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로 타는 버스나 트램도 있었지만 일부러 걸어서 애들레이드를 관통했다. 이스트 테라스(East Terrace)에 있는 애들레이드 보태닉 가든(Adelaide Botanic Garden)을 찾아가는 길이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빗방울이 돋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어 고스란히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라이밀 공원(Rymill Park)에 들어가 문 닫은 매점 처마 아래서 비를 피했다. 인기척이 없는 공원은 좀 을씨년스러웠지만 비 때문에 공원을 독차지하는 행운도 얻었다. 내 기척에 놀란 오리들이 물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다행히 곧 비가 그쳤다. 보태닉 가든에 이르기 전에 내셔널 와인 센터(National Wine Centre)가 나타나 또 발목이 잡혔다. 원래 호주 와인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탓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시음을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안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기웃거린 것이 전부였다.

 

보태닉 가든은 와인 센터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역사 건축물인 굿맨 빌딩(Goodman Building)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이런 식물원에 오면 드는 생각이 호주 어느 도시를 가던 이런 보태닉 가든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 부럽다는 것이다. 1857년에 오픈한 애들레이드 보태닉 가든도 다양한 식물을 보유하고 있었고, 정원의 배치나 관리 모두 훌륭했다. 장미 가든(Rose Garden)엔 다양한 종류의 장미가 자라고 있었고, 바이센테니얼 온실(Bicentennial Conservatory)에는 열대우림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유리로 만들어진 아마존 워터릴리 파빌리온(Amazon Waterlily Pavilion)은 남미 아마존 강 유역에서 발견된 수련 몇 종을 보존하고 있었다. 이런 세세한 점까지 신경을 쓰는 이들의 정신적인 여유가 부러웠다. 테마별로 나눠진 11개 정원을 모두 돌아보기도 솔직히 쉽지가 않았다. 어느 곳은 대충 건너뛰면서 보태닉 가든 투어를 마쳤다.


도심 구간에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트램이 있었지만 두 발로 걷기로 했다.





시민들 휴식 공간인 라이밀 공원에는 루이스 캐롤(Lewis Carrol)의 작품에 나오는 앨리스(Alice)의 동상과 

1959년에 만든 인공 호수가 있었다.





와인 센터는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의 와인 제조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와인 종류 소개, 시음까지 할 수 있는 곳으로

2001년에 개관했다.




고풍스런 굿맨 빌딩을 지나 보태닉 가든으로 들어서 나무 우거진 산책로를 걸었다.








보태닉 가든에서 만난 다양한 나무와 꽃들 사이를 거니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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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06.25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봐도 호주 사람들은 무료 트램과 보태닉 가든, 박물관, 도서관 등등 정말 삶의 질이 높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을 갖추었네요!

    • 보리올 2018.06.27 01: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살기좋은 도시를 꼽으면 호주의 도시들이 비싼 물가에도 불구하고 우선순위로 꼽히는 게 아니겠냐. 보태닉 가든, 주립 도서관은 정말 부럽더라.

 

오클랜드로 입국해 크라이스트처치에 닿았다. 입국 절차도 까다로웠고 수화물을 찾아 세관을 통과 후에 다시 국내선 청사로 이동해 짐을 부치는 것도 번거로웠다. 음식이나 과일 반입에 유별나게 신경 쓰는 것이야 뭐라 하긴 어렵지만 등산화 반입까지 조사를 하니 좀 의아하긴 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캔터베리 주의 주도로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큰 도시라 한다. 2010년에 이어 2011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도시가 심하게 피해를 입어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진 설계를 반영해 새로운 건물을 짓느라 그리 늦은 것인지, 아니면 도시 재건에 소요되는 자원이 한정되어 그런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19세기 영국 사회를 모델로 건설해 영국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는 아름다운 도시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방치된 반파 건물이나 비계로 둘러싸여 복구 중인 건물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호텔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섰다. 바로 커시드럴 스퀘어(Cathedral Square)가 나왔다. 63m의 첨탑은 무너지고 대성당도 반쯤 허물어져 철조망으로 격리되어 있었다. 1901년에 완공되었다는 신의 공간도 자연 재해는 이겨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커시드럴 스퀘어에서 트램에 올랐다. 크라이스트처치의 명물로 통하는 트램을 타고 도심을 먼저 일견한 것이다. 카드보드 대성당(Cardboard Cathedral)은 일본 건축가의 설계로 2013년에 지어졌다. 98개의 카드보드 튜브를 사용해 임시로 지은 대성당은 뾰족한 삼각형 형상에 창문 또한 삼각형으로 낸 것이 꽤 인상적이었다. 트램에서 내려 발길 닿는 대로 도심을 걸었다. 리스타트 몰(Re:Start Mall)은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옆에 컨테이너를 사용해 쇼핑몰을 만든 발상 자체가 신기했다. 가게뿐만 아니라 카페나 푸드 트럭도 들어와 있었다. 식물원(Botanic Gardens)도 한 바퀴 돌았다. 한가롭게 걸을 수 있는 이런 공간이 도심에 있다는 것이 좋았다.

