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바꿔 노바 스코샤 북동쪽에 있는 케이프 브레튼 섬(Cape Breton Island)에 있는 아카디아 마을을 찾아 떠났다. 17세기 캐나다에 뉴 프랑스를 건설한 프랑스가 퀘벡이나 몬트리얼 같은 세인트 로렌스 강 유역의 도시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은데 반해, 대략 50만 명의 아카디아인들은 대서양 연안에 둥지를 틀고 어업이나 농업에 종사했다. 그들은 전통과 문화를 유지하며 아틀랜틱 캐나다(Atlantic Canada)에서 삶을 영위한 것이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케이프 브레튼 하이랜즈 국립공원과 그 유명한 캐보트 트레일(Cabot Trail)로 드는 관문도시인 세티캠프(Cheticamp)였다. 노바 스코샤의 아카디아 마을 중에는 인구 3,000명을 가진 큰 마을에 속한다. 바닷가에 서있는 세인트 피터스(St. Peters) 성당이 눈에 들어오고, 예술가들이 많이 사는 마을답게 공방이나 갤러리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언덕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옥도 자연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프랑스 삼색기에 별 하나 추가한 아카디아의 상징이 여기저기서 나부꼈다. 

 

케이프 브레튼 섬 남서쪽 해안에도 아카디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아일 마담(Isle Madame)이라 불리는 조그만 섬에서 아카디아 흔적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면적이 45 평방 킬로미터라니 아주 작은 섬은 아니다. 여긴 교통표지판도 불어 표기가 많았고 인가 주변에도 아카디아인을 알리는 상징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의 혈통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루이스버그에서 그레이스 베이(Glace Bay)를 잇는 255번 지방도를 마르코니 트레일(Marconi Trail)이라 부르는데, 63km 시닉 드라이브 코스에도 아카디아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다. 이 트레일을 타고 멩아듀(Main a Dieu)란 마을을 지나는데 어구를 손질하거나 겨우내 육지에 올려놓았던 배를 청소하는 어부를 만났다. 그 옆에는 손질이 끝난 통발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니 이제 곧 랍스터잡이가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아카디아 마을로 유명한 세티캠프에 도착하면 바닷가에 우뚝 솟은 세인트 피터스 성당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1758년 루이스버그가 함락되고 4천 명에 이르는 아카디아인이 추방되는 과정에 10가족이 아일 마담으로 피신해

정착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고 해서 포인트 미쇼(Pt. Michaud)를 찾았지만 해변은 별로였다.

 

 

민가 몇 채만 여기저기 떨어져 있던 그랜드 리버(Grand River) 역시 볼거리는 없었다.

 

케이프 브레튼 남서 해안과 어촌 마을을 연결하는 마르코니 트레일은 20세기 초 세 개의 대서양 횡단 무선기지국이 설치되었던 곳이라

그런 이름을 얻었다.

 

 

마르코니 트레일이 지나는 지역에선 가장 큰 어촌 마을인 맹아듀는 봄과 여름에 랍스터잡이로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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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기햄 2020.07.25 17: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2. MingSugar 2020.07.26 11: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일요일 아침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도 포스팅 잘 보고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D

  3. 퓌비 2020.07.26 2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그림같은 풍경사진이 일품이네요. 코로나로 여행을 못가는 대신에 다른 분들이 다녀온 사진들로 대리만족을 해야할 듯 합니다

 

노바 스코샤를 여행하다 보면 아카디아(Acadia)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캐나다 역사에서도 꽤 의미 있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울프빌(Wolfeville)엔 아카디아 대학교도 있다. 북미로 진출한 프랑스는 세인트 로렌스 강 유역의 퀘벡과 뉴 브런스윅, 노바 스코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뉴 펀들랜드 등에 프랑스 정착촌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 때문에 북미 북동부의 옛 프랑스 식민지를 흔히 뉴 프랑스(New France)라 부르기도 하지만 아카디아란 용어도 심심치 않게 사용되었다. 노바 스코샤 본토뿐만 아니라 당시 로얄 섬이라 불리던 케이프 브레튼 섬(Cape Breton Island)에도 아카디아인들이 제법 많았다. 아카디아에 거주하던 프랑스계가 75,000명이었다니 당시 인구론 그리 작은 숫자가 아니다. 북미 동부 지역을 차지했던 영국은 점차 프랑스와 세력다툼이 격화되면서 7년 전쟁을 치르게 되었고, 여기서 승리한 영국은 북미에서 프랑스를 압도하며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게 된 것이다.

