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5시에 일어났다. 예약은 되어 있었지만 아차 하면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단다. 다와같은 친구가 급히 자리를 내놓으라 하면 항공사에선 절대 거절을 하지 못한단다. 일찍 공항에 나가 눈도장을 찍는 것이 좋다고 해서 그러자 했다. 다행히 비행기 네 대가 비슷한 시각대에 들어와 우리 일행 모두는 인원을 나눠 타고 루크라를 떠날 수 있었다.

 

카트만두에 도착해 야크 앤 예티 호텔에 잠시 짐을 맡겼다. 오후 늦게 카트만두 외곽에 있는 리조트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다들 사우나를 간다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사진 분류 작업을 하기 위해 정모네 집으로 갔다. 점심은 정원이란 한식당에 집결해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곁들였다. 전에도 자주 왔던 곳이라 눈에 익었다. 트레킹을 무사히 마친 것을 자축하는 건배도 했다. 오후 시간은 자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카트만두로 다시 돌아옴으로써 우리의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트레킹은 끝이 났다. 이번 트레킹에는 묘하게도 히말라야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이 절반을 차지했고 나머지 절반은 초행자였다. 솔직히 초행자 중에 몇 명은 중도에 탈락할 것이라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명도 낙오없이 모두가 해발 5,140m의 고락셉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난 이 기록도 무척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 모임에 탄탄한 팀워크와 훌륭한 팀닥터가 있었기 때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2002년 백두대간 종주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멤버들 간에 불협화음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큰 소리 한 번 난 적이 없는, 정말 믿기지 않는 팀워크다. 허 대장의 은근한 카리스마, 기탁 형님과 인당 형님의 헌신적인 후배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우리 모임엔 기탁 형님과 같은 훌륭한 팀닥터가 계시고, 이번에는 부인까지도 함께 활약을 해주셨다. 이들 부부 약사의 손길에 고산병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우리가 이 지구상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 에베레스트를 오른 것은 물론 아니다. 기껏 고락셉까지 오르고 이런 자랑을 한다는 것이 살짝 창피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환상적인 멤버들과 함께 한 시간은 정상에 오른 것보다도 더 소중하고 행복한 것이었다.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언제쯤 다시 이런 산행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트레킹 개요>

 

2007 11 23일부터 12 4일까지 <침낭과 막걸리>란 산꾼들의 모임에서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찾았던 12일간의 트레킹 기록이다. 만화가 허영만 화백을 중심으로 산행과 막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원래는 2002년에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 산행이 모태가 되었다. 이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트레킹 기록은 월간마운틴 2008 2월호에 소개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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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테레비소녀 2013.07.11 1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포스팅 잘보고갑니다..간접체험 잘하고 가요~~감사~

  2. 보리올 2013.07.11 1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별말씀을요. 고맙긴 제가 오하려 더 고맙지요. 근데 연예게 소식통이시네요. 놀랍습니다.

  3. 설록차 2013.08.13 0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예로운 최후의 9인 중 한분이셨네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모르는 사이라도 젊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추가) 지구절경기행 35회:네팔-히말라야의 빛,에베레스트 가도

  4. 보리올 2013.08.13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운이 좀 좋았다던가, 컨디션이 좋았다는 의미지, 영예라는 표현은 낯이 간지럽네요. 처음 가는 사람도 잘 올라가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건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체질에 따라 고소 적응이 많이 다릅니다. 직접 가서 한번 체험해 보세요.

 

오늘은 몬조에서 루크라까지만 가면 된다. 부담없는 여정이라 출발 시각도 늦추었다. 9시에 로지를 나섰다. 좁은 골목에서 옷차림이 깨끗한 학생들과 교행을 하게 되었다. 첫눈에 네팔 학생들은 분명 아니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 보았다. 싱가포르에서 수학여행을 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그렇지. 그래도 열 서너 살 정도 되는 중학생들이 수학여행을 히말라야로 왔다니 너무나 의외였다. 그 중엔 싱가포르에 유학 중이라는 한국 학생도 한 명 끼어 있어 우리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그들은 남체까지만 간다고 했다.

