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12.21 황남빵의 유혹에 경주를 가다 (6)
  2. 2013.12.02 국악의 본향, 영동 (2)

 

누굴 만나러 경주에 다녀온다는 동생을 따라 나섰다. 당일에 다녀오려면 시간이 빠듯할 것이 분명함으로 경주를 둘러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천년고도 경주를 이렇게도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쳐 지나가는 이런 여행도 보는 관점에 따라선 재미있을 것 같았다. 사실 무작정 따라 나선 배경에는 동생이 언급한 황남빵이 많은 작용을 했다. 예전에 부산을 출장가는 경우 김해공항에서 경주빵을 사다가 아이들에게 주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그래, 경주빵의 원조라는 황남빵을 먹어보자. 황남빵이 눈앞에 어른거리자, 앞뒤 가리지 않고 동생 차에 올라타게 된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에서 점심 시간을 맞았다. 난 본래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급하지 않으면 고속도로를 벗어나 현지 식당을 찾곤 했다. 마침 차가 영동을 지나고 있어 동생에게 황간 인터체인지로 나가자고 했다. 거기엔 예전에 산행을 다니면서 자주 들렀던 올뱅이 국밥집이 있었다. 이 지역에선 올갱이를 올뱅이라 부른다.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면 바로 식당이 보이는데, 그래서 식당 이름을 인터식당이라 붙인 모양이었다. 촌스러운 영문 이름이었지만 난 정이 느껴져 좋았다. 된장을 푼 국물에 부추와 올갱이를 넣어 팔팔 끓인 국밥이 시원했다. 예전에 먹었던 맛과 별반 다르지 않아 기분이 좋았다.

 

 

 

경주에 도착해 황남빵을 만드는 가게부터 들렀다.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빵을 만들어 파는 가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니 놀랍기만 했다. 우리도 순서를 기다려 몇 박스를 샀다. 어머니 드릴 것도 챙겼다. 1939년부터 만들어온 빵이라니 그 하나하나에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얇은 껍질 안에 듬뿍 넣은 팥앙금이 역시 일품이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만든 빵이라 더 맛있었나 보다. 우리가 아는 경주빵은 황남빵을 만들던 기술자가 독립해서 만들었다 한다. 그러니 원조를 따지면 황남빵이 먼저인 셈이다.

 

 

 

 

 

  

오랜 만에 보는 보문호는 조용하고 고즈넉해서 좋았다. 늘 사람들로 붐비던 곳인데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호수 위로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호숫가를 좀 걸었다. 이제 다시 올라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경주에 있는 한정식집 옛정이란 곳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그렇게 비싸지도 않은 금액에 반찬 가짓수가 엄청 많이 나왔다. 조금씩 맛을 보아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한국의 인심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상차림이었지만 남은 음식은 모두 버릴텐데 너무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나라는 식량이 부족해 어린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던데 우리는 음식을 버려야 하다니낭비란 생각이 들어 공연히 한정식을 찾았구나 후회를 했다.

 

 

 

 

 

   

동생은 원주로 바로 간다고 해서 상경은 KTX를 이용하기로 했다. 경주역까지 태워주면서 보문단지에 있는 현대호텔에서 샀다며 동생이 다보빵을 건넨다. 이 빵은 황남빵을 겨냥해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견과류와 고구마, 무화과를 넣어 두뇌 영양에 좋다고 자랑을 한다. 소는 팥대신 강낭콩을 썼다. 그 맛이 궁금해 그냥 가지고 올라갈 수가 없었다. 열차 안에서 하나둘 꺼내 먹다가 보니 박스에 들은 스무 개를 모두 먹어치웠다. 경주 황남빵과 다보빵으로 배를 채운 특이한 날이었지만, 동시에 식탐을 어찌 하지 못한 하루이기도 했다. 하여간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여행이었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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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우라마스터 2013.12.21 1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남빵 먹고 싶어요.

  2. 보리올 2013.12.21 1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쩌죠? 글과 사진을 보고 식욕을 돋우면 짜증나는데 말입니다. 빨리 경주를 다녀오시던가, 시간이 없으시면 친구를 대신 보내세요. 택배도 되나 모르겠네요.

  3. 설록차 2013.12.22 0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식탐이 없어진 나이가 된 것이 다행일 줄이야~~예전에는 미처 몰랐어요...ㅠㅠㅠ

  4. 보리올 2013.12.22 07: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식탐을 버리셨어요? 전 아직도 그 앞에서 절절 매고 있는데... 식이요법 한다고 얼마를 보냈더니 식탐을 버리기가 너무 어렵더군요,

  5. Justin 2013.12.22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두대간 종주 구간할때 그 지방을 지나치면 가끔 먹었던 올갱이 국밥이 너무너무 그리워요. 절대 잊을 수 없는 맛입니다. 게다가 황남빵은 맛도 맛이지만 저에겐 남다른 추억이 담긴 빵이기도 하지요!