 

노바 스코샤 바닷가에 정착해 농업과 어업으로 생계를 잇던 아카디아인은 7년 전쟁의 와중에 영국에 의해 핍박을 받게 된다. 영국은 1755년 아카디아인에게 영국에 충성할 것을 강요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 아카디아인 16,000명을 강제 추방(Great Expulsion) 시킨 것이다. 미국 루이지애나로 옮겨간 대부분의 사람들 외에도 아카디아 다른 지역으로 피신하거나 프랑스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7년 전쟁이 끝난 1763년 이후 추방지에서 다시 아카디아로 꽤 많은 사람이 돌아왔다. 아직도 영국계 이웃과 친하지 않은 까닭이다. 아카디아인은 주로 대구를 잡아 가공해 생계를 유지하거나 늪지를 개간하고 수로, 즉 다이크(Dyke)를 만들어 안정적인 농지를 확보해 삶을 영위했다. 노바 스코샤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그들의 정착촌을 둘러보고, 그들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아카디아 마을을 방문하기 위해 순례에 나섰다.

 

먼저 노바 스코샤 북서부 아나폴리스 카운티(Annapolis County)에 있는 포트 로얄(Port Royal)부터 찾았다. 포트 로얄은 예전에 프랑스식 농장 형태로 지었던 정착촌을 고증에 의해 복원한 캐나다 역사 유적지다. 프랑스에 의해 최초로 세워진 정착촌이지만 현재는 사람이 거주하진 않는다. 역사가 길지 않은 캐나다에서 16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정착촌이라면 상당한 역사를 지닌 유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나다로 건너온 초기 인물로는 프랑스의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와 사무엘 드 샹플렝(Samuel de Champlain)이 유명하다. 카르티에는 1534년 처음으로 캐나다에 도착했고, 샹플렝은 1603년에 도착했다. 이 포트 로얄은 샹플렝이 1605년에 모피 교역을 위한 정착촌으로 세운 곳이다. 플로리다 이북의 북미 지역에 최초로 생긴 유럽 정착촌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정착은 순조롭지 못 했다. 그 뒤 샹플렝은 퀘벡에 정착촌을 세우고 그것이 뉴 프랑스란 식민지로 발전해 가면서 그는 1612년 뉴 프랑스의 수반이 되었다.

 

1613년 버지니아의 영국인들에 의해 포트 로얄이 파괴된 후, 거기서 8km 떨어진 곳에 다시 정착촌을 세웠지만 이 역시 1710년 영국군에 점령당하면서 아나폴리스 로얄(Annapolis Royal)이란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포트 로얄에 이어 아나폴리스 로얄 역시 한때는 노바 스코샤의 주도 역할을 했지만, 1749년 그 역할이 핼리팩스(Halifax)로 옮겨가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현재 여기에 사는 주민은 500명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을로 화가나 공예가, 작가 등 예술가가 모여들면서 이제는 어엿한 문화도시로 탈바꿈을 하였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문화도시 다섯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하고,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골 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여기저기 세월을 머금은 건축물이나 가옥이 눈에 띄고 예술촌답게 마을 구석구석을 아름답게 꾸며 놓아 마을을 둘러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통나무를 사용해 옛 농장 형태로 지어 놓은 포트 로얄 정착촌은 한 눈에도 고풍스럽게 보였다.

 

마당 한 가운데에선 해설사가 목재를 키는 모습을 보여주며 당시 생활상을 설명한다.

 

 

 

정착 초기에 사용하던 집기 비품이나 그 당시 식탁을 세팅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벽면에 걸어 보관 중인 말린 풀과 동물 모피

 

 

 

 

 

아나폴리스 로얄은 예술촌답게 고풍스러운 건물을 지니고 있었고 마을 구석구석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여름철이면 주민을 위한 음악 공연도 수시로 열린다.

