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하이웨이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캐나다 로키에 있는 동명의 주립공원이 떠올랐다. 톱 오브 더 월드 고원에 있는 톱 오브 더 월드 주립공원은 대부분 지역이 해발 2,200m를 상회하기에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유콘에서 도로에 붙여진 동일한 이름을 듣게 되니 순간적으로 호기심이 동했다. 어떤 이유로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 설마 이름만 거창하고 실속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도슨 시티 위로 더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갈까 말까를 잠시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단 가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과연 어떤 지형과 풍경을 지녔기에 이렇게 건방진 이름을 쓰게 되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도로는 본래 도슨 시티에서 알래스카 테일러 하이웨이와 연결되는 잭 웨이드(Jack Wade)까지 127km에 이르는 비포장도로를 말한다. 도슨 시티부터 캐나다-미국 국경까지 106km 구간은 유콘의 9번 하이웨이로 불린다. 유콘 사람들은 이 9번 하이웨이를 60마일 도로라 부른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이 도로를 타려면 도슨 시티에서 먼저 페리를 타고 유콘 강을 건너야 했다. 여름철에는 페리가 운행하지만 강이 얼어붙는 겨울철에는 차가 얼음 위를 달린다고 한다. 페리 탑승에 돈을 받지 않아 기분이 좋았다. 페리도 공용 도로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다. 강을 건너면 바로 오르막이 시작된다. 한 구비를 크게 돌면 도슨 시티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조망도 나온다. 그 다음부터는 내내 산 위를 달린다.

 

해발 고도가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산 위로 내내 길이 이어졌다. 산이라야 울퉁불퉁한 험봉이 아니라 완만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산세를 지녔다. 구릉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았다. 왜 세계의 지붕, 세계의 꼭대기라는 말을 썼는지 이내 실감이 갔다. 모든 것을 눈 아래에 두고 도로를 달리니 톱 오브 더 월드 하이웨이라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크게 S자를 그리며 달리는 차 안에서 멀리 뻗어나간 계곡을 볼 수 있었고, 산자락엔 노랗게, 붉게 물든 단풍이 지천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노란색과 빨간색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연두색, 초록색도 숨어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여기 오기를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경치를 보지 못했더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61km 지점에 있는 뷰포인트가 최고의 경치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난 전구간이 좋았다. 경치가 뛰어난 곳이 나타나면 아무 곳에서나 차를 세웠다. 이 도로를 지나는 차량도 많지 않아 우리가 도로 전체를 전세낸 듯 했다. 산이 붙타고 있다는 표현을 여기에 붙여도 좋으리라. 산자락에 내포된 색깔도 너무나 다양해 절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미국으로 넘어가는 국경까지 갈까 했지만 80km 지점에서 차를 돌렸다. 어차피 여권도 없으니 알래스카로 넘어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다시 유콘 강을 건너 도슨 시티로 들어섰다.

 

 

 

 

<사진 설명> 도슨 시티에서 유콘 강을 건너기 위해 페리를 타야 했다. 이곳의 유콘 강은 강폭이 꽤 넓었다. 페리로 강을 건너는데 15분 정도가 소요된다.

 

 

 

 

 

 

 

 

 

 

 

 

 

 

 

 

<사진 설명> 톱 오브 더 월드 하이웨이라 부르는 도로는 고원 지대를 달리는 도로다. 산자락과 계곡을 눈 아래 두고 달리는 기분이 상큼했다. 거기에 산자락을 붉게 물들인 단풍이 무척 아름다웠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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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인 2014.02.16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운전하면서 하나도 심심하지 않겠어요. 밖에 펼쳐진 풍경보느라... 무슨 고속도로가 이렇죠 ? 정말 낭만적이네요.

    • 보리올 2014.02.17 0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을 아래로 내려다 보면서 운전하는 기분이 어찌 즐겁지 않겠냐. 교통량도 없어 길은 한산하고. 이 하이웨이는 말만 하이웨이지, 고속도로같은 개념은 거의 없지. 유콘에선 비포장 간선도로를 대부분 하이웨이라 부른단다.

  2. 설록차 2014.02.17 0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으로 붉은 색을 많이 보게 될거라 하시더니 첫 사진부터 Woman in Red 로 시작하십니다...ㅎㅎ
    9월 초에 가신걸로 기억하는데 벌써 단풍을 보이니 신기합니다...추울수록 가을이 빨리 오는가요...
    인적이 드물어서 오히려 현지인에게 동양인 방문객을 관광시켜주는 일도 생기겠어요...

    • 보리올 2014.02.17 09: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기서 처음으로 유콘의 붉은 색조를 보여주긴 하지만 진짜는 조금 더 있어야 합니다. 이러다가 설록차님 어록 하나 만들어야겠어요. Woman in Red라던가, 동양인의 관광자원화 등등요.

