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샤팡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10.11 랑탕 트레킹 - 10 (2)
  2. 2013.03.14 마칼루 하이 베이스 캠프 <12>

 

동틀녘 수탉 한 마리가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훈련소 신병처럼 벌떡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로지 식당에서 만난 이스라엘 청년들 셋은 라우레비나 패스로 오른단다. 배낭 크기가 장난이 아닌 것을 보아선 요리사나 포터를 쓰지 않고 고행에 나선 친구들이다. 속으론 좀 부러웠다.

 

이제부터는 줄창 내리막인줄 알았는데 계곡으로 내려섰다간 타데파티(Thadepati)까지 가파르게 올라선다. 내리막 길에 오르막이 나오면 좀 짜증이 일기도 한다. 하지만 타데파티부터는 완만한 능선길이 계속 되었다. 타데파티부터 다시 설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능선 상에서 시샤팡마(Shishapangma)를 볼 수가 있다며 지반이 정상부가 매끈하게 보이는 먼 봉우리 하나를 가르킨다. 8,000m급 고봉 중에 가장 낮은 산으로 온전히 티벳 땅에 속해 있는 산이다. 비록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충분히 감격에 겨웠다.   

 

지반이 가르킨 또 다른 봉우리는 1992년 타이항공의 여객기가 추락한 현장이라고 한다. 우리가 어제 지난 탑이 그 때 죽은 일본인 한 명을 추모하기 위해 가족들이 세운 위령탑이라 한다. 어제 그런 이야기를 해줬다면 탑을 지나치면서 고인을 추모라도 했을텐데 지반은 타이밍을 맞추는데 좀 서툰 듯 하다. 네팔에서는 신분이 무척 높은 귀족 출신이라는데 말이다.  

 

망겐고트(Mangengoth)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헬남부(Helambu)로 갈리는 길이 여기서 나뉜다. 쿠툼상(Kutumsang)까지는 무척 지루한 내리막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어떤 연유인지 쿠툼상 들어서는 길목에 폐허 상태로 방치한 빈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10여 년간 정부군과 마오이스트 반군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낮에는 정부군에게 시달리고 밤이면 반군에게 얻어 맞는 일이 계속되니 주민들이 집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 까닭이다. 지리산 빨치산 토벌 당시의 우리 나라를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했다.

 

쿠툼상은 능선에 자리잡은 큰 마을이었다. 전기도 들어오고 사람들 입성도 풍족해 보였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표정에도 구김살이 없었다. 모처럼 로지에서 찬물로 샤워도 했다. 전등이 있으니 식당에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좋았다. 또 하루가 흘렀다. 내일 하루 더 산에서 묵으면 도시로 나가야 한다. 산을 내려가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매미가 성장을 위해 허물을 벗듯 나는 히말라야를 통해 자신의 허물을 벗으며 성장통을 이겨내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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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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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영숙 2013.10.12 0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물을 벗어 성장통을 이겨 낸다? 사춘기도 아니고 자신의 더 많은 발전을 위해 노력? 내지는 향상
    할수있는 모색을 찾아 본다라고 사료 되내요...
    사춘기의 growing pain 그런것 인가요? 아니면 다른뜻?.....


    석양 무렵의 대나무 모습, 너무 아름다와요,,,

  2. 보리올 2013.10.12 06: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 생각이 많이 나시는 모양이네요. 신체적인 성장도 있지만 정신적인 내면의 성장통도 있다고 봅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라고 보면 되지요. 전 히말라야에서 마음을 비우는 공부를 하고 싶은데 잘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계속 노력해야겠죠.

 

당말 베이스 캠프를 출발하면서 마칼루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고비를 넘어서자 마칼루의 모습이 우리 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마칼루와 헤어진 것이다. 이제 우리 하산 일정에서는 더 이상 마칼루를 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대원들은 섭섭함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나만 홀로 마칼루를 짝사랑했나? 다들 부담없는 하산길이라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반대편에서 한 무리의 산악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산악인 블라디슬라브 테르쥴(Vladyslav Terzyul)의 추모 동판을 설치하기 위해 마칼루 베이스 캠프로 오르는 그의 가족, 친구들이었다. 그는 3년 전 마칼루를 올라 8,000m 14좌를 완등하고 하산하던 길에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었단다. 한 대장에게 14좌 완등 기록을 적은 티셔츠를 하나 건넨다. 나중에 기록을 찾아보았더니 그는 시샤팡마 등정 기록에 시비가 걸려 공식적으로 14좌 완등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포터들이 짐을 내려놓고 갈길을 멈췄다. 당말의 매점 주인이 장작값을 주기 전에는 못간다 길을 막은 것이다. 19명의 포터들이 나흘을 묵으며 장작을 가져다 불을 피웠는데, 그 대금으로 7,700루피를 청구한 것이다. 그것은 로지 주인과 포터들이 해결할 문제라고 우리는 한 발 물러섰다. 대책없이 시간을 끌다가 결국은 포터들이 얼마씩 돈을 걷어 로지 주인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를 봉으로 봤던 로지 주인은 우리에게 바가지 씌우려다 닭 쫓던 강아지 꼴이 된 것이다. 어떤 물품이던 외국인과 현지인에게 받는 금액이 다르기 때문이다.

 

양리 카르카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강가에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야영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먼저 도착한 포터들이 풀밭을 기면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기에 뭐하는 것이냐 물어 보았다. 그들이 찾는 것은 바로 동충하초. 한 대장이 그들이 잡은 동충하초를 몇 개 사서 나에게 하나를 준다. 한 개에 20루피씩 주었다 한다. 내 생애 처음으로 동충하초라는 것을 보았다. 상행 구간에 만났던 도마가 여기에 올라와 있었다. 기막히게 돈 냄새를 잘 맡는다 감탄을 했다. 그래서 나도 도마에게 럭시 한 잔을 팔아 주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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