 

타로코시(Tharokosi)에 도착하기 직전에 마오이스트 깃발을 들고 온 현지인이 통행료를 요구한다. 정모가 직접 나서 우리 일행이 모두 24명이라 했더니 무슨 소리냐며 들어갈 때 31명으로 카운트를 했다고 한다. 돈 받는 일이라고 이렇게 치밀할 줄은 정말 몰랐다. 헬기를 타고 몇 명은 먼저 하산을 했기에 인원이 줄었다 해명을 했다. 1인당 100루피씩 통행료를 냈다. 안나푸르나에 비해선 그래도 싸서 좋았다.

 

카트만두로 먼저 내려갔던 허 화백과 박 대장이 여기까지 마중을 나왔다. 우리와 함께 점심을 먹겠다고 식사도 거르곤 기다리는 시간 내내 맥주로 배를 채웠는 모양이다. 비록 헤어진지 며칠밖에 안 되었지만 다들 반갑게 부둥켜 안으며 해후를 즐겼다. 박 대장은 그 사이 카트만두에서 부인과 둘째 아들을 데리고 왔다. 타로코시에서 점심을 먹었다.

 

빗방울이 간간이 돋더니 루크라 도착할 즈음엔 진눈깨비로 변해 버렸다. 구름이 잔뜩 끼어 시야도 그리 좋지 않았다. 트레킹 마지막 날에 날이 궂은 것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고산 지역에서 비를 맞았다면 청승맞은 것은 둘째치고 저체온증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서서히 진눈깨비가 눈으로 바뀌더니 눈송이가 점점 커진다. 고산 지역에서도 보지 못한 눈을 드디어 루크라에서 보게 되었다. 설마 내일 비행기 뜨는데 문제는 없겠지?  

 

루크라에선 다와(Dawa)가 운영하는 히말라야 로지에 들었다. 식당도 넓고 시설도 좋은 편이었다. 특히 화장실이 깨끗해 마음에 들었다. 다와는 루크라에선 유명 인사다. 이곳을 지나는 대부분의 원정대가 다와에게 부탁해 포터나 좁교, 식량을 구한다. 거의 만능 해결사라고나 할까. 그래서 돈도 많이 벌었고 이 지역에선 영향력도 제법 세다. 다행히 박 대장과 정모와는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어서 우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저녁에 또 한 차례 술 파티가 벌어졌다. 허 화백과 박 대장이 카트만두에서 공수해온 와인이 한 순배 돌았다. 저녁 메뉴는 닭도리탕. 어제에 이어 오늘도 너무 많이 먹고 마셔 배도 부르고 다들 기분좋게 취했다. 이리 미련스럽게 먹고 마시는 자신을 탓하면서 호준이를 데리고 맥주 한 잔 하러 또 밖으로 나섰다. 많은 일행들 뒷바라지하며 고생이 많았을텐데 맥주 한 잔이라도 사주고 싶었다. 박 대장이란 거물이 참가하게 되어 일정에 변경이 많았던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실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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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rtyLUV 2013.07.10 16: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와우! 멋지네요!^^
    좋은 사진과 글 잘 보고 갑니다~

  2. 보리올 2013.07.11 03: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칭찬의 댓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댓글 덕분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곤 합니다.

  3. 안영숙 2013.10.02 2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한번 가보고 싶은데,,, 유효기간이 임박해서 포기.

