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크 카르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1.16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⑧
  2. 2014.01.15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⑦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구간 중에서 가장 높은 지점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다. 여전히 스님 두 분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누룽지는 조금씩 드셔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야크 카르카의 음식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고도를 높일수록 물가가 오르는 것은 히말라야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라 나 또한 각오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곳의 배짱 장사는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가 부족한 상황을 이용해 트레커들 주머니를 최대한 털겠다 작정하고 나선 것 같았다. 난생 처음으로 끓인 물 한 병에 220루피란 돈을 지불했다.

 

계곡을 따라 꾸준히 걸은 끝에 해발 4,540m의 토롱 페디(Thorong Phedi)에 도착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로 붐볐다. 점심으로 라면이나 끓일까 했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더군다나 일행들 대부분이 고소 증세로 식욕을 잃어 점심을 건너뛰어도 아무 불평이 없었다. 내친 김에 하이캠프까지 오르기로 했다. 원래는 토롱 페디에서 하루를 묵으려 했지만 오늘 조금 더 걸어두면 내일 토롱 라를 오르는데 그만큼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고도가 조금이라도 낮을 때 더 걸어두자는 현실적인 계산도 있었다. 경사가 꽤나 심한 오르막을 두 시간 더 걸어야 했다. 일행들 걷는 속도가 무척 느렸다.   

  

하이캠프로 오르는 지현 스님의 발걸음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 스무 걸음을 내딛고 제 자리에 서서 심호흡을 하라고 주문했지만 한 번에 스무 걸음도 힘들어한다. 이런 상태로 내일 토롱 라를 오를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법민 스님은 그런대로 잘 버티고 있어 다행이었다. 여태까지 별 탈 없이 잘 걷던 이진우 선배가 갑작스레 얼굴이 퉁퉁 붓고 행동도 무척 느려졌다. 최정숙 회장도 숨이 가프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고도를 높이면서 새로운 상황이 연달아 발생해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내일만 잘 버티면 되는데 역시 토롱 라가 복병이다. 그런데도 히말라야가 초행인 김우인 여사만 고소 적응에 별 어려움없이 잘 걷는다.

 

오후 3시가 가까워 하이캠프에 도착했다. 하이캠프에는 규모가 엄청 큰 로지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가장 뒤에 처진 사람을 챙기며 오다 보니 내가 마지막으로 도착을 하게 되었다. 너무나 허기가 져서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카고백에서 버너와 코펠을 꺼내 급히 떡라면을 끓였다. 고산병 증세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 옆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는 것이 얼마나 얄미운 짓인지 잘 알지만 어쨌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았나. 로지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이 대단했다. 하얀 눈을 이고 있는 험봉들이 안나푸르나 연봉을 에워싸고 있었다. 로지에서 가볍게 오를 수 있는 봉우리가 하나 있어 카메라를 들고 혼자 올랐다. 꼭대기에는 제법 큰 돌탑이 세워져 있었다. 그 옆에 서서 어둠이 내려앉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 보았다.  

 

트레커, 가이드, 포터들까지 모두 들어와 식당은 완전 만원이었다. 바깥은 날씨가 추워 우모복으로 완전 무장을 해야 했지만, 식당 안은 사람들 열기로 그리 춥지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못하겠다 하는 사람도 있고, 식당에 나오긴 했지만 수저를 들지 못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군대식으로 정리하면 총원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은 전사, 두 명은 중상, 한 명은 경상,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멀쩡한 편이었다. 오늘 밤이 최대 고비다. 오늘 밤만 잘 버티면 내일 토롱 라를 넘기 때문에 고산병 걱정은 사라진다. 그런데 토롱 라까지 걸어 오르는 것이 무리라고 스스로 판단해 말을 타고 가겠다는 사람이 나왔다. 로지에 물어보았더니 토롱 라까지는 100, 묵티나트(Muktinath)까지는 200불을 달란다. 일단은 토롱 라까지 가는 것으로 해서 말 한 필을 예약했다. 나중에 다른 한 명도 추가로 말을 예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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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쉬었다고 몸 상태가 금방 달라지진 않았다. 그래도 정신적인 안정을 찾는 데는 도움이 된 듯 했다. 하루를 쉬었으니 힘을 내 오르자고 일행들을 격려했다. 마낭을 출발해 야크 카르카(Yak Kharka)로 향한다. 카르카란 목동들이 머물며 가축을 치던 방목지로 보면 된다. 예전에는 여름철에만 목동들이 머물던 곳이었는데, 트레커들이 밀려들면서 여기에 로지들이 들어선 것이다. 그렇지만 숙박시설이 그리 많진 않은 듯 했다. 그래서 껄빌이 새벽 5시 반에 카고백 하나를 들처메고 먼저 출발하였다. 그곳은 하루 세 끼를 로지에서 먹어야만 방을 준다고 한다. 방값을 흥정하기는 커녕 로지 주인의 처분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거 완전히 배짱 장사다.

 

마낭을 벗어나자, 부드러운 아침 햇살에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하늘로 올라간다. 마음속 걱정을 한 순간에 잊게 만든 평온한 마을 풍경이었다. 어디에서 이 많은 트레커들이 쏟아져 나왔는지 사람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우리 일행의 속도가 너무 느려 모두들 우리를 추월해 갔다. 그들이 발을 내딛을 때마다 메마른 땅에선 먼지가 폴폴 일어났다. 뒤에서 그 먼지를 들이켜야 하는 신세에 짜증이 난다. 더구나 앞에서 먼지가 일면 나도 모르게 숨을 참다가 머리가 띵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빨리 이 구간을 벗어나는 길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오늘 운행거리는 천천히 걸어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우리는 5시간이나 걸렸다. 야크 카르카가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서 해발고도 4,000m를 통과했다. 손가락 네 개를 펼쳐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최정숙 회장과 나를 제외하곤 다들 처음 접해보는 고도라 하이파이브로 서로를 축하해줬다.

  

정오를 넘어 야크 카르카에 도착했다. 껄빌이 잡아놓은 로지에서 점심을 시켜 먹었다. 딱히 할일이 없었다. 모두들 낮잠을 자려는 눈치라 난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뒷산에 올랐다. 야크 카르카란 지명에 걸맞게 야크 몇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계곡 건너편에도 야크 몇 마리가 위험스런 곡예를 벌이며 벼랑을 타고 있었다. 어린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도 있었다. 부드러운 빛을 받으며 조용히 버티고 선 안나푸르나 연봉과 강가푸르나를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마을로 내려왔다. 시간이 왜 이리 더디 흐르는지 모르겠다. 마음껏 여유를 부리는데도 시간은 오히려 더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다. 방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책을 들었다. 책은 역시 훌륭한 수면제였다. 나도 모르게 살짝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스님 두 분이 저녁 식사를 마다한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지금까지는 식사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거 큰 일이다. 해발 4,000m를 넘기면서 고소 증세가 더 악화된 모양이다. 얼마 남지 않은 누룽지라도 끓여 드시라고 방으로 넣어 드렸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텼지만 저녁 7시 반이 되자 모두들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 긴긴 밤을 또 어찌 보내야 한단 말인가. 잠은 오지 않고 엎치락 뒤치락하다가 이진우 선배로부터 중국 근대사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이 양반은 언제 중국에 대해 이리 깊게 공부를 했는지 손문과 장개석, 송미령에 얽힌 이야기를 한없이 이어간다. 덕분에 밤이 무척 짧아졌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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