gozo)에 도착했다. 얕은 언덕 위에 교황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기념해 만든 탑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었다. 순례길에서 가장 크다는 몬테 도 고쏘 알베르게는 무려 400명을 수용한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들어섰다. 이곳을 순례한 유명인사들의 부조를 넣어 만든 높다란 탑이 순례자들을 맞는다. 갈리시아 자치주의 주도답게 건물이나 식당이 크고 화려했다. 조가비 표식을 따라 대성당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이 이리저리 엉켜 상당히 복잡했지만 내 눈엔 오히려 정겹게 보였다. 세월을 머금은 고풍스러움도 물씬 풍겼다. 그래서 산티아고의 올드타운이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것이다. 1075년에 착공해 1211년 완공된 대성당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백파이프 부는 사람의 환영을 받았다. 1유로를 기부했다. 대성당 앞 광장으로 들어갔다.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완주를 축하하거나 바닥에 앉아 대성당을 올려다 보며 감동의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아쉽게도 대성당 첨탑은 보수 중이라 거푸집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순례자협회에서 순례증서를 발급받았다. 증서 발급은 무료였지만 순례증서를 넣는 통은 2유로에 판다. 순례자협회에서 추천한 알베르게는 15분 거리에 있었다. 세미나리오 메노르(Seminario Menor) 188명을 수용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알베르게에서 석양을 지켜 보았다. 오후 7 30분에 예정된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대성당으로 갔다. 먼저 성당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보고 미사에 참석했다.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 불리는 향로는 정해진 요일이나 누가 도네이션을 하는 경우에 좌우로 움직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순례자들이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이 향로를 피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순례자 미사도 마쳤으니 이제 공식적인 순례는 모두 끝났구나 싶었다. 시원섭섭하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 벅찬 감동에 절로 눈물이 났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나에겐 그런 감동은 없었다.

 

살세다 마을을 빠져나오며 일출을 맞았다.

 

옥수수가 들어있는 오레오 문이 열려 있어 참새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N-547 도로를 만나는 지점에서 햇빛에 비친 내 그림자를 찍어 보았다.

 

산타 이레네(Santa Irene)에 있는 작은 성당은 반쯤 숲속에 숨어 있었다.

 

산티아고 경내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석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길을 걸었다. 순례자들이 공항 외곽에 쳐놓은 철망에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놓았다.

 

산 팔로(San Palo) 마을에 있는 이름 모를 성당을 지나쳤다.

 

 

라바코야의 베나발(Benaval) 성당에선 미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몬테 도 고쏘의 교황 바오로 2세 방문 기념탑

 

산티아고 도심으로 들어서면서 만난 기념탑에는 왕가의 인물이나 교황 등 유명인사들의 부조가 새겨 있었다.

 

 

산티아고의 도심 풍경

 

 

 

 

 

 

 

 

오브라도이로(Obradoiro) 광장에선 산티아고 대성당을 올려다 볼 수 있다.

시청사와 호텔 등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의 위용도 대단했다.

 

순례자협회에서 크레덴시알에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순례증서를 발급받았다.

 

산티아고 도심엔 알베르게가 없어 좀 걸어나가야 했다. 규모가 큰 세미나리오 메노르를 소개받아 하룻밤 묵었다.

 

세미나리오 메노르 알베르게는 언덕 위에 있어 산티아고 도심을 배경으로 석양을 볼 수 있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저녁에 순례자 미사가 열렸다. 무사히 순례를 마친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자리였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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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춘 호 2015.12.22 09: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가고싶게 만드는 후기인것 같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따뜻한 곳으로 떠나고 싶네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멋진 하루 되세요.

    • 보리올 2015.12.22 1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춘호님도 여행을 아주 좋아하시는 분이더군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글 부탁 드립니다.

  2. Preya 2015.12.22 1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하셨습니다 +_+/
    멋진 순례길이었네요.

  3. 농돌이 2015.12.23 0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고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생을 살면서 기념비적인 획을 하나 그으셨습니다
    일이라는 것이 하나의 과정이 지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오래 오래 행복할 것 같습니다
    지중해까지 가시는지요?

  4. Justin 2016.04.04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짝짝짝~ 일단 산티아고에 입성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티눈과 발목 상태가 좋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오셨네요! 대단하십니다!

    • 보리올 2016.04.07 15: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뒤늦게 이런 축하를 받는구나. 지금은 발목 부상도, 티눈도 다 잊었는데 말이다. 처음엔 왜 이 길을 걷나 싶었는데 다 끝내니 다시 걷고 싶더구나.

 