  4. 보리올 2013.10.03 07: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회장님이 유효기간 임박했다 하면 다른 사람들은 거의 폐차 상태일텐데 이거 어쩌면 좋죠? 어떻게 하면 유효기간 연장할 수 있을지 빨리 묘안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텡보체 호텔을 떠나기 전, 로지 여주인인 밍마 양지(Mingma Yangi)를 불러내 기념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네팔에서는 흔치 않은 여성 산악인에다 로지를 운영하면서 사업 수완도 만만치 않은 여장부다. 남체로 향하는 내리막 길은 고산병 걱정이 없어 좋았다.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여길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 일행들은 무슨 이야기거리가 그리 많은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다를 떨며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오늘이 지나면 에베레스트도, 로체도, 그리고 아마다블람도 보기가 쉽지 않을 터. 전망이 좋은 곳이 나타나면 이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 그래도 가장 압권은 야크 똥을 말리는 현장. 담벼락 돌에다 척척 붙여서 1차 건조를 한 다음에 땅 바닥에 넓게 펴서 말리고 있었다. 혹시 이 천연 연료도 화석 연료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겠지? 옛날엔 우리 시골에서도 소똥을 말려 불소시개로 썼던 일이 생각났다.

 

늦어도 정오까지는 남체 바자르에 도착할 것으로 보았는데 의외로 길이 멀었다. 거의 쉬지도 않고 걸었음에도 12시에서 30분이 지나서야 남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유만만한 후미는 당연히 거기서 1시간이 더 걸려서 도착을 했다. 점심은 남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쿰부 로지에서 정 상무가 한 턱 쏘았다. 야크 시즐러와 모모라 불리는 만두가 나왔는데 제법 맛이 좋았다.

 

가게에 나와 있던 로지 주인 할머니가 정모에게 특별 대접을 한다. 우리가 시키지도 않은 음식을 정모에게만 따로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오랜 인연이 있는 듯 했다. 물론 그 음식은 우리가 대부분 먹어치워 정모는 거의 한 점도 먹질 못했다. 영국에서 공부한 큰딸이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을 벽에 걸어 놓았다. 이 산골에서 아이를 영국 유학까지 시키다니 놀랍기만 했다. 그 동생쯤으로 보이는 다른 딸이 계산대를 지키고 있었는데, 너무 돈을 밝히는 듯 해서 인상은 좀 별로였다.  

 

아직까지 아마다블람의 위용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남체를 싸고 있는 산 봉우리들은 구름에 가려 기품을 많이 잃었다. 원래는 남체에서 하룻밤을 묵을 예정이었으나, 시간적 여유가 생겨 기왕이면 몬조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조르살레에서 국립공원 경내를 벗어났다. 우리 트레킹의 종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지루한 내리막을 걸어 몬조에 도착했다.    

 

저녁상에는 남체에서 사온 수육이 올라왔다. 남체에 맡겨 놓았던 팩소주도 돌고 돈다. 모처럼 거나한 술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모두가 고산병이란 걱정거리가 사라진 덕택이다. 소주가 부족했는지 거기에 럭시, 양주까지 등장을 했다. 모두들 기분좋게 취했다. 젊은 피들은 저녁 늦게까지 노래를 부르고 난리다. 이 늦은 시각까지 현지인들은 길가 마루에서, 담벼락에서 목을 빼고 우리를 구경한다. 참으로 할 일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나저나 마당에 텐트를 친 다른 나라 트레커들이 죽을 맛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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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rtyLUV 2013.07.10 1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중간의 음식들 너무 먹고 싶네요~^^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2. 보리올 2013.07.11 0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특이한 음식일 뿐입니다. 우리 한식보다 맛있다고 이야기하긴 좀 그렇습니다. 네팔 가시면 한 번 먹어보세요.

  3. 안영숙 2013.10.03 0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돌담벽에 붙어 놓은 야크 거시기 위에 있는 예쁜 노랑 자캣 아가씨는 지금 도대채 뭘 하는 걸랑?

  4. 보리올 2013.10.03 0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가 그래도 허패의 캐나다 집단가출 당시 막동이였던 우리 '민갱이'입니다. 에베레스트 트레킹 갔을 때는 결혼 전이라 한국에 짝이 없으면 네팔로 시집 보내려 시험삼아 장작 좀 들어보라 했더니 영 아니올시다였지요. 저 정도 무게면 건장한 우리도 들지를 못합니다. 네팔 여인네는 머리로 사뿐히 잘도 들어 올리더구만. 하여간 우리 민갱이는 지금 한국에서 멋진 남편 만나 잘 살고 있답니다.