 

 

 

포트 로얄에 이어 아나폴리스 로얄에 세워진 정착촌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요새는 영국군에 의해 점령된 이후

포트 앤(Fort Anne)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1920년 캐나다 역사 유적지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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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휘게라이프 Gwho 2020.07.09 1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가요오! :-)
    오랜만에 출첵할겸 글 잘보고가요~ ㅎㅎ
    날씨가 급 덥덥인 오늘이네요 T T ..
    에어컨 선풍기 빵빵! 시원한 하루되세요~



킹스턴(Kingston)으로 들어섰다. 캐나다에서 첫째, 둘째 가는 도시인 토론토와 몬트리올의 중간쯤에 있는 도시로 온타리오 호수(Lake Ontario)의 동쪽 끝에 위치한다. 킹스턴에서 세인트 로렌스 강(St. Lawrence River)이 시작되어 오대호의 엄청난 수량을 대서양으로 흘려보낸다. 강 위에 떠있는 천섬(Thousand Islands)이란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킹스턴은 캐나다 연방이 탄생하기 전인 1841년부터 3년간 캐나다 프로빈스의 수도 역할을 했기 때문에 역사적인 건물이 의외로 많다. 우리 나라 사관학교에 해당하는 로얄 밀리터리 컬리지(Royal Military College)도 여기에 있고, 국가 역사 유적지로 지정된 문화재도 무려 21개나 가지고 있다. 포트 헨리(Fort Henry) 등 킹스턴의 요새는 리도 운하와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커피부터 한 잔 하고 다운타운을 둘러보았다. 아침 시각이라 그런지 시내는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한 시간에 걸친 시내 구경을 마쳤다. 고풍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건물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차를 몰아 포트 헨리로 향했다. 여름 시즌이 끝난 관계로 요새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건물 안은 둘러보지 못 했다. 진홍색 군복을 입은 초병들이 펼치는 행진도 볼 수 없었다. 포트 헨리는 1813년에 처음 지어졌다가 리도 운하를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1830년대에 증축했다고 한다. 1812년에 미국의 침공으로 전쟁에 휘말렸던 쓰라린 경험이 낳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덕 위에서 킹스턴 시내와 사관학교를 내려다 보았다.

 

예약 시간에 맞춰 천섬 크루즈에 나섰다. 크루즈 운행사의 보트 세 척 가운데 아일랜드 퀸(Island Queen)이란 배에 올랐다. 세인트 로렌스 강 하류로 지루하게 내려갔다. 강 위에 진짜 1,000개나 되는 섬들이 떠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랬다. 바람이 세게 불어 체감 온도는 무척 낮았다. 밖에서 서성이다가 실내에서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 보았다. 한 시간 넘게 내려오니 강 위로 섬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크지 않은 섬에 아름다운 별장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어느 섬은 집 하나 들어서니 꽉 차는 기분이 들었다. 경관은 아름다웠지만 비슷비슷한 풍경이 펼쳐져 지루해질 무렵 배가 방향을 바꾸어 물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천섬 크루즈에 왕복 세 시간이 걸렸다.





역사가 깊은 도시답게 킹스턴 다운타운에 있는 건물에선 고풍스러움이 묻어났다.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리도 운하를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포트 헨리를 둘러 보았다.





킹스턴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천섬 크루즈를 마다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부두를 떠나는 배 위에서 점점 멀어지는 킹스턴 모습을 지켜보았다.





세인트 로렌스 강 위에 떠있는 천섬에는 각양각색의 별장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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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12.02 1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킹스턴에 대해서 아는거라곤 천섬 밖에 없었는데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줄은 몰랐습니다. 퀸즈 대학에 친구들 보러 또는 운동하러 갔었는데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둘러볼걸 그랬나봐요~

    • 보리올 2017.12.02 17: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캐나다에선 역사가 깊은 도시 중 하나지. 네 친구 원서가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대접 받았다. 퀸즈대학생들이 많이 오는 것 같더라.