할로윈 데이인 10월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상한 꿈을 두 개나 꾸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그 의미 파악에 골몰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치 하늘의 계시인 듯 해서 솔직히 하루 종일 머릿속이 꽤나 복잡했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뒤치닥거리다가 530분에 부엌으로 나왔다. 파스타에 렌틸콩을 얹어 아침으로 먹고 7시도 되기 전에 밖으로 나섰다.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한 시간 넘게 걸어야 했다.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 보였는데 구름이 살짝 벗겨지며 일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가 떠오른다는 느낌도 없이 허무하게 일출이 끝났고 말았다. 조금 있으니 시커먼 구름이 몰려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았다.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산 훌리안(San Julian) 성당은 전설에 비해서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었다. 어느 가게엔 마을 이름을 산 쑬리안(San Xulain)이라 적어놓아 좀 헤깔렸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나도 모른다. 훌리안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어느 날 사냥을 가서 사슴을 잡았다. 그 사슴이 죽기 전에 언젠가 부모를 죽이게 될 것이라 훌리안에게 경고를 했다. 그 예언을 들은 훌리안은 고향을 떠났다. 몇 년 후에 그의 소재를 알아낸 부모가 그를 찾아 갔는데, 훌리안은 외출중이었고 훌리안의 아내는 피곤해 하는 두 노인을 자신의 침대에 재웠다. 외출에서 돌아온 훌리안은 침대 위의 두 사람을 보고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착각하고 칼로 두 사람을 죽인다. 나중에 전모를 알게된 훌리안은 로마로 순례를 떠나 순례자를 위한 병원을 짓고 회개를 하며 살았다. 몇 년이 지나 천사가 내려와 훌리안의 죄를 사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카사노바(Casanova)를 지나 갈리시아 자치주의 루고 주에서 코루냐(Coruna) 주로 들어섰다. 어제 본 가옥들은 검은 슬레이트 석판으로 지붕을 이었는데 여긴 가옥들이 모두 둥근 모양의 붉은 기와를 썼다. 레보레이로(Leboreiro)의 성당도 작고 초라했다. 이곳도 전설이 전해진다. 이 성당 자리에 원래 샘이 있었는데 낮에는 신비로운 향기가, 밤에는 반짝이는 빛이 흘러 나왔단다. 그 주변을 파보니 성모상이 나와 성당으로 모셨는데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원래의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샘터가 있던 곳에 성당을 지어 바쳤더니 다시는 성모상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팡이 하나만 들고 내 앞으로 추월해가는 순례자들을 만났다. 짐이 없어 그런지 속도가 무척 빨랐다. 남자 둘, 여자 둘로 봐서는 두 부부로 보였다.

 

아치형 다리를 건너 푸레로스(Furelos)로 들어섰다. 산 후안 성당이 있었으나 문은 닫혀 있었다. 여기서부턴 행정구역상 멜리데(Melide)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공장지대를 지나 멜리데로 들어섰다. 도시 규모가 꽤 컸다. 풀포라 불리는 문어요리가 유명한 곳이라 원조격에 해당하는 풀페리아 에쎄키엘(Pulperia Ezequiel)을 찾아갔다. 큰 길에 접해 있어 쉽게 찾았다. 둥근 나무판에 문어를 이층으로 쌓아 그 위에 파프리카와 올리브 오일을 뿌려 나오는데 가격은 14유로를 받았다. 문어가 연하기도 했지만 맛도 뛰어났다. 와인은 한 병에 4유로를 받는데 난 반병만 먹겠다 해서 2유로만 냈다. 사기 그릇을 와인잔으로 사용하는 낭만도 누렸다. 멜리데 도심을 잠깐 둘러 보았다. 교구 성당과 그 옆에 있는 테라 데 멜리데(Terra de Melide) 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은 무료였는데 1유로를 도네이션하니 직원이 활짝 웃어줬다.

 

아르쑤아(Arzua)도 제법 컸지만 현대식 건물이 많아 큰 관심을 끌진 못했다. 도심 한 가운데 있는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을 뿐이다. 아르쑤아를 벗어나 작은 계곡이 많은 구간을 지나는데 의외로 오르내림이 심한 편이었다. 아르쑤아에서 살세사(Salcesa)까지 10km를 더 걸어 오늘 걸은 거리도 40km를 넘겼다. 다음 날 산티아고에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 오늘 조금이라도 더 걷자는 생각이었다. 살세다에 있는 투어리스트 알베르게에 들었다. 일종의 여행자 호텔인데 한 구석에 알베르게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침대 8개가 전부였다. 먼저 도착한 한국인 아가씨 두 명은 알베르게 비용으로 트윈룸을 배정받았다고 자랑하던데 나에겐 알베르게 침대를 준다. 이 방으로 한국인 젊은이 3명이 더 들어왔다. 점심으로 준비했다가 먹지 못한 빵과 계란, 과일로 혼자 저녁을 때웠다.

 

어둠 속에서 만난 이정표에 산티아고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산 훌리안의 전설이 서려있는 12세기 로마네스크 방식의 산 훌리안 성당

 

폰테 캄파냐(Ponte Campana)의 카사 도밍고(Casa Domingo)엔 커다란 조가비 장식이 있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속해 있는 코루냐 주로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표지석

 

 

레보레이로 마을과 산타 마리아 성당 앞에 설치된 카베세이로(Cabeceiro).

가난한 사람들의 오레오(Horreo)라 불리기도 하는데 버드나무로 광주리를 만들어 그 위에 짚을 얹었다.

 

레보레이로의 산타 마리아 성당. 성모상에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멜리데의 도심 풍경

 

 

 

멜리데에서 문어요리로 유명한 식당인 풀페리아 에쎄키엘

 

 

멜리데 중심에 있는 상티 스피리투스(Sancti Spiritus) 교구 성당

 

 

 

교구 성당 바로 옆에 있는 테라 데 멜리데 박물관은 이 지역 민속 박물관이었다.

 

 

 

멜리데에서 1km 외곽지역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 안에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입장은 무료였지만 나올 때 도네이션을 받아 1유로를 주고 나왔다.

 

 

보엔테(Boente) 마을 중앙에 외관을 하얗게 칠한 산티아고 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보엔테의 N-547 도로변에서 아이들이 소품을 가지고 나와 판매를 하고 있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 가운데 다리 하나를 건너니 리오(Rio) 마을이 나타났다.

 

 

 

팔레스 데 레이와 더불어 치즈로 유명한 아르쑤아 마을. 현대적인 건물이 많은 마을이라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갈리시아 지역 특유의 옥수수 저장고인 오레오가 자주 눈에 띄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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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3.24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떤 꿈을 꾸셨는지 궁금합니다 ~ 글과 사진을 보고나서도 아버지 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