 

7시에 기상을 했지만 출발은 10시가 되어서야 할 수 있었다. 며칠 전 페리체를 지날 때 일행 몇 명이 능선에 올라 돌을 쌓아 화정이 추모탑을 조촐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페리체를 떠나기 전에 거길 오르자 의견이 모아졌다. 화정이는 한국여성산악회의 아콩카구아 원정을 대비해 훈련을 받던 중 얼마 전에 북한산에서 세상을 떴다. 우리 <침낭과 막걸리> 식구들에겐 한 가족을 잃는 엄청난 슬픔이었다. 추모탑은 아주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마다블람과 타부체, 로부체가 빤히 보이는 곳이었다. 평생을 산사람으로 살았던 친구니 좋아하겠다 싶었다. 돌탑 속 화정이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좋은 경치 벗삼아 편히 쉬게나.

 

페리체를 벗어나 전원이 기념 사진을 한 장 박았다. 하산에서 오는 여유 때문일까.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여기저기서 사진 찍는다 정신이 없다. 산을 오를 때의 긴장감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하긴 그만큼 힘들게 올랐기에 하산의 여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쇼마레를 지나 팡보체에서 점심을 먹었다. 김치 수제비가 일품이었다. 팡보체 고개를 내려오면서 희준, 현조의 추모탑을 다시 찾았다.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한 번 지나간 길이라지만 방향이, 시간이 달라서 그런지 생소한 느낌을 준다. 마음이 여유로워진 탓인지 색다른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시간이 많아졌다. 산길에서 피어나는 먼지만 없었다면 금상첨화였을텐데 그 점이 좀 아쉬웠다. 커다란 티벳 사원이 있는 텡보체에 도착했다. 산 아래에서 가스가 밀려온다. 우리 시야에서 사원도, 로지도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기후가 전형적인 쿰부의 겨울 날씨라고 한다. 여기도 이제 겨울로 접어드는가?       

 

트레킹을 하면서 내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설산 풍경보다는 오고가는 마을에서 순진무구한 악동들을 만나는 것이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은 카메라를 거부하는 녀석들도 나왔다. 히말라야 다른 지역과는 좀 다른 반응이었다. 야크가 평화롭게 풀을 뜯는 풍경도 좋았다. 남체 위에 있는 지역에선 이 야크가 주요 운송수단으로 쓰인다. 야크 숫놈과 일반소를 교배해 좁교라는 종자를 얻는데, 이 좁교는 남체 아래에서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일종의 전국구라고나 할까.

 

호준이와 핀조를 텡보체 사원에 보내 예불 시간에 특별히 화정이 추모제를 지낼 수 있는지 물어보라 했다. 예불 중에 링포체 큰스님이 간단하게 화정이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단다. 시주는 알아서 내라고 해서 내 주머니에서 100불이란 꽤 큰 돈이 나갔다. 대원들도 십 여명 넘게 예불에 참석을 했다. 예불은 우리처럼 그렇게 엄숙하지 않아 좋았다. 긴 나팔같이 생긴 악기와 북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엄숙함보다는 자유분방함이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염불 소리는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링포체 큰스님이 화정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식당에선 카드놀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돈을 딴 사람이 하산해서 저녁 한 끼를 쏘겠다 약조를 하고 시작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거금을 따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필수가 그래도 돈을 좀 딴 모양이었다. 따기는 땄는데 거금을 따지는 않아 한 턱 쏘지 않아도 되니 그것 참 실속있는 친구로군. 제 주머니만 두둑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나야 그런 재주가 없어 그냥 옆에서 구경만 하였다. 대신 문경 형님이 맥주를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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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이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EBC)까지 가지는 못하더라도 여기 고락셉까지 온 것만 하더라도 대단한 기록이라 생각한다. 히말라야가 초행인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고락셉도 해발 5,140m의 고지에 있으니 말이다.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고락셉에서 전체 인원을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운행하기로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세 명은 말을 이용해 로부체로 이동해 헬기로 하산하고, 다른 한 그룹은 걸어서 페리체로 바로 하산하기로 했다. 컨디션이 좋은 그룹은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갔다가 페리체로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당연히 베이스 캠프에 오르는 9명에 속했다.     

