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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4.08 [이탈리아] 베네치아 ②
  2. 2018.09.03 [베트남] 호이안 ① (2)

 

 

베네치아만에 있는 석호, 즉 라군(Lagoon)에 흩어져 있던 118개 섬들을 400여 개의 다리로 연결하면서 베네치아는 도시로 성장을 하게 되었고, 중세 시대에는 중계무역을 통해 경제적인 번영을 구가하였다. 섬과 섬 사이의 수로와 운하가 중요한 교통로가 된 까닭에 수상도시, 운하도시로 불리게 되었다. 베네치아에선 사람이나 물자를 실어나르는 조그만 배, 곤돌라의 역할이 꽤나 중요했다. 곤돌라는 길이 10m 내외의 소형 선박으로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간다. 선수와 선미의 휘어져 올라간 모양새가 고풍스러워 보인다. 오래 전에 타본 적이 있어 썩 마음이 내키진 않았지만, 곤돌라를 타고 싶다는 일행이 있어 리알토 다리 근방에서 배에 올랐다. 이젠 흔하디 흔한 관광상품으로 전락해 낭만이 넘치진 않았다. 노를 젓는 곤돌리노도 서비스 정신보다는 돈을 챙기곤 그 다음부턴 시간 때우기에 바빠 보였다. 최대 6명까지 30분 운행에 80유로를 받았다. 물 위에서 베네치아의 골목길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다리 위에선 이런 골목길 풍경을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S자 형의 대운하, 즉 카날 그란데(Canal Grande)가 베네치아 도심을 지난다.

 

1591년에 지어진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는 카날 그란데를 연결하는 다리 네 개 중 가장 오래되었다.

 

 

 

리알토 다리 인근에서 곤돌라에 올라 수로로 만들어진 골목길을 한 바퀴 돌았다.

 

 

베네치아에서 곤돌라 타는 곳은 여러 군데가 있다. 산마르코 성당 바로 뒤에도 곤돌라 타는 곳이 있었다.

 

 

 

 

 

 

곤돌라를 타는 것보다 운하 위에 있는 다리에서 골목을 누비는 곤돌라를 찍는 것이 더 즐거웠다.

 

산마르코 광장에 면해 있는 곤돌라 탑승장.

 

 

 

산타루치아 역으로 걸어가면서 눈에 띈 풍경들

 

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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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 버스로 후에를 출발해 다낭(Da Nang)을 경유, 호이안(Hoian)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 짐을 풀고 바로 호이안 구경에 나섰다. 발길 닿는 대로 그냥 걸었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이안은 베트남 중부에 있는 도시다. 요즘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는 다낭에서 40분 거리에 있어 그리 멀지 않다. 도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음에도 한때는 동남아시아의 중계무역 거점으로 활약을 했다. 약간은 퇴락해 보이는 건물들이 세월을 머금은 채 빼곡하게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 많은 전쟁을 치룬 나라에서 여기는 피해를 입지 않은 듯했다.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덕분에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이리라. 골목을 몇 군데 돌고 났더니 허기가 져서 길가 식당에서 바게트에 각종 재료를 넣은 반미(Banh Mi)로 점심을 때웠다. 입에도 맞았지만 간단하게 먹기도 좋았다.

 

호이안은 투본(Thu Bon) 강가에 위치한 작고 조용한 마을이지만, 훼손되지 않은 건축물이 남아 있어 베트남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변해 있었다. 일본인이 지었다는 내원교(來遠橋) 앞에 섰다. 일본교라고도 불린다. 임진왜란 다음 해인 1593년에 여기에 터를 잡은 일본 상인들이 지었다는 한국 관광객의 가이드 설명이 들려왔다. 당시엔 일본인 마을이 있을 정도로 일본과 교류가 많았다고 한다. 가끔 중국 화교들이 세웠다는 사원이나 회관, 화교들이 살았던 고택을 볼 수 있었다. 1786년 중국 광동 출신 상인들이 지었다는 광조회관(廣肇會館)의 패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삼국지의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라고 삼국지 주요 인물을 그린 그림이 많았다. 일본, 중국 풍의 건물이 많다는 것은 호이안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던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버스가 호이안에 도착했다. 버스 터미널이나 정류장도 아닌 길가에 차를 세우곤 사람들을 내렸다.


마을 진입로에 호이안을 소개하는 간판부터 나타났다.



일본 상인들이 16세기 말에 지었다는 내원교. 돌다리에 지붕이 있고 한쪽에 사찰이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광조회관은 광동 출신 화교들이 재물의 신, 관우를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었다.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 놓은 사찰, 법보사(法寶寺; Chau Phap Bao)


호이안 거리에도 오토바이가 많았지만 자전거도 가끔 눈에 띄었다.



미술품이나 공예품을 파는 가게



유행에 민감한 신사복이나 숙녀복을 취급하는 상점도 있었다.



월남쌈의 재료인 라이스페이퍼, 즉 반짱을 만드는 공장도 둘러 보았다.



반미를 팔던 길거리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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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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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stin 2018.10.10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곳이라도 전쟁에 의한 피해를 받지 않고 보존되어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저희 나라도 그 많은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면 유적, 유물이 참 많이 남았을텐데 아쉽기만 하네요~

    • 보리올 2018.10.14 07: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타깝지만 전쟁통에 사라지는 유적들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 전쟁이 없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으니...