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리 카르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3.14 마칼루 하이 베이스 캠프 <12>
  2. 2013.03.07 마칼루 하이 베이스 캠프 <6>

 

당말 베이스 캠프를 출발하면서 마칼루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고비를 넘어서자 마칼루의 모습이 우리 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마칼루와 헤어진 것이다. 이제 우리 하산 일정에서는 더 이상 마칼루를 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대원들은 섭섭함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나만 홀로 마칼루를 짝사랑했나? 다들 부담없는 하산길이라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반대편에서 한 무리의 산악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산악인 블라디슬라브 테르쥴(Vladyslav Terzyul)의 추모 동판을 설치하기 위해 마칼루 베이스 캠프로 오르는 그의 가족, 친구들이었다. 그는 3년 전 마칼루를 올라 8,000m 14좌를 완등하고 하산하던 길에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었단다. 한 대장에게 14좌 완등 기록을 적은 티셔츠를 하나 건넨다. 나중에 기록을 찾아보았더니 그는 시샤팡마 등정 기록에 시비가 걸려 공식적으로 14좌 완등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포터들이 짐을 내려놓고 갈길을 멈췄다. 당말의 매점 주인이 장작값을 주기 전에는 못간다 길을 막은 것이다. 19명의 포터들이 나흘을 묵으며 장작을 가져다 불을 피웠는데, 그 대금으로 7,700루피를 청구한 것이다. 그것은 로지 주인과 포터들이 해결할 문제라고 우리는 한 발 물러섰다. 대책없이 시간을 끌다가 결국은 포터들이 얼마씩 돈을 걷어 로지 주인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를 봉으로 봤던 로지 주인은 우리에게 바가지 씌우려다 닭 쫓던 강아지 꼴이 된 것이다. 어떤 물품이던 외국인과 현지인에게 받는 금액이 다르기 때문이다.

 

양리 카르카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강가에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야영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먼저 도착한 포터들이 풀밭을 기면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기에 뭐하는 것이냐 물어 보았다. 그들이 찾는 것은 바로 동충하초. 한 대장이 그들이 잡은 동충하초를 몇 개 사서 나에게 하나를 준다. 한 개에 20루피씩 주었다 한다. 내 생애 처음으로 동충하초라는 것을 보았다. 상행 구간에 만났던 도마가 여기에 올라와 있었다. 기막히게 돈 냄새를 잘 맡는다 감탄을 했다. 그래서 나도 도마에게 럭시 한 잔을 팔아 주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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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구간에 낙석 위험 지대가 있어 얼음이 녹기 전에 그곳을 통과하자고 새벽 4시에 기상해 출발을 서둘렀다. 이번에는 바룬(Barun) 강으로 내려간다. 어렵사리 올라온 고도를 또 다시 뚝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런 후 강을 옆에 끼고 완만한 오르막을 따르면 된다. 내려서는 도중에 뭄북(Mumbuk) 야영장에서 대원들과 함께 잠깐 동안이나마 쓰레기 치우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부터 설사면이 꽤 가파르다. 창피스럽게도 이 설사면에서 7번이나 넘어졌다. 엉덩방아야 바로 일어나면 되지만 한 번은 설사면 10 m를 미끄러져 내려와 여러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카메라를 눈 속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손을 높이 들고 넘어졌는데, 그 때문인지 오른발이 약간 뒤틀리면서 무릎에 순간적인 통증을 느꼈다. 좀 불편하긴 했지만 큰 부상이 아니라 천만다행이었다.

 

바룬 강으로 내려섰다. 이제부턴 물줄기를 거슬러 원류까지 줄곧 오르기만 하면 된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계곡 오른쪽으론 소나무가 빼곡하고 왼쪽엔 랄리구라스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누구의 손길도 타지 않은 원시림으로 보였다. 푸른 이끼도 많았다. 산사태로 무너져내린 산사면 아래에는 너덜지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몇 개의 카르카를 지났다. 카르카란 초지가 있어 야크나 양을 방목해 키우는 곳을 일컫는데, 타시가온 사람들이 봄이면 이곳으로 들어와 소와 양을 키우고 가을이 되면 마을로 돌아간다.

      

강을 따라오르는 길은 완만하고 순했다. 하얀 설산을 바라보며 걷다가 강을 건너면 양리 카르카(Yangle Kharka)에 닿는다. 점심을 먹기 위해 배낭을 내려 놓고 쉬는 도중에 영국에서 온 한 식물학자를 만났다. 3개월간 체류하며 히말라야의 식물종을 연구하고 있단다. 혼자서 가이드와 포터 6명을 데리고 다닌다. 당말 베이스 캠프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부자도 만났다. 다와와 그의 아들 치링이었는데, 7살짜리 치링이 등짐을 지고도 제법 잘 쫓아간다.

 

조금 욕심을 내서 해발 4,100m의 자크 카르카(Jark Kharka)까지 하루에 끊었다. 고도를 높일수록 바룬 강의 폭이 점점 좁아진다. 펄쩍 뛰면 건널 수 있는 개천 수준으로 변했지만 흘러가는 강물이 내는 소리는 여전히 우렁찼다. 원용덕 선배의 상태가 아주 나빠졌다. 며칠 간의 고된 일정 때문인지 몸에 이상 징후를 보이며 너무 괴로워한다. 일단 내일 아침에 헬기를 불러 카트만두로 후송시키기로 합의를 보았다. 오늘 밤에 아무 일도 없어야 할텐데

 

고산병에 대한 한 대장과 김덕환 선배의 진단법은 좀 다르다. 고산 원정 경험이 많은 한 대장은  일단 밥숟가락을 들지 못하면 고산병으로 본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김덕환 선배는 이와는 달리 의학적으로 접근한다. 높은 곳에 오르면 평소 약했던 부위가 탈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고, 진짜 위험한 고소 증세는 오줌을 제대로 누지 못하는 증상이란다. 이게 발전하면 폐수종이 되기 때문에 고소에서 이뇨제 처방은 보편적이다. 난 아직 매끼 밥도 잘 먹고 오줌도 잘 누는 편이니 걱정은 좀 덜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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