 

쿰부 빙하엔 찬 바람이 씽씽 불어오고 그늘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해가 뜨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난 추위에 대한 준비가 그리 좋지 않았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열심히 걸어도 추위를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병미가 촬영을 부탁한 캠코더는 2~3분만에 밧데리가 없다고 경고등이 들어온다. 모두 날씨가 추워서 그런 것이다. 몸이 힘들다고, 호흡이 가프다고 한가롭게 쉴 수가 없었다. 계속 움직이면서 몸의 열기로 추위를 버티는 수밖에.  

 

드디어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5,364m) 도착했다. 카트만두를 출발한지 8일만이다. 여기가 세계 최고봉을 오르는 기점이라니 신기하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원정대가 여기서 환호하고 탄식을 내뱉었을까. 그들의 함성이,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베이스 캠프에 진을 친 원정대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제 동계 시즌으로 들어갔으니 다들 철수를 한 모양이다. 해가 눕체 위로 불쑥 솟아 올랐다.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싸늘했지만 햇살에 담긴 온기가 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기탁 형님은 이 따스한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지옥에서 천당으로 옮겨 간 기분이라 표현을 했다.

 

에베레스트는 정작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선 볼 수가 없다. 에베레스트로 오르는 아이스폴 지대 뒤로 보이는 봉우리는 에베레스트 서봉이다. 베이스 캠프를 돌아다니며 빙하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빙하는 매매일 모양새를 바꾸며 이동을 한다. 배낭에 넣어온 프래카드를 꺼내 들고 기념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빙하에 취한 몇 명은 아이스폴 지대까지 접근하는 바람에 모두가 함께 찍을 수는 없었다. 하산길에 다시 찍기로 했다.  

 

고락셉에 도착하니 정오가 되었다. 베이스 캠프까지 왕복하는데 5시간 조금 덜 걸렸다. 찐감자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이제 페리체로 본격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이틀에 걸쳐 오른 거리를 서너 시간에 내려가게 된다. 고소에서는 산을 오르는 일과 내려가는 일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 후미에 서서 기탁 형님과 사카이 다니씨를 모시고 걸었다. 하산길에도 먼지가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 트레킹에서 가장 큰 적은 고산병도, 추위도 아닌 먼지였다. 날이 건조해 대지가 바싹 말라 있기 때문에 앞사람이 걸어가는 뒤를 따르다 보면 엄청난 먼지를 마신다. 눈이 쌓여 있어야할 산길에 눈이 사라진 탓이다

 

로부체에서 볶음밥으로 요기를 했다. 무척 허기지던 차에 다행이었다. 먼저 하산한 일행들이 헬기로 후송되었는지 로지 주인에게 물었다. 누가 탔는지는 모르지만 헬기가 두 번이나 내려 앉았다고 한다. 헬기가 두 번 왔다면 우리 일행을 태우고 간 것은 확인된 셈이다. 우리만 빨리 페리체로 내려가면 된다. 투크라 로지에서 병현이와 광식이를 먼저 출발시켰다. 둘다 발걸음이 빠르니 먼저 내려가 기다리는 일행들을 안심시키라 했다.

 

가파른 경사를 내려서니 평탄한 강변길이 나타났다. 어둠이 내려 앉아 헤드램프를 꺼내 불을 밝혔다. 페리체에서 몇몇 젊은 친구들이 마중을 나왔다. 우리 배낭을 건내주고 함께 밤길을 걸었다. 히말라야 호텔 밖으로 일행들이 모두 나와 박수로 우릴 맞는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다녀온 우리가 마치 개선장군같아 보였다. 기분이 좋았다. 저녁 식사 후에 봉주 형님이 맥주를 돌렸다. 얼마나 먼지를 마셨는지 목이 칼칼하고 콧물도 나온다. 맥주를 마신 취기 핑계 삼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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