  6. 보리올 2013.12.22 1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식당은 너랑 백두대간 종주할 때 갔던 곳이야. 세월이 흘렀어도 변함이 없지. 언제 부자가 함께 가서 올뱅이국밥 한 그릇 하지?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는 내 고향 마을이다. 내가 그곳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고 아버지 산소도 거기에 있다. 고국에 들를 때면 으례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러 오던 곳이었는데, 이 시골 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정작 난계 박연(蘭溪 朴堧) 선생이다. 난계도 바로 여기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 초기 세종대왕의 치세 하에서 문신으로 이조판서까지 지냈다고 한다.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작곡이나 연주 외에도 음악 이론과 궁정 음악을 정립하고, 악기 제조에 관여하는 등 음악 분야에서 엄청난 업적을 이뤘다. 그래서 고구려 왕산악, 신라 우륵과 더불어 우리 나라 3대 악성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이런 내용이야 어릴 때 학교에서 익히 배운 적이 있지만 마음에 담지 못하고 그저 지식의 한 조각으로 머릿속에만 남아 있었다. 오죽하면 이곳을 수도 없이 지나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난계사나 국악 박물관, 국악 체험관을 흘낏거리기만 했을 뿐, 한번도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아주 오래 전에 난계사는 한번 들어가 보았던 기억은 난다. 별다른 감흥도 없이 휙 둘러보고 금방 나왔었다. 동향의 후학으로서 이렇게 뛰어난 업적을 남긴 위인을 몰라보고 너무 무례를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번 고국 방문길에는 꼭 들러보자 마음을 먹었다.

 

이곳이 난계 선생의 출생지라는 것을 가장 잘 활용한 곳은 아마 지자체일 것이다, 영동군이 스스로를 전통 국악의 혼이 살아 숨쉬는 고장이라 지칭하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컨텐츠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는 지자체에서 이런 엄청난 문화적 컨텐츠를 그냥 썩힐 수는 없는 일 아닌가. 1960년대에 시작해 올해 46회가 되었다는 난계 국악 축제가 그렇고, 고당리 금강변에 국악기 체험 전수관과 국악 박물관, 국악기 전시 판매장을 세우고 사람들에게 난계 선생과 국악을 널리 알리는 것도 모두 이런 맥락으로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난계 국악기 체험 전수관부터 찾았다. 실내는 한산해서 도통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안내실도 텅 비었다. 나 혼자라서 마음 편하게 둘러볼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 벽에는 해금이나 대금, 피리, 가야금, 거문고, 편종 등과 같은 악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붙어 있었고, 가운데는 악기 소리를 하나씩 들어볼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국악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그리 크지 않았던 사람에게 새로운 공부가 되었다. 이곳에서 상설 국악 공연도 열리고, 악기를 직접 연주해 볼 수 있는 체험 기회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난계 국악 박물관은 국악기 실물을 주로 전시해 놓고 있었다. 눈에 익은 악기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편종(編鍾)이나 소(), 뇌고(雷鼓), 방향(方響)과 같은 악기는 난생 처음 본다. 세상에 이런 악기도 있었나 싶었다. 그 외에도 국악을 연주하는 모습, 악기 만드는 과정을 작은 인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국악 연대표나 민화, 난계 선생 부부의 영정도 볼 수 있었다. 전시 자료가 엄청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쉽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은 아니었다. 이 박물관은 입장료로 500원을 받았다. 입장료를 받는 사람이 없어 사람을 불러서 돈을 건네야 했다. 500원이면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웬만하면 10, 즉 만원을 넘게 받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이럴 거면 아예 무료 입장을 시키는 편이 좋지 않을까.

 

 

 

 

 

 

 

박물관과 좀 떨어진 곳에 전시된 천고(天鼓)와 난계 동상도 보았다. 천고는 세계 최대의 북이라 자랑을 늘어 놓고 있었다. 북의 지름이 5.54m, 무게는 무려 7톤이나 나간다니 크긴 무척 컸다. 2010년에 완성되어 2011년 기네스 북에도 등재되었다 한다. 천고를 보면서 기네스 세계 기록이 무슨 대수고, 억지로 만든 이런 기록에 과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렇게라도 해서 세계 최대란 소리를 듣고 싶었나? 지자체가 내실보다는 쓸데없는 허명을 좇는 것 같아 공연히 마음이 쓰였다.

 

  

 

 

 

난계사는 예전에 한번 들어왔던 곳이라 낯설진 않았다. 30년도 더 지난 것 같았다. 그 동안 관리를 잘 해서 예전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처마에 칠한 단청도 그리 오래되지 않아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은 듯 했다. 여기도 몽땅 내 차지였다. 사람 그림자 하나 얼씬거리지 않는 적막강산이었다. 제일 안쪽에 있는 사당 앞에 서서 난계 선생의 영정을 조용히 들여다 보았다. 우리 고향을 빛낸 인물에게 영정 앞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림으로써 마음 속에 있던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밀린 숙제 하나를 후딱 해치운 기분이 들어 난계사를 빠져 나오는 발길이 가벼웠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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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3.12.08 1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과연 어떤 글과 사진을 보게 될까 둘러보다가 영동이 보였고 할아버지 산소가 생각나서 클릭을 하였는데, 저도 금시초문이었던 국악과 난계 박연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족과 친척들과 할아버지를 뵈러 산소를 가긴 갔었는데 왜 한번도 듣지 못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들었는데 제가 잊어버린걸까요? 조만간 기회가 되면 할아버지께 오래간만에 인사도 드리러가고 저도 박물관에 다녀와야겠습니다.

  2. 보리올 2013.12.08 14: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 이번에 한국 들어가면 할아버지 산소도 다녀오고 그 김에 난계사와 박물관도 들러 보거라. 내가 진즉 데리고 갔어야 하는데 너무 무심했단 생각이 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