 

오클랜드에서 국내선으로 이동해 크라이스트처치 행 항공편으로 갈아탔다. 에어 뉴질랜드 항공기만 눈에 들어왔다.

 

 

커시드럴 스퀘어는 반쯤 무너진 대성당 옆에 자리잡고 있다.

 

 

 

커시드럴 스퀘어에서 크라이스트처치의 명물로 통하는 트램에 올랐다. 중간에 내렸다가 다시 탈 수 있었다.

시내를 한 바퀴 돌고는 제 자리로 돌아왔다.

 

 

지진으로 무너진 대성당을 대신해 임시로 지은 카드보드 대성당은 700명을 수용할 수 있단다.

 

 

도심 전체가 지진으로 입은 피해를 보여주고 있었다. 도처에 콘테이너를 가건물로 사용하고 있는 듯 했다.

 

 

리스타트 몰도 콘테이너를 사용한 상가였는데 밝은 색상으로 외관을 칠해 분위기가 좋았다.

 

 

 

에이번 강(Avon River)으로 둘러싸인 크라이스트처치 식물원을 한가롭게 걸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는데 하늘엔 석양이 내려앉고 있었다.

 

 

현지인이 주저 없이 최고로 꼽은 스트로베리 페어(Strawberry Fare) 레스토랑. 무심코 양고기를 시켰는데 푹 삶아 잘게 찢어 나온 양고기가 파파르델레라 부르는 넓고 납작한 파스타 면 위에 얹어 나왔다. 새로운 시도였지만 그리 입에 맞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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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6.05.25 2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질랜드에 저리 심한 지진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상황에 맞게 적응해가는 모습이 좋습니다.

    • 보리올 2016.05.27 1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커다란 지진이 일어나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되어도 뉴질랜드란 나라에 인프라가 없으니 대책이 없는 듯 했다. 건설 장비나 인력도 부족하고 사람들 성격도 느긋한 편이니 그저 시간이 해결하는 수밖에.

 

호텔 방으로 전달된 청구서를 보고 눈이 동그레졌다. 전혀 발길도 하지 않은 레스토랑과 라운지에서 식사비와 술값으로 220불이 청구된 것이다. 프런트에 항의하니 금방 수정을 해준다. 누가 내 방 번호를 대고 먹은 것인지, 호텔의 단순 실수인지가 궁금했다. 캐나다로 돌아온 뒤에 이 220불이 내 카드에서 따로 결제된 것을 확인하고 호텔에 전화를 걸어 항의하니 실수를 인정하고 환불해 주겠다 한다. 며칠 뒤에 13불이 모자란 금액이 돌아왔다. 아마 그 사이에 발생한 환차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다시 따질까 하다가 전화비가 더 나올 것 같아 그만 두기로 했다.

 

저지 시티의 뉴포트에서 차량을 렌트했는데 거기서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쇼핑몰 안에 있는 렌트카 사무실에서 수속을 마쳤다. 중국계 직원이 너무 불친절해 은근히 열을 받았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키를 주며 혼자 주차장에 가서 차를 끌고 가라고 위치를 알려준다. 차량 손상 등에 대한 쌍방 확인 절차도 없다. 근데 그 주차구역엔 차가 없었고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다른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세차도 안 되어 있었다. 세차야 그렇다 쳐도 좌석에 떨어진 음식 찌꺼기는 좀 치워야 하는 것 아닌가. 시동을 걸었더니 연료 게이지는 ¾ 지점을 가르키고 있었다. 직원을 호출해 계약서에 연료 75%라 적고 사인을 하라 했다. 이래저래 출발이 1시간이나 지연되었다. 와, 진짜 열받네!

 

저지 시티를 빠져 나와 필라델피아(Philadelphia)로 향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롱우드 가든. 산에서 인연을 맺은 젊은 가드너 한 명이 여기서 연수를 받고 있어 일부러 찾아가는 길이다. 이 친구완 캐나다 로키를 함께 걸었던 추억이 있다. 자연 사랑, 나무 사랑이 대단했고 산길에서 마주치는 나무나 야생화에 대해 많은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앞으로 우리 나라 식물원을 이끌 장래가 촉망되는 가드너라 인상이 아주 깊었다. 그 친구를 만날 기대에 호텔과 렌트카 사무실에서 있었던 불쾌한 기억은 점차 잊혀졌다.