 

밴쿠버를 출발해 2 3일에 걸쳐 달려온 화이트호스. 너무 먼 거리였기에 감회가 남달랐는지 모른다. 화이트호스를 알리는 표지판을 찍는 것으로 도착 신고를 마쳤다. 화이트호스는 유콘 강가에 자리잡은 도시다. 유콘 전체 인구의 80%가 여기에 모여 산다. 도심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일스 캐니언(Miles Canyon)부터 들렀다. 유콘 강의 폭이 좁아지면서 유속이 빨라지는 곳이다. 과거 골드 러시 당시에 이 협곡을 지나던 배가 침몰되고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던 곳이었다. 다리를 건너 강을 따라 좀 걸었다. 우리 시선을 끈 것은 물 색깔이었다. 청록색을 띠는 강물이 무척 깨끗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도심에 차를 세우고 워터프론트 트롤리(Waterfront Trolley)부터 탔다. 노랑색 칠을 한 낡고 조그만 협궤 열차는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1925년에 만들어졌다는 이 열차는 시내에 있는 몇 개 정거장을 연결하는 관광용이다. 편도 이용에 2불을 받는다. 달리는 속도가 무척 느려 사람이 걷는 속도와 별반 다르지 읺았다. 그 때문에 더욱 낭만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열차를 탄 아이처럼 창가에 앉아 스치는 풍경에 눈길을 고정했다. 트롤리에서 내려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으로 걸어갔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고 판매하는 품목도 다양하지 않았다. 웰빙 식품으로 김치를 만들어 판매하는 가게에 들렀다. 김치와 전혀 비슷한 구석이 없어 우리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하얀 배추 샐러드 같은 이런 사이비 김치로 김치의 진면목을 흐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옛 영화를 자랑하는 증기선 클론다이크 호가 전시된 곳으로 걸어갔다. 클론다이크 골드러시가 끝난 후 화물과 사람을 싣고 화이트호스에서 도슨 시티(Dawson City)까지 왕복했던 배다. 편도 740km의 긴 여정을 오르내리던 배였다. 유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 배는 캐나다 역사 유적지로 지정을 받았다. 천천히 걸어서 도심으로 돌아왔다. 화이트호스 시내를 둘러보며 여유롭게 걸었다. 그리 크지 않은 도시라 볼거리는 대개 도심에 몰려 있었다. 몇 개의 건물이 눈에 띄긴 했지만 시선을 오래 끌지는 않았다. 지난 이틀간 캠핑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화이트호스에 있는 모텔에 투숙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샤워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사진 설명> 마일스 캐니언에서 드디어 유콘 강을 만났다. 유콘 강은 너무나 유명한 강이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발원해 유콘과 알래스카를 지난 후 베링해로 빠져나갈 때까지 장장 3,190km를 요동친다.

 

 

 

  

<사진 설명> 1925년부터 1978년까지 포르투갈의 리스본 시내를 달렸던 이 협궤 열차가 1999년 유콘으로 건너와 화이트호스의 명물이 되었다.

 

 

 

<사진 설명> 파머스 마켓이야 캐나다 어느 곳에서나 열리는 야외시장이기 때문에 특별나진 않지만, 그 지역의 특산품이나 공예품을 구입하고 현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엔 이보다 더 좋은 곳도 없다.

 

 

<사진 설명> 1929년 화이트호스에서 건조된 클론다이크 호는 1936년 유콘 강에 침몰하면서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동일한 설계도를 가지고 복제판을 만든 것이 바로 이 클론다이크 2호였다. 1952년 도슨 시티까지 클론다이크 하이웨이가 연결되면서 리버 보트의 역할이 모두 끝났다. 유콘 강에서 마지막까지 활약한 배라는 영예를 지닌 채 1955년 퇴역하였다.

 

 

  

 

 

 

<사진 설명> 화이트호스 다운타운은 그리 번잡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유콘 준주의 수도임에도 별다른 특징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가끔 건물 벽을 활용한 벽화가 눈에 띄긴 했지만 그것도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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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성호랑이 2014.02.09 14: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밴쿠버여행!~ 재미있으셨겠어요!~ 김치라고 적힌 유리병이 눈에 띄네요~!ㅎㅎㅎ

    • 보리올 2014.02.09 1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어요? 근데 갑자기 댓글에 밴쿠버 여행이라 적어 깜짝 놀랐습니다. 이 포스팅은 밴쿠버를 출발해 유콘을 다녀온 기록입니다. 유콘은 캐나다에서도 오지라 가기가 쉽지는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