퀘벡시티를 출발해 몬트리올 남쪽 세인트 로렌스 강 건너편에 위치한 카나웨이크(Kahnawake)의 카톨릭 성당을 찾았다. 원주민 부족이 거주하는 마을이지만, 여기에 북미 원주민 출신의 카톨릭 성녀 카테리 테카퀴타(Kateri Tekakwitha)가 묻혀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도 지난 번에 다녀간 적이 있지만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일행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모호크의 백합이라 불렸던 카테리 성녀는 1656년 미국 뉴욕 주에서 태어나 1680년 선종을 했다. 1676년 카톨릭으로 개종한 후에 부족의 협박을 피해 몬트리올 인근에 있는 카톨릭 원주민 마을인 이곳으로 이주했다.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봉헌해 혹독한 고행을 하다가 건강을 해쳐 24살의 꽃다운 나이에 죽었다. 1980년에 시복된 후 2012년에 시성되었다. 북미 원주민으로서는 최초로 성인이 탄생한 것이다.

 

오타와로 올라가며 리고(Rigaud)에 있는 명소를 한 곳 방문했다. 슈크르리 드 라 몽타뉴(Sucrerie de la Montagne)라는 메이플 시럽 생산 농가를 들른 것이다. 퀘벡에선 꽤 이름난 곳이었다.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농가는 대개 당단풍나무가 많은 숲에 위치하기 때문에 슈가쉑(Sugarshack)이라고 불린다. 50 헥터에 이르는 숲 속에 허름한 건물 20여 채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자연을 해친다는 느낌은 없었다. 슈가 메이플(Sugar Maple)이라 부르는 당단풍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한 후 열로 수액을 졸여서 메이플 시럽을 만든다. 원주민들이 만들던 방식대로 유럽 정착민들이 따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메이플 시럽은 캐나다 특산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중에서 퀘벡이 가장 많이 생산한다. 수액을 졸이는 시설과 5백 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다는 식당을 둘러 보았다. 메이플 시럽을 듬뿍 뿌린 팬케익을 맛보고 싶었으나 주방이 쉬는 시간이라고 해서 그냥 돌아서야 했다.

 

오타와에서 강 하나 건너면 되는 이웃도시, 가티노(Gatineau)로 돌아왔다. 딸아이가 다음 날 수업이 있어 거처로 데려다주기 위해서다. 딸아이와는 여기서 작별을 했다. 가티노를 떠나기 앞서 자크 카르티에 공원(Parc Jacques Cartier)을 좀 거닐었다. 넓게 조성된 푸른 잔디밭 위에선 캐나다 구스와 청설모가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었다. 여긴 오타와 강가를 따라 산책하기가 아주 좋았다. 강을 가로지르는 알렌산드라 브리지(Alexandra Bridge)1901년에 완공된 다리라 하는데, 그 너머로 국회의사당이 빤히 보였다. 우리가 서있는 곳은 퀘벡이고, 강 건너 오타와는 온타리오에 속한 땅이니 이 강이 주 경계선인 것이다. 이제 곧 저 다리를 건너면 퀘벡과는 작별이다.


 



카나웨이크 원주민 마을에 있는 카톨릭 성당은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뭔가 숙연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성당 한 귀퉁이에 카테리 테카퀴타 성녀의 무덤과 걸개 그림이 있었다.



기념품 판매점 옆에는 조그만 전시실을 마련해 놓고 몇 가지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수풀이 우거진 숲 속에 자리잡은 슈가쉑은 눈으로 보기에도 시원해 보였다.






외관은 허름해 보였지만 실내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시설도 둘러보았다.



오타와 강가에 위치한 자크 카르티에 공원은 산책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오타와 강 너머로 국회의사당과 알렌산드라 브리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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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11.22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캐나다 역사 인물, 관광 명소, 특산품 등 아주 알찬 내용들로 가득차있네요!