 

점심을 먹고 오후 1시가 넘어 롱우드 가든 주차장에서 김장훈씨를 만났다. 롱우드 로고가 찍힌 작업복 차림이었다. 까맣게 탄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초대권을 가지고 나와 무료 입장을 했다. 크리스마스 행사 준비로 무척 바쁜 시기인데, 우리 방문 때문에 오후 시간 근무를 뺐다고 한다. 우리를 안내해 식물원을 두루 돌아보았다. 우리끼리 다녔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곳도 그의 자세한 설명 덕분에 많은 것을 듣고 배울 수 있었다. 더구나 영어가 아닌 우리 말로 설명을 들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이 롱우드 가든은 1700년대 퍼스(Peirce) 가문 사람들이 농사를 짓던 곳인데, 듀퐁이란 회사를 세운 피에르 듀퐁(Pierre DuPont)이 1906년 이 땅을 사들여 세계적인 정원으로 만들었다. 수목이 우거진 아름다운 정원에서 분수쇼와 불꽃놀이, 콘서트와 공연을 열고 품격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할 수 있다. 똑같은 음악이라도 이런 정원에서 감상하면 그 감동이 훨씬 클 것은 자명한 일. 그래서 매년 1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이 가든을 찾는다. 특히,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이 축적한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고 전파하는 그들 정책이 이채로웠다. 

 

바깥 정원은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겼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듯 했다. 식물원 전체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나무에 전구를 다는 등 행사 준비에 바빠 보였다.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세 그루의 산딸나무. 단풍과 꽃이 아름답다는 이 산딸나무가 우리 나라 고유의 수종이라는 설명에 귀가 번쩍 뜨인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 식물원에 자리를 잡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나라 수종을 여기서 만나다니 반갑기 짝이 없었다.

 

 

4 에이커에 이른다는 실내 온실에서는 마침 국화 페스티벌(Chrysanthemum Festival)이 열리고 있었다. 연중 테마를 바꿔 전시를 계속하는데 우리가 갔을 때가 늦가을이라 국화가 주인공이 된 것이다. 2만 점이 넘는 국화가 전시되어 있어 종류별로, 형태별로 국화는 원없이 볼 수 있었다. 공간 활용도 뛰어났고 색상 배치에도 전문가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온실에는 국화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3,200종의 난을 전시한 오키드 하우스(Orchid House), 은은한 초록색 식물로 분위기를 띄운 아카시아 패시지(Acacia Passage), 은빛 식물로만 꾸민 실버 가든(Silver Garden), 그 외에도 고사리 통로(Fern Passage), 분재관(Bonsai), 팜 하우스(Palm House)도 둘러 보았다. 비슷한 색상의 식물을 배치해 은은한 느낌을 주는 가드닝 기법이 이채로웠고 그런 공간에서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온실에서 본 거미국화(Spider Mum)와 극락조화(Bird of Paradise Flower), 식충식물(Insect-Catching Plants)도 신기했지만, 내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바로 천 송이 국화(Thousand Bloom Mum)였다. 한 뿌리에서 천 송이가 넘는 꽃을 피워낸 특이한 국화였는데, 올해는 자그마치 1,339 송이의 꽃을 피웠다 한다. 이 천 송이 국화를 키워내는데 18개월이 걸렸다 하니 어린 아이를 키우는 정성이 들어 갔으리라. 이 원예기술은 중국과 일본에선 200년 전부터 전해 오던 것인데, 롱우드에서 20년을 근무한 일본계 가드너 요코 아라카와(Yoko Arakawa)가 일본에서 배워온 기술이라 한다. 

 

 

 

 

내 눈길을 끄는 요코의 작품이 또 하나 있었다. 다른 품종의 국화 100여 가지를 한 그루의 국화에 접목시킨 분화를 전시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너무나 신기한 작품이었다. 천 송이 국화는 하얀 꽃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국화는 모양도 각기 다르고 색깔도 달라 더욱 인상적이었다. 가드닝을 잘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 이런 다양한 국화 전시를 통해 가드닝의 세계를 잠시 들여다 보고 그를 통해 개안을 한 기분이었다.

 

 

온실에서 나와 분수대를 거쳐 퍼스-듀퐁 하우스를 들렀다. 롱우드 가든과 관련된 역사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다. 많은 사진 자료가 벽에 걸려 있었다. 김장훈씨가 쓰고 있는 기숙사도 들어가 보았다. 1920년 대에 지어진 고풍스런 가옥 한 채에 네 명이 사는 구조였는데, 아래층은 부엌, 거실 등 공동 생활 공간이고 위층에는 침실 네 개가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와 개봉도 하지 않았다는 황차를 대접 받았다.

 

저녁 식사를 하러 케네트 스퀘어(Kennette Square)로 나갔다. 인구 6,000명이 사는 소읍으로 롱우드에서 가장 가까운 타운이었다. 그나마 괜찮다고 추천을 받은 식당이 하프 문(Half Moon)이란 식당. 버팔로 고기를 쓴 버거가 유명하다고 해서 나와 김장훈씨는 풀 문(Full Moon)을, 집사람은 하프 문을 시켰다. 맛을 글쎄… 솔직히 좀 별로였다. 로컬 비어 ‘야드스(Yards)’의 진한 맛이 그나마 입에 맞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김장훈씨와 헤어져 웨스트 체스터(West Chester)에 예약해 놓은 호텔에 투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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