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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8.24 [베트남] 후에 ② (4)
  2. 2015.04.15 중국 산둥성 타이안, 다이먀오/타이산 ① (2)




누가 뭐래도 후에의 자랑거리는 단연 응우옌 왕조가 사용했던 왕궁이다. 그래서 후에를 임페리얼 시티(Imperial City)라 부르기도 한다. 다리를 건너 왕궁까지 걸어서 갔다. 입장료로 15만동을 지불했다. 해자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왕궁 입구인 오문(午門)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달라 남문에 해당하는 오문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은 동문으로 나와야 한다. 연못도 지나고 중국 풍의 문도 여러 개 지났다. 문짝이 없는 삼문 형태인 패방(牌坊)는 중국 전통 양식을 모방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정직탕평(正直蕩平), 고명유구(高明悠久)와 같은 사자성어가 적혀 있어 베트남 같지 않았다. 왕궁 면적은 생각보다 꽤 컸다. 가로, 세로가 각각 2km에 이르고, 왕궁을 둘러싼 해자의 길이가 10km라고 한다. 천천히 걸어서 구경하면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린다.

 

왕궁은 대부분 노란색을 칠해 놓아 화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거나 황제가 업무를 보았다는 태화전(太和殿)은 온통 금빛으로 칠해 놓았다. 중국 자금성을 모방해 만들었다고 하지만 자금성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았다. 태화전 안에선 사진을 찍지 못 하게 했다. 왕궁 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화재로 사라진 근정전은 일부 회랑이 복원되어 있었다. 붉은색과 금빛으로 화려하게 만든 회랑을 따라 걸었다. 마침 어느 사진 모임에서 모델을 고용해 사진 촬영에 열중이었다. 좀 더 들어가니 황제가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했다는 태평루(太平樓)가 나왔고, 복원 공사중인 전각도 보였다. 건중루가 있던 자리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폐허로 변했다. 전쟁으로 파괴된 부분은 그렇다 해도 왕궁 자체는 꽤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해자로 둘러싸인 왕궁이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색 지붕을 한 건물이 오문이다.


모두 같은 색깔의 아오자이를 입은 여학생들이 단체로 소풍을 온 듯했다.



후에 왕궁의 남문에 해당하는 오문은 왕궁 입구로 쓰였다.



온통 금빛으로 칠한 태화전은 황제가 업무를 보던 곳이라 제법 화려함을 자랑했다.


멀리 오문과 패방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왕궁이 워낙 넓고 더운 날씨다 보니 전각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 많았다.


근정전의 일부 회랑을 복원해 놓았다. 사진 모임에서 모델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끼가 잔뜩 낀 문에는 잡초까지 자라고 있어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 중에 허물어진 왕궁내 전각을 보수하고 있다.


건중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멋진 정자 하나가 호젓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호수와 전각이 어우러진 모습이 나름 운치가 있었다.



건중루가 있던 곳은 폐허로 변해 복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전각에서 미술품을 진열해 놓고 판매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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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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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런투 2018.09.18 09: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에를 가고 싶었는데 아기와 같이가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아기가 크면 같이 가볼까해요 ^^

  2. justin 2018.09.20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트남은 정말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봐요~ 예전에 문화의 교류가 상당했나봅니다~! 기질도 비슷한건지 대기업들의 중국 공장들이 이제 대부분 베트남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 보리올 2018.09.21 19: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거의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옛 문화재를 보면서 그리 큰 차이를 느끼지 못 하겠더라.

 

타이산(泰山)은 중국 오악(五岳)에서도 으뜸으로 여기는 산으로 역대 황제들이 여기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리는 봉선의식(封禪儀式)을 행했던 곳이다. 중국사람들이 평생 한 번 오르기를 염원한다는 곳이라 호기심도 일었지만, 이곳을 한번 오를 때마다 10년씩 젊어진다는 속설도 내심 믿고 싶었다. 출발은 다이먀오()에서 했다. 다이먀오는 타이산의 정상인 옥황봉과 남천문의 정남향에 위치하고 있는데,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치르기 전에 이곳 다이먀오에서 먼저 제례를 올린 곳이다. 황제라고 아무나 봉선의식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진시황 이후 오직 72명의 황제만이 여기서 제사를 올릴 수 있었단다. 다이먀오는 황제들이 살던 황궁에 못지 않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천황전은 자금성의 태화전, 공자묘의 대성전과 함께 중국 3대 전각이라 했다.

 

다이먀오를 나와 타이산으로 향했다. 처음엔 차량들이 오고가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이른 아침부터 길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게들도 일찍 문을 열었다. 홍문을 지나 본격적으로 타이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타이산 입장료가 그리 싸지 않았다. 한 사람에 127위안을 받아 산을 오르는데도 2 5천원에 가까운 돈을 내야하는 셈이다. 돈을 내고역꾸역 들어오는 사람들 많았다. 그나마 외국인과 내국인을 차별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일천문에서 중천문에 이르는 구간은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았다. 길은 전구간에 걸쳐 돌로 놓여 있었다. 계단길이 좀 지루하긴 했지만 그리 힘들이지 않고 중천문에 이르렀다. 산 아래에서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오르는 사람도 많았다. 여기서 곤돌라를 갈아타고 남천문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우리는 튼튼한 두 발을 믿기로 했다.

 

 

 

 

 

 

 

 

 

 

 

(사진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치뤘다는 다이먀오를 먼저 둘러 보았다.

 

 

 

 

 

 

 

 

(사진홍문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타이산 산행은 돌길과 계단을 타고 올라야했다.

이름을 모두 기억하기 어려운 몇 군데 문을 지나 중천문에 닿았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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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5.04.30 0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생만큼 아니지만 참 많은 문을 지나쳤습니다. 문득 모든 문들이 각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 보리올 2015.04.30 0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 문이 참 많았었지. 각각의 문이 어떤 의미를 지녔겠지만 그 모두를 모르고 지나쳤구나. 역사에 관심이 있었다면 좀 달라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