올드 몬트리올(Old Montreal)에 도착했지만 여기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주차장을 찾는다고 헤매다가 좀 늦게 노틀담 바실리카 대성당에 닿았더니 엄청난 줄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레이져 쇼를 하는데 최소 두세 시간은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냥 여기저기 구시가지를 걷기로 했다. 일행들에게 대성당의 화려한 내부 장식을 보여주지 못 해 좀 아쉽긴 했다. 우중충한 날씨 탓에 도심 풍경도 칙칙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몬트리올에 오면 맛보라는 푸틴(Poutine)을 먹어보기로 했다. 감자튀김 위에 그레이비 소스와 치즈가 얹혀져 나왔다. 다른 곳에서 먹었던 푸틴에 비해 그다지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유명세 때문에 오히려 비싸기만 했던 것 같다. 차를 몰아 퀘벡시티로 향했다.

 

프랑스 탐험가였던 사무엘 드 샹플렝(Samuel de Champlain) 1608년에 건설한 도시가 바로 퀘벡시티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답게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아 중세 유럽 도시에 온 듯한 느낌이 들지만, 난 이곳을 몇 번 다녀간 적이 있어 호기심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이에 <도깨비>란 드라마가 한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한국이나 중국 관광객이 크게 늘었고, 도깨비에 나왔던 장소는 예외없이 젊은 남녀들로 붐볐다. 딸아이 역시 스마트폰으로 촬영지를 검색해선 나보고 그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재촉하는 것이 아닌가. 샤토 프롱트낙(Chateau Frontenac) 호텔 안에 있는 우체통과 시타델로 오르는 언덕, 프티 샹플렝 거리, 그리고 크리스마스 용품 가게까지 돌아보았다. 졸지에 도깨비 촬영지 가이드가 된 셈이다.

 

올드 퀘벡(Old Quebec)의 어퍼 타운을 먼저 보기로 했다. 성벽 안으로 들어서 샹플렝의 동상이 있는 광장으로 다가섰다. 저 아래론 크루즈가 정박한 부두가 눈에 들어왔다. 퀘벡시티의 랜드마크라 할만한 샤토 프롱트낙 호텔도 들어가 보았다. 꽃과 호박, 인형으로 할로윈 장식을 한 시청사와 대주교좌 성당인 노틀담 대성당을 보곤 성벽 아래 세인트 로렌스 강가에 자라잡은 프티 샹플렝 거리로 내려섰다. 공예품을 파는 선물가게와 부티크에 레스토랑까지 외관을 아름답게 꾸며놓아 진짜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이런 문화적 컨텐츠가 있기에 도깨비 제작진이 여길 촬영지로 골랐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편의 드라마로 인해 관광객이 몰리는 것을 보니 드라마의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딸아이와 나까지도 그 영향으로 여길 왔으니 더 말하면 뭐하랴.



퀘벡의 음식으로 알려진 몬트리올 푸틴은 유명세나 가격에 비해선 맛은 별로였다.




어퍼 타운은 고풍스런 건물로 가득차 있어 마치 중세 유럽을 걷는 듯 했다.

샹플렝 동상이 있는 광장에선 부두가 내려다 보였다.




퀘벡시티의 아이콘인 페어몬트 샤토 프롱트낙 호텔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도깨비에서 비석이 세워져 있던 곳으로 많이 나왔던 언덕배기에도 올랐다.



할로윈이 멀지 않은 시점이라 시청사 앞에는 꽃과 호박, 인형으로 할로윈 장식을 해놓았다.



1647년에 지어져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통하는 노틀담 대성당은 화려하지 않아서 좋았다.

심지어 입장료도 받지 않았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거리의 화가들이 미술품을 전시하며 판매를 하고 있었다.


 

성벽 아래에 있는 로워 타운으로 내려가는 길


5층짜리 건물 외벽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 안에는 수백 년에 걸친 퀘벡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공예품점이나 부티크, 레스토랑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프티 샹플렝 거리에도 도깨비에 나온 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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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7.11.17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도깨비를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내가 순간순간 장면을 보여줘서 보긴 봤어요! 캐나다 관광청도 대한민국의 드라마 힘을 깨닫는 계기가 됐을것 같아요~!

    • 보리올 2017.11.19 0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퀘벡시티에서 도깨비를 촬영하는데 캐나다 관광청도 공을 많이 들였다고 들었다. 그 덕분에 엄청난 홍보 효과를 보았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